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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28화 (128/651)

제128화: 감비노 패밀리(2)

알포드는 담담이 웃었다.

“나도 소식 들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도움을 줄 방법은 없을까 싶어 만나자고 한 것이지요?”

마치 아주 좋은 계책이라도 가져온 듯 한 나직한 목소리에 프린스 눈이 좁혀졌다.

워낙 권모술수에 능한 노회한 정치인이다.

전쟁터보다 더 한 곳이 정치권이다.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끝없이 덫을 놓고 기회를 잡았다 싶으면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어쩌면 손에 피만 묻히지 않을 뿐 전쟁터보다 더 잔혹한 정치권에서 4선을 할 정도면 자신이 모르는 뭔가 또 다른 능력이 있을 것이다.

“한국 놈이라던데?”

“한 놈입니다.”

“그곳 속담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 물을 흐린다고 합니다.”

프린스는 매우 적절한 속담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있는 정치 바닥을 어찌 보십니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만 점잖고 말끔하지 하루 종일 상대를 죽일 생각만 하는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 또한 손에 더러움을 적지 않게 묻혔소. 회장님 내가 좋은 비책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알포드 의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매우 차갑고 섬뜩했다.

오랜만에 뉴욕에 왔다.

삼십 년 전 일이지만 당시 일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했다.

작전명 ‘사막의 폭풍’으로 불리던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징벌하기 위해 선전포고를 하고 판에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부대는 네이비 씰이었다.

미군 전투기들의 공습을 유도하기 위해 적진에 침투하여 목표물 전파 수신기를 설치하는 일이다.

이름하여 ‘바람개비 작전'이었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라크 대공미사일 기지를 완벽하게 파괴한 것이다.

공훈을 인정받고 전쟁이 끝난 뒤 포상휴가를 받았다.

휴가 때 뉴욕 사는 동료의 집에서 며칠 묵었는데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러나 오늘 뉴욕행은 다른 일이 있어 왔다.

‘아주 흥미롭고 매력적인 일입니다.’

알포드 의원은 가급적이면 수행원 없이 혼자 다녀올 것을 주문했다.

피식!

택시에 앉은 프린스는 가볍게 웃었다.

정치인인이란 화려함 뒤에 음습하고 어두운 검은 손길들이 치열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과도 손이 닿고 있다는 건 상당한 충격이었다.

‘훗! 정치인들이 그들과도 거래를 하다니.’

프린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달러를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군.’

“여기가 메올린 성당입니다.”

택시가 멈췄고 프린스는 차에서 내렸다.

캄캄했지만 100여 미터 맞은편으로 조그만 성당이 보였다.

뉴욕이라고 하지만 마치 조용한 시골에 와 있는 듯 포플러나무와 어른이 손바닥을 펴 놓은 듯 커다란 잎을 가진 설탕단풍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택시 안에서 보았던 끝없는 밤의 네온사인들도 여기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좁은 도로를 건너 성당을 향해 걸어갔다.

잘 단장된 잔디밭 사이로 울퉁불퉁한 자갈돌을 박아 포장한 길은 마치 로마 바티칸 성당을 들어가는 기분이다.

척!

걸음을 세웠다.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붉은 벽돌과 구운 회색벽돌을 섞어 지었으며 연꽃의 오목선과 볼록선을 잘 살린 첨두식 아치로 된 입구는 어딘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이다.

끼이익!

나무로 된 문을 밀고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중앙 제대로 향하는 통로가 나타났다.

제대 뒤쪽 십자가가 보이고 아래 붉은 등이 켜져 있는데 그건 성체가 안에 모셔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좌우 벽 쪽으로 촛불들이 켜져 있었는데 프린스는 맨 앞 의자에 앉아 묵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가운데 통로를 걸어가며 일부러 구두 발자국 소리를 힘주어 냈는데도 사내는 꼼짝하지 않는다.

마치 지은 죄가 너무 많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열성신자의 고해성사를 보는 듯 했다.

프린스는 통로 좌측 의자에 앉았다.

고개를 들어 전면 벽에 세워진 못 박힌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성당하면 한 가지 트라우마가 있다.

여섯일곱 쯤 되었을 것이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아버지 손을 잡고 처음 성당을 찾았는데 모든 게 신비했다.

특히 머리에 하얀 미사포를 쓰고 고개 숙이며 앉아 있는 신자들은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그러다 앞을 주시하던 프린스는 소스라쳤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이 어찌나 무서웠던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었다.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사내는 전면에 걸린 십자가를 보며 말했다.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버는 분께서 우리에게 사람 한 명 죽여 달라고 의뢰를 해오다니 말입니다.”

“우리에겐 인파이터가 없습니다.”

사내는 움찔했다.

“아웃 파이터 뿐이죠.”

수십 수백 미터의 거리를 두고 싸우는 전쟁의 기술자는 많지만 생활 속에 들어와 방아쇠를 당기는 킬러는 없다는 뜻이었다.

“듣고 보니.”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총을 쏘고 포격을 쏟아 붓는 시끄러운 전쟁은 아카데미가 앞서겠지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찾아가 죽이는 방문 살인은 아무래도 우리 감비노를 당하지 못하지.”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오래전부터 뉴욕에는 다섯 곳의 가문이 있었다.

감비노 패밀리.

보난노 패밀리.

루체세 패밀리.

콜롬보 패밀리.

제노배세 패밀리.

이름하여 마피아 5대 패밀리인 것이다.

미국 마피아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에 뿌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중 감비노 패밀리는 미국 마피아를 대표할 만큼 강력하고 치밀한 조직도를 갖고 있다.

마피아는 삼합회나 야쿠자처럼 많은 조직원을 두지 않는다.

대부분 300명을 넘지 않는 조직원으로 운영되는데 범죄학자 ‘실링’박사는 마피아 조직원이 적은 이유를 배신자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적은 인원일수록 하는 일이 많아지고 댓가 또한 톡톡하게 보상되기 때문에 조직을 등질 배신자 발생이 적어진다는 것이다.

감비노는 브르쿨린, 퀸스, 맨해튼, 스태튼 아일랜드, 롱아일랜드, 그리고 뉴욕 말고도 뉴저지 주, 뉴욕 주 웨체스터 카운티, 라스베이거스, 코네티컷 주, 그랜드래피즈 시, 미시간 주, 플로리다 주, 로스앤젤레스등 거의 미국 전역을 활동권에 놓는다.

다른 범죄조직이 그러하듯 감비노 패밀리도 수많은 두목들이 권좌에 올랐지만 배신과 보복으로 삼일천하라는 말이 돌 만큼 자주 바뀌었다.

1910년에 살바토레 다퀼라가 감비노의 원조가 되는 조직을 만든다.

그러나 현재의 감비노 패밀리가 만들어진 건 1957년이다.

다퀼라에 이어 1931년에 빈센트 망가노가 두목이 되었는데 1951년 루키 루치아노와 결탁한 자신의 부두목 앨버트 아나스타시아에게 죽는다.

이어 1957년에 아나스타시아를 제거하고 한 남자가 나타난다.

카를로 감비노, 바야흐로 감비노 패밀리의 시작을 연 셈이다.

그는 두목에 올라서자마자 철저한 규율을 정하고 분명한 신상필벌로 조직을 운영했다.

1976년에 사망할 때까지 19년간을 군림하여 당대 미국 마피아 패밀리 중 가장 강력한 파벌로 만들었다.

감비노 패밀리는 현재에도 전 시대를 걸쳐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미국 마피아 패밀리로 남아있는데 웬만한 상장기업들 보다 막강한 부를 축적해 감비노 주식회사(Gambino Corporation)로도 불린다.

“도메니코 세팔루입니다.”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60이 넘어 보이는 노 신사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비노 패밀리의 현 두목은 피터 고티이다.

하지만 그는 장기 징역형을 선고 받고 복역중이어서 눈 앞의 세팔루가 실질적인 감비노 패밀리를 이끌어간다.

감옥에 있는 피터 고티 두목시절보다 조직을 세 배 이상 키워내 사업가적 역량도 증명이 됐다.

프린스가 놀라는 건 실질적인 두목인 세팔루가 직접 나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귀한 분께서 직접 오시는데 뛰어나가 마중하지는 못해도 뵙고 인사는 드리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말입니다.”

두 사람은 마주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성당을 나와 인근 숲을 산책하여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흰색의 궁전은 언뜻 백악관을 닮았다.

사막의 나라임을 잊게 만들 만큼 푸른 잔디가 깔려 있었고 길옆으로는 잎사귀 푸른 코르크 참나무, 올리브 나무, 무화과 나무도 보인다.

차에 타고 있는 모두가 입을 쩌억 벌렸다.

“여기 사우디 맞지?”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사막이라는 냄새나 분위기는 전혀 발견 할 수가 없을 만큼 숲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두 개의 두꺼운 대리석 기둥이 처마를 떠받치고 있는 현관에 차가 멈추고 일행은 내렸다.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사내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이슬람 복장이다.

왕궁은 사우디 경호원들이 맞는다.

일행은 출발하기에 앞서 핸드폰까지 모두 반납했으며 두 번째로 금속탐지문을 통과했다.

파흐드 왕세자의 비서 사물란은 미소로 일행을 안내했다.

호기심 많은 오민철이 질문을 던지면 찌푸리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비서를 보면 그가 모시고 있는 사람의 품성을 짐작할 수 있다.

권총수는 파흐드 왕자가 소문보다 훨씬 정적인 사람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양탄자 죽인다.”

오민철이 발목까지 빠지는 붉은 양탄자를 보며 감탄했다.

“민철!”

나카야마가 나직한 소리로 오민철을 불렀다.

“쪽발아 왜?”

“이게 어디 양탄자인줄 알아?”

“돈 많은 파흐드 왕자가 중국산을 쓰지는 않을 테고, 이태리, 프랑스?”

“이란!”

모두가 돌아보았다.

“페르시아 양탄자가 유명하다는 건 알거야. 그러나 좀 더 좁히면 이란산이 지금 국제시장에서는 가장 고가야. 주위 다른 나라 것과는 비교가 안돼. 이건 이란산이야. 한 장에 억대를 넘기지. 내가 양탄자에 대해 조금 아는 편인데 최고급이야.”

모두가 와아아 하는 얼굴로 바라보자 나카야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물란이 넓은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는데 한쪽에 사우디 국기가 걸려 있고 커다란 원탁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사물란은 한쪽 원탁에 세 명 다른 쪽은 네 명이 앉도록 자리를 배정했다.

전면으로 흰색의 커다란 의자가 놓여 있다.

한눈에 이 방의 주인 자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일곱 사람은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기다렸다.

넓은 방안은 무거운 정적이 흘렀는데 누군가 급히 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슬람복장을 한 사내가 입구에 나타났다.

“왕세자님께서 오십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잠시 후 발끝까지 내려오는 칸두라에 풍성한 구트라를 머리에 쓴 쉰 초반의 인물이 들어섰다.

파흐드 왕세자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악수 합시다.”

오민철부터 차례대로 악수를 했다.

파흐드 왕자는 두 손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꼭 감싸쥐며 환영한다고 했다.

악수를 끝낸 파흐드 왕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때 뒷문이 열리고 요리사 복장을 한 남자들이 흰색의 보자기에 덮인 카트 하나를 밀고 들어왔다.

보자기를 젖히자 형형색색의 과일이 있었다.

요리사들은 권총수 일행이 앉은 탁자에 과일을 올려놓고 찻잔에 붉은 홍차를 따라주었다.

“구경하는 것 아닙니다. 편하게 드십시오.”

파흐드 왕자가 가벼운 농담을 했다.

후루룩!

역시 오민철이 가장 빨랐다.

홍차를 소리내며 마셨는데 그다지 인상이 밝지 못한 것이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형, 인상을 쓰면 어떡해’

권총수의 전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오민철은 화들짝 놀라며 환한 표정을 짓기 위해 열심히 김치를 중얼 거렸다.

“에반 지사장님!”

파흐드 왕세자는 가장 앞에 앉아 있는 에반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에반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입니다. 당분간 공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긴 연거푸 당했으니 상당히 당황하겠지요.”

파흐드는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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