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38화 (138/651)

제138화: 인질구출(3)

전세가 서서히 HK-416을 거머쥔 KAS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멈칫!

권총수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머지않은 곳에 혼다 SUV 한 대가 막 시동을 걸고 있었다.

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AK로 무장한 사내가 뒷문을 통해 차에 오르고 있었다.

권총수는 권총을 거두고 재빨리 어깨에 메고 있던 HK-416을 들어 조준했다.

부우웅!

차가 막 출발하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이 울리면서 혼다 SUV가 휘청했다.

타아앙!

한 발이 더 울리며 이번에는 왼쪽 뒷바퀴가 주저앉는다.

차가 내려앉아 달릴 수 없다.

좌우 뒷문이 열리고 맨 나중에 탔던 사내가 내리는 순간 HK-416이 불을 뿜었다.

탕!

기세좋게 나오던 사내가 총알 한 방에 무너지듯 주저앉는다.

SUV는 조용했다.

누구도 나오거나 반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차에 아무도 타지 않은 건 아닐 것이다.

나오자마자 동료가 당하자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고민 중일 것이다.

권총수의 예상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열린 뒷문으로 이번에는 두 사내가 내렸다.

‘피아퐁!’

40여 미터 거리지만 권총수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사내는 피아퐁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있었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AK를 든 사내 한 명이 더 내렸다.

“형!”

권총수는 무전을 보냈다.

“형 내말 들려?”

“총수야. 잘 들려.”

“총 가지고 와, M10가지고 동네 뒤쪽으로 빨리 와. 관측장비는 필요 없어 총만 가져와.”

“오케이!”

그때 피아퐁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있는 사내가 외쳤다.

“서툰 짓 하지마라. 머리를 날려 버리겠다.”

그때 AK를 들고 있는 사내가 왼쪽에 있는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부르릉 하는 엔진소리가 들리더니 낡은 오토바이 한 대를 타고나왔다.

오토바이로 도주하려는 것이다.

“총수야!”

헉헉 거리며 오민철이 M10 저격총을 들고 다가왔다.

“저놈들이야. 엇 피아퐁 아냐?”

야시경을 쓴 오민철은 피아퐁을 발견하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았다.

타탁!

재빨리 탄창을 끼운 권총수는 앉아쏴 자세를 취했다.

엎드려 쏴 보다 더 정확한 사격자세는 없다. 사수의 호흡 조절만 잘한다면 총의 흔들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앉아쏴 자세는 다르다. 모든 걸 신체에 붙여야 하기 때문에 흔들림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권총수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미세하게 흔들리던 자세가 완전히 고정된다.

부우웅!

피아퐁을 가운데 태우고 세 사람이 앉은 오토바이가 막 출발하려고 했다.

오토바이가 움직이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움직이면 정확한 사격이 쉽지 않다.

‘피아퐁 숙여’

70년 내공은 전음의 거리에 제약이 있다.

대략 강호 계산법으로는 30장, 거리로는 100미터가 한계였다.

오토바이가 움직이기 전, 지금이라면 가까스로 가능했다.

전음이 날아갔고 주차 차단기가 내려오듯 피아퐁은 번개처럼 상체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타아앙!

거의 같은 순간 총성이 울렸다.

오민철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맨 뒤에 앉은 사내와 핸들을 잡은 사내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다.

한 발에 두 명을 날린 것이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 발에 두 명을 꺾는 일은 전장에서 종종 일어난다.

퍽!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오토바이와 두 사내가 쓰러졌다.

“피아퐁!”

오민철이 달려갔다.

“형!”

“마사지 이 새끼, 너 뒈진 줄 알았잖아.”

오민철이 달려가 피아퐁을 힘껏 끌어안았다.

권총수는 M10을 어깨에 둘러메고 천천히 다가갔다.

피아퐁의 얼굴은 핼쑥했고 입술이 파리하게 말라붙은 것이 굉장한 공포에 시달린 모양이었다.

“캡틴!”

권총수는 피아퐁을 안았다.

“진정해. 이제 살았어 형.”

“두 번 다시 캡틴 얼굴 보지 못하는 줄 알았어. 흑흑흑!”

급기야 피아퐁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태국에서는 남자가 울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면서 모두가 흐느끼는 외인부대 전우의 죽음 앞에서도 꿋꿋하던 그가 대성통곡을 한다.

허허헝!

권총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피아퐁의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라크 신자르산 야지디족의 여인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텔레반은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들에게 붙잡힌 포로를 결코 가만두지 않았다.

피아퐁 역시 엄청난 고문과 학대를 당한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내버려 두었다.

울 때는 울어야 한다.

총소리가 잦아들었다.

팀원들이 서로 무전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안위를 묻고 확인했다.

“빠짐없이 모조리 끌고 나와.”

권총수가 명령했다.

10여분 정도 흘러 마을 앞 공터를 향해 40여명의 민간인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똑바로 걸어 이 텔레반 새끼야.”

오민철이 젊은 남자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렸다.

“자신들은 죽어도 텔레반이 아니래. 어떻게 그 말을 믿느냐고, 뭘봐 콱!”

오민철은 때릴 듯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때 한 명의 노인이 권총수를 향해 다가왔다.

의복이라기보다는 헐렁한 포대자루를 걸친 듯 한 뗏국물 가득한 모습에서 이들의 비천한 삶이 엿보였다.

“우린 나톨아리 주민들일 뿐이오. 우리도 피해자란 말이오.”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왜 저한테 따지는 거죠?”

“젊은이가 우두머리 같아서 그렇지.”

“내가 우두머리라.”

권총수의 표정이 야릇해졌다.

“모리스 선배님.”

파흐드 왕세자 경호대장에서 하루아침에 밀려난 모리스가 다가왔다.

“사람 없는 빈 집 수색 좀 해주시죠?”

“문제 있나?”

“저 노인이 날 더러 리더라고 합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알았을까요?”

모리스의 눈이 빛났다.

“알겠네. 몇 명 데리고 훑어보지.”

모리스가 팀원 두 명을 데리고 사라졌다.

“우릴 어찌할 셈이오?”

노인이 추궁하듯 묻자 권총수는 웃으며 말했다.

“잠시 좀 앉아 계시죠. 큰 피해는 없을 것입니다.”

그제야 노인이 마을 사람들을 진정 시키며 잠시 앉으라고 했다.

모리스를 비롯해 파흐드 왕세자 경호시절 그를 따랐던 호간과 나카야마 세 사람은 각자 흩어져 마을 안으로 사라졌다.

모리스는 가장 가까운 집으로 들어가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텔레반을 잡기 위해 이미 한 차례 뒤졌지만 그때는 작전중이었고 지금은 뭔가를 찾기 위한 정밀 수색이었다.

권총수가 조사하라고 하면 뭔가 있다.

그는 거의 동물적 감각을 지닌 인물이라는 걸 모리스는 알게 되었고 그의 말은 무조건 맞다.

사실 권총수는 지금 KAS의 대세였다.

이 바닥 용병시장의 중심이다.

전장에서도 누군가 주도를 하게 된다.

그게 지휘관이 됐든 아니면 병사가 됐든 묘하게 주위 동료들은 그를 믿고 따른다.

지휘관과 동료들이 신임을 하면 당연히 모든 작전은 그 병사 중심으로 흘러 갈 수밖에 없는데 지금 KAS가 그렇다.

첫 번째 집에서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두 번째 집에서는 십여마리의 양 말고는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세 번째 돌담을 길게 둘러쌓은 2층 집으로 들어섰다.

마당은 다른 집과 다를 바 없다.

대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헛간이 있는데 여러 농기구와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보인다.

그리고 아라우카나(닭의 일종) 20여 마리가 가둬진 닭장이 보였다.

꼭꼭꼭!

사람이 나타나자 구석에 몰린 닭들이 잔뜩 경계의 눈빛을 했다.

뚝!

몸을 돌려 본채 쪽으로 몸을 돌리려던 모리스가 멈칫했다.

모리스의 시선이 닭장 바닥을 주시했다.

닭은 바닥을 헤집는 동물이다.

그건 흙속에 있는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인 것이다.

즉 바닥이 패여야 한다.

다른 부분은 모두 패였는데 안쪽 벽 근처는 평평했다.

시멘트가 아닌 이상 닭이 사는 닭장 바닥은 절대 평평할 수가 없다.

툭!

들고 있던 HK-416의 안전장치를 풀고 닭장을 열고 들어섰다.

닭들은 낯선 사람이 들어서자 더욱 구석으로 몰리며 날개짓을 했다.

모리스는 총구로 바닥을 건드렸다.

퉁퉁퉁!

일반적인 지면이라면 울릴 이유가 없다.

잔뜩 총구를 겨누며 바닥을 살폈는데 두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나무 판자로 된 뚜껑이다.

모리스는 만약을 대비해 나무판자에서 멀찍이 물러난 뒤 총구를 이용해 판자를 위로 밀어 올렸다.

툭!

투툭!

몇 번의 실패 끝에 나무 판자를 들어 올리는데 성공한 모리스는 길게 심호흡을 하며 지니고 있던 수류탄을 꺼내 곧장 안으로 집어 던졌다.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에 닭들은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밖으로 도망치면서 순식간에 닭장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수류탄 소리를 들은 듯 호간과 나카야마가 달려왔다.

“뭡니까?”

“랜턴 좀 주게.”

호간이 랜턴을 꺼내자 조심스럽게 불빛을 비췄다.

안으로부터 어떤 반응도 나타나지 않자 조금씩 상체가 숙여지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젠장!”

“왜 그러십니까?”

나카야마가 다가오자 모리스는 랜턴을 주고 뒤로 물러났다.

“오 마이 갓!”

나카야마 역시도 놀랐는데 닭장 아래에는 상당한 넓이의 지하 공간이 있었고 AK소총을 비롯해 PKM까지 다양한 총기들이 있었다.

내려가는 나무 계단은 수류탄 폭발로 부서져 버렸다.

“뭔 일 입니까?”

권총수의 무전이다.

모리스는 헤드셋을 입 쪽으로 당겨 말했다.

“총이야. 대략 50여정은 넘을 것 같군. PKM도 세 자루가 보여.”

“수거 하시죠.”

“그래야겠지.”

모리스는 주위를 둘러보다 밧줄을 발견하고 늘어 뜨렸다.

권총수는 앉아 있는 마을 주민들을 보았는데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특히 마을 촌장인 노인 자한바크시가 자꾸 권총수의 시선을 피했다.

“촌장님!”

“말하시오.”

자한바크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평화로운 마을이군요?”

“맞소, 우리 마을은 전쟁을 모르고 살아왔소. 한 달 전 텔레반이 밀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오.”

“촌장님 집에 보관중이던 총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오? 내 집에 총이 있다니?”

그때 모리스가 PKM과 AK 한정을 양쪽 어깨에 둘러메고 다가왔다.

퍼억!

바닥에 팽개쳐진 총기를 보고서도 자한바크시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무슨 총이오. 난 전혀 모르오.”

“촌장님 집 닭장 아래서 찾아 낸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오? 우리 집 닭장 아래에 총이 있었다뇨?”

꿈틀!

권총수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무조건 난 모르는 일이다?”

“정말이오. 내 집에서 무슨 총이 나왔다는 건지.”

뒤이어 나카야마와 호간이 양쪽 어깨가득 AK를 메고 다가왔다.

“태워!”

팀원들이 지원에 나서서 지하실에 숨겨진 총기를 전부 꺼내 쌓았다.

장작으로 총을 덮은 뒤 모리스가 불을 당겼다.

권총수는 촌장 자한바크시에게 다가가 쭈그리고 앉았다.

눈 높이를 맞추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촌장님, 국제법상 용병은 군인이 아닙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아실 것입니다.”

“글쎄. 난 잘 모르겠소만?”

권총수의 표정이 굳었다.

“자꾸 이러시면 여기에 있는 비무장 텔레반을 모두 없애 버릴 수가 있습니다.”

순간 자한바크시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소스라쳤다.

“우리가 죽이고 떠난다고 해도 도덕적 비난은 받을지 모르지만 처벌받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순수한 민간인도 아니고 텔레반이니 말이오.”

“우린 텔레반이 아니오.”

파팍!

권총을 뽑아 노인의 이마에 들이댔다.

“우린 목적은 달성했으니 더 이상 피를 흘리고 싶은 마음은 없소.”

“흐흐흐! 캡틴 불었어. 텔레반이래.”

오민철이 15세 정도 되는 소년을 데리고 왔다.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는 않고 뒤에서 여러 형태로 지원한다는데.”

자한바크시가 두 눈을 감았다.

소년은 오민철의 협박에 모든 걸 고백한 모양이었다.

그동안 정신교육을 철저히 받았겠지만 아직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나이다.

“사실이오. 우린 텔레반이오. 전장에 나가는 전투요원들이 아니라 정보를 지원하고 가끔씩 찾아오면 그들에게 의식주를 지원하지요.”

자한바크시가 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한 달전 아즈문이 부하 이십여명을 데리고 왔소.”

권총수의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가려다 사살된 운전대를 잡은 사내였다.

“왠 동양인을 끌고 왔는데.”

그러면서 빵을 먹고 있는 피아퐁을 주시했다.

“자신들이 사로잡은 것이 아니라 넘겨받았다고 했소.”

“넘겨받다니?”

“난 사우디 군에 잡혔다가 저기 뒈진 놈에게 인계됐어.”

피아퐁이 소리치 듯 말했다.

“계속 말 해보세요.”

자한바크시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사우디 정보국에서 피아퐁이란 저 사내를 텔레반 납치극으로 돌리면 백만달러를 주겠다는 제의가 온 모양이오."

권총수의 눈이 반짝했다.

앞뒤 상황이 대충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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