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페인트 공(2)
사내는 너무 충격이 컸는지 바닥에 쓰러져 꼼짝을 못했다.
주르륵!
입가로 계속 피가 흘러 내렸는데 무척 힘들어 보인다.
권총수는 사내가 떨어뜨린 권총을 주워들었다.
탁!
권총수는 한쪽에 있는 낡은 의자를 가져와 문 앞에 놓고 앉아 방안의 제니스를 빤히 보았다.
“감비노 패밀리에서 오셨다고 들었소만?”
제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피아의 살인도장은 뭐하는 곳이오?”
제니스는 빙긋 웃을 뿐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도메니코 세팔루는 어떤 사람이오?”
감옥에 있는 피터 고티가 감비노의 보스이지만 실질적으로 패밀리를 경영하는 인물은 도메니코 세팔루이다.
살아생전 나오지 못하겠지만 설혹 기적이 일어나 피터 고티가 나온다 해도 왕좌에 앉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감비노 패밀리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판단이다.
감비노 패밀리에 대한 모든 정보 역시 MI6으로부터 제공을 받았다.
사내의 표정은 담담했다.
분명 자신의 신변이 무척 위태롭다는 걸 모르지 않을텐데도 흔들리는 모습은 없었다.
권총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건 조직을 위해서는 무조건 입을 닫겠다는 뜻이다.
“짐작 가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마피아를 이 더운 나라에 보낸 인물이 누구요?”
씨익!
제니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오메르타 그거요?”
마피아에게 가장 중요한 규율이다.
이름하여 침묵의 법칙이다.
몸은 죽어도 결코 조직을 위해서는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권총수는 제니스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분근착골로 한 번 반쯤 죽여볼까 했으나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고유의 지위와 격이라는 것이 있다.
누가 뭐라고 하든 감비노 패밀리는 뉴욕 5대 마피아중 가장 선두를 달리는 정통이다.
감비노 패밀리 페인트공이라고 하면 가장 우아한 살인자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끼르륵!
권총에 소음기를 돌려 끼웠다.
“내 이름은 권총수요. 부모님이 없어 본관이 어디인지는 모르고.”
마피아 인물들은 자신을 죽인 사람에 대해 알고자 한다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이 왜 자신을 죽이는 사람의 신분을 알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푸슉!
딱 한 발이다.
총알은 정확히 제니스의 이마를 뚫고 들어갔다.
퍼억!
잠시 꼼짝도 않는 듯 하더니 옆으로 나동그라지며 방바닥으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인 사내는 일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몸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강한 내력이 실린 장력이 몸속 장기에 강한 충격을 주었고 그로 인해 혼미해진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권총수가 다가오자 주인사내는 더듬거렸다.
“살려주시오.”
가까이 다가온 권총수는 사내가 쓰고 있는 구트라를 벗겼다. 그러자 머리에 감고 있던 검정색 이갈까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사내의 머리는 짧았다.
“움직이지 마시오. 얼굴 좀 봅시다.”
권총수는 주인 사내의 얼굴을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눌러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군인이군.”
“예!”
사내는 뭐든지 대답 할테니 죽이지만 말아달라는 듯 곧장 답했다.
이어 사내는 묻지도 않았는데 권총수가 듣고 싶어 하는 얘기를 술술 털어놨다.
자신은 사우디 비밀경찰 마바히스 소속으로 상부로부터 죽은 제니스에 대한 지원 임무를 명령 받았다고 했다.
임무는 총기와 폭약 조달이었다.
“이 과일 가게는 뭐요?”
“비밀경찰이 사용하는 안가입니다.”
권총수는 멈칫했다.
비록 남의 나라 문제지만 등골이 서늘해진다.
일반 국민들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하여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지켜본다.
그러다 반정부적인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 가 고문하고 구금한다.
시리아 내전 때 비밀경찰에 체포된 한 반군 지도자의 시체를 본적이 있는데 걸레조각을 만들어 놓았다.
푸슉!
방아쇠가 당겨지고 사내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권총수는 가게를 나가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권총수가 떠나고 곧장 팔디끄에 진짜 가이드가 나타났다.
가이드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는데 문자 한 통이 왔다.
‘그동안 고마웠소. 수고하시오’
가이드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닷새 전, 지금의 미국 관광객들을 데리고 호텔에서 묵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분명히 문을 잠갔는데도 문이 열린 것에 놀랐고 한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들어섰다.
동양인 사내는 불안해하는 자신을 향해 절대 강도가 아니며 헤치지 않을 테니 잠시 얘기 좀 나누자고 했다.
그러면서 총이나 칼 따위는 없다고 몸을 뒤져 볼 것을 제의했다. 정말로 비무장이었기에 자신을 헤칠 마음이 없다는 걸 믿고 대화에 응했다.
사내는 등을 돌리고 거울 앞에 앉았다. 그리고 가지고 온 가방을 열더니 여러 가지 물건을 꺼내 얼굴을 변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여분 지나고 사내는 돌아섰다.
가이드는 소스라쳤다.
또 한명의 자신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사흘만 내가 당신이 되어 가이드를 해야겠소. 물론 패키지 상품을 포함해 당신한테 돌아올 쇼핑 몫은 건드리지 않겠소. 그리고 추가로 천 달러를 드리지.”
그러면서 백 달러 지폐 10장을 내밀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빨리 모이세요. 다음 코스로 이동해야 합니다.”
관광객들은 낙타 굽으로 만들어진 재떨이를 담은 쇼핑백을 하나씩 챙겨들었다.
차에서 내려 휴게실로 들어갔다.
“총수야.”
“캡틴!”
휴게실을 들어서자 막 사격훈련을 끝내고 돌아온 팀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떻게 됐어?”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살아 돌아온 것 보니까 당한 건 분명 아닌데?”
“어떻게 됐냐니까?”
나카야마가 물었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내일 아침 뉴스 봐.”
그리고 곧장 핸드폰을 들었다.
에반에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 * *
뉴욕타임즈가 커다란 장방형의 탁자 위에 펼쳐져 있었는데 한 사내가 방바닥에 엎어져 있는 사진이 실렸다.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재래시장에서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상대는 자신이 뉴욕까지 찾아가 만났던 도메니코 세팔루였다.
“미안하오. 곧 재정비하여 페인트공을 보낼 생각이오.”
계약서에는 실패하면 잔금 지급은 없다.
마피아는 실패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프린스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쪽에서 다시 공격하겠다면서 한 번 더 기회를 달라고 하는데 굳이 막을 필요는 없었다.
실패로 인해 실추된 감비노 마피아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그들의 의지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대로 하시오.”
프린스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곧장 간부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회장님”
총무이사 패트릭이 입을 열었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 듯 싶습니다.”
“장기전?”
“우리도 그렇지만 다인코프는 전멸했고 감비노 페인트공까지 무너졌습니다. 이건 곧 상대의 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서둘지 말자?”
“기다리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억지로 기회를 만들려고 하면 문제만 발생하죠.”
프린스는 어금니를 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씰 출신들이 외인부대 출신에게 쩔쩔 멘다는 것에 화도 나고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끼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한 발 물러서서 전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회의 끝냅시다.”
프린스가 일어났다.
패트릭 총무이사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권총수는 마무드와 마주 앉았다.
오늘로 벌써 네 번째 만남이다.
항상 싫다는데도 자꾸 불러낸다.
낮은 자세와 아무리 재미없는 얘기 일지라도 미소를 잃지 않고 들어주는 자신의 태도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홍차를 놓고 마주 앉았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홍차도 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 자신이 놓고 마시는 홍차는 한잔에 30달러짜리다.
마무드는 오늘따라 얘기도중 자주 전화를 받았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알았네, 그렇게 하게 등등의 대답을 보면 주로 보고를 받거나 지시를 내리는 전화였다.
권총수의 귀에는 핸드폰 속의 통화 내용이 훤히 들려왔다.
대부분의 내용이 며칠 전 디에라쑤끄 시장 사건이었다.
언론에는 단순 금품을 노리는 강도라고 보도 되었지만 지금 전화속의 보고 내용들은 자신의 이름을 들먹이고 있었다.
보고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블랙버드, 즉 KAS소속 권총수의 행위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권총수는 부드럽게 웃을 뿐이었다.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마무드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이 좀 복잡하네.”
“글쎄 우린 정치에 대해서 잘 몰라서.”
두 번째 만나서 자신이 알 살만 왕세자의 수행비서라는 걸 밝혔다.
그건 자신의 신분을 밝혀도 권총수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위험인물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일 것이다.
지이잉!
또다시 전화가 걸려오자 이번에는 좀 미안했던 듯 멈칫 했다.
권총수는 손을 펴며 받으라고 했다.
“예 실장님, 다음 날로 하루 연장 된단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끊는다.
그런데 권총수의 눈빛이 달라졌다.
통화 내용을 엿들은 것이다.
상대는 알 살만 왕세자의 경호실장인 나세르 모하마드였다.
사흘 뒤 알 살만 왕세자가 ‘알부페이’에서 만찬을 연다는 것이었다.
알부페이는 ‘바다의 성’이라는 뜻을 지닌 커다란 별궁으로 알 살만 왕세자가 바쁜 업무를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별장으로 오아시스 도시로 불리는 부라이다에 위치해 있다.
꿀꺽!
권총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극비중의 극비 내용을 알게 된 것이다.
알 살만 왕세자의 동정은 차기 국왕 후계자답게 가급적 언론에 보도가 되고 국민들에게 노출된다.
그러나 알부페이궁은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휴식공간이다.
개인적인 동정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지고 언론은 물론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쭈욱!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해도 좀체 진정되지 않는다.
“어디 아픈가?”
“아닙니다.”
권총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버스 한 대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렸다.
권총수는 맨 마지막에 내렸는데 버스가 떠나고 주머니를 뒤지던 권총수는 길가 상점들을 살피며 한 곳으로 걸어갔다.
담배 가게를 찾는 것이었다.
담배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권총수는 가게를 스윽 훑었다.
여러종류의 물 담배가 술병처럼 진열되어 있었는데 권총수는 궐련인 말보로 레드를 사서 나왔다.
비닐을 벗기고 뚜껑을 열자 낯익은 갈색 코르크 필터가 눈에 들어온다.
항상 피우는 담배인데 유독 오늘따라 코르크 필터가 눈길을 끄는 것은 왜일까.
비렌드라는 이 코르크 필터 때문에 말보로 레드를 피운다고 했다.
그렇다고 다른 담배가 모두 흰색의 필터인 것만은 아니다.
“흐흠!”
권총수는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코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첫 냄새는 약간 짠듯하다 곧바로 달짝지근한 버지니아 향이 코끝을 파고든다.
잠시 담배에서 풍기는 단 냄새를 맡던 권총수는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후후!
목구멍까지 깊숙이 내려가도록 빨았다가 내뿜는다.
들어갈 때는 뜨겁기도 하면서 조금은 따갑다.
하지만 밖으로 나올 때는 몸속의 모든 찌꺼기를 쓸어 내오는 듯 가슴이 후련해진다.
‘알부페이!’
담배 한 개비가 모두 재로 변할 때까지 권총수는 길거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