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45화 (145/651)

제145화: 페인트 공(1)

오민철이 눈을 부라렸다.

나카야마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관광객들을 다가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는데 자꾸 우리 쪽을 쳐다보는 사람이 있잖아.”

“당연히 총소리가 들리니까 바라보겠지? 흥미롭기도 할테고.”

“그렇긴 한데.”

나카야마는 끝내 불편한 얼굴을 지우지 못했다.

훈련이 끝나고 오민철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캡틴은 어디간 거냐? 올 때는 같이 온 것 같은데.”

후우!

오민철이 관광객들을 향해 담배연기를 뿜으며 중얼 거린다.

“이 더운데서 놀겠다고, 아름답다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멀리서 용병들을 태우고 갈 버스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관광객들 또한 옷에 묻은 모래를 털어 내고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차안은 에어컨이 켜져 있어 무척 시원했는데 모두가 만족스러운 얼굴들이다.

서른다섯 명씩 모두 일흔 명을 태운 두 대의 관광버스가 바이크 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오늘 관광객들은 모두 미국 뉴저지주에서 온 사람들이다.

“재미있었습니까?”

가이드가 말했다.

미국계 사우디 국적의 인물로 리야드로 유학을 왔다가 정착하게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 했다.

“사격장이 곧 옮겨지면 바이크 투어장을 좀 더 넓힌다더군요. 그때는 지금 보다 흥미가 배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가이드를 주시하고 있는데 단 한 명의 시선은 창밖이다.

챙이 둥근 푸른색 모자를 쓰고 이번 관광의 단체복인 사우디 국기가 새겨진 흰색의 반팔 티와 헐렁한 회색의 면바지를 걸친 마흔 초반 가량의 백인이었다.

그의 두 눈은 멀리서 KAS용병들을 태우고 달리는 버스를 주시했는데 이마가 찌푸려진 것이 뭔가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투퉁!

관광버스는 모래 길을 벗어난 포장된 도로에 진입했다.

버스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린 곧 전통시장 디에라쑤끄로 갈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진정한 이슬람인의 삶과 생활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특히 ‘팔디끄’라는 가게가 있습니다. 한번 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가끔 CNN이나 BBC의 이슬람 탐방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가게죠. 그곳에 가면 그 귀하다는 낙타 발바닥으로 만든 재떨이가 있습니다. 물론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께서는 사용하셔도 문제없습니다만 집안 인테리어용으로 매우 적합하죠.”

사람들이 눈을 빛내며 가이드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가 지금부터 한 장의 티켓을 드리겠습니다. 이걸 가지고 팔디끄에서 낙타발굽 재떨이를 구입하시면 20프로를 세일해 드립니다.”

“여기!”

“여기요.”

“서두르지 마세요. 원하는 분은 모두 받을 수 있습니다.”

가이드는 승객들에게 뉴욕 지하철 표 크기 정도의 티켓 한 장씩을 건네주었다.

“고객님!”

가이드는 고개를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는 백인 사내를 불렀다.

“받으셔야죠. 20프로 깎아줍니다.”

사내는 표정 없는 얼굴로 가이드가 내민 카드를 받아 왼쪽 가슴에 있는 티셔츠 윗주머니에 넣었다.

부우웅!

버스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디에라쑤끄는 리야드 최대 전통시장이다.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와 함께 아랍권 최고의 재래시장으로 1500년전 아라비아 상인들의 품습과 문화가 그대로 숨 쉬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사우디 현지인들에게도 굉장히 인기가 있는 곳인데 디에라쑤끄 시장에 관광객들이 나타났다.

시장 상인들은 자기 가게의 물건을 팔기 위해 관광객들 앞을 막아서며 큰 소리로 외쳤다.

“십 달러!”

“헤이, 제임스 오 달러!”

이미 가이드로부터 호객 행위에 주의하라는 귀띔을 받은 관광객들은 그들을 피했다.

자칫 가짜를 사거나 아니면 바가지를 쓸 수 있다고 겁을 주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들의 호객에 넘어가지 않았다.

연신 아엠 쏘리를 반복하며 지나간다.

커다란 가게 앞에 붉은 삼각 깃발을 든 가이드가 멈췄다.

사우디아라비아 전통의상 토브와 사막의 목동들이 쓰던 챙이 커다란 모자, 모래 위를 잘 걸을 수 있는 발바닥이 납작한 신발들이 보였다.

그중 관광객들의 시선을 잡는 건 단연 낙타 발굽으로 만들었다는 재떨이였다.

어른 손뼘 정도의 크기였는데 흑색과 자색이 교묘히 합성된 푸르스름한 광채는 관광객들의 시선을 압도했다.

한 명의 뚱뚱한 미국인이 가격을 묻자 400달러라고 했다.

관광객들은 가이드에게 받은 표를 내밀자 주인은 80달러를 할인해 주겠다고 했고 곧장 거래가 이뤄졌다.

한 명이 구입을 하자 여기저기서 가격을 묻고 크기와 색상을 고르느라 분주해졌다.

가이드의 시선이 관광객들을 살폈다.

누군가를 찾는 모양이었는데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한 번 자세히 낙타발굽 재떨이를 사느라 정신없는 관광객들을 훑어보더니 좁은 골목으로 걸어 사라졌다.

십 분후 가이드는 디에라쑤끄 시장 입구에 나타났다.

어딜 가든 재래시장의 입구는 무척 붐빈다.

각지에서 물건을 싣고 올라온 차량과 물건을 받기 위해 몰려든 상인들이 섞이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스으으!

가이드가 제자리에서 돌았다.

마치 레이더가 경계구역 안에 적의 함정이 있는지 훑듯이 두 번을 제자리에서 돌았다.

시장 입구까지는 분명 동행했었다.

‘남서쪽’

그 사내는 희미한 후추향을 풍겼다.

사람의 몸에서 후추향이 나는 건 두 가지 이유이다.

하나는 겨드랑이에서 나는 액취증이다.

액취증은 거의 양파, 암모니아, 식초, 그리고 후추냄새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식성으로 인해 인이 박힌 듯 몸에서 나는 냄새다.

사람을 많이 잡아먹은 사자에게서 신(酸)냄새가 나는 것처럼 특정 음식이나 조미료를 즐겨 이용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 냄새가 몸에서 풍겨 나온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 유난히 후추를 뿌려 먹는 사람들이 있다.

가이드는 사내에게서 풍기는 후추냄새의 원인을 후자로 보았다.

자기 주위에서도 스테이크를 먹을 때 유난히 후추를 많이 뿌린 사람이 있고 그에게서 냄새가 난다.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는 가이드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걷는 것 같은데 얼음 위를 미끄러져 가듯 했고, 맞은편 사람과 충돌할 듯 했는데 어느새 스치듯 지나가버렸다.

그러다 보니 가이드가 지나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부딪히는 줄 알고 움찔 했다.

과일을 판매하는 농산물 매장이 있는 F동이 나타났다.

과일 향기가 코끝을 파고들었고, 수백 개의 과일가게가 끝없이 늘어서 있다.

‘삼십 미터’

가이드는 걸음을 늦췄다.

F-9라는 간판이 걸린 과일가게 근처에서 멈췄다.

낯익은 망고와 오렌지가 진열 되어 있고, 우리와 다른 길쭉한 수박이 차곡차곡 잘 정돈되어 있었다.

가게 안에서는 부르카를 쓴 두 명의 현지인이 주인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있다’

가게 안쪽으로 이어지는 조그만 통로를 바라보던 가이드는 잠시 망설이더니 주변을 살폈다.

파앗!

갑자기 눈에서 섬광이 피어났다.

과일 상자를 가득 실은 화물차들이 북적이는 인파에 막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가이드로 변장한 권총수는 주위를 살피다 떨어진 못을 주워들었다.

이어 오렌지가 담긴 박스를 가득 싣고 가는 1톤짜리 용달차를 향해 못을 날렸다.

못은 바람을 갈랐고 용달차 앞 바퀴 측면을 때렸다.

타이어는 측면이 바닥보다 훨씬 약하다.

콰아앙!

마치 포탄이 떨어지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과적으로 깊게 눌린 타이어가 터지자 휘청하면서 실린 오렌지 박스들이 한쪽으로 쏟아졌다.

그 순간 굉음에 과일을 고르던 손님과 주인이 재빨리 문 밖으로 달려 나왔다.

스으윽!

권총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 통로를 들어가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방문은 닫혔는데 안에서 툭툭 하는 소리가 들려나왔다.

권총수는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렸다.

‘후추 냄새’

권총수는 허리춤에 감춰 놓았던 권총을 꺼냈는데 소음기가 달려 있었다.

드르륵!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방안은 어지럽혀져 있었다.

여러 가지 전기 부품과 색깔별로 나눠진 전선, 아이 주먹만큼 뭉쳐진 회색의 덩어리가 있었다.

방안의 사내는 놀라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면 당황하기 보다는 오히려 빤히 바라본다.

사내 역시 문밖에 서 있는 권총수를 쳐다보았다.

방안의 사내는 지금 다에라쑤끄 시장을 구경중인 뉴저지에서 날아온 단체관광객중 한명이다.

씨익!

권총수는 사내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눈 앞의 사내는 요즘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사내였다.

MI6(영국의 해외정보국)의 귀띔에 의하면 사내는 리야드에 들어 온지 넉 달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KAS의 가장 큰 약점은 정보부족이었다.

아카데미는 CIA와 협업 체계를 이루면서 그들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상당부분 지원받고 있었지만 KAS는 그렇지 못했다.

뒤늦게서야 스톤스 회장은 정보 없이는 회사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본격적인 의회 로비에 들어갔고 모든 인맥을 동원해 MI6 관계자들과 접촉하기 위해 애썼다.

다행히 MI6내부에 SAS출신들이 적지 않아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밀월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방안에 앉아 있는 사내의 본명은 제니스, 마피아에서는 그를 페인트공(painter)으로 불린다.

마피아에서 페인트는 곧 사람의 붉은 피를 의미했다.

붉은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 그러므로 페인트공은 암살자를 가리키는 그들만의 은어인 것이다.

“제니스.”

권총수가 싱긋 웃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제니스는 처음으로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가이드가 이상하다고 생각한건 이틀 전부터였다.

외모는 완벽하게 같았지만 목소리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감기일까 생각해 봤지만 평소 가이드가 피곤해 한다거나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어제 밤 숙소 복도에서 지나가는 가이드를 불쑥 만났는데 자신을 보는 시선이 순간적이지만 아주 무겁다는 걸 간파했다.

‘수상하면 공격하라’

오랫동안 마피아 페인트공들에게 금과옥조처럼 내려오는 말이다.

아차 싶을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공격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라는 뜻이었다.

한 발 앞서는 공격,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오늘 밤 가이드가 묵는 방에 화재로 위장하여 제거할 계획이다.

오랜 사냥꾼의 축적된 경험과 본능은 가이드가 위험한 인물이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제니스가 가볍게 웃었다.

“이번 경기에서는 내가 진 것 같군.”

권총수는 방안에 만들어진 폭탄들을 살폈다.

“콤포지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걸 보니 군 출신이군요?”

“폭파 주특기를 갖고 있었지. 씰 5팀에서 말이야.”

씰 5팀은 극동아시아를 담당하는데 남한에서 자주 머무른다.

그들의 제1 표적은 평양이기 때문이었다.

휘이익!

가만 서 있던 권총수의 몸이 빠르게 돌아 비키며 좌장을 뻗었다.

퍽!

탕!

총소리가 울리며 가게 주인이 나동그라졌다.

권총수는 입가로 피를 흘리며 처박힌 가게주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제니스는 별것 아닌 것처럼 전기 테스트기의 스위치를 슬쩍 돌렸다.

그러자 화면에 있던 0 이라는 숫자가 깜빡 거리며 나타났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권총수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고 보았다.

직감적으로 무선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상대에게 알리는 공작원들의 모스신호 같다는 생각을 했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동시에 급히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벼락같이 돌아선 것이다.

총이 발사되는 순간 몸을 피하며 왼손으로 소림의 대금룡산수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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