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36화 (136/651)

제136화: 인질구출(1)

그날 이후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느덧 피아퐁 실종은 보름을 지나고 있었다.

벌컹!

에반이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소리쳤다.

“텔레비젼 켜봐.”

비렌드라가 재빨리 리모컨을 누르자 에반이 다시 소리쳤다.

“알자지라 채널!”

재빨리 알자지라 채널을 돌리는 순간 모두가 외쳤다.

“피아퐁!”

“저런, 맙소사!”

피아퐁이 주황색 죄수복 같은 헐렁한 상하의를 걸치고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그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군복차림의 대검을 거머쥔 복면의 사내가 카메라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린 얼마든지 준비가 되어 있다. 알라께서는 결코 너희들을 용서 하지 않을 것이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그리고 화면이 꺼졌다.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더 이상 동영상을 나오지 않았으며 앵커와 사건기자가 피아퐁 납치에 대한 보도를 이어갔다.

“뭐하자는 거야? 돈이면 돈, 뭔가 요구하는 것이 있어야 할 것 아냐.”

오민철이 소리쳤다.

“원하는게 뭔지 밝히지도 않고.”

“텔레반의 작전이지.”

에반이 입을 열었다.

“텔레반에게 끌려갔다는 말입니까?”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사우디에서 실종된 피아퐁이 악명 높은 테러집단에게 끌려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이다.

“과정은 모르겠지만 텔레반의 인질 다루는 방법은 IS를 닮은 듯 하면서도 많이 달라. 그들은 선뜻 요구사항을 말하지 않고 위협만 주지.”

에반은 눈을 빛내며 바라보는 용병들을 한 명 한 명 둘러보았다.

“시간을 끌어. 집요할 만큼.”

“협상의 주도권을 쥐려는 계산이군.”

“맞네. 오랫동안 서방국가들과 대립하면서 나름대로 교섭하는데는 상당한 노하우를 쌓은 셈이지.”

“빌어먹을, 도대체 이게 뭔 일이래? 여기서 사라진 놈이 왜 텔레반 손에 잡혀 있냐고?”

모두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왔다갔다했다.

뭔가 고민한 표적이 역력해 보였는데 답답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드르륵!

창문을 열자 뜨거운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권총수는 희뿌연 모래먼지에 덮인 리야드 시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텔레반으로 넘어 갔을까’

권총수는 피아퐁의 얼굴을 떠올렸다.

KAS에 입사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 피아퐁이 할 말이 있다고 찾아왔다.

“캡틴.”

피아퐁의 표정이 너무 엄숙했다.

“널 만난 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행운이야. 어머니 어제 미국에서 수술 잘 받았고 결과가 좋다는 거야.”

피아퐁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눈을 다쳤다.

두 눈이 실명할 위험에 처했고 한 쪽이라도 세상을 보려면 각막이 필요했으나 워낙 구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고가였다.

하지만 KAS에 들어오면서 거액의 돈이 생겼고 곧바로 미국으로 보내져 수술을 받고 눈을 뜬 것이다.

그때 등 뒤로부터 전화를 받는 에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소만? 내가 에반이오.”

순간 권총수는 돌아섰다.

“지금 뭐라고 했소. 피아퐁과 아브라힘을 맞바꾸자는 거요?”

모두의 눈이 커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대가 전화를 끊었는지 에반이 핸드폰에 대고 소릴 질렀다.

“누굽니까?”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피아퐁과 아브라힘을 바꾸자는 거야.”

그때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고 액정을 보던 에반이 깜짝 놀라며 터치를 했다.

“예 회장님!”

파앗!

전화를 받던 에반이 깜짝 놀라더니 재빨리 자신의 서랍을 열어 검정색 리모컨 한 개를 꺼내 눌렀다.

스르르르!

전면 벽으로 중동의 지도가 내려왔다.

“예, 예, 나톨아리.”

손가락으로 이라크 지도 한 곳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에반이 지도를 바라보았다.

“런던입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런던으로부터 정보가 들어왔네. GPS 위성을 통해 나톨아리 근처에서 수상한 신호가 계속 사우디 국방부로 들어온다는 거야.”

KAS가 아카데미에게 가장 크게 밀리는 분야가 정보취득능력이다.

아카데미는 CIA와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 형태의 협력을 하기 때문에 풍부한 정보를 자유롭게 얻는다.

그러나 KAS는 그렇지 못했다.

영국의 정보기관 MI6가 있으나 CIA와 아카데미만큼 가까운 관계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동안 스톤스는 MI6과 꾸준한 접촉을 하고 있다고 얼핏 들었는데 이정도 첨단 정보라면 필시 MI6과 관계가 어느 정도 설정된 듯 보였다.

당장 작전회의에 들어갔다.

회의는 30분을 넘겼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 계획을 내 놓으면 절반이 넘는 인원이 지지를 보내거나 호응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작전을 성공하려면 70프로는 지지를 받아야 한다’

외인부대 7중대장 튀랑대위의 작전철학이었다.

군에서 최종 결정은 지휘관이 내리지만 참모들로부터 70프로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한번 정도는 고려해 봐야 한다.

에반의 표정은 어둡다.

모두가 군사작전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이다.

문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는 건 불길한 징조이다.

그 만큼 서로가 느끼고 보는 이번 작전이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었다.

“어디가?”

일어서서 나가는 권총수를 오민철이 불렀다.

권총수는 문을 열고 나가 담배를 피워 물었고 곧장 오민철이 따라나왔다.

그 역시 담배를 물더니 신경질적으로 연기를 뿜었다.

“자식들, 정말 잘났어.”

사무실 쪽을 보며 인상을 썼다.

“내가 봐서는 전부 개소리들이야.”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이라크 지도가 펼쳐졌다.

나톨아이는 사우디 국경에서 20여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이라크의 작은 산간 마을이다.

“여기가 나톨아리입니다.”

권총수가 볼펜 끝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마을 지척까지 사막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근처를 흐르는 티그리스강의 영향을 받아 숲이 생기고 나무가 자라는 산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방법으로 나톨아리까지 갈 것인가 입니다.”

에반을 포함해 모든 KAS직원들이 모였다.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뭔데? 빨리 말해봐?”

오민철이 다그쳤다.

“헬기입니다. 헬기를 이용해 나톨아리 지역까지 날아가는데.”

말을 하다 말자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야 캡틴, 말을 왜 하다 말어?”

“헬기의 취약점이 뭐야. 텔레반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RPG에 걸리면 끝장이라는 거야. 결국 사거리 밖에서 내려야 되는데.”

탁!

한곳을 짚었다.

“여기, 사우란에서 내려 육로로 접근하는 거야.”

“작전시간은?”

파흐드 왕세자 경호팀장으로 있다가 아카데미 바큘라가 주동이 된 테러에 부하들 상당수를 잃고 이제는 권총수의 통제를 받는 모리스가 물었다.

처음 한두 달 동안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더욱이 외인부대 출신들과 작전을 한다는 것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사를 노출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권총수의 카리스마에 짓눌리며 이제는 아랫사람처럼 고분고분 따른다.

“당연히 밤이지.”

“둥근달인데?”

내일이 보름이다.

최소한 앞으로 닷새 정도는 야간작전 하는데 달빛이 큰 장애가 되겠지만 더 이상 지체한다는 건 위험했다.

피아퐁을 살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캄캄할수록 야시경을 갖춘 KAS가 유리하다.

텔레반도 야시경을 갖고 있지만 고장 투성이거나 구형이어서 그다지 큰 위력은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달이 밝으면 이쪽이 무조건 손해 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두가 조용했다.

권총수가 나서기 전까지는 다른 동료가 내 놓는 작전 안을 평가절하 하거나 아마추어적인 발상이라며 맹폭하기를 주저 하지 않았던 용병들이다.

“질문 없어?”

지켜보고 있던 에반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없으면 총수가 제시한 이 안으로 실행한다.”

“결행 날짜는?”

모리스가 물었다.

“내일 밤.”

권총수는 담배를 물었다.

“음!”

모리스가 신음을 흘렸다.

가장 달이 밝은 날을 선택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다음 날 오전 10시쯤 두 대의 랜드로버가 움직였다.

랜드로버는 리야드 시내를 벗어나 북쪽을 향해 달렸다.

차라리 바다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보던 권총수 눈앞으로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시설출신이며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여겼던 유병칠이었다.

어느 날 라면으로 저녁을 때운 뒤 권총수가 물었다.

“건설현장에 모래가 부족해 바다모래를 많이 사용한다면서?”

“응!”

유병칠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염분으로 인해 철근이 녹슬지 않을까. 시멘트도 점액성이 부족해 갈라질 테고.”

“그래서 아무 곳에나 사용하지 않아. 사용처가 정해져 있어.”

“그럴바에야 사막 모래를 쓰는 게 났겠다. 염분도 없고 입자도 곱고.”

“안돼.”

“왜 안돼?”

“강모래와 달리 사막 모래는 바람에 돌이 잘게 부서진 것이기 때문에 강도가 약해. 아무리 시멘트를 잘 섞는다 해도 위험해.”

피식!

사막의 모래를 처음 본 것 도 아닌데 갑자기 유병칠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어쨌든 당시 유병칠은 자신의 전공분야답게 매우 친절하고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아마 그때 그 질문을 하는 시간이 유병칠과 가장 부드러웠고 절친했던 듯 싶다.

8시간 만에 무려 700킬로를 달렸다.

1차 집결지는 이라크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샘밀밀이라는 지역이었다.

사람들은 살지 않는다.

백년전까지만 해도 근처에 괜찮은 오아시스가 있어 일천여명 가까운 큰 마을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물이 마르고 급기야 샘이 사라지자 모두가 집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아직도 옛날에 큰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는 걸 보여주듯 군데군데 집터의 흔적이 보였다.

헬기는 쿠웨이트에서 온다.

사우디 쪽이든 이라크 쪽이든 분명히 어느 한 나라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게 된다.

이때 가장 요구되는 것이 조종사의 능력이다.

저공비행으로 레이더를 피해야 하고, 또한 가급적 헬기를 지형지물 속에 잘 숨겨 날아와야 했다.

불법 월경으로 공격을 받아 추락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뿐이다.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우린 헬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민간기가 아닌 이상 한 국가의 군대일지라도 타국의 국경을 무단침입하면 격추대상이다.

해는 이미 떨어진지 오래다.

손목시계는 밤 11시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모두가 얼굴에 위장크림으로 자신을 감췄고 각자의 장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비렌드라를 비롯한 외인부대 출신들은 현역에서 물러난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실전의 감각이 누구보다 살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담담했으나 모리스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은 긴장해 보였다.

특히 헬기를 이용한 야간 침투는 현역시절에도 자주 경험할 수 있는 흔한 작전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누군가를 구출하거나 적의 수뇌를 암살 할 때마다 펼쳐지는 것이 헬기를 이용한 야간 침투작전이다.

전투기처럼 높이 떠버리고 속도가 빨라버리면 걱정할 것이 없지만 헬기는 속도도 느리고 저공 비행한다.

그러다 보니 재수 없으면 지상에서 날아오는 소총탄에도 격추가 될 수 있다.

RPG라도 날아오면 그땐 반드시 끝장이다.

“오나본데!‘

모든 시선이 권총수에게 돌아갔다.

자신들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방은 어둠과 고요가 전부였다.

3분 정도 지났을 때 동료들 눈이 커졌는데 헬기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놀란다.

권총수는 자신들 보다 3분 정도 앞서 헬기 소리를 들었다.

3분이면 어느 정도의 거리일까.

헬기가 평균 시속 300킬로로 날아간다고 한 다면 대략 15킬로 정도의 거리다.

주간에 비해 야간의 소음이 빠르고 멀리 퍼진다는 걸 감안한다고 해도 엄청난 능력이었다.

이윽고 하늘에서 엄청난 덩치의 헬기가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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