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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43화 (143/651)

제143화: 일전불사(2)

한참을 바라보던 펜스는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어쩐 일이오?”

“오늘 생일이더군요.”

펜스 회장은 움찔했다.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었던가.

그러고 보니 이때가 되면 지금은 성인이 되어버린 자녀들이 생일 축하 노래는 불러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난 지금 뉴욕에 있소.”

일 년 내내 거의 노스캐롤라이나를 떠나지 않는 사람이 이 큰 도시에는 무슨 일일까.

갑자기 호기심이 당겼다.

사람들은 둘을 일컬어 토네이도와 허리케인이라고 부른다.

토네이도는 육지에서 시작되는 소용돌이고 허리케인은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태풍이다.

프린스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난데 반해 펜스 회장은 마이애미 해변가 작은 어촌이 고향이다.

언젠가부터 미국은 자국 군대가 나서는 전쟁을 원하지 않기 시작했다.

막대한 전쟁비용이 들어가는 건 차치 하고라도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예전과는 다르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미국의 전쟁은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희생으로 존중되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남의 나라 민주주의에 자국민의 목숨을 빼앗아가면서 까지 끼어들 필요가 있느냐.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곳곳에서 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전쟁 반대 여론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움직였다.

악화된 여론으로 다음 선거가 위험해지자 스스로 그들과 합세하여 백악관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군대가 참전하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경고와 실력행사를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전쟁이 생겼다.

바로 대리전쟁이었다.

돈만 주면 지옥이라도 쳐들어가는 용병들을 내세워 얼마든지 미국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용병들을 동원함으로 인해 첫째 미군의 인명피해가 없고 둘째로 전쟁이 가져오는 막대한 국방 예산이 절약된다는 것이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전쟁시장 60프로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보안업체 대표들이 만나 저녁을 먹고 있었다.

두 대표는 비슷한 시기에 군생활을 했고 서로 소속팀은 달랐지만 경쟁하듯 화려한 작전능력을 보여주었다.

전역 후에도 같은 시장, 동종업계의 라이벌로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다.

시작은 프린스가 한걸음 앞섰다.

그러나 맹렬한 속도로 쫓아왔고 이제 아카데미 턱밑까지 추격해 온 상태이다.

머잖아 아카데미를 추월하리라고 결심하고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는데 전혀 예상 못한 복병을 만난 펜스의 표정은 여전히 불편하다.

“헛헛!”

갑자기 프린스가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쩌다 우리가 공동의 적을 맞아 싸우게 됐단 말이오.”

기가 막히다는 듯 스테이크 조각 한 개를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앞으로 어떻게 할 셈이오?”

펜스 회장은 대답 대신 입안 가득 고기를 넣고 소리나게 씹었다.

쭉!

목이 막히는지 한쪽에 있는 와인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이번에도 직진이오?”

펜스에게는 돌아가는 것이 없다.

무모하리 만치 정면승부를 택하여 가끔은 입지 않아도 될 상처를 입는다.

그런 자신의 작전을 염려하는 주위 동료들에게 그는 웃으며 말한다.

‘상처 없는 전쟁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전쟁은 죽지만 않으면 된다.

군에서의 습성이 민간시장에서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아카데미는 어쩔 생각이오?”

프린스는 묵묵히 고기를 씹었다.

KAS에게 강력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의외로 타격을 가하지 못했고 오히려 역습을 당해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

이후 지금까지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방식은 다르지만 프린스 역시 빚지고 못사는 성미였다.

기어이 KAS에게 앙갚음을 할 것이다.

인명손실도 컸지만 아카데미의 주가가 폭락하며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가끔은 우회 해보는 것도 괜찮소. 직선도 멋있지만 곡선도 매우 아름답지요.”

프린스 말에 펜스 회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자신은 이미 곡선으로 길을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하지 않소.”

펜스는 남은 와인을 통째 비웠다.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됐다는 뜻인데.”

“핫핫핫!”

프린스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곡선 따위는 모른다.

난 오로지 돌격 앞으로만 할 것이라는 분명한 뜻이었다.

둘은 처음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는데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것이다.

자가용 비행기에 탑승하여 자리를 잡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와인 몇 잔에 프린스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는데 핸드폰을 받아 너털웃음을 지었다.

“잊어 먹은 것 있습니까?”

조금 전 헤어진 펜스 회장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시가를 놓고 가셨소.”

프린스는 멈칫 했다.

자신은 시가 애호가다.

펜스 회장도 시가를 좋아하지만 자신과는 맛과 향을 전혀 달리하다 보니 브랜드도 틀리다.

자신은 마카누도를 즐겨 피우지만 펜스회장은 코이바를 피운다.

시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최고의 기호품이며 유일한 오락이기도 했다.

누군가 시가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산다고 말했다.

그건 곧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기다려!”

프린스는 다시 일어나 비행기에서 내렸다.

자신의 시가를 받으러 가는 것이었다.

* * *

알 살만 왕세자의 비서 마무드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왕세자의 스케줄이 빡빡했고 서두른다고 했지만 벌써 9시가 넘어간다.

더욱이 오늘은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낳았던 아들 핫산의 생일이다.

이제 일곱 살 된 핫산은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마무드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선물은 이미 준비해 두었다.

늦을 것을 대비해 낮에 부하직원에게 부탁하여 핫산이 갖고 싶어하는 아이언맨 피규어를 구입해 놨다.

한정판이어서 상당한 고가였지만 하나 뿐인 자식이 좋아하는데 그까짓 돈이 대수인가.

“수고!”

야간 당직을 서는 직원에게 손을 들어 보인 뒤 방을 나왔다.

곧장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마무드가 차의 시동을 걸 때 전화가 걸려왔다.

액정에 ‘나디아’란 이름이 찍혔다.

마무드는 빙긋 웃었다.

보나마나 왜 아직 안오느냐, 핫산이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는 아내의 전화일 것이다.

“지금 가요. 나디아.”

“여보 빨리 오세요. 이 일을 어떡해?”

전화기에서 나디아의 울음이 터져나왔다.

“나디아!”

“핫산이 병원에 왔어요. 오 알라신이여. 자동차에...”

“어디 병원이오?”

“알겠소. 지금 바로 가겠소.”

마무드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9시가 넘은 병원은 비교적 한산했다.

너무 급한 나머지 주차장이 아닌 병원 로비에 세우고 곧장 뛰어 들어갔다.

“나디아. 나디아.”

응급실로 뛰어든 마무드는 아내 나디아의 이름을 불렀다.

“여보!”

검정색 차도르 차림의 여성이 뛰어왔다.

“어어엉!”

아내 나디아는 마무드 품에 안겨 그냥 울음을 터뜨렸다.

“여보 진정해요. 핫산은 어딨소?”

“아빠, 나 여깄어. 아이언맨 사왔어?”

안쪽으로부터 어린아이 목소리가 들려나왔다.

마무드는 재빨리 커텐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아들 핫산이 링겔을 맞으며 누워 있었다.

“핫산!”

“아빠 피규어.”

“아빠 차에 있단다. 몸은 어떠니? 다친 곳이 어디야?”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여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지 않았소?”

“알라께서 우리 핫산을 지켜 주셨어요.”

“말해봐요. 어떻게 된거요?”

나디아는 길게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케이크를 사기 위해 둘은 근처 가게로 향했다.

핫산은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이 기쁜 듯 엄마 손을 잡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런데 위험은 갑자기 찾아왔다.

핫산이 차량 신호를 보고 성급하게 횡단 보도로 들어선 것이다.

차량신호가 노랑불로 바뀐 뒤 몇 초 지나고 나서 파란불로 바뀌는데 그걸 못 참은 것이다.

때마침 승용차 한 대가 노랑신호에 치고 들어와 버린 것이다.

차량은 신호가 바뀌기 전에 교차로를 지나가려 했기 때문에 굉장히 속도가 빨랐다.

핫산이 피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이른바 제대로 걸려 든 것이다.

“아아아아!”

나디아는 그저 비명을 지르는 것 말고는 해볼 방법이 없었다.

끼이익!

자동차 브레이크소리가 귓청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나디아는 그만 기절해 버렸다.

그런데 누군가 자신을 흔들었다.

눈을 떠보자 놀랍게도 핫산이었다.

나디아는 여기가 저승인가 싶어 주위를 살폈는데 낯익은 집앞 도로였다.

“핫산!”

벌떡 일어난 나디아 앞에 한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흰색의 칸두라가 많이 더럽혀진 사내였다.

“이 아저씨가 날 구해줬어 엄마.”

사내가 핫산을 끌어안고 도로를 뒹굴면서 칸두라가 더럽혀진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요?”

마무드는 당장이라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내 아들을 살려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다.

“어딨소?”

“약간 타박상을 입긴 했지만 괜찮다면서 그냥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지.”

“한사코 싫다는 사람에게 사정사정하여 전화번호를 받아왔어요. 너무 고마워요. 그 분 아니었으면 우리 핫산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나디아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핫산!”

나디아는 다시 침대에 누워 있는 핫산을 끌어안고 감격에 흐느꼈다.

병원 밖으로 나온 마무드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디아로부터 전달 받은 전화번호를 떨리는 손으로 눌렀다.

신호가 두 번 갔고 상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십니까?”

“앗쌀라 말라이쿰(평화가 그대에게)”

“앗쌀라 말라이쿰!”

사내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삐올로라고 합니다. 누구시죠?”

“오오! 감사합니다. 삐올로, 난 핫산의 아버지 마무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핫산은 좀 어떻습니까?”

“삐올로 덕분에 매우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나디아에게 들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의 도움이 아닙니다. 알라께서 도우신거죠.”

마무드의 눈이 커졌다.

겸손하다.

나디아의 말을 빌리면 굉장히 위험했고 불가사의 할 만큼 놀라운 기적이라고 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던져 타인의 생명을 구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항상 몸과 의식 속에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찰라와 같은 순간 그런 행동이 나올 수 없다.

“좀 뵙고 싶습니다. 지금 시간이 어려우시다면 내일 언제라도 좋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알라께서는 이웃의 도움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천 배 만 배를 줘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했지요.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

“마무드의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알라께서는 남의 돕고 떠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삐올로.”

“마음만 담겠습니다. 아무튼 핫산이 건강하다니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시간이 나면 뵙죠. 그럼.”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하려다 멈칫했다.

반드시 만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지금은 늦은 시간이고 다시 통화를 한다는 건 결례일 듯 싶다.

“뭐라고 해요?”

“신사요. 정말 멋진 형제로군요.”

마무드는 감격한 듯 목소리가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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