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달의궁전(4)
욱!
운기조식을 시도할 수 없을 만큼 단전의 통증이 심했다.
그래도 시도해야 한다.
가장 빠른 방법은 공력을 운기하여 지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알살만 왕세자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절대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형!”
오민철이 돌아본다.
권총수는 결가부좌하고 말했다.
“내 뒤에 앉아.”
“뭐 하려고?”
“시간 없어 시키는 대로 해.”
오민철은 주춤 거리다 뒤에 결가부좌했다.
“뭘 하려고?”
눈치를 챈 오민철의 목소리가 떨린다.
“겁먹을 것 없어. 내 지시만 따르면 돼.”
“총수야!”
“호흡을 길게 세 번 내 뱉은 후.”
“나...난!”
전이대법을 모른다.
물론 그런 상승의 내가기법이 존재 한다는 건 알고 있다. 자신이 죽음직전까지 갔을 때 자신을 살리기도 했다.
스윽!
오민철은 명문혈에 손바닥을 댔다.
“대력금강심법을 손에 모아 내 몸으로 주입해. 내공 손실이 조금 있긴 하겠지만 괜찮을 거야.”
“누가 내공 아까워서 그런 줄 알아.”
오민철은 버럭 소릴 질렀다.
더 이상 권총수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미 운기조식을 하기 위한 기초자세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열심히 수련하고 배워둘걸 후회했지만 소용없다.
콱!
이를 악문 오민철은 대력금강심법을 끌어 올렸다.
‘오민철’
두 눈을 감는다.
‘넌 할 수 있어’
자기 최면을 걸 듯 할 수 있다는 다부진 중얼거림을 흘리며 있는 힘껏 손으로 모아진 내공을 명문혈을 통해 밀어 넣기 시작했다.
크훅!
권총수 입에서 핏물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오민철이 멈칫 했지만 뇌리 속으로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전이대법은 중간에 멈추면 둘 다 죽어’
권총수의 말이었다.
쓰으으으!
내공이 들어간다.
기호지세(騎虎之勢).
범의 등에 올라타면 도중에 내릴 수 없듯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다.
오로지 많이 주입하는 것 말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뜩이나 뜨거운 태양열에 전이대법까지 펼치자 오민철의 온몸은 금세 땀으로 젖었다.
휘청!
또 다시 권총수의 상체가 쓰러질 듯 비틀하더니 다시 중심을 잡았다.
시간이 흐른다.
처음과 달리 불안한 그림자 대신 오민철의 표정이 환해졌다.
장심을 통해 들어가는 내공이 무척 부드럽고 막힘이 없다.
그건 권총수가 제대로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오민철은 모든 내공을 싹싹 쓸어 주입했다.
이미 권총수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적이 있으니 이 기회에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갚고 싶었다.
모두가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이미 일어난 오민철은 많이 피곤해 보였으나 표정은 밝았다.
“깨어날 때가 됐는데.”
오민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팟!
바로그때 권총수가 눈을 떴다.
전이대법을 펼치기 전보다는 한결 나은 눈빛에 팀원들 모두가 안심했다.
권총수는 오민철을 보며 빙긋 웃더니 말했다.
“한 사람도 움직이지 마.”
팀원들 모두가 석상처럼 섰다.
권총수는 내공을 귀에 모았다.
정상적인 몸 상태라면 주위에서 천둥이 쳐도 자신이 원하는 소리만 감지해 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다.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는 내공이기 때문에 소란스러우면 소리 탐지에 훼방이 되는 것이다.
꿈틀!
권총수의 눈썹이 움직인다.
“따라와!”
팀원들은 총의 안전장치를 풀며 이동했다.
한참을 걸어 외부 담벼락 가까이 간 권총수는 주위를 살폈다.
‘저기로군’
지면을 가리켰는데 주위 모래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반인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정도의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시선이 닿은 지역의 모래가 좀 더 말랐다.
주위 모래보다 더 말라 보인다는 건 그 아래 땅이 아닌 딱딱한 물체가 있다는 의미다.
“물러나!”
팀원들이 뒤로 물러나자 권총수는 3미터 정도 떨어진 지면을 향해 우장을 뻗었다.
촤아아!
모래들이 휘날리며 커다란 철판이 나타났다.
가로 세로 2미터 정도 되는 철판을 잠시 바라보던 권총수는 오른손을 뻗었다.
이윽고 철판을 잡은 손을 천천히 뒤로 당기자 굳게 닫힌 철문이 들썩 거렸다.
팀원들 모두가 소스라친다.
덜컹!
덜컹!
열릴 듯하다 다시 놓치기를 반복한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안에서 잠겼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능공섭물로 철판 정도는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모리스!”
권총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모리스는 히죽 웃으며 등에 지고 있던 사막색 군장을 벗더니 안에서 여러 가지 장비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다.
철문을 열 수 있는 폭탄을 제조하는 것이었다.
검정색 덩어리를 꺼내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RDX로 불리는 폭약이다.
이름하여 C4(Composition:콤포지션)다.
이미 왁스를 포함한 여러 재료를 넣은 덩어리이기 때문에 신관과 전선만 연결하면 된다.
콤포지션, 그중에서도 C4계열은 철재 및 불규칙한 형태의 표적을 절단하거나 파괴할 때 매우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
“물러나!”
특정부위를 폭파하는 단성(斷性)이기 때문에 멀리 피할 필요는 없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며 철문은 들썩거리며 먼지가 피어났다.
권총수는 철문을 들어 올려 재빨리 반대편으로 젖혀 열었고 수류탄 한 발을 집어넣었다.
쿠우웅!
엄청난 굉음이 터지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진입!”
권총수의 명령에 가장 먼저 나카야마가 뛰어들었다.
계단이다.
뒤이어 피아퐁이 진입했다.
두 사람이 30여개의 계단을 내려가 굳게 닫힌 출입문 좌우에 섰다.
다다다다!
그 뒤를 모리스가 따라가 손잡이에 폭탄을 설치했다.
나카야마와 피아퐁이 계단 중간쯤 올라왔고 모리스는 곧장 스위치를 눌렀다.
퍼엉!
폭발이 일어났고 강한 철문이 떨어져 나갔다.
휙휙!
그 사이에 피아퐁과 나카야마가 안으로 섬광탄을 던져 넣었다.
빠바방!
다다다다!
나카야마를 선두로 팀원들이 지하실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맨 마지막에 들어갔는데 눈이 커졌다.
지하실은 캄캄했다.
권총수는 천장에 붙은 LED 전등이 달려 있음을 확인했다.
조금 전까지 불이 켜져 있었을 것이다.
권총수는 어둠을 훑었다.
팟!
시선이 어둠속 한곳에 멎었다.
권총수는 천천히 다가가 벽에 박힌 스위치 옆에 섰다.
혹시 부비트랩은 없는지 자세히 살핀 뒤 스위치를 올렸다.
파팟!
순식간에 천장의 전등이 켜지며 실내가 환해졌다.
단순 지하실이 아닌 마치 어느 저택의 응접실이라 해도 좋을 만큼 화려했다.
사람이 있었던 냄새는 공기 중에 있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 주방까지 팀원들이 수색했지만 사람은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건물 폭파로 부서졌어.”
오민철이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안에 있다’
출입구는 엘리베이터와 자신들이 들어온 지하 계단뿐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권총수는 있다고 확신했다.
쿵쿵쿵!
팀원들은 총구와 개머리판을 이용해 벽을 두들기고 다녔다.
밀실이 있다면 울림이 다르다.
하지만 권총수의 생각은 달랐다.
왕세자가 최후 수단으로 피할 공간을 벽을 두들겨 소리로 밝혀질 만큼 허술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팟!
한참을 살피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그의 시선은 천장에 붙은 LED전등을 바라보았다.
다른 전등은 흰색인데 유일하게 붉은색이다.
언뜻 화재를 대비한 스프링클러 같지만 권총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다’
대력금강심법을 배우면서 공공선사로부터 배운 중원의 토목기술중 기관진식이라고 하여 오늘 날 엘리베이터나 자동문 같은 시설이 존재한다고 했다.
‘기관장치’
순전한 느낌이었다.
권총수는 LED 전등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팍!
손가락에서 지풍이 날아가 전등을 살짝 쳤다.
반응이 없었고 권총수는 다시 한 번 지풍을 날리며 지하실을 살폈다.
여전히 징후는 없다.
잘못 판단했나 싶은 마음에 잠시 이마를 찌푸렸지만 권총수는 확신했다.
너무 강도가 낮아 기관이 작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며 좀 더 강력한 지풍을 날렸다.
쿠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맞은편 오른쪽 벽이 통째 이동하고 있었다.
후다닥!
퍼퍽!
누가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팀원들 모두가 엄폐물을 찾아 엎드렸다.
드르륵!
드륵!
총소리가 울렸다.
벽이 열리고 안쪽에서 경호원 두 명이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두두두두!
쿠우!
이쪽에서도 방아쇠를 당겼고 엄청난 총알이 쏟아지며 두 경호원은 벌집이 되었다.
잠시 지하실에 정적이 흘렀다.
‘숨소리!’
권총수는 안쪽 공간에서 사람의 호흡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섬광탄 있나?”
권총수가 헤드셋을 당겨 무전으로 물었다.
“없어! CS 뿐이야.”
CS탄은 최루가스이기 때문에 방독면이 없으면 사용할 이유가 없다.
만약을 대비해 방독면을 준비해 왔지만 세 개 뿐이다.
CS탄을 터뜨리고 세 사람을 들여보낼 수 있지만 연기로 시야에 장애가 발생한다.
그건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진입!”
권총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나카야마와 호간이 입구 좌우로 붙어 섰다.
둘 모두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는데 길게 숨을 내쉬며 서로 사인을 주고받더니 번개처럼 안으로 뛰어 들었다.
드르륵!
총소리가 들렸고 뒤따라 팀원들이 뛰어 들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두 명이 피를 흘리며 나뒹굴고 있었는데 한 명은 경호원이었고 다른 한 명은 군복차림이었다.
특수부대 사령관 이스마일이었다.
그 뒤로 세 사람이 있다.
한 명은 해외정보국 ‘무캇바라’국장인 사에드였고 다른 한명은 비밀경찰 ‘마바히스’ 샤일란 국장이다.
그리고 한 명이 단연 돋보인다.
눈 보다 더 하얀 칸투라를 입고 머리에 구트라를 뒤집어 쓴 콧수염 가득한 사내.
“나카야마 전파 해제시켜요.”
나카야마가 밖으로 나가더니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알부페시 궁에서 나가는 핸드폰 송수신은 차단되어 있어 통화가 불가능하다.
군용 무전은 통신사령부에 의해 전부 감청되고 있고 필요에 따라 차단된다.
다른 건 몰라도 근처 찰랍투라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에서 이곳 상황을 상위부대에 보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건 통신사령부에서 제대로 유무선 통화를 차단하고 있다는 뜻이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모리스가 들어섰다.
“해제!”
권총수는 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딸칵!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
몇 차례 도전했지만 실패했던 고봉을 기어이 정복하고 난 마운티너(mountaineer:산악인)의 모습이다.
스윽!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안녕하십니까. 전화 오래 기다리셨죠? 예, 이쪽은 마무리 됐습니다.”
권총수는 천천히 전화기를 내렸다.
딱딱!
핸드폰으로 나무 의자를 툭툭 쳤다.
조용한 실내에 핸드폰으로 의자 다리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으으!
권총수가 고개를 들었다.
세 사람을 깊숙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부욱!
권총수는 값비싼 양탄자가 깔린 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린 뒤 발로 비벼 껐다.
천천히 칸투라를 걸친 사내에게 다가갔다.
“왕세자님!”
“이봐!”
타앙!
권총수의 손에 어느새 글록 19가 들려 있었고 앞을 가로막던 비밀경찰국장 샤일란이 이마에 총을 맞고 휘청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