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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50화 (150/651)

제150화: 생과 사(2)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면 가끔 무전교신으로 가벼운 농담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먼 거리를 오는 내내 한마디 말도 없었다.

오는 사람들의 면면도 놀랍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다.

해외정보국 ‘무캇바라’국장 사에드, 비밀경찰국장 샤일란, 육군참모총장 아트완, 특수부대 사령관 이스마일이다.

사우디에서 근무 하는 동안 권력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 예는 없었다.

지이이!

주머니가 떨렸고 손을 넣어 꺼낸 핸드폰 액정에 아라비아 숫자 10이 찍혔다.

10은 한 남자를 지칭하는 번호다.

“알부페시궁을 갔다고 들었네.”

맥보란, 역시 CIA다.

철저히 비밀리에 움직인다고 했지만 알고 있다.

물론 CIA와 아카데미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위층의 문제이고 자신들은 회사지시를 받고 움직일 뿐이다.

이번 경호작전은 오직 프린스 회장만 알고 있다.

“벤저민.”

“말하시오.”

“누구누구 모였나?”

벤저민은 가볍게 웃었다.

“아마추어처럼 왜 이러십니까?”

“알 살만 왕세자는 당연하고, 어디 보자 사에드와 샤일란은 양팔이니 있을 것이고 음.. 이스마일도 빠져서는 안 되는 자리이지. 그렇군. 육군참모총장 아트완은 빠졌나?”

참석자 전원을 나열하듯 말했다.

그건 훤히 알고 있으니 숨기지 말고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좀 전해달라는 뜻이다.

“보너스도 있네.”

당근이다.

정보를 주면 그만한 가치를 지불하겠다고 거래를 제의한 것이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와 버리면 약간은 흔들린다.

더욱이 상대가 CIA 중동지역 책임자라면 관계가 불편해서 좋을 일은 없다.

그러나 벤저민은 이를 깨물었다.

흔들리면 안 된다.

자신들의 직속상관은 프린스이고 그의 지시가 우선이다.

잘못되면 윗선에서 해결할 것이다.

“이해해 주시죠.”

“하긴.”

전화가 끊어졌다.

이글거리는 사막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헐렁한 사막 색 상하의에 모래바람과 열기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커다란 쿠트라를 썼다.

왼손에는 작은 나무 지팡이를 짚었는데 사막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목동의 행색이다.

멈칫!

사내의 시선이 빛났다.

습기가 느껴진다.

스으으!

걸어오던 그의 몸이 갑자기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모래 위를 지나갔다.

그리고 1킬로 정도 이동하자 축축한 모래 구덩이가 있었다.

한 눈에 점점 메말라 가는 작은 오아시스였음을 알 수 있었는데 주변 숲도 급속이 죽어가고 있었다.

사내는 위태롭게 서 있는 올리브 나무 아래 주저앉았다.

사내는 주머니를 뒤져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붙을 붙였다.

후우우!

푸른 연기가 이글거리는 사막의 열기 속으로 사라진다.

오는 내내 고민 했다.

몇 가지 안(案)을 갖고 있는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외인부대에서 배웠던 수많은 전술과 작전을 떠올렸고, 5년 가까운 전장의 경험으로도 이거다 싶을 정도의 확신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선택은 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선택한 안(案)을 실행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었다.

푹!

담배꽁초를 모래 속에 박아 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핸드폰을 꺼내 부지런히 손가락을 누르자 지도가 나타났다.

핸드폰을 이용해 GPS를 수신하는 것이다.

붉은 점 하나가 깜빡거리는 지점을 보며 중얼 거린다.

‘3킬로!’

지금부터는 사람처럼 이동하면 안된다.

상대의 정찰 망원경에 잡힌다.

스르르!

순식간에 권총수의 몸이 사라져 버렸다.

잠영술(潛影術)이다.

노화순청의 경지에 오른 지금의 잠영술은 과거와는 다르다.

지형, 지물 속으로 완전히 자신을 감출 수가 있다.

10미터 높이의 초소에서는 두 명의 사우디 군이 있었다.

M4를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한 사내는 계속 쌍안경으로 사막을 살피고 있었다.

“뭘 그렇게 살피나?”

이 대낮에 누가 오겠느냐는 쓸데없는 고생이니 그만 하라는 타박이다.

사내는 쌍안경을 내렸다.

“무슨 일이지? 휴가철도 아니잖아.”

전방을 살피던 사내가 궁금한 모양이다.

왕세자라고 해서 아무 때나 쉬는 것이 아니다.

왕세자 국왕 모두 일반 직장인들과 다름없는 휴가를 보낸다.

그들의 휴가철은 겨울이다.

10도 전후를 오르내리는 겨울이야 말로 한적한 휴식을 취하기가 가장 좋기 때문이다.

즉 지금은 때가 아닌 것이다.

“알게 뭐야. 우리는 그저 근무만 열심히 서자고.”

푸욱!

바로 그 순간 근무 열심히 서자고 했던 사내가 숨 막히는 소리를 토했다.

“알사위!”

지금까지 자신과 얘기를 나누던 종료 알사위가 목에서 피를 흘리며 힘없이 쓰러졌다.

콸콸콸!

목구멍에서 쏟아지는 피가 마치 수돗물을 틀어 놓은 것 같다.

“허걱!”

알사위를 살피던 사내가 기겁했다.

어느 새 초소 안에 낯선 사내가 나타나 있었다.

무슬림 복장이다.

히죽!

권총수는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사내의 사혈을 짚었다.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동료 몸 위로 엎어졌다.

권총수는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쳤다.

알부페시궁의 약도였다.

“제2초소가 100미터!”

지금 장악한 1초소 오른쪽으로 100미터 떨어진 곳에 2초소가 있다.

알부페시궁은 모두 여섯 개의 외곽초소가 있다.

KAS 용병들이 침투하려면 2초소까지 점령해야 한다.

팀원들이 접근해오는데 루트가 1초소와 2초소 경계지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스르르!

권총수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육중한 담벼락을 따라 투명한 그림자 하나가 이동한다.

출렁!

잠영술로 이동하는 권총수의 그림자가 물방울처럼 흔들리며 잠시 멈췄다.

‘아카데미 용병들’

평상복 차림의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건물 곳곳에 M4를 휴대한 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제1선으로 불리는 외곽 경비는 사우디 군이 맡고 아카데미 용병들은 제2선을 지킬 것이라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

흔히 1선은 경계와 정찰에 중점을 둔다.

침입한 적과 교전은 2선 병력이 맡는다.

그래서 2선은 사격술이 좋고 부분전술에 뛰어난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 군대의 전술이다.

스르르!

권총수는 천천히 이동하며 아카데미 경비 상태를 살폈다.

2번 초소가 눈앞이다.

스르르!

벽을 타고 올라간 권총수의 오른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전방 사막을 바라보고 있던 두 병사의 목이 몸통에서 떨어졌는데 권총수의 오른손에 대검이 쥐어져 있다.

소림의 금불연화수를 검법으로 바꿔 시전 한 것이다.

권총수는 재빨리 끼고 있던 무전기를 통해 입을 열었다.

“제거 완료, 반복한다 제거완료.”

“알았다. 즉시 이동하겠다.”

오민철의 목소리다.

지금 팀원들은 2킬로 정도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 뒤에 숨어 있다.

최대한 빨리 온다고 해도 20분은 소모 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누구의 접근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치지직!

갑자기 벽에 걸린 무전기가 잡음을 토해 냈다.

상황실에서 근무지 확인하는 교신일 가능성이 높다.

“2초소 보고.”

권총수는 심호흡을 했다.

무전기속의 목소리는 일반 핸드폰과는 또 다르다.

주파수의 감도에 따라 본래 목소리와는 많은 차이가 있으나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상 무!”

권총수는 아랍어로 무전기에 대고 빠르게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2초소 보고.”

재차 묻는다는 건 뭔가 미심쩍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권총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2초소 조용하다 이상.”

강한 목소리로 버럭 소릴 질렀다.

그럴 땐 차라리 한 번 더 치고 들어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오케이!”

작전 주효.

권총수는 송수신기를 걸어 놓고 몸을 날렸다.

필시 1초소에도 근무상태 확인 무전이 올 것이다.

잠영술은 발각 가능성이 낮지만 이동 속도가 느리다.

신법은 빠르지만 시선에 띌 확률은 높다.

내공이 등봉조극 즉, 삼갑자 이상의 경지에 오르면 신법의 속도는 빛살과 같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등봉조극의 고수를 육안으로 쫓는 건 불가능하다.

권총수는 아직 그런 경지에 미치지 못한다.

노화순청의 단계가 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쉬울 뿐이다.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날렸다.

슈오아아아!

아카데미 용병하나가 주위를 살피며 목격한 듯 싶었다.

하지만 이내 돌아서버렸다.

운이 좋다.

뭔가를 보긴 했겠지만 설마 사람이 날아가겠어 하는 보통의 상식에 매몰된 것이다.

“제1초소 응답하라. 1초소.”

예상대로 벽에 걸린 수신기에서 계속 무전교신이 흘러나왔다.

“1초소 근무중 이상 무.”

호흡을 진정 시키며 대답했다.

“무슨 일인가?”

왜 이렇게 교신에 늦게 응답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바쁘다. 이상 무!”

쏘아 붙이듯 대답하자 상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수고 바람!”

무전 송수신기를 내린 권총수는 헤드셋을 당겼다.

“어디야?”

“가고 있어!”

권총수는 죽은 사우디군의 손에 있는 쌍안경을 들어 전방을 살폈다.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옆구리에 차고 있는 탄창파우치 뚜껑을 열었다.

찌익!

열린 파우치 안에는 탄창 대신 10센티 길이의 드라이버가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소림무공에는 암기술이 없다.

암기는 말 그래도 등 뒤에서, 아니면 상대를 속이며 공격하는 병기라고 하여 철저히 금하고 있다.

그러나 달마역근세수경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역대 장문인들은 무공을 수련하다 암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신의 무공비기로 남기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공선사의 비도술인 사비불(死匕佛)이다.

공공선사는 내공이 노화순청의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펼칠 수 있다고 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반드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불(佛)자를 넣음으로써 살생을 최소화 할 것을 당부했다.

사비불을 펼치는데 특별한 병기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러나 굳이 하나의 병기를 지목한다면 붓(筆)이다.

붓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승려에게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절대 몸에서 떨어뜨리지 않아야 할 물건이다.

살상률을 높일 목적으로 악독한 모양과 형태로 만들어진 강호의 암기와 달리 적을 고통 없이 죽이는데 초점을 맞췄다.

출가인으로서 최소한의 자비를 베풀려는 의지와 불심이 담긴 것인데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했다.

빠르다는 것이었다.

빠름은 거리에 비례하지만 공공선사는 사비불 보다 빠른 암기술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총은 분명한 살상무기지만 침투와 암살에서 무성무기 보다 더 뛰어난 건 없다.

가급적 총기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철물점에서 붓 대신 드라이버를 구한 것이다.

“으음!”

마음은 급한데 다가오는 팀원들의 속도는 더디다.

사실 더딜 수밖에 없는 것이 여럿이 사막을 달려오면 먼지가 일어나게 되고 자칫 이쪽의 감시망에 걸릴 위험이 있다.

최소한의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다 보니 평소의 속도보다는 느릴 수밖에 없다.

드라이버 다섯 자루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시선은 사막을 바라보고 청력을 집중해 등 뒤 아카데미 용병들을 감시했다.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렸다.

재빨리 돌아선 권총수 시선에 M4를 든 아카데미 용병 두 명이 담벼락 쪽으로 걸어왔는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10미터 높은 초소에서 내려다보는 권총수의 오른손이 부르르 떨었다.

직선거리로 30미터가 채 안 된다.

팀원들이 달려오고 있다.

즉 팀원들이 흘리는 시끄러운 소음이 저들의 귀에 들릴 수도 있었다.

비록 육중한 담벼락이 막고 있지만 30여명이 흘리는 소리를 듣지 못할 리 없다.

‘형님!’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려 전음을 날렸다.

권총수가 움찔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지, 정지. 놈들이 담장 바로 아래서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오민철의 입술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나름 본인도 전음을 시전하고 있지만 약한 내공으로 초소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삭!

사사삭!

팀원들은 재빨리 모래 바닥에 엎드렸다.

권총수의 시선은 아카데미 두 용병에게 고정되었다.

두 사람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껄껄 웃으며 돌아섰다.

‘이동!’

권총수의 지시에 팀원들은 다시 일어나 달려왔다.

슥!

담장 가까이에 온 오민철이 메고 있던 가방을 풀더니 사막색 천을 꺼냈다.

휘익!

마치 고기를 잡기 위해 던지는 투망처럼 두꺼운 천막이 활짝 펴져 날아가더니 철조망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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