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암살(3)
사내는 러시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의 격투술 시스테마를 배운 것이다.
사우디 특수부대가 격투술로 시스테마를 들여왔다는 걸 알고 있다.
투투투!
계속 왼 주먹을 복싱의 잽처럼 뻗어내자 권총수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탁!
전광석화.
권총수는 어느새 사내의 왼 손목을 낚아 쥐었다.
“으으으음!”
그런데 사내가 갑자기 축 늘어졌다.
온 몸에 힘이 쭈욱 빠지면서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왼손이 잡혔지만 오른손이 자유스러우므로 시스테마 공식이라면 곧장 상대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가야 한다.
우으읍!
아무리 오른손에 힘을 주려고 했지만 소용없다.
내 신체의 일부가 아닌 듯 자신의 의지가 전혀 주먹에 전달되지 않았다.
급기야 사내는 축 늘어져 버렸다.
팔목에는 신문혈(神門穴)이라는 혈도가 있는데 사혈은 아니지만 강한 압력을 가하면 온 몸의 힘이 쭈욱 빠져 버린다.
무공을 익힌 무사일지라도 완맥이 잡히면 전신내공이 순식간에 흐트러져버린다.
운기를 해도 내기가 모이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무기력하게 변하는 것이다.
“놔! 놔!”
사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뻑!
옆구리에 권총수의 발길질이 가해졌다.
뚝!
사내는 얼어붙어 버렸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은 것이다.
권총수는 무릎을 꿇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더니 주머니를 뒤졌다.
사내는 몸만 움직일 수 없을 뿐 말은 할 수 있었으나 너무 충격적인 상황에 할 말을 잃어버린 듯 했다.
스슥!
사내의 주머니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권총수는 일어나 먼저 숨을 거둔 바위 뒤에 있는 사내를 찾아가 역시 주머니를 살폈다.
역시 없었다.
바렛 총알 12.7x99밀리 탄약 25발 말고는 신분을 확인할 증명서 따위는 지니고 있지 않았다.
권총수는 다시 사내에게 다가갔다.
2미터 정도 떨어진 바위에 주저앉은 권총수는 윗주머니에서 말보로 레드를 꺼냈다.
스윽!
담배 한 개비를 권하자 사내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뽑아 들었다.
딸칵!
권총수는 사내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자신도 한 개비 피워 물었다.
후우!
권총수는 뜨거운 열기가 쏟아지는 사막 위로 말보로 레드의 푸른색 연기를 내 뿜었다.
연초친화술(煙草親和術).
처음에는 생각 없이 권했는데 어느 한 순간부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장에서 담배를 권하면 자신을 노려보는 상대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에게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죽어가는 사형수에게 주어지는 삶의 마지막 온정 같은 것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후 적을 붙잡아 취조를 해야 할 때 담배를 이용했고 거의 대부분 원하는 바를 이뤘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외인부대 시절 죽어가던 악명 높은 IS 요원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는데, 그는 마지막까지 담배를 모조리 태우고 나서 권총수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앗 쌀라 말라이쿰(평화가 그대에게)’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비밀들이 흘러나왔다.
필터근처까지 완전히 피웠다.
권총수는 천천히 담배를 모래 속에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등 뒤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내의 표정은 볼 수가 없다.
도박이다.
저런 사내들은 절대 고문 따위에 주눅들거나 겁먹지 않는다.
더욱이 이슬람 근본주의자이다.
죽는 것을 알라의 품에 안기는 자랑스럽고 영광된 일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어 어떤 것도 통하지 않는다.
권총수는 모든 내공을 귀에 모았다.
사내에게는 바렛이라는 무지막지한 대물저격총이 있다.
일반 소총이라면 호신강기로 어떻게 생사의 승부를 벌여보겠지만 어지간한 철판도 뚫어 버리는 바렛이다.
바닥에 놓여 있기 때문에 총을 들거나 방향을 돌리면 모랫소리가 들리게 되어 있다.
괜한 짓 아닌가 싶은 후회도 들었지만 판이 크면 과감히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네쿠남, 사우디 군인이오.”
척!
등 뒤로부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총수는 걸음을 멈췄다.
엇!
돌아서는 순간 권총수는 다급성을 지르며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슈아아아!
그와 동시에 총성이 울렸다.
쾅!
권총수의 오른발이 사내의 손에 쥐어진 바렛을 걷어찼다.
주르르르!
사내의 귓 볼 아래쪽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29인치 총열을 가진 길이 140센티미터의 바렛이다.
사내는 자살을 시도했다.
권총수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자신의 이름과 정체를 밝히고 자살로 배신의 책임을 다하려고 한 것이다.
손이 닿지 않자 방아쇠에 나뭇가지를 끼워 넣고 발로 밟아 눌렀는데 나뭇가지가 툭 부러지면서 총이 흔들렸다.
목을 겨눈 총구가 옆으로 비켜나면서 총알이 귓불 아래를 스쳤다.
파팟!
재빨리 상처 주위의 혈도를 눌러 지혈을 한 권총수는 엎어진 랭글러 지프를 밀었다.
70년 내공이 실린 힘에 지프가 쿵 소리를 내며 원래대로 뒤집혔다.
사내를 앞좌석에 싣고 권총수가 차를 몰기 시작했다.
* * *
“출발해.”
검정색 포드 익스플로러 조수석에 앉은 일상복 차림의 사내가 소리쳤다.
부우웅!
경호차량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벤츠 승용차가 따라 붙었다.
검정색 포드 익스플로러가 선도하는 차량은 시속 90킬로의 속도로 달렸다.
포드 익스플로러, 그러나 지금 달리고 있는 검정색은 ‘블랙 포드’로 불린다.
포드 익스플로러의 기존 장판을 걷어내고 웬만한 소총에도 견딜 수 있는 철판을 덧입혔다.
언뜻 보면 미군의 전투차량 험비를 닮아 보이는데 사실 험비를 모델로 개조한 것이다.
거칠 것 없이 달리던 블랙포드가 멈칫했다.
오른쪽 시골길에서 4톤짜리 트럭 한 대가 나오고 있었는데 상당한 속도였다.
측면에서 본 도로로 들어오는 차량은 속도를 떨어뜨리고 주위를 한 번 살핀 뒤 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오른쪽 트럭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교차로 가까이 왔는데도 속도가 줄어들 기색이 없자 블랙포드 조수석 리더가 소리쳤다.
“저 자식 뭐하는 거야?”
빵!
빠아앙!
블랙 포드는 경적을 울리며 시골길에서 나오는 트럭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트럭은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저 새끼!”
조수석 사내가 재빨리 유리를 내리고 쌍안경을 이용해 트럭 운전자를 살폈다.
트럭 운전자는 좋은 일이 있는 듯 웃음을 지으며 핸드폰 통화를 하고 있었다.
“한 번 더 눌러!”
빵!
빠아아아아앙!
하지만 트럭 운전자는 이쪽으로 시선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블랙포드는 속도를 떨어뜨려야 했다.
“죽일 놈!”
리더는 발아래 놓아둔 기관단총을 꺼내 들고 달려나오는 트럭을 겨누었다.
그제서야 이쪽을 발견 한 듯 깜짝 놀라며 트럭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탄력이 붙은 트럭은 미끄러졌다.
블랙포드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교차로 진입 직전 멈춰 버렸다.
바로 그 순간 ‘꽈아앙!’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흔들리며 블랙포드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강력한 폭발은 밑바닥까지 보강한 블랙포드의 철판을 뚫고 들어와 뒷좌석에 앉은 콧수염을 한 사내의 옆구리를 찢어 버렸고 리더인 조수석 사내의 오른쪽 발목을 날렸다.
급조폭발물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이다.
덜컹!
트럭이 멈추고 차에서 세 명의 사내가 내렸다.
엄청난 폭발이었는데도 블랙포드는 생존자가 있었다.
나동그라진 블랙포드 밖으로 기어나오는 경호원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륵!
피범벅이 되어 기어 나오던 두 사내가 축 늘어지면서 총소리가 멈췄다.
세 명의 사내들은 천천히 벤츠를 향해 걸어갔다.
세 사내가 총구를 겨누었지만 벤츠는 꼼짝하지 않았다.
가운데 선 비렌드라가 피식 웃는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나보군.”
미리 준비 해온 듯 사내는 주머니에서 물렁한 회백색의 덩어리를 뒷문 손잡이 근처에 붙이더니 줄을 늘어 뜨려 뒤로 10여미터 물러났다.
그리고 늘어뜨린 두 개의 전선을 접촉하자 퍼억!하는 소리가 들리며 차량 문이 밀려나왔다.
덜컹!
비렌드라는 거칠게 문을 열어 젖혔다.
세 사람의 총구가 뒷좌석에 앉은 눈처럼 흰 칸두라를 챙겨 입은 쉰 가까운 남자에게 향했다.
“가시죠.”
“자네들은 누군가?”
초로의 사내가 물었다.
비렌드라가 피식 웃었다.
“스스로 나오긴 싫다?”
퍼억!
비렌드라가 머리에 쓰고 있던 구트라를 잡아당기자 초로의 사내는 차 밖으로 나뒹굴었다.
멈칫!
돌아서려던 비렌드라가 고개를 쳐 박고 벌벌 떨고 있는 운전사를 보더니 피식 웃고 돌아섰다.
“서둘러! 경찰 올거야.”
사내들은 트럭을 타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트럭이 떠나고 20여분 정도 지나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 두 대가 나타났고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무장병력을 실은 군용트럭이 나타났다.
무장병력들이 사주 경계에 들어갔고, 그중 대위 계급장을 한 군인이 문이 열려 있는 벤츠승용차로 다가갔다.
운전사는 이미 경찰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 뒷좌석으로 상체를 집어넣어 스윽 한번 훑더니 이번에는 열린 문을 살폈다.
“콤포지션(Composition)3.”
대위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담장은 군데군데 넘어졌고, 지붕을 덮은 회색 기와는 여기저기 깨지고 금이 간데다 마른 잡초가 듬성듬성했다.
화드득!
마른 잡초사이로 먹이를 찾던 사막딱새 십여 마리가 인기척에 도망쳤다.
벤츠에 타고 있던 초로의 사내가 버려진 사원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 뒤로 비렌드라 일행이 따르고 있었는데 초로의 사내는 흘긋 낡은 사원을 바라보았다.
인적이 끊긴 사원에서는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초로의 사내는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간파한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가 보세요.”
비렌드라의 말에 초로의 사내가 돌아본다.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세 사람은 자신들 할 일은 다 끝났다는 듯 담장가에 서 있는 늙은 대추야자나무 아래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초로의 사내는 다시 한 번 길게 심호흡을 한 뒤 사원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듯 연한 자줏빛이 감도는 사원 출입문을 밀었다.
끼기긱!
문을 걸어 세우는 쇠붙이에 녹이 두껍게 슨 듯 돌아가는 것이 뻑뻑했다.
리야드에 수많은 회교사원이 있지만 이렇게 낡고 오래된 사원이 있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코끝으로 퀴퀴한 냄새가 밀려들었다.
캄캄할 것 같았는데 깨진 창문을 통해 석양이 들어오면서 사원 내부가 드러났다.
사삭!
딱정벌레가 소스라치며 도망을 갔고 잔뜩 화가 난 듯 데스스토커 전갈이 꼬리를 들어 올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물리면 위험할 만큼 독성이 강한 전갈이다.
흠칫!
초로의 사내가 돌아서다 화들짝 놀랐다.
한 사내가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이었으므로 한참을 살피듯 바라보았다.
오른쪽 발을 왼쪽 허벅다리 위에, 왼쪽 발을 오른쪽 허벅다리 위에 놓고 상체를 똑바로 세우며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 것이다’
언젠가 인도를 여행하던 중 어느 사원에서 보았던 사람.
황금동상의 인물, 그곳 사람들은 그가 바로 그 유명한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불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눈앞의 사내가 석가모니불은 아닐 것이다.
“어엇!”
이번에는 입 밖으로 비명을 흘러내고 말았다.
머리 위로 파란 색 불꽃이 어른거렸다.
완전한 파랑색은 아니었는데 얼핏 말보로 레드를 피우면 나오는 연한 푸른색과 비슷했다.
아지랑이처럼 이글거리며 머리 위를 타오르는 푸른 열기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