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절대절명(2)
조종사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건 이번만큼은 어림없다는 자신감이었다.
권총수의 몸이 곡예 하듯 시멘트로 된 담장을 막 넘어갔고 이어 날아온 로켓포가 담장 끄트머리를 때렸다.
콰아앙!
담장이 박살나고 주택의 2층 벽까지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조종사의 시선이 적외선 카메라를 주시했다.
체온이 감지되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화면에 나타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두꺼운 바위나 시멘트 덩어리 따위가 가로막고 있다면 찍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두두두두!
헬기는 단독주택 위를 선회했다.
“여긴 레펠1 응답하라 본부.”
“레펠 1뭔가?”
“표적이 민가로 들어갔다. 로켓포에 죽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직접 확인을 요한다.”
“알겠다. 레펠1은 철수하라. 대신 기동대 스톰(storm)2를 동원하겠다.”
두두두!
헬기는 주택 위를 두 바퀴 정도 더 선회하더니 사라졌다.
달려온 트럭이 멈췄고 지휘관으로 보이는 대위 계급의 군인이 통신병의 무전기로 본부와 교신중이다.
“알겠다. 스톰2는 즉시 주택을 수색하겠다. 이상.”
송수신기를 통신병에게 넘겨준 대위는 M4로 무장한 20명의 군인들을 향해 명령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군을 대표하는 특수부대 쌩(SANG)이다.
20여명의 군인들이 넓게 퍼져 담벼락이 부서진 2층 단독주택을 향해 다가갔다.
크고 작은 시멘트 덩어리가 온 몸을 후려 갈겼지만 다행히 호신강기를 펼쳐 큰 외상은 입지 않았다.
그러나 몸속까지 온전할 수는 없었다.
강한 충격에 내상을 입었다.
트르륵!
권총수는 무너진 시멘트 덩어리를 헤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서진 담벼락 사이로 무장 군인들이 접근해 온다.
일반 군인도 20명은 많다.
그런데 특수부대라면 공격보다는 퇴각 즉, 도주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지이잉!
바지에서 핸드폰을 꺼냈는데 에반이었다.
“지금 소식 들었네. 비렌드라가 사원 지하실을 몰래 나와 전화를 했더군.”
이곳 상황을 지금 알게 되었다는 다급한 목소리다.
히말라야 눈 사나이 비렌드라도 범상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포탈라궁이라는 곳에서 ‘패턴차리’라는 노승을 사부로 모시고 5년여 시좌승 노릇을 했다.
그의 주먹은 평범하지 않았다.
권총수는 비렌드라가 자신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한 주먹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어딘가?”
“넬루골고 마을에서 2킬로 떨어진 곳입니다. 리야드 동쪽 시내로 진입하는 84번지 일대인 듯 하지만 정확한 지역명은 알 수가 없습니다.”
“알았네. 조금만 버티게 지원병력을 보내겠네.”
“사우디 정규군입니다.”
그건 보내지 말라는 뜻이다.
같은 보안업체라면 상관없으나 사우디군과 얽힌다는 건 사우디정부와 대립각을 세운다는 뜻이다.
전제군주국가다.
국왕이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통제한다.
알살만은 본부인 아들이고 파흐드 왕세자는 나이가 더 많긴 해도 둘째부인에서 낳았다.
국왕의 시선은 알살만에게 더 많이 집중되어 있다.
이번 사건에 알 살만이 깊이 개입되어 있지만 사건을 덮어 버리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
KAS는 힘에서도 아카데미에 밀려 사우디의 고위 권력층에 변호해줄 만한 사람 한 명도 없다.
이래저래 밀리는 형국인데 KAS가 너무 나가버리면 위험해진다.
사우디 정부군과 총질을 했다가는 백퍼센트 아웃이다.
손해를 보더라도 당분간은 최대한 자제하고 수비적인 입장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곳 일은 내 선에서 끝낼 테니 전혀 개입하지 말라.
“그렇긴 한데.”
에반이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분명한 증거를 잡았으니 내일쯤 알자지라 방송에서 한 번 뒤집어 놓을 것입니다. 그쯤되면 파흐드 왕세자와 알살만의 중간에서 시소를 타고 있던 일부 세력들이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고 하겠죠.”
“자네만 믿네.”
에반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컴퓨터 마우스를 건드리자 꺼졌던 화면이 나타났고 자판을 두들겼다.
그러자 화면에 사우디에 들어와 있는 KAS 소속 용병들 사진과 그들의 프로필이 기록되어 있었다.
드레그를 계속 올리던 에반이 사진 한 장에 멈췄다.
권총수 사진이었다.
외인부대 출신 이력과 생년월일까지 자세히 기록되었다.
최종학력은 회사 방침상 기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KAS 자체 조사결과 부모 형제가 없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 어딜 가도 혈혈단신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지금 통화 내용에서도 그렇고 KAS에서 일 처리하는 걸 보면 경이롭다.
신체적 능력은 물론이고 순간적으로 정세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임기응변이 매우 뛰어나다.
회사 타격을 가급적 줄이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알고서도 지원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카야마가 오야붕이라고 했던가’
일본에서는 두목, 특히 마피아와 쌍벽을 이루는 야쿠자에서 캡틴을 오야붕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다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팀의 리더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
언제봐도 매력적인 사내다.
수적 열세는 매우 위험하다.
그래도 살아나야 한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 머리를 굴리던 권총수는 HK-416을 부서진 시멘트 조각 사이로 팽개쳤다.
누가 봐도 폭발로 인해 총을 놓친 것으로 보인다.
인원수로 보면 일방적인 싸움인데 소리 나는 총으로 대결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일반 부대도 아닌 사우디가 자랑하는 쌩(SANG)이다.
주위를 살피며 엄지손톱 크기의 시멘트 조각을 주워 오른손에 쥐었다.
‘오는군’
사박사박 살얼음판을 걷듯 들리는 작은 소리는 군화에 밟힌 시멘트 조각들이 깨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15미터’
적은 이미 주택 안으로는 들어섰다.
‘넷!’
권총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동쪽 넷, 북쪽 여섯, 남쪽 다섯’
스무 명이다.
가장 가까운 발자국 소리는 넷 즉, 동쪽에서 접근해 오고 있었다.
“총!”
바깥에서 누군가 놀라는 소릴 했는데 고의로 버려둔 HK-416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독안에 든 쥐다!”
목소리에 자신감이 엿보인다.
총을 떨어뜨렸다는 건 부상을 입었다고 판단 할 수 밖에 없다.
툭!
발바닥에 밟힌 시멘트 조각 하나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의 체온이 느껴진다.
뜨거운 사막의 도시지만 태양이 뿜어내는 열기와 사람의 몸에서 발산되는 건 다르다.
사내들이 들어서고 있는 문은 1층 주방 뒷문이다.
뒷문으로 들어서면 5미터 정도 되는 짧은 복도가 있고 왼쪽으로 꺾어 돌면 바로 주방이 나타난다.
지금 권총수는 주방으로 들어서기 위해 왼쪽으로 꺾어진 곳에 바짝 붙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거침이 없다.
아무래도 떨어진 총의 효과일 것이다.
휘익!
권총수는 번개처럼 복도로 나서며 오른손을 뻗었다.
파파파팍!
퍼억!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엄지 손톱 한 마디 정도의 굵기인 돌멩이들이 날아가 네 사내의 미간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쿵!
풀썩!
사내들은 서로 엉키며 나뒹굴었다.
피식!
죽은 사내들을 내려다보던 권총수는 웃고 말았다.
선두 사내가 자신의 HK-416을 메고 있었다.
권총수는 허리를 구부려 자신의 총을 회수한 뒤 슬며시 뒷문을 이용해 밖으로 나갔다.
도주를 대비 한 듯 세 명의 사내가 대문이 있는 앞마당을 서성거렸다.
촤아아아!
돌멩이가 바람을 갈랐다.
날아간 돌멩이는 세 사내의 미간을 또다시 뚫어 버렸고 모두 엎어졌다.
“다에이, 다에이!”
돌아서던 권총수가 고개를 돌렸다.
숨이 끊어진 맨 오른쪽 사내의 손에 무전기가 쥐어져 있는데 그곳에서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에이, 내 말 들리나? 마당은 어때?”
잠시 무전기를 바라보던 권총수가 몸을 다시 돌릴 때 ‘다에이 뭐하는거야’ 3층 옥상에 한 명의 군인이 나타났다.
드륵!
돌멩이를 주울 여유조차 없어 하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사내는 곧장 1층 마당으로 추락했고 바로 그 순간 옥상에서 다섯 명이 나타났다.
총소리에 마당 쪽으로 달려 온 것이다.
권총수는 상체를 뒤로 눕다시피 젖히며 HK-416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긁었다.
누구도 비명이 없다.
그냥 총에 맞아 마당으로 추락할 뿐이었다.
퍼퍼퍼퍽!
권총수는 재빨리 현관으로 몸을 숨겼다.
“우와 쓰으!”
“알라시여”
옥상에서 사내들의 비분강개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권총수는 잠시 이마를 찡그렸다.
적을 죽이려면 옥상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럴 경우 무조건 이쪽이 손해다.
잔뜩 벼르고 있는데 총 한 자루 들고 올라간다는 건 자살행위다.
그렇다고 저들도 쉽게 내려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 역시 내려온다는 건 불리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려오지 않고 올라가지 않으면 결국 대치 형국이 된다.
대치를 하면 자신이 무조건 손해다.
저들은 유무선 통신을 이용해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고 헬기가 또다시 헬파이어를 쏟아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옥상으로부터 다급한 소리가 들린다.
지원을 요청하는 긴급 교신이다.
권총수는 곧바로 밖으로 나간 다음 20여 미터 떨어진 좌측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슈우욱!
혼신의 내공을 쏟아 몸을 날렸다.
헬기의 공격을 피하느라 상당한 진력이 소모되었기 때문에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그러나 한번 땅을 짚고 도약하게 되면 소음이 작지 않다.
옥상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자신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적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됐다’
놀랍게도 몸이 가까스로 담장을 넘으며 바로 아래 길바닥으로 내려서는데 성공한 것이다.
슬쩍 담장 너머 옥상을 올려다봤지만 아무런 그림자도 없다.
아마 바짝 엎드려 있을 것이다.
권총수는 재빨리 골목을 따라 이동하며 현장을 벗어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아파치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훗!’
한 발만 늦었다면 이번이야 말로 통닭구이가 될 뻔했다.
한사람이 돌아오지 않는다.
피아퐁이었다.
셋은 흩어졌다.
헬기가 공중에 떠 있는 이상 같이 움직인다는 건 모두 함께 죽자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렌드라와 나카야마는 30분 차이를 두고 사무실로 복귀했지만 피아퐁은 지금 밤 8시가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핸드폰도 먹통이다.
납치의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사방을 뛰어 다녔지만 만족할 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아카데미나 사우디 군측에서 끌고 갔다면 거래를 위해 연락을 해올 것이 분명하다.
일주일이 지났다.
모든 것이 일제히 멈춰 버린 것 같았다.
모든 관심은 오로지 피아퐁의 생사였고 행방이었다.
사무실은 항상 어두웠고 정찰대 성격으로 사무실에 24시간 대기중인 블랙버드 팀(사막의 흑새라는 권총수의 별명을 살려 지은 팀 이름) 권총수, 오민철 나카야마, 비렌드라, 오스카르등 다섯 명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잔뜩 긴장하며 출동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그런데 전화 통화를 하던 에반의 표정이 굳는다.
한참을 듣고 있던 에반이 천천히 핸드폰을 내렸는데 심각해 보인다.
권총수는 차마 왜 그러느냐고 묻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드르륵!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에반이 창문을 열어젖혔다.
밖은 어둠이 지배하는 밤 10시가 지났다.
권총수와 오민철은 일단 숙소인 5층으로 올라가려던 참이었는데 전화를 받고 심각해지는 에반을 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는군. 그냥 다짜고짜 피아퐁을 데리고 있다는 말만 하는데.”
두 사람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에반은 놀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피아퐁은 사우디군에 잡혔을 텐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에반은 이마를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