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사막의 궁전(2)
권총수의 말은 정확했다.
BBC에서 현 왕세자인 알 살만측에서 파흐드 왕세자를 해치려는 암살 공작을 꾸몄다는 것이었다.
세계가 들썩였다.
얼마 전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암살사건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던 알살만으로써는 예상치 못한 보도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국제사회 여론, 그중 백악관의 입을 막기 위해 예정에 없던 백억달러 어치 F-35 도입 계약을 맺었다.
영국과 독일에 특사를 보내 사실이 아님을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해 가까스로 진정 시켰는데 이번에는 증인들까지 나서서 자신이 형님인 파흐드 왕세자 암살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아브라힘 장군과 저격수 네쿠남의 생생한 육성은 알 살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권총수는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사우디 국내 언론에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국제사회의 관심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제 명분이 생겼다.
파흐드가 일어나도 국제사회에서 의미 없는 쿠데타란 비난은 받지 않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 선수를 쳤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권총수는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밤 아홉시가 넘어가고 있다.
파흐드 왕세자와 단둘이 만났던 그 날 밤 권총수는 USB 하나를 받았다.
USB 안에는 파흐드 왕세자와 가까운 정계와 특히 군 관계자 몇 명이 있었다.
파흐드는 USB를 건네주면서 분명하게 말했다.
“내가 보는 관점이오. 즉 짝사랑처럼 나만 상대를 좋아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오.”
그건 명단에 적힌 인물이라고 해서 모두 자신의 뜻을 따른다거나 호의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아니다 싶으면 접촉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양다리라고 봐야겠지’
거의 모두가 단 1프로의 가능성, 파흐드가 권력을 잡을 것에 대비해 이쪽에 슬쩍 발을 담가 놓고 있다.
그런 부류는 없는 이만 못하다.
‘시간은 이틀’
어쨌든 그 안에 잡을 사람은 잡고, 버려야 할 상대는 냉정하게 쳐내야 한다.
거사란 끊고 맺는 것 말고는 필요하지 않다.
내편은 살고 적은 죽인다.
중간은 절대 없다.
“들어오시라는 군요.”
안에서 부관인 중위 계급의 군인이 나와 말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사물란은 무슬림 복장을 한 동행인과 일어나 부관의 안내에 따라 넓은 방안으로 들어섰다.
전면 벽으로 사우디 국기가 걸려 있고 그 아래로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다.
사내는 사막색 군복을 걸친 투스타였다.
“어서 오십시오. 사물란.”
장군 오타이프가 손을 내밀었다.
사물란은 미소를 지으며 내민 손을 잡았다.
“인사드려요. 호세이니, 오타이프 장군님이시네.”
사내는 허리를 구부렸다.
“영광입니다.”
사내는 오타이프 장군이 내미는 손을 공손하게 쥐었다.
“앉으시죠”
세 사람은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잠시 후 부관이 들어와 홍차 세 잔을 놓고 돌아갔다.
“왕세자 건강은 좀 어떠시오?”
사물란을 향해 묻는다.
“좋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고 즐거워하십니다.”
“다행입니다. 드세요.”
오타이프 장군이 호세이니란 사내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호세이니는 홍차를 짧게 한 모금 마시며 잔을 내렸다.
“왕세자님께 얘기 들었소. 카이로 대학 철학부를 졸업했다고?”
“그냥 교문만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카이로 대학은 아랍권에서 최고의 명문대로 불린다.
그중 카이로 정치학부 출신들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집트 뿐만 아니라 시리아 바레인 레바논 이란등에서 활동하는 시아파, 수니파의 거물들 상당수가 카이로 대학 출신들이다.
오타이프 장군은 어제 파흐드 왕세자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쓸만 한 사람 한 명을 보낼 테니 많은 얘기를 나눠 보라는 것이었다.
파흐드 왕세자와는 대화가 통한다.
자신은 알 살만 왕세자 사람으로 구분되지만 파흐드 왕세자를 적이란 개념이 아닌 뭔가 배울 것이 있는 인생 선배이자 가르침이 있는 스승으로 존중한다.
“왕세자께서 무척 아끼시는 모양이더군요?”
그러자 사물란이 호세이니 대신 대답했다.
“마음에 들어 하십니다.”
“신임해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호세이니씨에게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소.”
“물어 보시죠.”
“호세이니씨는 지금 사우디 정부를 어떻게 보시오? 국제여론은 사우디의 민주주의가 가장 낙후되었다고 혹평을 합니다. 얼마전 유엔이 발표한 세계 각국 인권 순위를 보니 우리 사우디가 조사 161개국중 159위였소. 당신도 그렇게 보시오?”
“아닙니다”
아니라는 말에 오타이프 눈이 빛났다.
“조사가 아주 잘못된 듯 보입니다. 제가 보는 사우디의 인권순위는 161위입니다.”
“웁!”
오타이프는 깜짝 놀랐다.
할 말을 잃은 모습이다.
아니라는 말에 그럼 그렇지 했다.
내정간섭이다.
코란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 국가를 타락한 서구문명의 눈으로 보지 말라.
우리에겐 우리만의 인권이 있다.
서구사회에서 비난 여론이 일어날 때마다 사우디는 거칠게 대응했다.
중동 대부분의 이슬람왕국들이 그러하듯 사우디 역시 국제사회의 인권개선 권고를 이교도의 침략으로 규정해 버렸다.
“호세이니!”
사물란이 당황하며 말렸다.
“당장 사과하게.”
“아니오. 아픈 말도 들을 건 들어야 합니다. 161위라 꼴찌로군.”
“다행스러운 건 조사국가가 161개국 뿐이라는 겁니다.”
“좀 더 많은 국가가 조사에 참여했다면 더 뒤에 있을 것이라는 말이군요?”
호세이니는 빙긋 웃었다.
그건 그렇다는 뜻이었다.
오타이프는 호세이니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놓인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재미있군. 호세이니라고 했소? 내가 아는 파흐드 왕세자는 굉장히 이성적인 분이오. 당신처럼 해야 할 말,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곁에 둘 분이 아닌데.”
호세이니 눈이 가늘어졌다.
파흐드 왕세자의 사람 보는 눈은 오차가 없을 만큼 정확하다.
그런 왕세자가 당신을 내게 보내 소개해 주려는 걸 보면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경박한 지금 모습이 아닌 다른 얼굴이 있을 것으로 본다.
한마디로 당신 정체가 뭐냐고 묻는 것이었다.
호세이니는 빙긋 웃었다.
“장군님! 혹시 가인어월이구익자(假人於越而救溺者)라는 중국의 고사를 들어보셨습니까?”
“가인어월이구익자?”
갑작스런 중국 고사를 꺼내자 오타이프는 움찔했다.
“제아무리 하는 일이 옳아도 때를 놓치면 소용없다는 얘깁니다.”
파르르!
오타이프의 짙은 눈썹이 미세한 파동을 일으켰다.
호세이니의 말은 지금이 때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호세이니는 남은 홍차를 마저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한 잔 더 하지 그러십니까?”
“첫째 잔보다 더 좋은 둘째 잔은 없습니다.”
호세이니는 허리를 구부려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오타이프 사령관은 혼자 있었다.
부관은 이미 퇴근한지 오래다.
그가 지휘하는 통신사령부는 리야드 동쪽 20킬로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통신사령부는 사우디내의 군작전의 유 무선을 모두 통제하고 있었다.
“흐흠!”
오타이프 사령관은 긴 한숨을 쉬었다.
눈 앞으로 초저녁에 자신이 만났던 호세이니란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파흐드 왕세자가 그를 자신에게 보낸 이유가 뭘까.
이틀 전 갑자기 전화가 걸려와 마음에 드는 이가 있으니 만나 차 한 잔 해보라고 했다.
현 국왕과 차기 국왕이 될 알살만 왕세자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신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파흐드 왕세자를 존경한다.
알살만 왕세자와 파흐드 왕세자 사이가 견원지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알 살만 왕세자는 머잖아 군 통수권자가 될 사람이다
파흐드 왕세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중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끔은 파흐드 왕세자 같은 분이 사우디의 미래를 이끌어 간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온화한 성품이면서도 끊고 맺는 것이 정확하며 상대 의견을 소중하게 듣는 인품은 국왕의 그릇임에는 분명했다.
‘어떤 메시지를 보낸 것 만큼은 분명하다’
호세이니라는 사람을 통해 자신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파흐드 왕세자의 속마음이 뭘까.
오타이프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인어월이구익자(假人於越而救溺者)’
하는 일이 옳다고 해도 때를 놓치면 소용없다.
‘때!’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인가.
때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기회가 왔다는 뜻이다.
어떤 기회가 왔다는 것일까.
파흐드 왕세자의 가장 큰 고민은 군에 자기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혁명의 자산은 군이다.
그나마 개인적으로 소통하는 사람 통신사령부 오타이프 사령관이었다.
총이 필요한 자신에게 야전사령관도 아닌 통신사령부 우두머리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권총수의 얘기는 자신의 판단과는 전혀 달랐다.
‘혁명을 하는 데는 많은 병력이 필요치 않습니다. 내가보기에 왕세자께서 오늘을 대비해 오타이프 사령관을 가까이 하셨다면 놀라운 혜안을 지니신 것이며 우연이라면 천기가 우리쪽에 있는 듯 보입니다’
파흐드 왕세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군사작전은 통신이 생명입니다. 휴대전화가 있지만 작전에는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전투기 발진 명령을 휴대전화로 내리면 어느 군인이 상관의 지시를 백프로 신뢰하겠습니까. 왕세자님 같으면 군용 통신이 아닌 개인 전화기로 내려오는 그런 엄청난 명령을 받들겠습니까?’
듣고 보니 옳은 얘기였다.
이런 걸 대비해 오타이프 사령관과 소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늘이 자신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단 말인가.
“왕세자님!”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오타이프 사령관이 왕세자님쪽으로 넘어올 가능성은 몇 프로라고 보십니까?’
한참을 고민 하던 파흐드 왕세자가 말했다.
“글쎄, 50 프로는 되지 않을까 싶네.”
50프로라면 절반이다.
99프로라고 해도 신중하게 평가해야 할 문제가 권력찬탈이다.
단 한 사람만 대오를 이탈하여 상대쪽에 정보를 귀띔해버리면 끝장이다.
그런데 50프로라는 건 적으로 판단해도 될 수치였다.
적으로 분류하여 버려야 할 상대를 굳이 자기편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파흐드의 속마음을 권총수는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만큼 오타이프 장군을 아낀다는 뜻이다.
군부에서는 그나마 끌어 들일 수 있는 사람이 오타이프인데 이쪽의 뜻에 동참할 확률이 50프로라고 했다.
다시 한 번 파흐드 왕세자의 사우디 군부에 대한 장악력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모든 걸 권총수에게 맡겼다.
권총수에게는 오래전 은밀한 명단 하나를 주었다.
살생부로 불리는 파흐드 왕세자의 정적들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오타이프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권총수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좋다는 건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나?”
오타이프는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거사를 진행할 것이라는 언질도 주지 않았다.
자신이 내 뱉은 말은 ‘가인어월이구익자’라는 한 마디 뿐이었다.
“알아들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너무 모호했네.”
사물란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훌륭한 사냥개는 주인이 잡은 꿩을 물어 와야 할지 가만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할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죠.”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그건 자신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