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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56화 (156/651)

제156화: 사막의 용2

비상라이트를 켠 포드 익스플로러 한 대가 빠른 속도로 좁은 도로를 달려오더니 KAS 사무실 앞에 멈춰 섰다.

좌우 문이 열리고 맥보란과 클레인이 내린 뒤 곧장 1층 사무실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사무실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사내는 백인이었지만 검게 탄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바라보는 시선이 매섭다.

“에반 지사장님 좀 뵙고 싶습니다.”

“난 모르오.”

사내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맥보란은 사내 옆에 놓인 낡은 군용백을 보며 새로 온 용병이라는 걸 알아 차렸다.

딸칵!

맥보란은 문소리에 번개처럼 돌아섰다.

낯익은 얼굴의 사내 KAS 사우디 지사장 에반이 들어섰다.

손에 HK-416이 들린 것이 현재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에반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맥보란과는 구면이다.

그런데도 아는 체하지 않고 곧장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지금 어딘가?”

“알겠네. 검문소에 조치를 해 놨으니 신경쓸 것 없네. 이따 보지.”

에반은 전화를 끊고 새로 온 용병사내를 돌아보았다.

“자네가 세르게이인가?”

“예!”

“이것 받게!”

휘익!

자신이 들고 있는 HK-416 소총을 던져 주었다.

세르게이가 총을 받았고 에반은 권총을 꺼내 챙기더니 말했다.

“때맞춰 잘 왔네.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필요할 때인데.”

에반이 서둘러 나가려 하자 맥보란이 급하게 불렀다.

“에반, 사람 창피하게 그냥 가려나?”

“눈치가 없는 겁니까? 바보인척 하는 겁니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지 않을 텐데 날 만나려고 하느냐는 소리다.

“나중에 봅시다!”

“에반!”

탁!

문이 닫혔다.

맥보란은 밖으로 뛰어나왔다.

랜드로버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지리링!

“에반, 에반!”

몇 발자국 쫓아갔지만 랜드로버는 완전히 떠나버렸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남의 빈 사무실에 언제까지 있을 셈이오.”

추방령이다.

“일이 정리가 좀 되면 그때 봅시다.”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버스 한 대가 리야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외관은 버스이지만 중화기 공격을 받을 것에 대비해 철판으로 잇대어 바닥까지 보강한 작전버스다.

권총수는 오른쪽 맨 앞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알페부시궁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6시간이 걸렸으나 단 한마디도 뱉지 않았다.

운기요상중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끊임없이 내공심결을 운용하며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치료가 되지 않고 있었다.

워낙 내상이 심하다.

“다 왔군.”

오민철이 중얼 거렸다.

리야드 시내로 진입하는 이정표가 나타났다.

“검문소야!”

쿠데타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수도를 중심으로 삼엄한 검문소가 설치된다.

외부 병력 진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연락이 닿은 듯 무장 군인들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버스를 통과시켰다.

그런데 버스가 검문소를 빠져나가지 않고 한쪽에 멈춰섰다.

“뭐야?”

“왜 서는데?”

하나같이 풀어 놓았던 소총을 거머쥐었다.

지금은 쿠데타 중이기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운기 요상중이던 권총수도 인상을 찌푸렸다.

“어! 지사장님 차량 아냐.”

강철판으로 덧입힌 벽으로 인해 창문이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그곳으로 밖의 상황이 보였다.

흰색의 랜드로버가 있었는데 에반의 차였다.

“어랏! 세르게이 아냐.”

모두가 놀란다.

랜드로버에서 내린 이는 에반과 세르게이였다.

“세르게이!”

“으와, 미스터 푸틴!”

외인부대 출신들이 소릴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세르게이가 왔다.

러시아의 정치적 제약 때문에 동남아 용병시장으로 진출했던 그가 온 것이다.

버스 안으로 올라온 세르게이는 옛 동료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백인도 얼굴이 타냐?”

새카매진 얼굴을 보며 오민철이 짓궂게 말했다.

“게이 형!”

권총수가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캡틴, 아프구나.”

세르게이는 단번에 권총수의 몸 상태를 알아 차린다.

“괜찮아. 좋아졌어.”

“캡틴은 강한 남자야.”

에반에게 설명을 들은 듯 세르게이의 행동은 외인부대에서 와는 또 다른 절제가 있었다.

이제 권총수는 자신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었다.

시내 차량이 뜸하다.

계엄령이 선포되었음이 틀림없었다.

곳곳에 탱크와 장갑차가 보이고, 무장군인들이 사람들의 통행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제야 권총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엄은 쿠데타를 성공시킨 쪽에서 내리기 때문이다.

‘후우!’

실패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산다는게 도박 아닌가 하는 조금은 해탈하는 심정과, 뿌리도 없이 왔으니 남기는 것 없이 떠난다고 욕할 사람도 없다는 처연한 감정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또다시 인생의 또 한고비를 넘겼다.

‘바오로 삶은 열두 고개란다’

원장수녀는 옷 가방 하나 메고 이제 그만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는 권총수를 향해 말했다.

냉장고에서 요쿠르트 한 개를 꺼내 건네는 원장수녀에게 무뚝뚝하게 물었다.

‘열두 고개, 그건 또 뭡니까?’

‘그만큼 아슬아슬하고 위험하며, 한고비 넘겼다고 마음을 놓았다가는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 온다는 얘기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험난한 여정이 될거야’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듯 싶다.

외인부대에서부터 오늘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끝없이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잘 계시나 모르겠군’

불현듯 원장수녀의 주름 가득한 얼굴이 떠올랐다.

밤이다.

시내는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국방부 건물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권총수 일행이 타고 온 버스가 정문 너머로 보인다.

지하 벙커에는 다섯 명의 군인들이 있었는데 셋은 장군이고 둘은 대령이다.

그리고 유일한 민간인은 권총수 혼자였다.

이번 쿠데타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오타이프 통신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왕세자께서 많이 늦으시는군.”

그러면서 흘긋 눈을 감고 있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말이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벙커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거의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선배님!”

두 개의 별을 어깨에 단 군인이 다가왔다.

이번 거사에서 큰 위력을 발휘해준 보병 17사단장 알하자이아 장군이다.

자신의 1년 후배이지만 야간전투 전술에 해박하다.

그를 끌어 들이기 위해 무척 고심했다.

만약 반대를 한다면 그를 죽여야 했다.

거사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이기에, 아무리 절친한 후배라고 해도 가만 둘수는 없는 것이다.

도박이었다.

실패할 경우 죽여 없앨 각오를 다지며 찾아갔고 만약을 대비해 1개 소대병력을 중무장 시켜 관사 근처에 잠복시켰다.

다행이도 그는 거절하지 않았고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처음 국왕 관저와 국방부를 점령한 병력은 전부 알하자이아 장군이 이끄는 17사단 병력이다.

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원래 저렇게 말이 없는 친구요?”

벙커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권총수를 턱으로 가리켰다.

“언젠가 나한테 그러더군. 입이 자주 열리면 쓸데 없는 말을 하게 된다고 말일세.”

“오오! 젊은 친구가 대단하군. 정말로 카이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것 아닐까요?”

알하자이아 장군이 웃었다.

쿠데타 직전 이들과 공동 운명임이 확실해지는 순간 권총수는 자신의 실체를 말했다.

오타이프 장군은 해박한 상식에 진짜로 카이로 대학 철학과 출신으로 믿었다면서 당황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상대를 속이면 부정적 이미지가 오래 남는다.

그 점을 염려한 권총수는 자신의 출신 내력까지도 말했다.

작전상 속였지만 이제 같은 배를 탄만큼 더 이상 속임수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대단한 친구군.”

알하자이아 장군이 놀란 표정을 했다.

용병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좀체 드러내기 싫어한다고 들었다.

용병의 세계란 철저한 약육강식이다.

약자를 잡아먹기 위해서는 자신을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된다.

권총수 같이 이름 난 용병이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도 고백하듯 부모 없이 태어났다는 말까지 털어 놨다는건 신뢰를 얻고자 하는 최선의 행동이다.

“왕세자께서 오십니다.”

벙커의 사람들 모두가 일제히 부동자세로 섰다.

잠시 후 사물란의 안내를 받으며 파흐드 왕세자가 지하 벙커로 들어섰다.

군인들은 거수경례를 했고 권총수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파흐드 왕세자가 자신의 자리에 서서 말했다.

“앉읍시다!”

모두가 자리에 앉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파흐드 왕세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돌아가며 훑어보았다.

“이제 어떡하면 됩니까?”

그러면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방송을 통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셔야 할 것입니다. 가급적 전 국왕의 통치 철학을 이어 받는다는 걸 강조하여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을 안심 시키십시오.”

“전 국왕의 통치철학을 이어 받는다?”

“나중에 국정이 안정되면 그때 왕세자님의 정치노선을 드러낼지라도 지금은 흔들리지 않는 정부의 연속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권총수의 제안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장 우선해야 할 조치가 권력 핵심부의 수장을 조속히 임명하여 그들로 하여금 조직을 컨트롤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중 비밀경찰국과 해외정보국 장악, 또한 군 내 알 살만 왕세자의 심복들부터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파흐드 왕세자가 질문하면 권총수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로 듣기만 했는데 권총수의 입에서 나오는 새로운 조치들을 들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국을 안정시키는데 필요한 정치적 군사적 수단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자신들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들이었다.

그중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 현 국왕과 지금까지 정치적 적수였던 알살만 왕세자를 처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뿌리가 워낙 깊습니다. 그들을 처형함으로 추종자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죠.”

권총수는 단호했다.

그의 말은 계속 이어졌고 끊고 맺는 것이 분명하여 누구도 반박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 * *

사우디아라비아의 쿠데타는 주변국들은 물론 그들과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에게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특히 수입원유의 90프로를 사우디에서 실어오고, 화력 발전소와 정유공장, 담수 플랜트 공사등 해외건설시장의 약 30프로의 수주를 맺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초비상 상황이었다.

쿠데타 소식을 전한 건 새벽 3시였다.

침실 문이 열리고 편한 복장 차림으로 대통령이 나왔다.

당직비서인 박운철이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무시는데.”

“사우디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다니 자세히 말해보게.”

대통령은 복도를 걸어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박운철은 옆을 따르면서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외교부장관과 국정원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장 일행은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자신도 산전수전 겪었지만 추적자 역시 대단했다.

오늘로 사흘째 쫓기고 있었다.

채명천은 홍대 앞 ‘시나위’라는 국수집에 앉아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고 있었다.

도망 다니느라 제대로 끼니도 찾아 먹지 못하고 있다.

도망이든 추적이든 체력이 우선이다.

후루룩!

주위에 몇 명의 손님이 국수를 먹고 있었지만 마낙춘으로 보이는 인물은 없다.

사흘 전 은밀하게 아내를 만났다.

더 이상 가게를 찾아와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들은 없다고 했다.

아내는 당장 모든 걸 때려치우라고 했다.

이제 장사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대낮에 모텔 방 드나드는 년놈(흥신소)들 뒷조사 하지 않아도 입에 풀칠은 한다는 것이었다.

“끝까지 가야지.”

아내의 눈이 커졌다.

“그런 것 있잖아. 가끔은 돈 되지 않는 일인데도 하고 싶은 맘이 생기는 것 말이야.”

“난 돈 안 되는 건 죽어도 하기 싫던데.”

“마음에 들어.”

“누가? 내가? 이이가 진짜.”

자신을 의미하는 줄 알고 아내의 얼굴이 빨개졌다.

“내게 이 일을 청부한 사람 말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괜찮은 친구라는 생각도 들고, 깔끔하게 마무리 해주고 싶어.”

“도대체 뭘 청부받았는데 이렇게 집도 못 오고 밖에서 도냐구?”

“조금만 참아. 곧 끝날거야.”

바로 그때 누군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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