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52화 (152/651)

제152화: 달의 궁전(2)

숫자 2로 시작된다는 얘기다.

즉, 첫 글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군 고유의 주파수란 뜻이다.

숨이 끊어진 경호원에게서 1시 방향으로 작은 무전기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재빨리 무전기를 주워들고 주파수를 맞춘 아트완은 소리쳤다.

“블랙 폰, 블랙 폰.”

“여긴 블랙 폰 누군가?”

“난 참모총장이다.”

“고유넘버를 말하라.”

헬기 조종사가 정확한 신분 확인을 위해 묻는다.

참모총장 아트완은 자신에게 부여된 전시 비상암호를 불러주었다.

“죄송합니다. 각하, 어디십니까?”

“알부페시궁, 적의 침입이다.”

“지금 날아가고 있습니다. 왕세자님을 안전하게 보호할 것입니다.”

“적은 HK-416으로 무장했으며 사막색 전투복 차림이다. 반복한다. 적은.”

피육!

“커흑!”

아트완이 비틀거리며 무전기를 떨어뜨렸다.

총알 한 방이 날아와 왼손 팔꿈치 근처를 치고 지나간 것이다.

“각하, 총장각하.”

아트완 총장은 바위 뒤에 바짝 엎드려 총알이 날아온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권총수는 아름드리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무릎쏴 자세로 방아쇠를 당겼다.

퍽!

파악!

커다란 선인장들이 꺾이며 나동그라진 두 경호원이 드러났다.

“1팀 위치 말하라?”

“동쪽 사구아(키가 4,5미터까지 자라는 사막 선인장)선인장 지점이다.”

“상황은 어떤가?”

“부상자 발생했지만 계획대로 접근중이다.”

“2팀?”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3팀!”

“사망자 발생, 2명이다. 이상.”

“잘 들어. 지금 헬기가 오고 있어. 로터소리가 가파르게 꺾이는 것을 보아 아파치로 보인다.”

“아파치!”

누군가 놀람성을 터뜨렸다.

알부페시궁 근처에 군부대가 상주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로부터 지원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준비했다.

찰랍투라 유전에 대대병력이 진주하고 있으며, 장갑차 다섯 대와 아파치 공격헬기 2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까지 자세하게 파악되어 있었다.

문제는 생각보다 출동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늦어도 일 분 안에 공격거리까지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본관인 알 까마르(달의궁전)에 들어가야 한다. 반복한다. 1분 이내에 아파치 헬기가 온다. 무리수를 두더라도 진입해야 한다.”

알부페이궁은 달의 궁전으로 불리는 알 까마르와 두 채의 부속 건물로 이뤄져 있었다.

진입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최대한 궁전 가까이 붙을수록 헬기의 공격은 불편해진다.

자칫 잘못 조준하면 궁 안에 있는 알 살만 왕세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케이!”

“오케이!”

모두가 힘차게 대답하는 와중에 무전기를 통해 총소리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형 어디야. 빨리 오지 않고 뭐해?”

권총수가 무전기에 대고 크게 외쳤다.

“가고 있어!”

오민철이 오는 소리가 들렸는데 목소리에 힘이 없다.

드르륵!

40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다섯 발을 동시에 쏟아 붓고 재빨리 사막 아카시아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백발의 머리를 늘어뜨린 듯 해 보이는 사자금 선인장이 들썩 거리더니 위장한 오민철이 나타났다.

“형!”

권총수는 소스라쳤다.

오민철이 절뚝거리고 있었는데 다리에 총상을 입고 있었다.

“부상자 발생이라더니 형이었어?”

“쪽팔려!”

“이런 날씨에 언제까지 묶어 놓을 거야.”

출혈을 막기 위해 왼쪽 장딴지를 붕대로 단단히 묶었다.

투투툭!

권총수는 대검으로 붕대들을 잘라 버리고 손가락으로 근처 혈도를 눌렀다.

파파팟!

그러자 귀신 같이 피가 멈췄다.

붕대로 묶었을 때는 강한 조임으로 고통과도 싸워야 했는데 한결 부드럽고 자유스러워 진 듯 오민철이 히죽 웃는다.

탁!

타타탁!

권총수는 오민철이 메고 있던 사막색 배낭을 받아 열었다.

배낭에는 뭉텅한 쇳덩이들이 들어 있었는데 분해된 M82A1, 이른바 대물저격소총의 간판 바렛이었다.

딱!

투툭!

권총수의 조립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채 20초가 되지 않아 총을 조립하더니 가방 속에서 10발이 박스 탄창을 꺼내 끼웠다.

탁!

이어 재빨리 오른손에 있는 노리쇠를 당겼다가 앞으로 밀었을 때 오민철의 귀에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헬기소리가 들려왔다.

권총수는 재빨리 소나무처럼 생긴 조수아 트리 아래 몸을 숨기고 총구를 들어올렸다.

멀리 동쪽에서 두 대의 헬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공격헬기는 두 대를 최소 편대로 규정해 움직인다.

두 대가 견제하며 협공하는 것이 공격력이 훨씬 우수하고 특히 적의 반격을 분산 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물론 한 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출과 지원의 상호 임무도 있다.

드르륵!

오른쪽 헬기가 지상을 향해 30밀리 M230을 쏟아냈다.

왼쪽 헬기는 투망을 준비한 어부가 물고기를 구석으로 몰아가듯 본관의 측면을 지나가며 갈겼다.

무자비한 사격에 순식간에 일대가 쑥대밭으로 변했다.

퍼퍼퍼퍽!

돈을 부른다는 거가의 황금빛 선인장 금황환, 2미터가 훌쩍 넘는 덩치를 자랑하는 사구라로 선인장, 가지를 늘어뜨린 대추 야자나무, 푸르게 뻗어가는 올리브 나무가 쏟아지는 체인 건 총탄에 꺾여 나갔다.

검정 선글라스를 낀 헬기 조종사 가푸리 중위는 인상을 썼다.

“뭐하는 놈들이지?”

자세한 정보는 없다.

다만 궁이 공격받고 있으니 지원해달라는 무전이 정보의 전부였다.

부조종사는 레이더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원 곳곳에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헬기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육안으로 복장을 확인하려면 고도를 충분히 낮춰야 하지만 상대의 무장 정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내려갈 수도 없다.

소총에는 충분히 견디는 장갑이지만 알 수 없는 것이 헬기다.

땅!

따땅!

십 여 발의 총탄이 헬기 몸체를 때린다.

조종사 가푸리 중위는 무전 스위치를 눌렀다.

“총장님 제 말 들리십니까?”

아무런 응답이 없자 다시 소리쳐 불렀다.

“여긴 블랙 폰 1, 총장님!”

“말하라. 블랙폰 1.”

“경호병력을 모조리 궁 안으로 대피시켜 주십시오.”

“알겠다.”

백전노장답게 참모총장 아트완은 조종사 가푸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궁으로 퇴각하라’

‘헬기의 공격을 극대화하기 위해 궁으로 들어간다.’

정장차림의 사내들이 궁 안으로 뛰어들었다.

지켜보던 가푸리 중위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기어를 변속하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사실 체인건 M230의 가장 약점은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다 고도가 높음으로 인해 피아식별이 쉽지 않아 마음 놓고 칠 수가 없었다.

경호원들이 궁 안으로 사라졌으니 사격은 물론 헬파이어와 스팅어까지 마음대로 쏟아낼 수 있다.

드르르륵!

M230이 미친 듯 총알을 쏟아 냈으며 슈와아아! 헬파이어 한 대가 정원석 뒤에 숨어 있는 두 명의 용병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앙!

폭발과 함께 두 용병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이거지. 이 맛이야.”

한 번 쓸고 지나간 헬기는 다시 공격을 위해 방향을 돌렸다.

멈칫!

조종사의 눈이 빛났다.

고도 100미터다.

KAS용병들 얼굴이 보일 정도다.

한 사내가 조수아 트리 아래서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가벼운 미소를 짓고 헬파이어 한 대를 먹이려는 때 번쩍 하는가 싶더니 쿵! 하며 헬기가 거세게 요동했다.

“오마이 갓!”

헬기가 말을 듣지 않는다.

뒷 날개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바렛!”

조종사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지만 헬기는 목이 꺾인 풍뎅이처럼 제자리를 맴돌더니 지상을 향해 그대로 처박혔다.

“블랙 폰 2, 남쪽 조수아 트리 아래 저격수, 제거하라!”

“블랙 폰 2. 남쪽 조수아 나무 아래.”

거기까지 무전을 남겼을 때 헬기는 알부페시궁 정원 한쪽에 있는 연못으로 처박혔다.

콰콰쾅!

“알라시여!”

블랙폰 2를 몰고 있던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눈이 커졌고 이내 이를 부드득 갈았다.

“놈!”

조종사의 눈이 조수아 트리를 주시했다.

한 사내가 M82를 들고 있었다.

다다다다!

헬기가 분노한 듯 급강하하면서 날아갔다.

팍!

오른손에 잡고 있던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 발사 장치를 눌렀다.

헬기는 먹이를 노리고 내려오는 독수리처럼 다가와 검정색 미사일 한 방을 쏟았다.

슈우우우!

“총수야.”

오민철의 외침이 들렸고 엄청난 굉음을 내며 미사일이 폭발했다.

콰아앙!

아름드리 조수아 트리가 뿌리 채 뽑혀 허공을 날아갔고 주위 정원석과 수목들이 폭풍에 휘말렸다.

“총수야, 총수야!”

오민철이 흙먼지 자욱한 폭발 현장으로 달려갔다.

“형 안돼, 다시 오고 있어.”

무전기를 통해 나카야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퍼억!

나카야마가 달려와 오민철을 끌어안고 맞은편에 있는 올리브 나무를 향해 굴렀다.

쿠쿵!

또다시 엄청난 굉음과 먼지가 피어났다.

“총수, 총수! 이것 놔.”

오민철이 달려가려 하자 나카야마는 필사적으로 잡아 당겼다.

아파치는 다시 회전하여 날아왔다.

드르르륵!

드드드!

여기저기 숨어 있던 KAS 용병들이 집중 사격을 퍼부었다.

티티팅!

그러나 어떤 총알도 아파치를 뚫지 못했다.

슈우욱!

또다시 헬파이어 미사일이 날아오자 나카야마가 눈을 감아 버렸다.

외인부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사람 한명을 향해 아파치 같은 무자비한 공격 헬기가 장갑 40센티 두께의 탱크를 파괴하는 헬파이어 미사일 3발을 발사하는 건 본적이 없었다.

나카야마는 권총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호라는 신비한 세상의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무공을 갖고 있지만 저런 무자비한 공격 앞에서는 신출귀몰한 권총수도 살아나기는 어려울 듯 했다.

권총수는 피로 범벅이 되었다.

처음 블랙 폰1을 격추시킨 뒤 재빨리 자리를 이동했어야 했다.

하지만 잠시 멈칫했던 건 야간도 아닌 대낮이기 때문에 설마 한 번에 노출 됐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더욱이 헬기들이 쏟아낸 공격으로 상당한 먼지가 정원을 덮고 있어 위치 노출 가능성은 더 적다고 판단했다.

허나 움직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헬기를 공격하기에 당시의 장소가 흡족할 만큼 좋았다는 것이다.

크웍!

피를 토해냈는데 덩어리가 있다.

내상이 심하다는 뜻이다.

헬파이어가 날아오는 순간 전신 내공을 끌어 올려 호신강기를 펼쳤다.

팔십 년 내공의 호신강기는 상당히 강하고 두껍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미사일의 폭발력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물론 그마저도 없었다면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갔을 것이었다.

운기조식을 시도했지만 단전에 수십 개의 바늘이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그건 운기조식이 불가능하다는 몸의 신호였다.

멀리서 헬파이어 미사일이 터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권총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M82 바렛을 찾는 것이다.

몸이 폭풍에 날아가면서 총을 놓쳤다.

시간이 의외로 지체됐다.

이런 작전의 성패는 시간이다.

원래 작전 시간에서 많이 늦어지고 있지만 남은 아파치 한 대만 잡으면 승산은 여전히 이쪽이다.

쓰윽!

쓱!

포복으로 기어간다.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2미터가 훌쩍 넘어 보이는 원뿔모양의 선인장이 있었다.

온통 선인장 천지다.

엄지 손톱 만한 크기의 시뻘건 꽃이 피었는데 대봉룡이라는 종류다.

수북한 꽃송이 아래 바렛이 나동그라져 있었다.

서둘러 바렛을 쥔 권총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모든 힘을 끌어내어 바렛을 들어 올렸다.

한 방에 끝내야 한다.

발각되면 이번에야 말로 옴짝달싹 못하고 죽을 것이다.

헬기는 저공 비행을 하며 M230E1을 쏟아냈다.

HK-416총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지만 아파치를 상대 할 수는 없었다.

후우후우!

길게 숨을 두 번 내쉰 뒤 본관 달의궁전 지붕을 넘어 오는 아파치를 조준했다.

‘들숨은 날숨을 위해서 길어야 하고, 날 숨은 느릴수록 단(丹)이 되며 온 몸의 기를 충천(衝天) 시키느니라’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하며 조준경을 노려봤다.

선글라스를 낀 조종사와 눈이 마주쳤다.

씨익!

조종사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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