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무덤에서 소환(2)
마낙춘은 윤태섭의 빈 잔에 두 손으로 술을 채웠다.
“권력을 거머쥐는데 어찌 밝은 길, 깨끗한 길만 가겠습니까? 정적을 치고 뭉개려면 피를 묻혀줄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죠. 윤 수석님이 아니었다면 전 절대 대통령님께서 청와대 주인이 될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태섭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자신에 대한 극찬이다.
그런데도 표정이 굳어지는 건 단순 무식한 건달인줄 알았는데 자신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처럼 권철태를 대통령 만들기 위해 그의 손에 묻힌 수많은 피는 일일이 나열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마낙춘을 동원하여 오동춘이라는 사내를 제거한 것이었다.
마낙춘이 손목 시계를 보았다.
그건 바쁘니 부른 용건을 빨리 말하라는 재촉이었다.
“오르막도 아니고 이제 내리막이잖습니까?”
오르막길은 힘들다.
대통령이 되는 길은 거의 수직절벽일 만큼 위험하고 오르기 쉽지 않은 길이다.
그런데 이제 대통령 직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니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도 없을 것 아니냐는 말이다.
“놀랍군. 나까지 완전히 속였어. 허허! 이제 보니 내가 자네를 이용한 게 아니라 자네가 날 가지고 놀았군.”
마낙춘은 빙긋 웃는다.
“감히, 전 그냥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입니다.”
“오동춘이 살아있네.”
팍!
배짱 좋기로 소문난 마낙춘이 들어 올리던 소주잔을 떨어뜨렸다.
“무슨 말씀입니까. 오동춘이 살아 있다뇨. 분명 내 두 눈으로 머리가 깨져 죽은 걸 봤습니다.”
“보게!”
윤태섭은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그가 메일을 보냈더군.”
촤악!
마낙춘은 재빨리 종이를 펼쳐 프린터 된 내용을 읽었다.
부르르!
종이를 쥔 손이 떨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는 죽었습니다."
그때 바깥으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수석님!”
“들어와!”
문이 열리고 훤칠한 체격의 두 사내가 들어섰다.
마낙춘은 한 눈에 두 사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매우 거친 냉기가 풍겨 나온다.
‘경호원들은 아니다’
그들은 부드러우면서 단정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데 눈앞의 두 사내는 전혀 다르다.
‘그렇군. 국정원이다’
윤태섭이 수육을 입 안 가득 넣고 씹었다.
“어떻게 됐나? 그를 제거했다고 했잖는가? 그런데 이런 메일이 왔네. 아무리 생각해도 채명천이라는 친구 말고는 이런 메일을 보낼 놈은 없어.”
마낙춘의 눈이 심하게 흔들린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놓쳤습니다.”
“무슨 말인가?”
“놈이 잠적해 버렸습니다. 마누라와 아들을 24시간 감시하고 전화까지 도청하고 있는데 아직 종적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 사건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몰라서 거짓말을 해.”
와장창!
윤태섭이 탁자를 뒤집어 버렸다.
윤태섭을 태운 택시가 싸리 집을 떠났다.
떠나는 택시를 향해 허리를 구부린 마낙춘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사방은 완전히 어두워 졌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꼼짝 않고 담배를 피우던 마낙춘이 천천히 차도를 따라 만들어진 인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채명천이라고’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20대 초반 마낙춘의 칼은 용서가 없었다.
이름하여 ‘은자(隱者)의 까마귀’ 광주가 본향인 국제PJ파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은밀한 칼잡이로 그 바닥에서 공포적인 존재였다.
국제 PJ파는 국내 조폭 3대 패밀리로 불리는 서방파, 양은이파, OB파가 몰락하면서 호남제일의 세력으로 부상했고 서울의 강남일대를 장악하여 불법 카지노, 재건축, 각종 이권사업으로 덩치를 키웠다.
바로 그때 당시 들었던 이름이 채명천이었다.
관할은 아니었지만 강북에서 활동하는 국제PJ파는 거의 몰살지경에 이르렀는데 바로 종로경찰서 강력계 형사 채명천 때문이었다.
조폭들 사이에서는 채명천의 표적이 되면 반드시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말이 나돌 만큼 지독했고 끈질겼다.
오죽했으면 조직 상층부에서 채명천을 손보니 마니 하는 회의가 열렸을 정도였다.
공권력 앞에 조폭은 무조건 몸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마낙춘에게는 24시간 비상이 걸려있었다.
언제든지 조직 수뇌부에서 사인을 보내면 채명천을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툭!
마낙춘은 담배꽁초를 하수구 맨홀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어이가 없네. 날 더러 책임지고 채명천을 손보라고?”
마낙춘은 길가에 가래침을 뱉었다.
“아직도 날 개 호구로 아는구만, 내가 짖으라고 하면 짖는 개새끼인줄 알아.”
‘자네를 믿네’
칵!
마낙춘은 가래침을 뱉었다.
“그래, 썩어도 준치라고 석양의 권력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은 놈 하나 날리는 건 식은죽 먹기다 이거지.”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지만 현실을 받아 들여야 했다.
“택시!”
마낙춘은 달려오는 택시를 세웠다.
“서초동 갑시다”
부우웅!
마낙춘을 태운 택시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채명천은 한 사내와 마주 앉아 있었다.
상대는 KBC 방송국 사회고발 프로그램 ‘PD노트’조연출인 이복동이었다.
사내는 노트북을 펼쳐 놓고 열심히 화면을 살피고 있었다.
채명천이 USB 한 개를 넘겨주었고 지금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읽어 보는 중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이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복동의 표정을 보며 채명천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오랫동안 PD노트를 제작해 오면서 자신들만의 안목이 생겼을 것이다.
딱 보면 방송 감이 된다 안 된다 알 수 있다.
이복동은 지금 자신이 읽고 있는 자료가 가슴이 뛸 만큼 폭발성을 갖고 있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실례지만 선생님과 대통령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채명천은 빙긋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는 않았다.
“프로그램 제작이 가능한지 아닌지만 말해주면 됩니다.”
“솔직히 제 판단으로는 가능성은 아주 높습니다. 하지만 일단 회사로 들어가 담당 PD님께 보고하고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회의가 열릴 것입니다.”
“그렇겠죠. 다른 사람도 아닌 청와대를 직접 때리는 방송인데.”
채명천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선생님 연락처를 주고 가셔야죠.”
“걱정마쇼. 때가 되면 내가 전화에서 물어 볼 테니까.”
채명천은 빙긋 웃으며 커피숍을 나섰다.
어제 내린 눈으로 거리는 지저분했다.
첫 눈 치고 폭설이 되어 버려 온 도시가 마비되다시피 했는데 오후가 되면서 도로가 정리되면서 차량이 늘었다.
갑자기 술 생각이 난다.
그다지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 사건을 청부 받으면서는 더욱 술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한 잔만 하자.”
태평주유소에서 크게 부상을 당한 이후 종적을 감췄다.
정면대결은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들이기 때문이었다.
“족발 작은 것 하나하고 소주 한 병 주시오.”
시장 좌판에 앉았다.
칠십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족발을 자르고 손으로 뜯어 접시 가득 담아 내밀었다.
딱!
소주병 마개를 따고 잔을 채운 뒤 첫잔을 비웠다.
크으!
빈속에 들어간 첫잔의 소주는 목구멍을 태우는 듯 했다.
또르르!
다시 잔을 채운 뒤 소주병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어 족발 한 점을 새우젓에 찍어 입속에 넣었다.
새우젓이 주는 짭조름한 맛과 적당히 질긴 족발의 육질이 입을 가득 채웠다.
‘잘 되겠지’
작은 소리로 중얼 거렸다.
욱일승천의 권철태가 아니다.
그는 이제 급속하게 식어가는 석양일 뿐이다.
방송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방송 이전에 소문이 현 정부 관계자들에게 전달 될 가능성이었다.
쭈욱!
두 번 째 잔을 비웠다.
채명천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대통령 측근들 귀에 들어가면 자신에게 연락이 오게 되어 있다.
어떤 형태의 연락이 올지 매우 궁금하고 은근히 기다려진다.
여러 가지 상황을 그려놓고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붉은 사막 위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르르륵!
드륵!
실제 사람크기와 똑같은 마네킹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50미터 이동사격 준비.”
KAS가 만들어 놓은 사격장이다.
붉은 황토와 마른 풀잎이 뒹구는 암석 사막이다.
일반 부대의 사격장과 달리 사막의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표적지만 신경을 써서 만들었을 뿐 사수들은 바위와 말라 죽은 나무들을 은폐 엄폐삼아 방아쇠를 당겼다.
쓰으으으!
5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를 두고 마네킹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면에 쇠파이프로 된 레일을 깔고 그 위로 마네킹이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 놓은 통제실에서 마네킹의 속도를 느리고 빠르게 통제할 수 있었다.
두둑!
드르륵!
마네킹들이 3미터 간격을 두고 나오기 시작했고 총을 거머쥔 사수는 비렌드라 혼자였다.
나머지 동료들은 조금 떨어진 커다란 바위 그늘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드르륵!
집중 사격에 마네킹은 산산 조각이 되었다.
레일에 설치된 마네킹은 계속 나왔고 비렌드라는 여지없이 박살냈다.
“다음은 약진 사격!”
뛰어가는 적을 노리는 사격이다.
약진 사격은 시가전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데 2차선 4차선의 폭 좁은 도로를 빠르게 달려가는 적(횡단하는데 대개 2초에서 4초 소요된다)을 제압하기 위함이다.
두루루루!
마네킹들이 이동했는데 확실히 빠르다.
파파팍!
총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오면서 마네킹의 머리가 날아간다.
지켜보는 권총수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외인부대 시절 비렌드라의 사격능력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유난히 오늘따라 더 빛난다.
사격에 힘이 넘친다.
힘이 넘친다는 건 한 발 한 발에 자신의 혼을 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역 때보다 더 살아 있는 사격을 보여주는 건 필시 50만 달러라는 연봉 때문일 것이다.
돈은 프로의 능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네 사람은 공히 50만 달러의 연봉에 사인을 했다.
나카야마는 연봉이 50만 달러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얼굴을 꼬집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들이 연봉 50만 달러를 거머쥐는데 권총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스톤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외인부대 출신인데 한 사람당 50만 달러를 달라는 말인가?”
SAS나 네이비 씰, 델타포스로 불리는 이른바 특급으로 분류되는 그곳 전역자들도 최소 2,3년 근무해야 50만 달러를 넘어선다.
그런데 외인부대를 막 전역한 네 사람에게 50만 달러를 달라는 권총수의 요구는 과했다.
스톤스는 잠시 숨을 돌리려는 듯 비서가 가져다준 냉수를 마시더니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자신 있나보군?”
스톤스는 더 이상 입씨름 하지 않았다.
“좋아. 오 케이 일세.”
스톤스는 웃었다.
아무도 자신들이 그토록 많은 연봉을 받게 되는데 권총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오민철도 모르는 사실이다.
순서대로 돌아가며 사격을 했는데 투쟁적이고 적극적이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통제관 하워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군’
SAS 출신이다.
자신도 처음에는 외인부대라는 말에 시큰둥했다.
그러나 미츠이 건설 현장 사건을 통해 그들의 전략과 전술을 다시 봤고, 오늘 사격은 화룡정점이다.
‘모자람이 없다’
비렌드라에 이어, 피아퐁이 나섰고, 나카야마와 오스카르, 오민철이 각기 30발들이 탄창 다섯 개씩 150발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