제158화: 관련자(2)
아무리 봐도 자신이다.
자세히 찍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들은 단번에 구별할 수 있는 사진이었다.
그러나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기사 내용이었다.
‘사막의 늑대’로 불리는 용병으로 결코 손에 자비심이란 없으며 KAS(Kilo Alpha Services)소속이며 아시아계로 알려졌다. 정확한 나이와 이름은 분명치 않고 그가 등장하면서 그동안 보안업계 중소기업인 KAS가 일약 3대 메이저인 아카데미 마르케스 다인코프와 경쟁할 만큼 지명도가 높아졌다. KAS 관계자는 결코 그의 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세한 신상에 대한 정보 공개는 곤란하다고 했다.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쿠데타에도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아직 드러난 것이 없다.
딸칵!
라이터 소리에 고개를 들자 에반이 통화가 끝난 듯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종이신문은 이미 나와 버렸으니 어쩔 수 없고 인터넷 판은 지웠네.”
“누가 찍은 거죠?”
권총수의 시선이 차갑다.
“그렇잖아도 조사중이라네.”
“내부에서 나가지 않았다면 이런 사진을 기자가 무슨 수로 확보합니까.”
“물론이지.”
권총수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자신은 아니다.
오민철도 아닐 것이다.
널리 알려져 좋을 것 없는 이런 사진을 기자에게 건네줄 만큼 바보는 아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게.”
자신은 이미 타겟이 되었다.
반 파흐드 왕세자를 외치는 집단은 물론이고 MI6에서 귀띔해준 정보에 의하면 크고 작은 이슬람 무장 조직들까지 쫓고 있다고 했다.
‘사막의 늑대는 이슬람의 사탄이다’
이슬람의 사탄으로 규정되면 반드시 죽는다.
언젠가 인도 출신 영국 작가 루시디가 쓴 ‘악마의 시’라는 소설이 나오면서 이슬람권이 발칵 뒤집혔다.
책 내용을 보면 예언자 무함마드의 여러 아내들이 창부로 나와 남자들을 유혹하는등 신성모독에 대한 내용이 거침이 없다.
이슬람권 국가들이 책의 판매를 중지해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지만 출판사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았다.
급기야 이란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시디 목에 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건다.
‘지구촌 모든 무슬림들에게 전달한다. 우리의 종교와 에언자 무함마드와 코란을 모독한 악마의 시 작가 루시디와 내용을 알면서도 출판한 출판 관계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형제들이여 누구든 그를 발견하면 망설이지 말고 죽여 이슬람의 신성을 지켜야 할 것이다'
루시디는 이후 영국정부의 보호 아래 들어갔고 지금도 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명으로 활동하면서 책은 계속 내고 있지만 암살을 피해 사느라 삶이 망가졌다고 토로했다.
권총수 자신 또한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었다.
루시디와 차이라면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방문자들이 귀찮을 뿐이다.
“할 얘기라는 것이 뭔가?”
“잠깐 나갔다 와야 겠습니다.”
“한국을 들어간단 말인가? 무슨 일 있나?”
“개인적으로 처리할 일도 있고.”
에반은 이마를 찌푸렸다.
“아직 사우디 정국이 안정되지 않았네.”
긴장을 놓을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알 살만 왕세자 핵심 측근 두 명이 아직 잡히지 않았어. 최소한 그들이 잡히면 그때 가면 안되겠나?”
권총수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다.
그는 KAS용병들은 물론이고 이번 거사에 적극 참여한 오타이프 장군(지금은 중장으로 진급하여 임시 육군 참모총장을 맡고 있다)이나 17사단장 알하자이아(이번 쿠데타 성공으로 기계화군단장으로 옮겨갔다)도 권총수의 무게와 존재를 인정했다.
권총수는 차마 거절 할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걸어나온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오민철이었다.
그는 지금 파흐드 왕세자가 거처하는 궁의 외곽경비를 총괄 책임지고 있는 경호대장이다.
파흐드 왕세자는 국왕만이 머물 수 있는 대궁전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곳은 의미이고 권위이다.
아직은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사우디민주국민행동 위원장으로서의 행보만 보이겠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나중에 전면에 나서겠지만 지금은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권총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형 물어 볼게 있어.”
“물어봐?”
“혹시 내 사진 밖으로 유출 시킨 적 있어?”
“뭔 사진?”
오민철은 펄쩍 뛰었다.
미쳤냐면서 널 노리는 놈들이 한둘이 아닌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일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더 흥분했다.
누가 흘렸는지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고 야단이었다.
전화를 끊은 권총수는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도로를 바라보았다.
신문에서 봤던 그런 각도의 사진은 셀프 촬영이 불가능하다.
자신은 찍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동료 중 누군가가 찍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토브와 시르왈 차림새는 알부페시궁 공격 훨씬 이전의 모습이다.
자신처럼 주목 받는 인물의 얼굴이 대중에게 노출된다는 건 자살행위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위험하고 아찔한 일이다.
지이잉!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에 찍힌 번호를 보더니 터치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제 전화에 메시지 남기신 분입니까?”
“맞습니다. 서기관님을 좀 뵀으면 합니다. 저는 아무 시간이나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곳에서 뵙겠습니다.”
권총수는 전화를 내렸다.
빵빵!
크렉슨 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근무 교대를 마치고 돌아온 회사 통근버스였다.
“총수야. 형님왔다.”
오민철이 HK-416을 왼손에 든 채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기뻐해라.”
오민철은 카악하며 가래침을 뱉었다.
“조금 전 큰 누님에게 전화가 예술처럼 걸려왔다. 강남에 33평짜리 한 채 샀단다.”
“축하해 형.”
“이번에 받은 보너스와 모아 놓은 돈, 그리고 은행 융자 좀 받아 서초동에 터를 잡았다는 훌륭한 소식이다. 오빤 강남 스타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 잔의 여유를 하는 품격있는 여자.”
퍽퍽!
오민철은 말 춤을 추며 소리쳤다.
정장을 한 사내가 램(Lamb)만디라는 요리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사우디에서 흔한 요리지만 누구의 손에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사내가 자리 잡고 있는 이 식당은 리야드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만큼 어린 양고기 요리에 탁월했다.
처억!
누군가 맞은편에 앉는 소리에 사내는 고개를 들었다.
“권총수씨?”
“예!”
“아 미안합니다. 배가 너무 고파 먼저 식사 좀 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녁 하셔야죠?”
“아닙니다. 전 생각 없습니다.”
스윽!
사내는 휴지로 입을 닦았다.
“관광객 명단에는 없더군요?”
권총수는 우리 교포와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대사관 대민담당관 이철병에게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한국 관광객이라고 신분을 밝히면서 도움을 요청할 일이 있다고 했다.
“말씀 해보세요. 도움 요청이란게 뭡니까?”
“요즘 힘드시죠?”
“네?”
“사우디에 혁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진출해 있는 외국 기업들 업무가 일시 중단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금방 풀어질 것입니다.”
이철병은 별것 아니라는 듯 국물까지 완전히 마시면서 커어! 하는 트림을 했다.
“끼니 잘 챙겨 드십시오. 건강해야 우리 국민을 위해 더 열심히 봉사할 것 아닙니까?”
피식!
이철병은 실소를 지었다.
“꼴통새끼들.”
“누가 말이오?”
“이런 데까지 나와서 지랄들이야. 조선 놈들은 그저.”
“불편한 일이 있었나 봅니다?”
“내가 무슨 자기들 하인인줄 알아요. 싸가지 없이. 자기들이 대사관으로 오면 될 걸 바쁜 사람더러 오라가라. ”
“사우디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들 현황 좀 알 수 있을까요?”
멈칫!
하며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당신 누구야? 확인해 봤는데 관광객 명단에도 들어있지 않고 이곳에 거주하는 교포는 더욱 아니고? 뭐 하는 사람이오? 여권 있으면 한 번 봅시다.”
권총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말해줄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허리를 숙인 뒤 돌아섰다.
이철병은 사라지는 권총수를 보며 중얼 거렸다.
“뭐 하는 놈이야.”
기분 나쁘다는 듯 투덜 거렸다.
밤이 깊어간다.
덜컹거리며 랜드로버 한 대가 오층 건물로 된 KAS 사우디 지사로 들어섰다.
차 문이 열리고 내린 권총수는 불 꺼진 건물을 흘긋 올려다 본 뒤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이철병을 만나자고 한 건 간단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자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기업을 간섭한다.
기업을 건드려 소속 국가로부터 자신들을 지지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아직 새로운 사우디 정부에 대한 입장 표명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퇴출기업 명단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름 도와줄 방법이 없나 의논을 해보기 위해 만나자고 했는데 이철병은 오히려 의심의 눈으로 본다.
아직은 누구라고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처지다.
“캡틴!”
건물 뒤로 돌아가는데 누군가가 부른다.
벽돌과 모래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경비 초소에 비렌드라와 호간이 바라보았다.
“곧 한국 간다면서, 좋겠다.”
호간이 히죽 웃었다.
“처리 할 일이 좀 있어서 말이야.”
권총수는 수고들 하라면서 돌아섰다.
번쩍!
권총수의 고개가 벼락같이 돌아섰다.
어둠을 찢는 듯 엄청난 광채가 사막 저편에서 날아온다.
“RPG!”
건물에는 팀원들이 취침중이다.
RPG 한 방에 건물이 무너질리는 없겠지만 어느 부위를 때리느냐에 따라 사망자수가 달라진다.
지금 팀에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KAS 사우디지사가 타격을 입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파흐드 왕세자쪽 사람들로 권력기관의 수장들이 바뀌고 있지만 밑바닥까지 교체가 되지 않고 있어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KAS가 타격을 입었다는 소문이 퍼지면 잔뜩 독을 품고서 기회를 엿보던 알 살만 왕세자의 추종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파아아!
300밀리 이상의 장갑을 뚫는 어마어마한 대전차 무기가 날아든다.
정상적인 몸 상태도 아니다.
헬기의 공격으로 입은 부상에서 겨우 절반 정도 회복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망설일 수가 없었다.
망설이는 순간 겨우 살아남은 동료들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호신강기를 끓어 올린 뒤 몸을 날려 막으려다 재빨리 내공을 흐트러뜨려 버렸다.
호신강기를 일으키면 강한 충격파가 발생한다.
RPG는 순전히 충격으로 폭발하는 대전차 무기이다.
호신강기는 오히려 충돌의 강도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좋지 않다.
'어쩔 수 없나?'
빠아악!
사람의 몸이 찢어질 때 나는 파육음이 들린다.
권총수의 눈이 커지며 그의 몸에 그대로 RPG가 박혔다.
RPG는 권총수를 달고 날아가 건물의 창문을 뚫고 박혔다.
“오마이 갓!”
비렌드라와 호간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뭣해! 빨리 앰블런스 불러.”
비렌드라가 비명처럼 외쳤다.
“절대 안돼!”
비렌드라는 4층 외벽을 보며 몸서리를 쳤다.
권총수가 걸려 있었다.
RPG가 파고든 몸이 화장실의 좁은 창문에 끼면서 멈춘 것이다.
우당탕!
와르르!
건물에 불이 켜지며 잠을 자던 용병들이 속옷차림으로 HK-416을 들고 뛰쳐나온다.
“불켜! 불 키라고.”
누군가 소릴 질렀고 꺼진 불이 다시 들어왔다.
적의 공습인줄 알고 전원부터 차단했다.
복도로 몰려 나온 용병들은 무슨 일인지 아직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허둥지둥했다.
다다닥!
그때 비렌드라가 뛰어 올랐다.
“뭘 보고 있는 거야. 화장실! 화장실!”
비렌드라가 소리치자 누군가 화장실 문을 열어 젖혔다.
“끄억!”
문을 열어 젖힌 용병이 소스라쳤다.
“비켜!”
비렌드라가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