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절대절명(1)
불길이라면 좁은 공간이기 때문에 열기가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다.
사아악!
타오르던 푸른색 열기가 사내의 콧속으로 스며들고 이어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맑다.
아브라힘은 순간적으로 자기 마음까지 고요해짐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은 끝없이 깊었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사내는 조용히 자세를 풀고 일어나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장군님?”
아브라힘의 눈이 가는 떨림을 보였다.
장군이라는 걸 알고 있다.
현 사우디 정부의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국가는 이란과 예멘이다.
그리고 사우디 내에서 활동하는 ‘무트아’가 있다.
무트아는 시아파 극렬추종자들로 수니파가 90프로인 사우디에서 끝없는 저항운동을 하며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사우디에서 일어나는 무장폭력과 테러의 90프로가 무트아에 의한 것이다.
누굴까.
말속에 적의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알살만 왕세자의 측근 중 한 명인 자신의 신분을 꿰뚫고 있는 걸 보면 심상치 않다.
“데려와!”
밖을 향해 명령을 내리자 문이 열리더니 휠체어 한 대가 들어왔다.
휠체어 위에 목에 붕대를 감은 구레나룻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네쿠남!”
아브라힘 장군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며 소스라쳤다.
“데려가.”
비렌드라는 다시 네쿠남이란 사내가 탄 휠체어를 밀고 실내에서 나갔다.
“네쿠남, 사우다이라비아 특수부대 쌩(SANG)소속 저격수, 보름전 아브라힘 장군으로부터 한통의 메일을 받습니다. 메일에는 보름 후, 그러니까 오늘 있게 될 자칼루 지방의 대수로공사에 참석할 파흐드 왕세자의 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분명히 하죠.”
‘방탄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물 저격총으로 날려 버릴 것’
아브라힘은 휘청했다.
딸칵!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를 피워 물었다.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길이 두 가지가 있으니 잘 선택하십시오. 우리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신분을 세탁 후 온 가족이 미국을 포함한 제 3국으로 가서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힘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두 번째 길은 뭐요?”
“내 손에 죽는 겁니다.”
아브라힘 얼굴이 굳어졌다.
선택지가 너무 극단적이다.
조국을 배신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죽기는 더욱 싫다.
앞으로는 화려한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국왕의 건강이 좋지 않아 알살만 왕세자의 권력 계승이 머지않았다.
남은 건 삶을 즐기는 것 밖에 없다.
이슬람국가에서 회교사원은 장소와 규모를 막론하고 거의 성역이다.
그러나 이곳 ‘탈랄’사원만은 예외였다.
건축 된지 200년이란 역사를 갖고 있었지만 50년 전 이곳 탈랄 사원의 예배를 이끄는 이맘(교회의 목사 비슷)이 기독교 여인과 혼인을 하는 사고가 일어나고야 말았다.
순식간에 사원은 반 기독교를 외치는 무슬림들이 쳐들어와 난장을 피웠고 사우디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이곳을 폐쇄 한 것이다.
탈랄 사원은 리야드 동쪽 외곽에 있는 넬루골고라는 마을 입구에 있었다.
탈랄사원을 병풍처럼 막고 선 십여그루의 대추야자나무가지 위에 피아퐁이 올라가 있었다.
그의 임무는 경계였다.
드르렁!
처음에는 평평한 가지에 앉아 쌍안경으로 혹시도 모를 적의 침입을 날카롭게 살폈으나 30여분 정도 흐르면서 긴장이 풀리고 졸음이 쏟아진 것이다.
네쿠남의 배신과 아브라힘의 납치로 파흐드 왕세자를 저격한 쪽은 지금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둘 모두를 죽여서라도 비밀을 지키려할 것이라는게 권총수의 판단이었다.
그때 나무아래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쯧쯧! 잘한다.”
근무 교대를 위해 다가온 나카야마가 피아퐁의 코고는 소릴 듣고 투덜거렸다.
“헬로우, 태국마사지, 일어나 임마.”
퍽!
올라와 엉덩이를 발끝으로 툭 치고 나서야 피아퐁이 눈을 떴다.
“뭐야.”
“귀관은 뭔가. 여기가 마사지 방인 줄 아는가?”
“미안 미안, 깜빡 했어. 정말 미안해.”
피아퐁이 어색하게 웃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사원에 들어가서 푹 자.”
피아퐁은 쌍안경을 넘겨주고 나무를 내려갔다.
“낮에는 새가 오고 밤에는 쥐가 온다는 외인부대의 투철한 경계철학에 입각해 어디 한 번 살펴 볼까.”
나카야마는 쌍안경을 눈에 대고 열기 가득한 누런 사막과 도심쪽을 살폈다.
리야드 중심가로는 제법 녹음이 우거졌으나 변두리는 거의 사막이나 다를 바 없었다.
“어!”
한 바퀴 스윽 훑던 나카야마가 쌍안경을 눈에서 떼려다 말고 다시 붙였다.
“뭐하는 트럭이지.”
쌍안경으로도 정확히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먼 곳에서 트럭 두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쌍안경에서 잠시 눈을 뗀 뒤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시력을 다듬은 나카아먀는 다시 살폈다.
넬루골고 마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수도 리야드시로 들어가지만 시골이나 마찬가지이다.
들어오는 길도 포장은 되었지만 차선도 거의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움푹 패이고 균열이 생겨 승용차는 고생 좀 해야 했다.
누런 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트럭과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나카야마의 눈이 커졌다.
“이런 젠장할.”
나카야마는 곧장 뛰어 내렸다.
쿵!
너무 높은 나머지 휘청하며 중심을 잃었으나 곧바로 일어나 사원 안으로 뛰어들었다.
“M997이야. M997 두 대가 오고 있다니까?”
커다란 대추야자나무 아래 앉아 쉬고 있던 비렌드라와 피아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다닥!
둘이 뛰어나가 재빨리 대추야자나무 뒤에 숨어 전방을 살폈다.
“오 마이 갓!”
마을 앞에까지 들어오지 않고 중간에서 멈추더니 무장병력이 내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엔진소리가 이쪽에 발각 될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M997은 미군 병력 수송용 트럭이다.
“빨리 캡틴에게 연락해.”
바로 그 순간 두두두두!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자 멀리 두 대의 헬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우와 씨이!”
나카야마가 재빨리 사원 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우리 위치가 노출되었어.”
권총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가 헬기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권총수는 3, 4분여전에 로터헤드(헬기 프로펠러)돌아가는 소리를 감지했고 아파치라는 것까지 파악했다.
“늦었어.”
자신의 실수다.
소리는 들었지만 기종을 간파한 건 조금 전이었다.
미리 공격헬기라는 걸 알았다면 피했을 것이다.
적이 자신들의 은신처를 알아낸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이 다가오는 것을 간파하지 못한 건 온전히 권총수 자신 몫이다.
아브라힘과 깊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순간적으로 경계가 느슨해 진 한 것이다.
“모두 들어오라고 해.”
미렌드라가 달려 나갔고 곧장 나카야마와 피아퐁이 들어왔다.
덜컹!
권총수가 구석으로 가더니 두꺼운 철판을 당겼다.
“엇! 그건 뭐야?”
아무도 그곳에 하수구 맨홀 뚜껑 같은 철판이 있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들어가 봤더니 아주 넓은 지하 공간이야. 아마 종교 탄압을 대비해 파 놓은 것 같아.”
“그곳에서 숨자고.”
“방법이 없잖아. 철판이 워낙 오래되어 쉽게 눈에 띄지는 않을 거야.”
70년 내공의 안목으로 놓칠 뻔 할 만큼 바닥과 철판은 동일했다.
“대신 내가 놈들을 유인할 테니까 그때를 노려 탈출을 하라고.”
두두두두!
헬기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버려진 사원인 만큼 미련 없이 부셔버릴 거야. 빨리 들어가.”
일행은 재빨리 지하로 들어갔고 멈칫 하던 아브라힘이 긴 한숨을 내쉬며 할 수 없다는 듯 들어갔다.
그는 이미 반 알살만으로 결정했다.
쿵!
권총수는 철문을 닫고 손바닥을 통해 나오는 부드러운 장력으로 주위 먼지를 휘저었다.
먼지들이 일어났고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철판은 더욱 완벽하게 묻혔다.
밖으로 나온 권총수는 HK-416을 들고 재빨리 담장을 넘었다.
거의 같은 순간 헬파이어 미사일 한발이 사원에 떨어졌다.
콰아앙!
단 한 발에 사원 지붕의 절반이 날아갔고 두 대의 아파치가 교대로 헬파이어 미사일을 퍼부었다.
‘아브라힘까지 죽여 완전히 입을 봉해 버릴 생각이군’
담장을 넘어간 권총수는 멀리 리야드 도심 쪽을 바라보았다.
도시로 뛰어들어야 한다.
사막은 자살 행위다.
그쪽으로 도주하면 맘 놓고 공격 할 것이다.
주차 해 놓은 랜드로버로 유인할까 했지만 포기했다.
차량은 헬기의 밥이다.
더구나 아파치 같은 헬기에 걸리면 여지없다.
차라리 신법을 이용해 움직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추와악!
권총수의 몸이 화살처럼 튕겨 날아갔다.
무장하고 있는 16기의 헬파이어중 아홉 발을 쏟아 붓고 방향을 틀던 조종사의 눈이 번쩍 빛났다.
“저건 또 뭐야.”
부조종사 역시 선글라스를 끼었는데 자신이 잘못 본건가 싶어 안경을 벗었다.
“사람이잖아.”
“오우, 사람이 날아가다니.”
헬기의 적외선감지기 화면에도 분명 사람이 날아가고 있었다.
새 처럼은 아니지만 굉장하다.
“20미터!”
둘은 경악했다.
한 번 도약하여 20미터를 날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잡아? 죽여?”
죽이기보다는 왠지 붙잡아 비밀을 풀어보고 싶다.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 말을 빌리면 가끔 공중에서 미확인비행물체(UFO)를 발견한다고 했다.
워낙 빨라 추격하기가 쉽지 않고 지휘부 역시 조종사의 보고를 대부분 묵살했다.
그들의 대답은 그런게 어디 있느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귀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조종사들은 분명히 보았고 자신의 비행기로는 도저히 추격 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고 했다.
드르륵!
날아가는 권총수 주위를 30밀리 기관포로 위협했다.
기관포에 권총수의 주위로 모래먼지가 피어 올랐다.
“호오!”
부조종사가 놀란다.
권총수가 직선이 아닌 지그재그로 도망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헬기의 방향전환이 좋다고 해도 2,30미터씩 지그재그로 이동해 버리면 조준이 쉽지 않다.
그런데다 굉장히 빠르다.
표적 속도계를 살피던 조종사의 눈이 더 커졌다.
“시속 66킬로.”
둘 모두 놀란다.
“경주마와 거의 비슷한 속도.”
쾅!
콰아아앙!
생포 계획을 철회했다.
워낙 빠르기 때문에 생포 목적으로 위협사격을 했다가 자칫 도시로 스며들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두두두두!
기관포가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권총수는 필사적으로 지그재그로 날아갔다.
전신 내공을 극성으로 올려 금강부동신법을 펼쳤는데 직선으로 달리면 20여미터 이상을 한 번 도약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아파치가 퍼붓는 기관포를 피하기 위해서는 짧은 거리를 날면서 방향전환을 자주 가져갔다.
휙!
휘이익!
눈 깜짝 할 사이에 좌우로 이동하는 권총수를 좀체 맞히기란 쉽지 않았다.
‘훗훗!’
권총수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작전은 성공이다.
헬기 두 대중 한 대를 유인했고, 또 한 두 대의 트럭 중 한 대가 내린 병력을 다시 싣고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아직까지 작전은 완벽하게 성공하고 있었다.
콰앙!
파파파팍!
터지고, 내리 꽂힌다.
헬기는 더욱 기수를 낮춰 근접 사격을 했다.
파아아!
푸푸푸풋!
권총수는 움찔했는데 왼쪽 어깨가 뜨끔했다.
30밀리 기관포가 어깨를 스친 것이다.
슉!
더욱 전력을 향해 좌우로 날아갔다.
파팟!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마침내 도시의 집들이 나타났고 가장 가까운 집까지는 100여미터 남짓 되었다.
푸푸푹!
엄청난 기관포가 주위 바닥을 벌집으로 만들었으나 권총수는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었다.
슈우우!
2층짜리 단독 주택이 30여미터 앞으로 나타났다.
권총수는 그대로 몸을 띄워 올렸다.
길게 날아갈수록 좋은 표적이 된다.
그래서 짧게 자주 방향을 바꿨지만 지금은 단번에 민가로 뛰어들었다.
한 번 도약으로 단독주택을 향해 날아가는 권총수의 모습은 흡사 먹이를 향해 내리 꽂히는 송골매 같았다.
쿠우우!
바로 그 순간 2.75인치 로켓탄 한 발이 권총수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