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49화 (149/651)

제149화: 생과 사(1)

침대에 누워 있긴 하지만 잠을 자지는 않았다.

흘긋!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는데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섯 시’

그때까지 오타이프 사령관의 연락이 없다면 적으로 간주하고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한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위에 놓은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계단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데 멀리 경계근무중인 피아퐁이 보인다.

납치 사건 이후 피아퐁은 많이 변했다.

말수가 줄어들었고 홀로 있는 시간이 늘었다.

끌려가 굉장히 시달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일종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피아퐁!”

어둠을 뚫고 울려 퍼진 권총수 목소리에 거리가 먼데도 피아퐁이 돌아보았다.

권총수는 담배를 쥔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피아퐁이 웃는다.

어둡지만 권총수의 눈에는 바로 앞에 있는 사람처럼 잘 보였다.

지이잉!

귓가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권총수는 재빨리 숙소로 뛰어 들어갔다.

전화다.

기다리던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장군님!”

“늦은 시간에 결례가 아닌가 싶소.”

“운동 중이었습니다.”

“헛헛! 자네는 역시 멋진 사람이야. 어떻게 하면 되는가?”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통신입니다. 군 내부 통신은 물론 민간 영역대까지 잡아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네.”

“알 살만 왕세자는 제가 맡을 것입니다.”

“그런가.”

“장군님!”

“말하게.”

“감사합니다.”

“그런 말은 끝나고 하는 걸세.”

“예!”

“어쨌든 자네를 만나게 되어 기쁘군.”

전화가 끊어졌다.

권총수는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지금 곧장 이곳으로 차를 끌고 와.”

핸드폰을 내린 권총수는 곧장 자신의 책상 앞에 설치된 벨을 눌렀다.

땡르르르!

4, 5층은 생활관이다.

비상벨 소리에 4,5층이 소란스러워졌다.

비상이 울리면 완전무장을 한 채 대기해야 한다.

권총수는 HK-416을 손에 들고 방문을 열고 생활관으로 나갔다.

모두가 필요한 장비를 챙겨들고 방문을 열고 나오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권총수는 생활관 기둥 벽에 걸린 소형 마이크를 잡았다.

4층 생활관까지 통하게 되어 있는 마이크였다

“즉시 출동한다. 잠시 후 버스가 올 것이다. 버스를 이용해 부라이다까지 이동한다. 이상.”

“원래는 내일 저녁 이동하기로 했잖아?”

오민철이 물었다.

“일이 그렇게 됐어. 가면서 얘기 하죠.”

그때 밖에서 클렉션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버스가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평범한 일반 버스였다.

하지만 이번 작전을 위해 완전히 개조했다.

일반 버스에 사용하는 얇은 철판을 걷어 내고 두께 10밀리짜리 강판으로 잇댔다.

엔진도 군용트럭으로 바꿨으며 혹시 모를 지뢰공격을 대비해 밑바닥도 튼튼하게 덧씌웠다.

개인 소총을 제외한 여러 가지 무기들은 버스 측면에 있는 화물칸에 실었다.

“캡틴!”

에반이 다가왔다.

항상 총수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캡틴이라고 호칭했다.

그건 다시 한 번 권총수를 진정한 리더로 인정한다는 의미였고 주위 용병들에게는 상관이라는 것을 주지시키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살아 돌아오라는 말 군대에서 지겹게 들었겠지?”

“그것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습니까?”

“살아 돌아오게.”

“걱정 마십시오.”

두 사람은 힘 있게 악수를 했다.

권총수는 차에 올랐고 곧장 버스는 출발했다.

버스는 순식간에 어둠속으로 사라졌고 에반은 한동안 버스가 사라져 버린 어둠을 바라보았다.

담배를 꺼내 한 개비 피워 물었다.

‘만약 성공한다면?’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거머쥘 건 자명했다.

파흐드 왕세자가 사우디 정권을 쥔다면 대대적인 권력 교체가 있을 것이며, KAS는 엄청난 이권에 개입될 것이다.

그건 승자라면 당연히 얻게 되는 전리품이었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두 번 다시 KAS는 사우디에서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또한 사우디에 있는 모든 KAS 자산은 동결될 것이고 용병들은 모조리 체포 되어 법정에 설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까지 국가전복 혐의를 씌워 교수형해 처해질 것이 뻔했다.

스톤스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이 울리자마자 받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출발했습니다.”

“원래는 내일 아니었나?”

“일이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진행되는 모양입니다.”

자세한 작전 계획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모든 작전은 권총수가 세우고 실행한다.

회사에서는 이번 일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만큼 권총수를 신임한다는 뜻이면서 또한 그를 따르는 다른 용병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였다.

권총수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누구든 해고할 것이다.

“길고도 긴 며칠이 될 것 같군.”

스톤스는 무겁게 입을 열고 전화를 끊었다.

에반 또한 무겁게 핸드폰을 내려 주머니에 넣었다.

흘긋!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본다.

여인의 눈썹 같은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 있다.

얼마 전 권총수가 만삭의 임산부 배처럼 부풀어 오른 보름달을 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 다가갔다.

“뭔 달을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가?”

“소원을 빌었습니다.”

“소원?”

권총수가 어떤 종교를 갖고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기에 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는 말은 매우 생소했다.

자신은 교회를 찾아가 소원을 빈다.

“우리 민족의 풍습입니다. 추석 보름달을 보며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하죠.”

“자네 소원은 뭔가?”

“돈이죠. 돈을 많이 버는 겁니다.”

너무 평범한 대답이다.

용병은 언제 죽을지 모를 전장을 뛰는 사내들이다.

그 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다.

자신도 돈을 벌기위해 이 위험한 바닥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돈을 벌게 해달라고 빌었다는 권총수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술을 먹을 수 없는 나라지만 살아 돌아오기만 하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술 한 잔 사겠네.’

에반은 천천히 사무실을 향해 돌아섰다.

* * *

전속력으로 달린 버스는 아침 7시가 조금 못되어 오아시스의 도시라는 부라이다에 도착했다.

“볼수록 그저 놀랍기만 해.”

부라이다 시 인구는 60만이 조금 못된다.

버스는 부라이다 외곽에 있는 작은 공터에 멈췄다.

공터는 야트막한 언덕위에 있어서 시내가 내려다 보였는데 온통 푸르다.

시외곽으로 오렌지와 레몬 농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흔히 오아시스의 도시로 불린다.

크고 작은 오아시스가 사방에 흩어져 있다.

물은 모래 속에서 솟구쳐 올라왔는데 넘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그 상태를 유지한다.

“오케이!”

권총수는 도착하자마자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를 끝내고 소리쳐 말했다.

“출발!”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용병들은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하고 오민철이 다가왔다.

“누군데?”

“버스를 숨길 곳 때문에.”

모두 들으라는 듯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위장망을 친다고 해도 그들의 정찰 카메라에 걸릴 것 같고, 그래서 고민 끝에 이글루를 생각했지.”

“에스키모인들 집?”

나카야마가 놀란 표정을 했다.

“설마 이 사막에 이글루를 짓고 사는 부족이 있을 리가.”

일반 모래와 달리 사막 모래는 토굴 만들기가 쉽지 않다.

접착성이 거의 없어 그냥 무너져 버린다.

“그래서 무굴족을 접촉했지.”

무굴족은 사막을 떠도는 유목민이다.

그들은 풀을 쫓아 이동하는데 사막에 땅굴을 파고 살았다.

“다행히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무굴족이 머물고 있어.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장 큰 창고를 빌렸지.”

버스는 또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30여 분만에 멈췄다.

사막 한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버스는 속도를 늦추고 연기가 피어나는 곳을 향해 다가갔는데 푸른 초원이 나타났다.

1만 평방미터 가까이 되어 보이는 호수가 있었는데 근처는 온통 나무와 숲으로 우거져 있었다.

“믿어지지가 않는군.”

오아시스란 보고 또 봐도 그저 신비할 따름이다.

일행은 버스에서 내렸는데 십여명의 무슬림 복장을 한 남자들이 다가왔다.

한눈에 무굴족 족장과 마을 장로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먼저 권총수가 인사를 했다.

“알라후 아크바르.”

낡은 사막 색 칸두라와 이갈을 눌러쓴 70가량의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권총수는 익숙한 아랍어로 뒤에 있는 버스를 가리켰다.

족장 노인은 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버스는 커다란 모래 터널 안으로 사라졌다.

“아아!”

터널로 들어간 권총수는 탄성을 뱉었다.

폭 30센티의 낙타 가죽을 바둑판처럼 얽고 묶어 천장을 떠 바쳤다.

무너지지 않도록 천장을 떠받치는 탄광의 부목처럼 낙타가죽을 잇댄 것이다.

족장은 창고 만드는 법에 대해 설명했다.

어느 정도 모래를 파낸 뒤 낙타가죽으로 된 부목을 설치하고 그 위로 포대에 담긴 모래를 쌓고 이어 그 위로 그냥 모래를 덮는다고 했다.

권총수는 규모에 비해 그다지 많은 노동을 쏟아 붓지 않고서도 커다란 지하 창고를 만드는 무굴족의 지혜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괜찮을까?”

오민철이 불안한 표정이다.

무굴족이 이상한 사람들이 중무장한 채 나타났다고 신고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걸 봐!”

권총수는 빛바랜 신문 조각 하나를 내 밀었다.

신문 조각을 받아든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무굴족 장로 11명 반정부 운동혐의로 사형 집행’

오민철은 눈을 깜빡였다.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는 뜻이었다.

모두가 사막색 위장복에 태양을 가리기 위한 부니햇을 썼다.

가지고 있는 소총과 중화기 역시 사막색 테이프로 둘둘 감아 모래와 완전히 일치를 이룬다.

“무전기 점검!”

권총수의 지시를 받고 일제히 헤드셋을 당겨 이상무를 외쳐 말했다.

“총기 점검!”

모두가 탄창을 꺼내 살피고 다시 노리쇠를 당겼다가 밀며 이번에도 이상무를 외쳤다.

“중화기 사수 보고?”

“이상 무!”

M240과 M249 경기관총을 소유한 팀원들 역시 장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

“이동!”

일행은 본격적으로 뜨거운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차량행렬이 사막을 이동하고 있었다.

앞뒤로 무장한 지프가 행렬을 선도했다.

“30킬로 감속!”

무전기가 울려 퍼지고 행렬이 속도를 늦추었다.

무장 군인들이 도로를 차단한 가운데 차량 행렬이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쭉 뻗은 도로 끝에 푸른 산이 섬처럼 떠 있었다.

사막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우거진 녹음은 매우 진기하기까지 했는데 눈처럼 흰 건물이 우둑 솟아 있었다.

알부페시궁이다.

차기 권력 승계 1위인 알 살만 회장의 별장이었다.

정문에 서 있던 무장 경비병들이 부동자세로 도열했고 차량행렬은 곧장 궁 안으로 들어갔다.

쿠우웅!

차량행렬이 들어가고 육중한 철문이 닫혔다.

차량행렬을 따라 궁으로 들어선 맨 뒤의 트럭 세 대가 멈췄다.

미군 M1079 트럭이었다.

4륜 구동으로 운전석에 세 명이 탑승하는데 필요에 따라 화물과 병력 수송을 번갈아 할 수 있도록 설계 되어있다.

우르르르!

트럭 뒷문이 열리고 일상복 차림의 사내들이 내렸는데 하나같이 M4를 들고 있었다.

아카데미 용병들이다.

세 대의 트럭에서 내린 용병들 숫자는 45명이었다.

모두가 흑복차림이었는데 아카데미 사우디 지사장 벤저민이 직접 지휘하고 있었다.

“각자 위치로.”

이미 사전에 철저한 대비 훈련을 한 듯 사방으로 사라진다.

정문과 바깥 경비는 사우디 군에서 맡는다.

그리고 두 번째 궁 안의 경비는 아카데미가 통제한다.

어떤 목표물도 제1방어선과 제2 방어선이 무너지면 함락된다.

즉 수행경호원은 단순한 침입자를 가로막을 뿐이지 치밀하게 치고 들어오는 전투부대와 싸운다는 것은 어렵다.

“각 초소별 보고.”

벤저민은 커다란 대추야자나무 아래 서서 무전기로 말했다.

“A초소 이상 무.”

“B 초소 오케이!”

연이어 각 초소마다 이상 없음을 보고했고 벤저민은 무전기를 손에서 놓고 경비초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초소 안에는 각종 첨단경비 장비가 진열되어 있었다.

CCTV 화면이 각 초소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딸칵!

벤저민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창문을 열었고 길게 뿜어낸 담배 연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일까.’

오는 내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