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비밀경찰(1)
브리머의 욕설에 세 사내는 긴장했다.
사무실 공기가 에어컨 바람보다 더 차가워 진다.
“사물란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사물란은 파흐드 왕세자의 수행비서이고 그의 말이 곧 파흐드 왕세자의 뜻이라고 보면 된다.
세 사람은 그제서야 브리머가 그 곳을 다녀왔다는 것을 알았다.
“사정해 봐도 씨알도 안 먹혀.”
파흐드 왕세자는 아예 얼굴도 보지 못했고 사물란에게 한 번 더 고려를 부탁했으나 냉정하게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돈은 어떻게 되는 거죠?”
앤서니가 물었다.
“계약서대로 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손해는 없는데 문제는 파흐드 왕세자 눈 밖에 나면 사우디에서 발붙이기가 쉽지 않다는 거야. 그렇다고 알살만 왕세자에게로 손을 내밀 수는 없잖아. 어차피 그쪽에서 우린 패죽여야 할 놈들인데.”
최대 라이벌인 아카데미는 쭉쭉 빵빵이다.
초반 KAS의 군기를 잡아 보겠다고 시비를 걸었다가 된통 당했지만 시장에서의 위력은 여전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카데미가 사우디에서만 올리는 일 년 매출이 30억 달러는 될 것이라고 했다.
사우디군 훈련까지 맡고 있으니 그야말로 돈을 갈퀴로 긁고 있었다.
“이대로 갑니까?”
앤서니 눈이 가늘어졌다.
사우디 시장은 다인코프에게도 절대적이다.
전체 매출의 40프로 정도가 사우디에서 나오는데 하루아침에 천문학적인 달러가 사라져 버리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또 있었는데 자신들의 신분이었다.
델타포스 출신이니 어느 회사를 찾아가도 상당한 대접은 받겠지만 사우디에서의 패배는 이력서에 오랫동안 모욕으로 남을 것이다.
“용병시장에 국제법이 어디 있습니까?”
앤서니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마구잡잡이로 죽이고 점령하는 전쟁에도 질서와 규칙이 있다.
민간인을 향한 발포는 중범죄이고, 총구를 겨눈 적일지라도 포로가 되면 그때부터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민간시장에서는 국제법이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내가 길잡이 하죠.”
앤서니가 어금니를 물었다.
“우리가 못할게 뭐가 있습니까? 이대로 밥숟가락 빼앗길 수는 없잖습니까?”
브리머는 가만 눈을 감았다.
일반 직업처럼 이 바닥에서 10년 20년 오랫동안 활동할 수는 없다.
총알이 수시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짧게 근무하고 굵게 한탕해 떠난다.
“좋아!”
브리머가 눈을 빛냈다.
“여기서 밀리면 갈 곳도 없다‘
브리머가 주먹을 쥐었다.
아침 해가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사막의 일출은 웅장하고 도도하기 보다는 뜨겁다.
뜨겁고, 또 뜨거울 뿐이다.
금방이라도 내 몸을 태울 것 같은 시뻘건 불덩이가 스윽 올라오는 것이다.
일출의 열기에 권총수의 얼굴은 시뻘겋게 타올랐는데 마치 불에 달궈진 쇳덩이 같았다.
스으으!
결가부좌한 몸에서 푸른색 기운이 뻗어 나오더니 조금씩 짙어졌다.
몸에서 나온 푸른 기운은 바닷물처럼 출렁 거렸는데 조금씩 머리위로 몰렸다.
오기조원의 경지에서도 머리 위에서 열기는 피어오른다.
소림의 내공은 철저한 양(陽)에 바탕한다.
천하 모든 내공심법중 극양의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어느 정도부터는 몸에서 열기가 발산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몸에서 나오는 것과 그 열기가 머리 위로 모이는 건 또 다르다.
합기양두(合氣陽頭), 내공은 머리로 모이면서 경지를 표시하는 것인데 푸른색 불꽃처럼 이글 거리고 있었다.
화롯불이 맑은 청색이 된다는 노화순청(爐火純靑)이다.
화로의 불은 푸른색일수록 뜨겁다.
머리위에 모이는 푸른 열기가 투명에 가까워 질수록 노화순청은 익어가는 것이다.
브라질과 달리 이곳 사막의 나라 사우디가 좋은 점은 내공증진이었다.
태양이 뜨겁게 이글거릴수록 극양의 심법을 수련하는 무사에게는 득이다.
그래서 극양심법을 토대로 외문무공을 쌓는 무사들은 일부러 뜨거운 곳을 찾아다닌다.
심지어 용암속에 뛰어들기도 한다.
부우우우!
결가부좌한 권총수의 몸이 떠올랐다.
내공이 80년 경지에 진입하면 운기조식이 마무리되기 직전 강력한 기파에 의해 몸이 잠시 떠오른다.
내공이 70년을 벗어난 건 분명해 보였다.
부운등공(浮雲登空)이라고도 부르고 부운기승(浮雲氣昇)이라고도 한다.
‘노화순청에 진입한 건 분명하군’
권총수의 몸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았고 가만 눈을 떴다.
새로 옮긴 사무실 옥상이다.
태양은 본격적으로 열기를 내 뿜으며 대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스으으!
앉은 자세 그대로 천천히 날아갔다.
이어 평소와 달리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천천히 가랑잎처럼 지면으로 내려섰는데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헉!”
포탈라궁에서 비전절기로 내려온다는 뇌권을 수련중이던 비렌드라가 하늘에서 사람이 내려오자 화들짝 놀란 것이다
강호무공에 대해 권총수를 제외하고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가 비렌드라였다.
어려서부터 포탈라궁에 보내졌고 거기서 만난 고승들에게 뇌권을 배웠다.
물론 뇌권의 위력을 뒷받침할 범천대력심법(凡天大力心法)을 배웠다.
사실 포탈라궁이나 소림사 모두 중원과 서역을 대표하는 불문이다 보니 무공 또한 통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비렌드라는 권총수의 무공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속마음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포탈라궁의 뒤를 잇게 될 적전제자도 아니지만 그곳이 정신적 고향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즉 소림의 무공을 수련하는 권총수에게 은근히 경쟁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순간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권총수는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무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고의 조건인 근골(筋骨)이 그야말로 꿈의 몸이라고 불리는 십전지체(十全之體)였다.
히죽!
권총수가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도대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더니 캡틴을 두고 한 말이구나.”
비렌드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내공인가 그게 일갑자는 넘을 것 같고?”
수위를 묻는 것이다.
“글쎄, 팔십년.”
“와우!”
깜짝 놀라는 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오민철이 하품을 하며 건물을 나오고 있었는데 이제 막 잠자리에서 일어난 모양이었다.
“80년?! 머잖아 중동의 하늘에 UFO가 나타나겠구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술을 펼칠 수도 있겠다는 뜻인데 비아냥이 섞여있다.
“혀엉!”
권총수가 목소리를 높이자 오민철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난 포기했어. 포기.”
“수련을 않겠다고?”
“난 못해. 별로 나아지는 것도 없고.”
휘익!
재빨리 권총을 뽑아 쏘는 자세를 잡으며 떠들었다.
“무공 그 따위 필요 없어, 빠바방! 으헉! 끅! 방아쇠만 졸라 잘 당기면 돼.”
비렌드라가 킥킥 거리며 웃었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보더니 눈이 커졌다.
“지사장님!”
“예, 알겠습니다. 옙!”
핸드폰을 내린 비렌드라가 말했다.
“즉시 무장하고 병원으로 오래. 지사장님이야.”
“왕세자께서는 내일 퇴원하잖아.”
“하루 앞당길 모양인가봐.”
권총수는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두 번 죽을 고비를 넘긴 파흐드 왕세자 입장에서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는 내일 쯤 퇴원한다고 보도가 나왔는데 하루 앞당기는 걸 보니 예전에 비해 확실히 달라졌다
“10분내로 집합.”
권총수는 5층 숙소를 향해 뛰어 올라갔다.
그걸 바라보는 비렌드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공을 펼칠 수도 있다.
단번에 날아가 버린 다고해서 누가 불평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무공이 자칫 시위나 자랑으로 보여 팀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편함이 만들어질까 봐 자제하고 있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을 텐데 저 겸손과 배려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더구나 나이까지 제일 어리다.
두 대의 랜드로버가 병원에 도착했다.
권총수는 내리면서 손목시계를 보았는데 아침 8시10분이다.
병원은 아직 하루 진료를 시작할 시간이 아니지만 중앙 현관 쪽은 어느새 환자들로 가득 붐볐다.
권총수의 눈이 환자로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을 스윽 훑었다.
그의 시선은 조금이라도 살기를 지니고 있다면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고 찾아낸다.
“왔군.”
경호실장 칸나리가 통제되고 있는 좌측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다른 경호원들이 권총수를 향해 목례를 했다.
권총수는 그들에게 일일이 손을 들어 아는체 해주고 경호실장 칸나리와 나란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파흐드 왕세자는 이미 환자복을 벗고 넥타이까지 맨 정장차림으로 있었다.
“왕세자님!”
“어서오게!”
“좋아 보이십니다.”
“고맙네.”
그때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경호실장 칸나리가 문을 열어 주었는데 흰색의 칸두라를 걸친 검은 콧수염의 사내가 들어섰다.
멈칫!
파흐드 왕세자가 움찔 놀라는 걸 보며 권총수는 본능적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묘하게도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의 앞을 가로막고 서는 꼴이 되었다.
콧수염의 사내는 움찔했다.
권총수의 동작이 너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자신을 의도적으로 막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국장이 어쩐 일인가?”
파흐드 왕세자는 어느 새 안정을 되찾은 목소리였다.
그제서야 권총수는 슬그머니 한 걸음 옆으로 물어났다.
입구에 서 있는 경호실장 칸나리는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사내가 나타났다면 즉시 아래 경호팀으로부터 연락이 와야 하는데 어떤 무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덜컹!
그때 거칠게 문이 열리더니 정장차림의 경호원 둘이 들이닥쳤다.
그러다 안의 상황을 확인하며 주춤 칸나리 눈치를 본다.
칸나리가 두 사람을 데리고 복도로 나갔다.
“어떻게 된 건가?”
“무선과 와이파이 모두 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먹통이 된 휴대용 무전기를 보였다.
“MK(Middle Kill)입니다.”
이동용 전파교란기, 이름하여 미들 킬이다.
테블릿 PC 정도의 크기인 기계로 록히드마틴에서 개발했다.
정찰기나 미사일을 통해 적의 전파를 방해하고 무력화 하여 방공망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서도 MK는 특정지역만의 전파를 철저히 흔들어 버리는 기능도 있었다.
삽으로 흙을 떠내듯 그 지역을 순식간에 백지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전파 방해를 역으로 받아 치는 기계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경호하는 입장에서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사내는 ‘마바히스’국장 ‘샤일란’이다.
마바히스는 사우디 비밀경찰이다.
국내 정보를 관할하면서 현 국왕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개인을 집중 감시하고 때로는 납치 제거하기도 한다.
결국 샤일란이 병원을 찾으면서 수행한 부하들이 파흐드 왕세자 경호원들의 무전 주파수를 교란했다는 얘기다.
“음!”
경호실장 칸나리는 확실히 당황했다.
원래 퇴원일은 내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나가려는 걸 알고 찾아왔을까.
‘도청’
감청하려고 마음먹는다면 막을 수 없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두 사람은 원탁을 놓고 마주 앉았다.
샤일란은 알 살만 왕세자의 안부를 갖고 왔다.
“왕세자께서는 파흐드 왕세자님의 퇴원을 축하드리며 알라께서 영원무궁토록 함께 하길 빈다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파흐드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직접 국장을 보내 날 위로해주다니 고맙고 행복한 마음일세.”
“몸은 좀 어떠십니까?”
이미 담장 주치의로부터 모든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묻는 건 자신을 떠보려는 것이다.
“수술도 잘됐다고 하고, 골절된 발목도 완치가 되었다더군. 나 또한 움직이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네.”
“정말 다행입니다.”
“국왕폐하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전해주게.”
파흐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으니 이쯤에서 돌아가라는 얘기다.
“바쁜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샤일란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문 쪽으로 걸어가던 샤일란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권총수를 흘깃 바라보았다.
“KAS사람인가?”
권총수는 돌아섰다.
“자네에 대한 얘긴 들었네. 외인부대에서 아주 날아다녔다더군?”
“과찬이십니다.”
“KAS에 입사해서도 지나간 곳 마다 깨끗하게 청소를 해버리더군?”
“감사합니다!”
샤일란의 이마가 슬쩍 꿈틀거렸다.
자신은 비아냥을 목적으로 한 말인데 감사하다고 나온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네. 여기는 베네수엘라가 아니라는 거지.”
베네수엘라처럼 권력을 바꿀 생각은 꿈도 꾸지말란 뜻이다.
“또 보지.”
샤일란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나갔다.
탁!
문이 닫혔다.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던 권총수가 고개를 돌렸다.
파흐드 왕세자의 표정이 굳어있다.
샤일란은 비밀경찰 마비히스의 책임자이고 알 살만 왕세자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온 이유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