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39화 (139/651)

제139화: 인질구출(4)

권총수는 계속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소. 저 청년을 넘겨받긴 했는데 확실한 명분이 없는 거요. 무작정 아브라힘과 네쿠남 두 사람과 교환하자고 하면 그쪽에서 사우디 정부와 짜고 벌이는 일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겠지요. 자칫 국제사회에 사우디 정부의 추악한 민낯이 공개될 위험이 있었소.”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느닷없이 텔레반측에서 전화를 걸어와 아브라힘, 네쿠남과 피아퐁의 맞교환을 제의하면 그거야 말로 완전 코미디가 된다.

“시간을 오래 끈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군. 두 사람을 반드시 넘겨받긴 해야겠는데 마땅한 이유가 만들어지지 않아서.”

자한바크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고민하더군요. 어떻게 교환 제의를 하면 KAS쪽에서 눈치를 채지 못하고 거래를 성사 시킬 수 있는지.”

권총수는 가슴을 폈다.

“내가 봐서는 우리를 속이며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은 절대 없소. 생각해보시오 텔레반과는 단 한 푼의 원한도 없는데 느닷없이 우리 식구와 알 살만의 부하들을 맞바꾸자고 하면 당연히 뒤에 알살만 왕세자측이 있다는 걸 알지. 그렇지 않겠소?”

여기저기서 팀원들이 소리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

“돌대가리들.”

오민철이 야릇한 얼굴을 했다.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교환하자고 하면 파흐드 왕세자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꼴이고, 흐흐, 텔레반을 내세운 방법이 그나마 괜찮긴한데 인질 교환 명분이 없고.”

탁!

오민철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총을 태우는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었다.

잠시 불길을 바라보던 권총수가 이번에는 불안한 표정으로 있는 마을 사람들을 살핀다.

하나 같이 굳어 있다.

사막 깊은 곳에서 민간인 40여명 죽는다고 해도 티도 나지 않는다.

출동한 팀원들만 입을 다물어 버리면 영원이 묻히는 것이다.

‘피아퐁을 구출했으니’

이겼으니 승자답게 끝내는 것이 좋다.

그건 용서다.

그리고 이해다.

이들의 처지와 입장을 배려하는 것만이 승자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아량이었다.

피아퐁의 귀환에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에반이었다.

자칫 피아퐁이 돌아오지 못했다면 KAS는 상당한 위기를 겪어야 했다.

비록 국가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법 적용을 받진 않으나 자사의 용병이 테러단체에 잡혀갔다는 것도 치욕이지만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면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을 것이다.

특히 상장 된지 며칠 되지 않는 KAS의 주가는 휴지조각이 될 만큼 폭락할 것이고 상당기간 회사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 모든 책임은 에반에게 돌아가고 불명예스럽게 퇴출됐을 것이다.

스톤스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격려한 것만 봐도 그 역시 얼마만큼 이번 작전에 숨을 죽였는지 알 수 있었다.

폭등이다.

피아퐁 귀환이 보도되면서 KAS주가는 연일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알자지라 방송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우디 차기 국왕승계자로 유력하던 알살만 왕세자가 ‘국가수호총맹’의 조사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국가수호총맹은 사우디 국왕의 직속기관으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조사하고 필요하면 처벌권까지 갖고 있는 무소불위의 기관이다.

그런데 그동안 국가수호총맹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 같이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정치인이나 왕족들이었다.

국가수호총맹이 정치적 경쟁자인 왕족들을 탄압하고 감시하는 수사기관이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잦아들지 않을 건 불문가지였다.

국가수호총맹의 조사를 받은 알 살만 왕세자의 혐의가 기가 막혔다.

국영석유기업 아람코의 공금을 유용했다는 것이었다.

차기 국왕서열 1위인 왕세자가 국영기업의 공금을 유용했다는 말에 해외 언론에서는 웃기는 조사라며 비아냥 거렸다.

유용한 공금의 액수도 보도되지 않았고, 공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언론의 카메라 앞에 나타난 알 살만 왕세자 알 살만은 분노한 표정으로 외쳤다.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반대세력의 치졸한 음모이자 사기극이다. 난 매우 깨끗하다"

파흐드 왕세자를 살해하려 했다는 말은 뉴스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파흐드 왕세자 저격 미수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했다.

파흐드 왕세자는 병원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그날 입은 부상은 아주 깊었다.

권총수와 오민철의 신속한 응급처치와 후송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는데 조금만 늦었다면 불행한 일을 당했을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파흐드 왕세자는 입구에 서 있는 권총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굳이 고맙다, 은혜 잊지 않겠다 따위의 말은 권총수가 세운 공을 훼손하고 폄훼 할 것 같았다.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전달 할 수 있었다.

“앉아요.”

비서 사물란이 한쪽에 있는 의자를 조금 빼내주었다.

권총수는 의자에 앉았고 파흐드 왕세자는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워낙 일이 바쁘게 돌아가는 엄중한 시국이어서 이제 찾아뵙습니다.”

“아니오. 신의 은총이 총수에게 항상 임하길 기도하겠소.”

“감사합니다.”

“다친데는 없소?”

“전 항상 괜찮습니다. 차안에서 조금만 늦게 빠져 나왔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들었습니다.”

파흐드 왕세자를 구출하고 5분도 안되어 차량이 폭발했다.

파흐드 왕세자는 빙긋 웃어 넘겼다.

“뉴스를 보고 실망하셨을 것입니다.”

파흐드 왕세자는 고개를 저었다.

“한두 번 겪고 보는 일도 아닌데요 뭐.”

워낙 알 살만쪽의 힘이 강하다 보니 어지간해서는 그에 대한 비리나 정치적 살인사건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희망은 있소. 한국에 그런 속담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얘기 말이오. 세우습의(細雨濕衣)라 하던가요. 핫핫핫!”

마치 공자 앞에 문자를 쓴 것 같다는 듯 파흐드 왕세자는 얼굴을 붉혔다.

“며칠만 기다리면 바깥에서 쓸만한 소식 하나 들어 올 것이오.”

“바깥?”

권총수가 물었다.

“미국 NBC알죠. 그곳에서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소. 난 성실하게 임할 것이오.”

“왕세자님.”

“말 하세요.”

“조금 전 세우습의(細雨濕衣), 가랑비도 맞다보면 나중 옷이 젖는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워낙 알 살만 왕세자의 세력이 굳건하여 웬만한 사건으로는 그의 지위를 흔들 수 없지만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되다 보면 국왕 폐하께서도 마음이 바뀔 것 아니냐는 말씀 이시겠죠?”

“그렇소.”

“허면 제가 한마디 더하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설명 좀 해줄 수 있소?”

“일을 서두르다 보면 처음 의도했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서두르다 잘되어가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파흐드의 눈이 빛난다.

“이런 형태의 전쟁은 단기 승부가 아닙니다. 새로운 사우디를 열어야 하는 중대한 뜻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빨리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지요. 죄송하지만 평소처럼 아무일 없었던 듯 행동해 주십시오. 각료들이나 정치인 모두 설혹 왕세자님과 반대쪽 인물들일 지라도 허심탄회하게 만나고 얘기를 나누십시오.”

“듣고 보니.”

“그렇다고 우리의 전쟁이 10년을 가겠습니까 20년을 가겠습니까. 길어봤자 5년, 어쩌면 그 이전에 마무리 될 것입니다.”

“천하를 쥐는데 어찌 5년 따위를 참지 못하겠소. 총수의 말이 흐트러짐 없이 정확합니다.”

“알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하고 병실을 나갔다.

파흐드 왕세자는 한동안 꼼짝을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피곤 하실텐데 그만 침대에 누우시죠.”

사물란이 걱정스런 표정을 했다.

다친 곳의 상처는 나았으나 체력적으로는 아직 많이 모자란다.

“아무래도 알라께서 날 향해 미소를 짓는 듯 싶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저런 영민한 친구를 내 곁에 보내 주었지. 총수는 용병이 아니라 세상의 판도를 바꿀만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책사라고 해야 옳네. 자네는 어찌 생각 하는가?”

“저 또한 처음 보는 날부터 범상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한다는 건 놀라운 강점이죠.”

“아름다운 사우디 왕국은 아직까지 이른바 적자세습으로 이어져 왔네. 능력이 없어도 적자라는 이유로 차기 국왕에 올랐어. 하지만 이제는 그런 틀을 벗어나야 해. 민주주의 지수가 조사한 161개국중 159위라네. 이게 말이 되는가?”

사물란은 무거운 표정을 했다.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네. 지금 추세라면 머잖아 곧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절대 불가능하네.”

“어떤 이유로?”

“인간의 완벽성은 자유가 주어질 때 만들어지지. 정치적 사상적으로 통제하고 국가가 국민의 생활에 개입하면 인간의 능력은 걷잡을 수 없이 도태되지. 한때 중국 영화가 헐리우드를 위협할 때가 있었네. 그런데 중국이 왜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진 줄 아나. 사상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야.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유가 없어지면 인간의 두뇌는 절대 발전하지 못해. 그런 시스템 속에서는 무한한 창작과 예술이 나올 수 없지.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을 보게. 알라로부터 석유라는 황금을 선물 받았지만 삶의 질은 어떤가? 21세기의 승부는 민주주의야. 들에 풀어 놓은 양들처럼 국민들을 내버려 두면 무한한 성장을 보여줄 거야.”

파흐드의 눈이 빛난다.

그것은 사막의 태양보다 더 뜨거웠다.

파흐드 왕세자 경호에서 다인코프가 손을 뗀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인코프가 처음 맺은 계약은 1년에 3백만 달러였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했고 10년이 지난 올해는 천만 달러까지 뛰어 올랐다.

그런데 며칠 전 파흐드 왕세자측에서 일방적으로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계약이 파기되어도 다인코프는 천만 달러 전액을 챙기는데 문제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의 충격이다.

워낙 보안기업들이 난립하다 보니 용병들의 몸값은 예전만 못했다.

그나마 빅3로 불리는 아카데미, 다인코프, 마르케스는 워낙 탄탄한 실력과 첨단장비로 무장하여 크게 몸 값 변동이 없지만 그 이외의 기업들은 다르다.

현재 중동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용병기업만 300개에 이른다.

그중 가장 급부상 하고 있는 곳이 KAS였다.

다인코프가 추락하면 그 자리를 KAS가 채울 것이라는게 시장의 시선이다.

다인코프 사우디지사에 냉기가 돌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파흐드 왕세자 경호대장을 맡았던 앤서니를 포함해 두 명의 흑인 사내가 앉아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고 벽에 걸린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 사무실을 울렸다.

덜컹!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콧수염이 수북한 대머리 사내가 들어섰다.

다인코프 사우디지사장 브리머였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꺼내더니 마개를 열고 500밀리리터 짜리 한 병을 단숨에 비웠다.

“커어!”

꽈지지직!

빈 물병을 우그러뜨리더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개자식!”

브리머의 입에서 침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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