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감비노 패밀리(1)
자신의 경험과 상식에 의하면 숨기는 것이 정상이었다.
“화력이 약할 땐 부비트랩이나 급조폭발물을 이용해 일단 적의 사기를 꺾은 뒤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일반적인데?”
맞는 말이었다.
인원과 화력이 밀리는 쪽이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은 극히 제한적이다.
1차로 여러 가지 함정과 매복으로 적을 흔들어 놓은 이후 대면 교전을 하는 것이 작전의 정식 수순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 없이 공사장용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한 이유는 뭘까.
“사실 당신 말처럼 부비트랩이나 IED(급조폭발물)를 설치할까 생각 했소. 하지만 보다시피 우리가 방어해야 할 지역이 너무 넓죠. 적은 인원과 모자란 화력으로는 이 광범위한 지역을 커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래서 다이너마이트를 떠올린 것이오?”
“다이너마이트면 얼마든지 오밀조밀 묻을 정도의 양이 있습니다. M15 대인지뢰나 IED정도의 위력은 없겠지만 최소한 크고 작은 타격은 충분히 가할 수 있습니다. 운 없는 사람은 다이너마이트에 의해 죽기도 하겠지만, 분명한 건 사람이라는 동물은 매우 묘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특수 부대 출신이라고 해도 부상을 당하면 순간적으로 멘탈이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상대를 졸(卒)로 봤는데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이성은 사라지고 감정이 앞서면서 통제력을 상실합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흥분하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죠.”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맥보란과 리베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바그다드 공항이다.
두 사람의 얼굴은 올 때와는 사뭇 달랐다.
가뜩이나 과묵한 리베라는 아예 입을 닫아 버렸는데 몹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서기관님.”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리베라였다.
“왜 그자는 모든 속내를 털어 놨을까요?”
맥보란은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자신감이겠지.”
“우리 입을 통해 아카데미에 모든 내용이 전달될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요.”
“전달되기를 바라고 한 얘기일 거야.”
“네?”
“내가 말했잖나. 할 테면 한 번 해보자. 이번엔 이 정도 선에서 끝나지만 한 번 더 KAS를 공격하면 그때 바닥의 룰이고 뭐고 철저히 깔아뭉개 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거야. 국가와 국가간의 정규전은 첨단 과학장비가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식의 소규모 게릴라전은 잔머리 싸움이다 뭐 그런 자신감.”
“평범한 친구는 아니군요?”
“한때 우리도 접촉을 했지. 제3자를 시켜 속마음을 떠 봤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
“랭글리에서도 끌어 들이려고 했단 말입니까?”
맥보란은 피식 웃었다.
“물론 민간 보안업체들처럼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지는 못했지. 하지만 미국 시민권을 포함해 특1급 외교관에 가까운 여러 가지 특혜를 약속했는데.”
“돈이 적어서 거절한 것입니까?”
“미국이란 나라 자체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네.”
맥보란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적인가 아군인가.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보통 사내라면 모를까 범상치 않는 인물이라면 회사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맥보란에겐 권총수는 이미 반드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준비를 해 놓아야 할 거물이었다.
* * *
리야드 공항에 권총수와 외인부대 동료들이 내렸다.
멀리서 에반이 다가왔다.
에반은 모두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는데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수고들 많았네.”
아직 전쟁이 끝난 건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 엄청난 위기가 몰려 올 가능성이 컸다.
에릭 프린스가 결코 이대로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복수를 할거야.”
검정색 밴을 타고 리야드 시내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올까요? 호되게 당한 터라 이번처럼 대충 찾아오지는 않을 테고?”
뒤에 앉은 오민철이 조수석에 앉아 있는 에반을 주시했다.
에반은 대답을 하지 않고 담배를 물었다.
딸칵!
앞 유리를 조금 내리더니 길게 연기를 내뱉었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에릭 프린스라는 사람의 기질이 누구에게 얻어맞고 사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회의가 열렸다.
정확히 여덟 명이 앉아 있었다.
외인부대 동료 네 사람과 권총수와 오민철, 그리고 KAS 소속 파흐드 왕세자 경호 책임자였던 모리스와 지사장 에반이었다.
전면 벽에 걸린 스크린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지도가 걸렸는데 붉은 깃발과 검정 깃발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검정색이 붉은 깃발보다 세배 정도는 많았다.
“비교하기가 낯 뜨겁군.”
오민철이 실소를 지었다.
검정색 깃발은 아카데미인데 KAS의 붉은 깃발보다 세 배는 많았다.
깃발 아래에 근무하는 인원과 보유화기가 기록되어 있었는데 기관총은 기본이고 MK153, 이른바 다목적 휴대용 로켓발사기와 M-ATV(구형 험비의 단점을 보완한 개량형)도 서너 대씩 보유하고 있다.
전술기동차인 험비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민간보안기업에서는 탱크로 인정해도 무리가 없는 장비이다.
그에 반해 붉은 깃발 아래에 메모하듯 적힌 글씨는 거의가 M4가 절대다수이다.
기관총 정도는 각 근무지마다 한 두 정씩 있지만 그 이상의 중화기는 없었다.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권총수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자 에반이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권총수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보안업계 싸움이라는 것이 탱크에 전투기가 동원되는 전장이 아닙니다. 최대한 소리 없이, 흔적 나지 않게 죽이고 죽는 암습 작전, 이른바 게릴라전입니다. 뒷골목 싸움의 승패를 좌우 하는 것이 뭡니까?”
“칼이지 뭐.”
히말라야 눈 사나이 비렌드라가 등을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
“맞아. 칼이 뒷골목에서는 제식무기야. 반면에 게릴라전에는 총이 최곱니다. 민간인들이 활보하는 도시에서 기관총을 난사하고 로켓을 발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하죠. 그냥 힘의 우위를 갖고 있다는 걸 과시하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권총수는 담뱃재를 털며 말을 이었다.
“제대로 된 총 하나면 됩니다.”
파흐드 왕세자 KAS경호팀장 모리스의 시선이 빛난다.
처음 왔을 때는 그저 신입이려니 했다.
물론 소문은 들었으나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다.
그런데 곧바로 자신들을 공격했던 알 살만 왕세자의 경호대장 바큘라를 단순한 폭탄이 아닌 대전차 지뢰로 흔적도 없이 보내버렸다.
자신도 폭파 주특기를 갖고 있지만 대전차 지뢰를 이용해, 그것도 운전석 의자 아래에 설치하여 제거할 만큼 뛰어나지는 못하다.
거기에 이번 아카데미의 미츠이 건설 습격 사건도 완전하게 정리해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또 허를 찌르는 대책을 제시했다.
‘총!’
너무 흔해서 그렇지 전쟁터에서 총보다 더 중요한 무기는 없다.
총은 모든 무기의 중심에 있다.
전투기를 이용한 공중폭격,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기갑 공격, 항공모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 모두 전쟁터의 지원무기 일 뿐이다.
이기고 지는 건 보병의 총구가 결정한다.
총이라는 무기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한 연구와 전략 전술에서의 중요도가 어느 정도인지 한 번도 고민 따위는 해보지 않았다.
‘제대로 된 총 하나면 게임은 끝난다.’
갑자기 등골이 싸아 해졌다.
너무 정확한 말이다.,
F-35스텔스 전투기가 수백 대면 뭐할 것인가.
용병 시장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꿀꺽!
한참 늦게 들어온 후배가 거칠 것 없이 작전을 지휘하고 설계하는 모습이 솔직히 못마땅했다.
더욱이 자신은 씰 출신이고 권총수는 외인부대다.
하지만 현실은 분명해졌다.
그는 대전차 지뢰로 바큘라를 없애 버리며 끝없이 추락할 위험에 처해 있던 KAS를 극적으로 건져 올렸다.
거기에 아카데미가 작정하고 시작한 복수혈전을 되받아 쳤다.
‘인정’
모리스는 느릿하게 담배를 피워 문다.
* * *
노스캐롤라이나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내는 두꺼운 시가를 물고서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창백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한 느낌이 드는 얼굴이 오늘은 더욱 희었다.
마치 얼굴에 분을 발라 놓은 듯 했다.
‘헛헛!’
나직히 쓴 웃음을 지었다.
‘스카우트 실패가 이렇게 큰 데미지로 돌아올 줄이야’
당시 유난히 천만 달러를 줘서라도 붙잡을 가치가 있는 사내라고 강조한 회사 직원이 있었다.
물론 자신의 입에서는 호통이 터져 나왔다.
‘여기가 무슨 메이저리그 구단인줄 알아’
전쟁사업으로 돈을 벌었지만 용병들 몸 값이 쓸데없이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몸 값 폭등의 주원인은 쓸만한 자원은 한계가 있고 일거리는 많기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
특히 자신이 가장 앞장서서 몸 값을 올렸다.
보안업의 생명은 직원들의 능력이 절대적이다.
그렇다면 특수부대 전역자들을 잡아야 하는데 전 세계에 군인은 많아도 용병시장에서 쓸만한 능력을 가진 올림픽 급 군인들은 한정되어 있다.
특수부대, 그중에서도 인정해줄 만한 부대는 손가락에 꼽는다.
가뜩이나 적은 자원인데 어설픈 가격을 제의했다가 다른 회사에 빼앗기면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더욱 고액 배팅으로 치고 나갔고 시장을 거의 쓸었다.
덕분에 이제 세계제일의 민간 보안업 회사 랭킹 1위에 올랐지만 후유증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요즘 아카데미 용병들의 활약이 너무 부진하다는 것이다.
오십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직원들 11명이 불과 두 달 사이에 죽었다.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들어간 돈을 차라리 권총수 스카웃에 쏟아 부었다면 얘긴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 후회라지만 오늘따라 그를 놓친 것이 뼈를 때린다.
콱!
주먹을 쥔다.
‘어쨌든 전쟁은 일어났고’
두 눈이 타올랐다.
‘반드시 이겨야지’
그때 지이잉! 소리가 들리며 비서가 인터폰을 했다.
“회장님! 알포드 의원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모셔요.”
노스캐롤라이나 주 상원의원이다.
올해로 4선 의원인데 워싱턴 정가에서 상당한 세를 과시한다.
재선 때부터 자신의 기부금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정치도 돈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준 탓일까 자신의 개인적인 민원도 적지 않게 해결해 주었다.
특히 과거 바그다드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청문회에 섰을 때 자신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고 동료의원들을 설득하여 위기를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핫핫핫! 여전하시군요.”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며 소파에 앉았다.
“사세가 날로 튼튼해지더군요?”
아카데미 주가가 요즘 계속 오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모든 것이 의원님 덕분이죠. 의원님께서 워낙 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고 계시잖습니까?”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곤 알포드 의원이 표정을 바꾸었다.
“회장님, 조나단으로부터 이상한 소식을 들었어요.”
조나단은 알포드 의원의 오랜 비서다.
“얼마 전 이라크에서 있었던 사건에 아카데미가 관련되어 있다더군요?”
미국의 언론에는 이라크 반군이라고 보도 되었으나 보안업계 관계자들은 아카데미가 KAS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다는 걸 다 알고 있다.
“으음!”
프린스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린다.
“빌어먹을.”
프린스는 거칠게 시가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