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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55화 (155/651)

제155화: 사막의 용1

샤일란이 옆에 있는 벽을 짚으며 쓰러지려는 몸을 세우려한다.

주르륵!

피가 얼굴을 덮는다.

“왕세자 전하와 얘기에 끼어들지 마시오.”

쿵!

샤일란이 소리를 내며 엎어졌다.

알 살만 왕세자의 안색이 굳어졌다.

언뜻 왕세자와 얘기를 나누는데 예의 없이 끼어드느냐며 꾸중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면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지다.

“왕세자 전하, 파흐드 왕세자님 암살 사건에 어디까지 관여하셨습니까?”

“난 무관하네.”

피식!

권총수가 미소를 지었다.

“파흐드 왕세자 암살을 지시 하셨죠?”

알 살만 왕세자가 멈칫 했다.

조금 전 질문과 내용은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한 가지에서 구별이 된다.

목소리가 다르다.

훨씬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꿀꺽!

알 살만은 침을 삼켰다.

“내가 파흐드 왕세자를 죽일 이유가 없소.”

권총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처억!

옆에 서 있던 해외정보국장 사에드가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앞을 막았다.

슉!

권총수의 주먹이 벼락처럼 뻗어 나갔다.

뻐억!

사에드의 목이 뒤로 젖혀지면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목이 뒤로 꺾인 듯 반듯하게 세우질 못 한다.

몇 번 앓는 소리를 내는 듯 싶더니 사에드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쿵!

움직이지 않는다.

죽은 것이다.

알살만 왕세자는 몸을 떨었다.

태어나 사람의 목이 꺾이는 모습은 처음이다.

대물저격총 따위로 쏜 것도 아니고 쇠몽둥이로 두들긴 것도 아니다.

주먹을 뻗는 모습만 얼핏 보였는데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죽어버린 것이다.

꾸울꺽!

“왕세자님.”

“맞소. 내가 지시했소.”

알 살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승사자가 목전에 있다.

가슴이 차가운 얼음을 얹은 듯 서늘해지고 등골이 쭈뼛 거린다.

입안이 바싹 타고 심장이 터질 듯 뛴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알 살만 왕세자를 더욱 두려움으로 몰아넣는다.

지켜보던 권총수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철수!”

명령을 내리고 곧장 돌아섰다.

왕궁이 공격받고 있었다.

IAV 스트라이커 장갑차에 설치된 12.7밀리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XM813 30밀리 기관포가 무자비하게 퍼붓는다.

쿠쿠쿠쿠!

왕궁 경비병들이 기관단총으로 저항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콰앙!

퍼어어어!

바리케이트를 깔아뭉개며 왕궁의 육중한 철문이 통째 떨어져 날아갔다.

장갑차를 앞세우고 밀고 들어오는 군인들의 공격은 무자비했다.

차라리 사냥이다.

쾅!

콰아앙!

스트라이커 장갑차에 장착된 박격포가 왕궁 곳곳에 떨어지며 건물들이 무너졌고 화재가 발생했다.

쿠쿠쿠!

차체가 작고 장갑이 두터워 15밀리 이하 총탄에는 끄덕도 없다.

왕궁경비대가 쏟아내는 기관단총 총탄은 장갑차에 부딪히자 튕겨 나가 버릴 뿐이었다.

쿵!

퍼억!

초소와 벙커를 부숴버렸고 그 안의 경비병들은 채 피하지 못하고 깔려 뭉개졌다.

경비병들은 어쩔 수없이 후퇴해야 했다.

쿠데타의 마지막이 화려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말에 CIA 중동 지부장인 맥보란은 소스라쳤다.

그렇잖아도 요즘 낌새가 좋지 않아 사우디 동부에 있는 미군부대를 찾아 부대장 위컴 중장과 대책을 논의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이런 우라질!”

부우웅!

차는 비상라이트를 켜고 속도를 높였다.

교통경관들이 신호까지 무시하며 사라지는 맥보란의 차량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사관 정문에 긴장이 감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접이식 자바라(밀고 닫는 수평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A형 바리케이트, 장갑차 장륜도 뚫을 것 같은 육중한 철침판, 오뚜기 바리케이트가 대사관 앞을 덮어버렸다.

무장 해병들은 오른손을 M4 방아쇠에 걸고 언제든지 당길 기세였다.

문이 열리고 맥보란이 들어섰다.

벌컹!

미국 대사 바즈자이드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고 세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있었다.

“어서 오게!”

바즈자이드 대사가 아는 체를 했다.

“클레인, 얘기 좀 해봐.”

대사관 경비 시스템을 총괄하는 기술직이지만 그 뒤에는 CIA 정보원이란 신분도 있다.

“저도 지금 막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요원이 지금 막 들었다면 얼마만큼 신중하고 은밀하게 쿠데타가 진행되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누구야? 압둘라티프 장군인가?”

압둘라티프는 메디나에 주둔하는 보병 제55사단장이다.

55사단은 리야드를 방위하는 부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항상 긴장 상태인 예멘이나 이라크 국경에 인접해 있는 야전부대도 아니었다.

수도 리야드 방위사령부를 지원하는 군수부대일 뿐이다.

알 살만 왕세자의 측근으로 분류되었고 리야드 서쪽 50킬로 지점 알투쿠에 주둔하고 있는 제2공수부대장이었다.

하지만 1년 전 알 살만 왕세자의 꾸중에 말대꾸 한 마디 한 것이 사건이 되어 졸지에 군수지원부대로 밀려난 것이다.

다혈질적이긴 하지만 후배들에게 신망이 높아 만약 사우디에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요주의 1 순위 인물로 짚고 있었다.

알 살만도 그 점이 걱정된 듯 옷을 벗기려한다는 말이 들리고 있는 와중이다.

“아닐세.”

대사 바즈자이드가 무거운 시선을 던진다.

“그 사람일세.”

“그 사람?”

“KAS 소속 용병, 사막의 흑새로 불리던 사내 있잖는가. 이름이...?”

“권총수입니다.”

클레인이 입을 열어 말했다.

“권총수!”

맥보란은 소스라쳤다.

“이런!”

가늠할 수 없는 충격이란 듯 입을 떠억 벌렸다.

맥보란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실내에서는 금연이지만 누구도 맥보란을 제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권총수를 눈여겨보고 있긴 했다.

더욱이 알 살만과 살벌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파흐드 왕세자 경호를 하고 있어 상당히 긴장하며 지켜봤다.

이미 베네수엘라 쿠데타로 그의 이름은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치적으로 그를 고용하고자 하는 각국의 독재자들과 반정부 인사들의 접촉이 KAS와 끊이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갑자기 사우디로 옮기자 불길한 예감을 갖고 한동안 감시했지만 평범한 용병활동 말고는 특출나게 튀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분명한가?”

“알부페시궁이 점령됐는데 그곳에서 그의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알부페시궁은 알 살만의 별장이다.

평소 사람들 눈을 피해 측근들과 자주 회합을 하고 정치적 중요 행사가 있을 때면 찾는 곳이다.

알 살만이 한번씩 알부페시궁을 방문했다 돌아오면 며칠 이내로 천지가 개벽할 사건이 일어나곤 한다.

“랭글리 연결해.”

클레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쪽 벽의 액자를 뜯어냈다.

가정용 전기 안전기가 설치된 듯 작은 철문이 있다.

문을 열자 안에 전화기 한 대가 걸려 있는데 랭글리와 직통전화다.

감청이 불가능하다.

“나왔습니다.”

맥보란이 담배를 끄고 다가가 전화를 넘겨받는다.

“예, 예! 위성분석은 끝났습니까?”

“알겠습니다.”

통화는 간단했다.

맥보란은 수화기를 벽에 걸어 놓고 돌아섰다.

“사흘 전 부라이다를 향해 가는 버스 한 대가 우리 위성에 찍히긴 했으나 자주 목격되는 일이었기에 관심 두지 않았는데.”

잠시 말을 멈춘 맥보란이 바즈자이드 대사를 본다.

“거기에서 실책이 발생한 것 같다는군.”

“랭글리의 실책이라기보다는 그들의 계획이 치밀했던게 아니겠나. 쿠데타군 병력이 일반 버스로 이동한다는 걸 누가 생각했겠나.”

맥보란은 세 사내를 향해 말했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한 파악이 중요하네. 퍼킨스와 우드는 사우디 군부의 동향을 살피고 클레인 자네는 날 따라와.”

맥보란은 서둘러 방을 나갔다.

맥보란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파흐드 왕세자의 저택이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무장 경호원들이 저택을 에워쌓고 있었다.

“왕세자께서는 지금 계시지 않습니다.”

정문초소 경비병은 사무적으로 말했다.

미국 대사관에서 나왔다고 신분을 밝혔지만 근무자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파흐드 왕세자의 스케줄을 저희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쿠데타의 중심에 있다면 이럴 때일수록 둥지를 지키는 것이 정석이다.

더욱이 경비까지 평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 분명히 집 안에 있다.

“사물란 비서만이라도.”

“그만 가시죠.”

경비병 목소리에 냉기가 깔린다.

자꾸 귀찮게 하면 가만 있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왕세자 전화번호를 알고는 있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음성 메시지만 흘러 나왔다.

부우웅!

맥보란은 하는 수 없이 돌아섰다.

“어디로 갈까요?”

핸들을 잡은 클레인이 물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뭔가 고민하던 맥보란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알 살만 왕세자의 전화였다.

맥보란의 통화시도는 여러 곳을 향해 이어졌지만 단 한 군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핸들을 잡고 있던 클레인이 초조해하는 맥보란의 눈치를 살폈다.

“좋지 않은데.”

그건 쿠데타가 성공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알 살만 왕세자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비밀경찰국, 해외정보국, 특수전사령관 모두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신의 전화를 거절할 그들이 아님이 분명하므로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지이잉!

때마침 핸드폰이 울렸는데 부하직원 퍼킨스였다.

“알부페시궁에 사에드 국장 아트완 육참총장, 이스마일 특수부대 사령관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분명해?”

“왕궁출입기자 자페르로부터 들었습니다.”

“자페르기자 어딨나? 오케이.”

전화를 끊은 맥보란이 소리쳤다.

“국방부로 가.”

부우웅!

차는 오십여 미터를 더 달리다 좌회전하여 사라졌다.

국방부 앞에는 내외신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맥보란은 정문으로 다가갔는데 무장군인들이 기자들 출입을 막고 있었다.

“미대사관에서 왔소.”

그러면서 신분증을 꺼내 보였지만 군인은 차갑게 말했다.

“누구도 출입을 금하라는 명령이오.”

“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구요? 국방부 장관은 어딨소?”

알 살만이 국방부 장관을 겸하고 있다.

군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맥보란의 눈이 빛났다.

멀리 눈에 익은 기자 한 명이 있었는데 바로 사우디 국영방송 BSKSA (Broadcasting Service of the Kingdom of Saudi Arabia)의 기자 자페르다.

“자페르, 자페르.”

주변이 워낙 시끄러워 맥보란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자페르!”

“맥!”

마흔 초반 가량의 사내가 반색했다.

“왕궁은 폐쇄됐더군?”

“왕궁 경호부대인 12대대 병력은 철수했죠.”

“경호부대가 교체됐단 말인가?”

“12대대는 모두 무장 해제 당했습니다. 대대장은 저항하다 사살됐다고 들었습니다.”

맥보란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진다.

사우디와 미국은 지금 매우 관계가 좋다.

그러나 파흐드 왕세자는 미국의 중동정책에 대해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다.

미국과는 껄끄러운 인물인 것이다.

다행히 하루가 다르게 알 살만 왕세자쪽이 모든 권력기관을 차분하게 장악했고 얼마 전 군 인사에서 파흐드쪽 장성들을 전부 쓸어냈기 때문에 안심했다.

그런데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파흐드 왕세자의 역습이다.

“자페르 가진 것 모두 털어놔 보게.”

“가진 것 없습니다. 저도 날벼락입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라 전혀 어떤 정보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왕 폐하는?”

“그쪽의 통신망이 차단된 모양입니다. 들어갈 수도 없고, 장갑차 열 대가 지키고 있습니다.”

열 대의 장갑차란 말에 맥보란은 놀랐다.

장갑차 열 대가 지킨다면 국왕의 신변도 안전한 상태가 아니라고 봐야 했다.

국왕 경비대가 보유하고 있는 장갑차는 모두 2대이다.

그런데 10대가 진주해 있다면 집 주인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빌어먹을.”

통화를 끝낸 자페르 얼굴이 굳었다.

“왜 그런가?”

“조금 전 방송국까지 군인들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맥보란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현기증이다.

방송국이 점령당했다면 쿠데타는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서는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판세가 기울었다고 판단되면, 쿠데타 측과 재빨리 접촉해 간단한 외교적 협상을 거친 뒤 지지 성명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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