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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47화 (147/651)

제147화: 사막의 궁전(1)

담뱃불을 손가락으로 튕겨 끈 다음 바뀐 횡단보도를 건넜다.

고개는 그다지 움직이지 않았지만 다른 감각들은 곤두서서 미행자를 체크하고 있었다.

최소한 50미터 이내에서 자신에게 감정을 갖고 날아오는 시선은 없다.

일부러 버스를 탄 건 미행자를 따돌리기 위해서다.

택시나 승용차보다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미행을 떨치는데 수월하기 때문이다.

쫓는 자의 입장에서도 대중교통수단은 발각 될 가능성이 높다.

지이잉!

아랫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떨었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바라보던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아드리아나?”

“총수?”

“어디십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그곳으로 가죠.”

권총수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목적지는 글로리아 호텔.

부우웅!

택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택시 한 대가 글로리아 호텔 앞에 멈췄다.

뒷문이 열리고 권총수가 내렸는데 자연스럽게 한 바퀴를 돌며 주변을 훑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 안쪽으로 커피숍이 보인다.

권총수는 지금 신심 깊은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슬람 노동자 삐올로 얼굴이다.

커피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살폈다.

한 명의 백인여성이 창가에 앉아있다.

권총수는 천천히 다가가 여자가 앉아 있는 탁자 앞에 섰다.

“미스, 아드리아나?”

“총수?”

“난 내일쯤 올 줄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며 마주 앉았다.

아드리아나는 권총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한참을 훑어보듯 살피더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모아둔 갤러리를 뒤졌다.

이윽고 핸드폰 속에 담긴 권총수의 원래 얼굴과 삐올로 모습을 번갈아 살피더니 미소를 지었다.

“내 안목도 빼어나다고 자부하는데 완벽하군요. 변장했다는 걸 전혀 알아보지 못하겠어요.”

아드리아나는 영국 출신의 프리랜서다.

그녀가 취재한 파일의 80프로가 BBC로 전달되는데 언론인의 시작은 더 타임즈(The Times)였다.

5년 전 더 타임즈를 그만 두고 프리랜서로 나선 것이다.

“위험한 일이오.”

아드리아나의 눈이 빛났다.

“그러니까 죽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워낙 바빠서 당신 신변까지 지켜줄 여유는 없소.”

아드리아나는 활짝 웃었다.

중동이라는 곳이 굉장히 보수적이고 특히 이슬람 비판자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다.

중동으로 파견된 세계 각국의 기자들중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하는 분야는 정치부였다.

정치와 종교는 떨래야 뗄 수가 없고 대부분의 중동 국가가 왕정이다 보니 비난과 비판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권총수는 품에서 접혀진 A4용지 한 장을 꺼냈다.

“당신이 쓴 기사를 복사 했소. 이 기사를 보며 당신만큼 사우디 정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봤소.”

그래서 당신과 거래를 시도하려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아드리아는 권총수가 내 놓은 A4용지를 들고 읽었다.

‘중동 평화는 사우디로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5년을 살며 시민권까지 얻은 비사카(81세)라는 영국노인은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

몇 년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담근 포도주 두 병을 몰고 다니는 승용차에 싣고 가다 검문에 걸렸다.

그런데 포도주 2병을 발견한 경찰은 그를 내리게 했고 곧장 경찰서로 연행했다.

그에게 내린 사우디 법은 징역 1년에 태형 30대였다.

비사카 노인의 자식들은 연로한 아버지가 태형을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방으로 구명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사우디 민심은 냉담했다.

결국 가족들은 영국총리에게 편지를 보내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또한 영국의 여러 시민단체에도 손을 벌렸다.

들끓는 여론에 결국 영국 총리는 사우디 정부에 전화를 걸어 선처를 부탁했다.

물론 비사카 노인의 태형은 면제되었다.

포도주 두 병에 징역1년, 태형 30대를 내린 사우디 법이 과연 인간을 위한 법인가 아니면 집권을 튼튼히 하려는 독재권력의 폭력인가.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는 보름 전 시아파 지도자중 한 명인 알리레자 사하브를 포함한 39명을 테러혐의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에 시아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란 정부는 ‘알라의 분노가 사우디 왕가에 쏟아질 것’이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일로 양국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이 되었다.

지난해 사우디가 반정부 인사로 지목하여 법정에 세우고 교수형에 처해진 사람은 무려 171명이다.

이중에는 시아파 지도자들이 대다수이지만 몇몇 수니파 정치인도 포함되어 있다.

아드리아는 오래전 자신이 쓴 중동평화에 대한 해법을 내놓은 칼럼을 떠올렸다.

'현 국왕 살만(85세)은 무자비한 공포 정치를 펼치고 있다.

미국이란 우산 속에 숨어 막강한 정치폭력을 자행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내가 보는 사우디의 민주주의 지수는 지구상에서 꼴찌라고 단언한다.

보도 되지 않아서 그렇지 왕가의 폭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최근 폭락하는 유가로 인한 경제적 혼란과, 특히 고령의 국왕 살만은 조금씩 이성을 상실하고 있다.

문제는 이후다.

아들 알 살만의 성격이 무자비하다는 것이다.

이미 자말 까슈끄지를 청부 살해한 것에서 볼 수 있듯 그가 현 국왕의 뒤를 잇는다면 사우디는 나라만이 아닌 중동 전체에 암운이 깃들 것이다.

사우디의 민주화야 말로 중동 평화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며, 중동의 평화는 곧 지구상의 평화로 이어질 것이다.

난 대안으로 파흐드 왕세자를 주목한다.

그는 인권을 존중할 줄 아는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칫 민중봉기가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럴 경우 시리아보다 더 무자비한 진압이 이뤄질 것이고, 그건 재앙이다.

사우디 왕가의 가슴에 진정한 알라의 축복이 넘쳐흐르길 간절히 기대한다’

그건 쿠데타를 부추기는 내용이었다.

그 칼럼으로 한동안 곤욕을 치렀고 비밀경찰의 표적이 되어 몇 번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아드리아나는 생긋 웃었다.

“왜 웃소?”

“글쎄요. 그냥 얼굴이 빨개지는데요.”

“죽지 않을 자신 있소?”

“그만큼 넘겨줄 정보가 크다는 건가요?”

“얼마 전 파흐드 왕세자를 향한 암살 시도가 있었소.”

뚝!

커피 잔을 가져가던 아드리아나가 잔을 놓칠 뻔했다.

“사실을 증언해줄 사람이 있소. 물론 직접 저격총을 쥐었던 당사자와 관계한 군 고위 장성도.”

“확보하고 있단 말인가요?”

권총수는 대답 대신 커피 잔을 들어 올렸다.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회의를 소집했다.

권총수는 우선 마무드와 알 살만의 경호실장간에 있었던 통화내용에 대해 말해주었다.

쏴아아!

사무실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 졌다.

긴장이라고 해야 했다.

각오는 다지고 있었지만 막상 눈에 위급한 상황이 훤히 보이자 하나같이 어금니를 깨문다.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켰다.

전쟁터에 나가도 이만큼 목이 말라본 적은 없었다.

“알부페이궁이면.”

어느 새 벽에 사우디 지도가 펼쳐졌고 에반이 한 지역을 가리켰다.

부라이다였다.

사우디의 대표적인 내륙도시로 인구는 60만 정도 된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알부페이궁이 있다.

부라이다는 오아시스의 도시로 불린다.

곳곳에 작은 규모지만 여러개의 호수가 있고 그 물을 이용해 농산물을 재배하고 경작한다.

“여기가 알부페이다!”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는데 ‘바다의 성’으로 불리는 작은 호수 옆으로 한 채의 건물이 지어져 있다.

수목이 빼곡한 사막의 정글 속에 지어져 있는 흰색의 궁전.

영상이 상영되었다.

위성에서 찍은 알부페이궁이었다.

궁은 굉장히 컸다.

들어가는 길은 아스팔트로 잘 다듬어져 있었다.

마치 히말라야 눈 속 어딘가에 있다는 설궁을 보는 듯 온통 흰색이었는데 정문에는 벽돌로 지어진 초소 건물이 있고 위장망으로 가려 놓은 중기관총 M2가 거치되어 있다.

그 아래에 미군 장갑차 M1117 이 보인다.

위성에서 찍은 화면답게 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였는데 본관 건물까지 들어가는데 세 곳의 초소가 있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 속 화면이 꺼지고 사무실에 다시 불이 켜졌다.

“어떤가?”

에반이 묻는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데요.”

오민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과거 707시절 평양 김정은이 이용하는 곳으로 판단되는 세 곳의 건물을 실제 모양 그대로 지어 놓고 침투 훈련을 했다.

훈련은 통상 두 가지로 실시되는데 하나는 시물레이션, 또 하나는 직접 707 부대원들이 공격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마다 결과는 그다지 쏙 마음에 들지 못했다.

설명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나카야마가 불쑥 묻는다.

“조센징, 결과가 어땠는데?”

“이런 개 호로 쪽바리 쉽탱이가 뒈지고 싶어.”

벌떡!

이미 도주를 준비 한 듯 나카야마는 어느 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고 있었다.

모두가 왁자지껄 한바탕 웃었는데 권총수는 문을 잡고 고개만 들이밀고 있는 나카야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치는 장난이 아니다.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어주려는 나카야마의 계산된 시비였다.

“들어와!”

권총수가 나직하게 말했다.

나카야마가 주춤 거리며 들어왔고 오민철이 눈을 부라렸다.

“앉아 쪽바리, 그냥 콱!”

나카야마가 끝자리에 앉자 오민철이 그 당시 결과를 덧붙였다.

“피해가 컸어. 고무탄을 이용해 최대한 실전에 가깝게 훈련을 했는데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어. 거의 전멸이야.”

전멸했다는 말에 잠시 부드러워졌던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졌다.

“그래서 느낀게 있어. 결국, 작전을 성공하려면 상대보다 인원이 많거나, 아니면 첨단장비로 무장하여 화력에서 우세하든가.”

권총수가 물었다.

“경비 병력을 몇 명으로 예상하고 작전을 했어?”

“중대병력 정도로 추정할 뿐 정확한 인원은 아무도 몰라.”

“중대병력이라고 해도 무장까지 중대수준은 아니잖아?”

“물론 그렇겠지.”

고가치 표적들은 경비 병력의 규모에 비해 무장은 훨씬 강력하다.

“알 살만 왕세자가 묵게 되면 평소 보다 경비가 더 강화 되겠군?”

“그렇다고 봐야지.”

경비는 사우디 군에서 맡고 있다.

아카데미는 근접 경호원들과 외곽 경비병력 중간인 2선을 맡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쳐야 한단 말이지?”

오민철이 모두를 대변하듯 권총수에게 다시 물었다.

모든 팀원들의 시선이 권총수에게 집중 되었다.

“아마 이번에 알부페이궁에서 뭔가 벌어질 것입니다. 단순한 휴가가 절대 아니에요.”

“뭔가가 뭔데?”

오민철이 다그쳤다.

“글쎄.”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팀원들은 숨까지 멈추고 권총수의 입을 보았다.

“내 짐작엔 파흐드 왕세자를 포함한 우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봐.”

뚝!

투둑!

공기가 얼어 붓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도 숨을 쉬지 않는다.

“알 살만 왕세자의 성격을 보아 절대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파흐드 왕세자와 같이 묶어 완전히 보낼 계획을 세울 거야.”

“으음!”

에반이 신음을 흘렸다.

“하긴, 언제까지 시한 폭탄을 곁에 두고 있을 수는 없겠지.”

오민철이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일 쯤 사우디 왕가의 비리와 부도덕한 실체에 대해 외신 보도가 나올 거야.”

“그건 또 뭔 소린가?”

에반이 눈을 빛냈다.

“BBC에서 파흐드 왕세자를 저격했던 네쿠남과 아브라힘 장군의 인터뷰가 나올 겁니다.”

“정말이야?”

“잠깐 흔들어 놓은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BBC 뉴스라면 충격파가 적지 않을 텐데.”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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