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44화 (144/651)

제144화: 일전불사(3)

권총수는 전화를 끊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민철이 재빨리 물었다.

“뭐래? 당장 만나자고 하지? 마무드 그 사람 돈도 많던데?”

권총수는 가볍게 웃었다.

“말 좀 해봐 삐올로.”

오민철이 장난 하듯 불렀다.

가장 걸림돌은 변장이었다.

변체환용이라는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변장술이 있지만 80년 내공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가장 흔한 것이 인피면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얼굴 위에 변장하고자 하는 사람의 생김새와 비슷한 모양의 부드러운 재질의 가면을 쓰거나 아니면 죽은 사람의 얼굴 가죽을 직접 벗겨 특수 약품으로 처리한 뒤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은 면피소기(面皮燒氣)다.

인피면구보다는 좀 더 정밀한 수위인데 내공이 팔십년 이상이 되면 삼매진화로 태우듯 얼굴을 변색 시키는 것이다.

장심을 이용해 얼굴을 직접 태우는 건 아니고 내공을 얼굴에 집중하여 피부색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걸 모르는 이 없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권총수의 얼굴이 아닐지라도 의심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우디와 같이 이슬람을 믿는 동남아, 그중에서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사람이 되어야 했다.

양국 모두 영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언어에도 문제가 없다.

남은 건 피부였다.

그들은 한국이나 일본, 중국 쪽 보다 피부가 좀 더 검다.

면피소기에 몇 가지 분장기술을 이용해 완벽한 동남아 사람으로 바뀌었다.

삐올로란 이름은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아침 식사 시간이다.

식사는 각자 해결한다.

근처 식당에서 먹기도 하고 때로는 회사에서 준비 해 놓은 전투식량을 이용한다.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다.

자기 돈으로 사먹어야 한다.

총기류를 비롯해 작전에 필요한 장비를 제외한 모든 경비는 자비로 지출된다.

“얼큰한 해장국 같은 것 없나.”

근처 식당에서 ‘런떵사울’이라는 음식을 먹고 나오면서 오민철이 투덜거렸다.

얼큰한 국물에 뭉텅한 떡 조각을 넣고 빨간 고춧가루와 국물을 얹어 언뜻 처음 먹을 땐 콩나물 국밥을 먹는 느낌이 났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뱃속이 거부를 한다.

오민철은 조용히 한국 식당을 찾고 있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뒤졌지만 한국 식당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한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진출해 있기 때문에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제는 두 발로 리야드 시내를 뒤지고 다녔다.

그런데 며칠전 권총수로부터 은밀한 지시가 떨어졌다.

한국 식당 찾는 걸 포기하라고 했다.

자신들은 지금 아카데미와 다인코프의 블랙리스트 1호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설혹 식당을 발견한다고 해도 애먼 한국 식당에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죽으나 사나 이제 아랍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군.”

“형!”

왕복 2차선 도로의 인도를 걸어가던 권총수가 낮은 소리로 불렀다.

“뭔가 이상한 거 못 느껴?”

비록 무공 수련을 포기한 오민철이지만 다른 동료들과는 다르다.

월등한 신체적 능력을 갖고 있다.

“뭐가 이상해?”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권총수는 고개를 갸웃 하자 오민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떤 놈이 감시하는 거야?”

“대단한데. 일반인이 이정도 내 감각을 흔들어 놓을 정도라면 굉장한 전문가야.”

오민철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권총수는 강호 무사다.

“열흘쯤 됐어. 뭔가가 아주 먼 거리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먼거리?”

오민철은 순간적으로 저 멀리 있는 15층짜리 고층 빌딩을 쏘아보았다.

권총수의 감각에 잡혔다 떨어졌다 할 정도면 놀라운 인물이다.

“다인코프 자식들이 다시 붙는 모양인데? 아니면 아카데미 쪽이든가?”

“용병은 이런 식의 차분하고 치밀한 접근 능력이 없어. 그들은 어느 선까지 살피다 됐다 싶으면 그냥 밀고 들어오지.”

그건 맞다.

특수부대 작전 성향이 그러했다.

오민철은 다시 근처를 살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어떤 위험도 발견되지 않았다.

버스가 멈추고 한 사내가 내렸다.

사내는 카키색 쩔라나(우리 한복처럼 통이 큰 바지)바지에 머리에 페즈를 닮은 원통형의 송콕(둥그런 모자)을 썼는데 바주 믈라유 복장이다.

바주 믈라유는 동남아 즉,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쪽 무슬림들이 즐겨 입는 차림새이다.

차에서 내린 사내는 잠시 맞은편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리야드에서도 명품 샵으로 유명한 백화점이다.

사내는 신호가 바뀌자 횡단보도를 건너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8층에서 내렸는데 들어서자마자 음식냄새가 파고든다.

이제 어느 정도 사우디아라비아 생활에 젖어들었지만 여전히 음식냄새를 소화 하기는 만만찮다

사내는 ‘히라산’이라고 쓰인 식당으로 들어갔다.

“삐올로 아저씨!”

조용한 식당에 반가움 가득한 목소리가 울렸다.

권총수는 달려오는 핫산을 끌어안아 올렸다.

“아저씨 감사해요.”

부모가 시킨 모양이다.

“아빠가 그러는데 아저씨는 알라께서 보내신 핫산의 수호천사인지 모른다고 했어요.”

“호오! 그래. 정말 고맙구나.”

이윽고 탁자가까이에 다가가 핫산을 내려놓은 권총수는 마무드와 아내 나디아를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핫산의 아버지 마무드입니다.”

권총수는 마무드가 내미는 손을 쥐고 가볍게 구부렸다.

사우디 정부의 실세중의 실세인 알 살만 왕세자의 비서다.

“어서 오세요.”

니캅을 쓴 나디아가 고개를 까닥 숙였다.

“앉읍시다.”

마무드는 환한 웃음으로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거듭 핫산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에 대해 끝없는 감사를 드렸다.

식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허머스다.

콩으로 만든 퓌레(양고기나 채소를 섞은 스프 비슷)에 빵을 찍어 먹는다.

어느 나라든 같은 음식이라고 하여 가격이 동일하지는 않다.

요리사의 솜씨, 맛과 향에 따라 엄청난 가격 차이를 보이는데 꽤 유명한 집이라고 했다.

이어 양고기를 기름에 튀겨 살짝 양념을 묻힌 퐁뜨, 소고기와 양고기가 들어간 퇴네르(회전 케밥)가 조금씩 이어 나왔다.

어제부터 히라산이라는 식당이 잘하는 요리에 대해 정보를 얻었고 먹는 법까지 몇 번에 걸쳐 연습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권총수는 가급적 느리고 천천히 식사를 하며 최대한 마무드의 얘기에 호응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자신의 얘기를 열심히 듣고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권총수의 태도에 마무드는 무척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정원사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네.”

자리에 앉고 나서 존칭이 거북하니 말을 낮추라고 했는데 이제야 반말을 뱉는다.

“주인이 누군가?”

이미 조사 했을 터인데 모른 체 한다.

“이세벨 사장님입니다. 모사르 건축사를 경영하고 있죠.”

그런 회사가 진짜 있었다.

물론 KAS 런던 본사 차원에서 모사르 건축사 사장을 완전히 포섭 했고 삐올로란 이름으로 들어갔다.

사우디에는 많은 동남아인들이 진출해 있는데 그중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가장 많았다.

식사 말머리에 마무드가, 봉투 한 개를 꺼내 밀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받아 달라면서 무려 미화 오천 달러의 거액을 담았다.

권총수는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신은 결코 댓가를 바라며 이웃을 도우라고 말하지 않았다면서 물러섰다.

받으면 안 된다.

받으면 그만큼 멀어진다.

마무드 입장에서는 미안함이 줄어들며 삐올로란 사내가 머릿속에서 빨리 잊혀지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마무드와 절친해야 하고 핫산을 구해준 두 배, 세 배의 몫을 가져와야 하는데 돈은 모든 계획을 망칠 수 있다.

권총수는 끝내 봉투를 거절하고 식당을 물러나왔다.

세 사람은 우두커니 서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지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사람 같지 않아요.”

나디아가 중얼 거렸다. 사우디 건설현장 노동자의 60프로가 동남에서 온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돈을 벌기위해 온 것이다.

사우디에서 한 달 임금이면 그들 나라에서는 몇 달을 살아 갈 수 있다.

오천 달러면 최소 3,4 년을 끼니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 거액인데 거절한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음!”

마무드는 이마를 찡그렸다가 폈다.

‘나라면’

입장을 바꿔보았다.

자신 같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찌했을까.

잠시도 망설이거나 고민하지 않고 돈을 받을 것 같았다.

이웃을 돕고서 어떤 댓가를 바라거나 주위에 자랑하지 말라는 코란의 한 구절이 다시 떠올랐다.

‘알라의 가르침에 진실하게 충실하는 사람이로군’

마무드는 천천히 계산을 위해 걸어갔다.

프랑코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살아가는데 어떤 흐름을 갖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직장에 출근을 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을 한다.

또는 퇴근 후 취미 활동을 하기도 한다.

동물도 그렇다.

해가 뜨면 집을 떠나 먹이사냥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다시 둥지나 굴속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반년이 넘도록 살폈고 유심히 관찰한 결과 그에게서도 그런 평범한 패턴이 나타났다.

아침이면 식사를 하고 회사에 출근한다.

그리고 부지런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밤이 되면 퇴근을 했다.

그런데 요즘 연이어 근무중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곤 했다.

자신의 시야를 완전히 벗어나버리는 것이다.

분명히 출근을 하긴 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오후 늦게 쯤 나타나기도 하고 출근하지 않았다가 오후에 불쑥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었다.

오늘도 그러했다.

아침에 일어나 파흐드 왕세자의 외부 행사가 없었기 때문에 곧장 동료들과 회사 사격장으로 이동했다.

사격장으로 이동할 때까지 그의 모습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한참 사격하고 있어야 할 그가 감쪽같이 보이지 않는다.

차를 이용해 사격장을 빠져나간 것도 아니다.

사막이기 때문에 사격장을 떠나면 먼지가 피어나 금방 눈에 띈다.

드르르륵!

사격장에서는 HK-416을 쥔 KAS 용병들이 집중 사격을 하고 있었다.

사막 바이크들이 먼지를 날리며 달렸다.

사우디에는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두 개의 관광코스가 있는데 하나는 바이크를 타고 모래 사막을 달리는 것이며, 또 하나는 옛날 사막을 횡단하던 아라비안 상인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낙타 투어였다.

낙타투어는 요즘 잠시 주춤한데 오래전 급성 호흡기 감염병인 메르스를 낙타가 옮긴다는 학계 발표가 있고나서부터 한풀 꺾인 것이다.

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다시 재개되고 있긴 하지만 예전만큼 성황을 이루지는 못했다.

대신 사막 바이크가 낙타 투어 손님을 끌어들였다.

암석 사막에 위치한 KAS 사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이크 투어장이 한 곳 있었다.

이곳 투어장은 다른 곳과 달리 다양한 코스가 개발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항상 붐빈다.

다른 바이크장처럼 그냥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는 경주장이 있고, 2, 30미터 높이의 모래 언덕도 있다.

이곳 바이크장이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코스는 단연 모굴 스키장처럼 울퉁불퉁하고 단단한 모래둔덕이 있다는 것이다.

딱딱한 암석 사막에 모래가 쌓이면서 만들어진 건데 파도를 타듯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재미에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KAS가 처음 이곳에 사격장 시설을 할 때는 바이크 투어장이 없었다.

그러다 반 년전 갑자기 생겨나면서 이 지역을 관할하는 리야드시에서 사고의 위험성을 들어 사격장 이전을 요구했다.

아직 마땅한 대체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연말까지는 옮기라는 통보가 왔었다.

“세월 좋을 때다.”

사격이 끝난 오민철이 모래먼지를 피워 올리며 바이크 투어를 즐기는 관광객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군.”

피아퐁이 관광객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날 더운데 무슨 개고생들이야. 나 같으면 돈 주고 타라고 해도 싫어.”

“난 돈 준다면 탈거야.”

오민철은 단호했다.

그때 경계를 나갔던 나카야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관광객들의 접근을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철조망 펜스를 쳤고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 팻말을 붙였지만 안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참!”

나카야마가 쌍안경을 바닥에 놓고 주저앉았다.

“과민반응인가.”

“쪽바리 왜 그래?”

“우연일거야.”

“야 쪽발아, 엉아가 물어보면 신속히 대답을 해야지. 뭐가 우연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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