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일전불사(1)
권총수가 새롭게 택한 곳은 354번가 일대였다.
리야드 354번가는 도시 서북쪽 외곽으로 사막과 인접해 있으며 시아파들이 몰려 사는 빈민촌이었다.
사우디에서 시아파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데,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 아래서 그들의 권리란 극히 제한적이다.
정치 경제적으로 철저히 밀려난 그들은 햇볕과 모래 바람만 막을 정도의 천장 낮은(모래바람 대비)집에서 산다.
그러다 보니 5층 건물은 354번가 일대에서는 고층건물에 속했다.
물론 더 높은 건물이 있긴 하지만 거의 주위가 내려다보인다.
건물 동쪽으로는 100여 킬로 떨어진 후푸프로 가는 국도가 지나가고, 그 너머로 사막이 이어진다.
처음 에반은 지리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했다.
아카데미의 공격이 언제 있을지 모를 KAS 입장에서는 도심이 좋다.
많은 민간인들이 있는 도시를 함부로 방아쇠를 당기며 밀고 들어온다는 건 아무리 CIA와 알살만 왕세자의 비호를 받고 있는 아카데미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허허벌판 같은 도시외곽에, 그것도 사우디 정부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는 시아파들이 사는 근처에 터를 잡는다는 건 적으로 하여금 신나게 공격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줄 뿐이었다.
그런데 권총수의 입에서는 놀라운 얘기가 흘러나왔다.
“시아파 사람들이 누구를 가장 싫어하는지 아십니까? 수니파를 중심으로 하는 현 사우디 왕족들이기도 하지만, 그들보다 미국을 더 증오합니다. 미국이 막대한 군수물자를 팔아먹고 그 댓가로 사우디 왕가의 시아파 탄압을 묵인해주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오래된 신문 한 장을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시아파도들에게 목이 잘려 죽었다는 아카데미 용병에 대한 기사가 쓰여 있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에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처 시아파 사람들이 전부 KAS편이 되어 주는 것이다.
KAS는 영국 보안업체이지만 아카데미는 미국 회사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1차 경비병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곳곳에 널린 쓰레기 더미, 반쯤 무너진 집과 오래전 비밀경찰에 의해 불탄 마을버스, 울퉁불퉁 솟아난 사막 암석 주위로 KAS 용병들은 몸을 숨겼다.
“보고.”
권총수는 5층 창문 커텐 사이로 어둠을 바라보며 물었다.
“매복1 이상무!”
“매복2 이상무!”
“매복3 이상무!”
권총수는 저격총에 부착된 AN/PAS-13D에 눈을 붙였다.
이번에 새로 나온 고성능 열영상 조준경으로 대략 1.5킬로까지 탐지가 가능하고 저격거리는 800미터에 이른다.
그러나 그건 일반 저격수들에 대한 것일 뿐 내공을 지닌 권총수는 더 먼 거리까지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도대체 몇 명이야?”
일단의 사내들이 후푸프로 가는 국도를 넘고 있었다.
국도이지만 직선도로이기 때문에 차량들의 속도가 높아 사망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이 지역 암석사막에는 다양한 수목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문제는 척박한 토양과 가혹한 기후로 인해 정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분재를 해놓은 듯 기묘한 형태와 모양을 이루는데 돈 많은 사람들이 관상용으로 무척 선호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원예 기술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더욱 높다.
가난한 시아파 사람들에게는 암석 사막에서 자라는 이런 나무들이 주 수입원이다.
날이 새면 아이든 어른이든 바구니 하나씩을 옆구리에 차고 도로를 건너 사막으로 떠난다.
무단 횡단.
그렇다고 횡단보도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지름길, 가급적 쉽게 다니려는 본능을 막지는 못하고 그래서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밤이어서 차량 통행도 뜸한 도로를 사내들은 어렵지 않게 건너오고 있었다.
“32명!”
권총수는 무전기에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매복 1과 2쪽으로 다가온다. 매복 3쪽 팀은 1과 2를 측면에서 지원할 것.”
무전을 보낸 권총수는 조준경에 눈을 대고 다가오는 사내들을 살폈다.
11시 방향과 2시 방향이다.
권총수는 우두머리를 찾기 위해 총구를 움직이며 살폈다.
팟!
2시 방향에서 접근해오는 사내들 중 콧수염 수북한 대머리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휴대용 무전기로 계속 뭔가 지시를 내리는 것을 보면 우두머리임이 분명했다.
슥!
권총수는 헤드셋을 당겼다.
“나카야마, 다인코프 이곳 지사장 이름이 뭐라고 했지?”
“브리머. 왜 그러는데?”
“생김새는?”
“콧수염을 길렀고 대머리, 나도 사진으로만 봤기 때문에 그 이상은 몰라.”
“오케이!”
권총수는 조준경을 통해 보이는 브리머에 가늠자를 맞췄다.
“적 발견!”
“매복 2, 적발견!”
마침내 팀원들 야시경에 다가오는 다인코프 용병들 모습이 잡히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대기!”
권총수는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매복1 적 사정권 들어옴.”
“계속 대기!”
야간전투는 주간과 달리 최대한 적을 바짝 끌어들인 후 한 번에 강한 타격을 입혀야 한다.
아무리 첨단장비로 무장해도 야간은 양쪽모두 피해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야간전쟁의 승패는 장비보다는 전술과 작전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명령을 달라”
“대기. 대기.”
권총수는 조준경을 통해 다가오는 적들을 보며 팀원들을 진정시켰다.
자칫 긴장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겨 버릴 수도 있다.
머리 서쪽 하늘에 작은 달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작아 주변 밝기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했고, 새벽이면 가끔 불어오는 육풍이 불기 시작했다.
육풍은 육지에서 바다로 불어가는 바람인데 가끔 기온 차이로 인해 사막에서 더운 도시로 불어온다.
권총수는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었다.
조준경속으로 브리머 얼굴이 정확하게 들어왔다.
타앙!
총성이 울렸다.
TRG-M10이 강하게 반동을 했고 그와 동시에 브리머의 머리가 날아갔다.
드르르륵!
동시에 곳곳에 매복해 있던 용병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은밀하게 정찰을 했다.
경비 초소는 건물 정문에 세워진 일반 경비실 말고는 없다는 것이 다인코프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지사건물에서 100여 미터 정도 앞으로 나와서 일거에 쏟아 붓는 예상 못한 기습은 도무지 피할 수가 없었다.
누구도 이렇게 멀리 나와 매복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쿵!
퍼퍽!
총 한 방 쏴보지 못하고 다인코프 용병들은 나뒹굴었다.
“후퇴!”
누군가 외쳤다.
지금은 도주 밖에 없다.
적의 위치는 모르고 자신들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으니 무조건 달아나야 한다.
엄폐물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누구도 안전한 장소에 몸을 숨기지 못했고, 5층에서 내려다보는 권총수의 M10이 용서 하지 않았다.
탕!
타탕!
어두운데도 권총수의 속사는 경이로웠다.
거기에 매복한 KAS 용병들이 쫓아오며 갈겼다.
드르르륵!
드륵!
일방적인 사냥이다.
총격전은 채 오분도 넘기지 못했다.
뚝!
어둠이 다시 고요해졌다.
“확인하고 보고!”
권총수는 혹시 생존자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팀원들 모습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죽은 시신들을 살폈다.
팀원들은 시신을 들척이며 생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조사했다.
“매복1 이상무!”
“매복2 이상무!”
그제야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익!
단번에 몸을 날려 건물 아래 땅으로 내려섰다.
이어 불영보를 펼쳐 팀원들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현장에 도착한 권총수는 주위를 살폈다.
거의 사살된 것 같은데도 일부 팀원들은 만약을 대비해 사주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청소 깨끗하게 된 것 같은데.”
오민철이 HK416을 오른손에 들고서 다가왔다.
권총수는 머리가 깨져 죽은 시신으로 다가갔다.
“얘가 브리머란 친구야.”
권총수는 쭈그리고 앉아 브리머 주머니에서 지갑을 찾아 뒤졌다.
다인코프 사우디 지사장임을 알려주는 신분증이 나왔다.
“그런데 왜 경찰이 오지 않지?”
전쟁이 터진 듯 요란한 총소리였는데도 사우디 경찰이 출동하는 싸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권총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필시 사전 양해가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상대가 다른 곳도 아닌 파흐드 왕세자를 경호하는 KAS라는 말에 더욱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으로 제발 싹 쓸어버리라고 응원을 보냈을 것이다.
“캡틴, 시신을 어떻게 하지?”
“전쟁할 때 적의 시신을 챙기나?”
입을 열어 말했던 피아퐁이 움찔했다.
권총수의 목소리에 한기가 들어 있었다.
시신을 방치함으로 적들에게 경고를 보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 분명했다.
KAS를 건들면 누구든지 이렇게 된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이다.
다인코프 회장 ‘펜스’의 가느다란 입술에 두툼한 시가가 물려 있었다.
숱한 전쟁을 경험했다.
군에서는 연전연승이었다.
투입된 작전에서 단 한 번도 실패한 경험이 없었다.
네이비 씰 8팀은 아프리카와 지중해서의 작전을 관할하는데 특히 리비아와 남 수단, 소말리아등 반미를 외치는 국가에서의 대테러작전은 백프로 성공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안 되면 되게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정글도’였다
정글도는 길이 없는 밀림에서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가 지나가면 길이 생겼고 수많은 수목들이 잘라지고 꺾였다.
전역 후 다인코프를 불과 2년 만에 당시 블랙워터(현 아카데미)와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규모로 키워냈다.
다인코프는 승승장구, 파죽지세였다.
“전원 사망했다고?”
“예!”
관리이사 샌더스가 목소리가 작아졌다.
펜스는 군에서 모셨던 직속상관이기도 했는데 성격이 몹시 난폭하고 거칠다.
워낙 폭력적이어서 몇 번 군 지휘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는데, 작전에 임하면 결코 살려두지 않는다.
포로로 잡을 수도 있지만 모른 체하며 방아쇠를 당겨 버린다.
퍽!
펜스는 물고 있는 시가를 끝내 씹고 말았다.
쓰디 쓴 담배 잎을 잘근잘근 씹었다.
한 개비에 10달러가 넘는 고급 시가를 아작 내버렸다.
처음 지사장 브리머로부터 파흐드 왕세자의 계약 파기에 대한 보고를 받은 펜스는 망설이지 않고 공격명령을 내렸다.
전쟁터는 민간 기업의 시장이 아니다.
좋은 제품 뛰어난 영업력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 아니다.
패하면 죽어야 한다.
모든 용병회사는 시장을 항상 야전으로 인식하고 판단하며 싸움에 임한다.
엄청난 사우디 시장에서 물러난다는 건 항복이나 마찬가지였다.
"죽여!"
시뻘겋게 상기된 표정으로 소리쳤다.
SAS는 그렇다 쳐도, 부대 같지도 않는 외인부대 출신들에게 밀릴 수는 없었다.
파흐드 왕세자가 아무리 등을 돌렸다고 해도 어차피 KAS를 제거하면 그 자리는 다인코프가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보고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몰살을 당한 것도 분노할 일인데 KAS는 시신을 방치했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떠돌이 들개와 페넥 여우와 코요테의 먹이가 됐다.
“권총수?”
“예, 한국인입니다.”
지이잉!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몸을 떨었다.
잠시 진동하는 핸드폰을 바라보던 펜스 회장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가깝고도 멀고, 술잔을 나눠도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