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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26화 (126/651)

제126화: 명불허전(名不虛傳)2

하워드는 담배를 물곤 연기를 뿜으며 등을 의자에 붙였다.

“누구시죠?”

맥보란의 눈이 가늘어진다.

하워드의 자세는 이미 자신의 정체를 간파하고 있다는 여유가 분명해 보였다.

자신을 눈 아래로 보려는 의도적인 행동인 것이다.

‘심리전이라, 용병치고는 제법이군’

맥보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미국 대사관에서 왔습니다.”

“영국 대사관도 아니고 미국 대사관이란 말입니까?”

자신들은 영국 기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미국대사관에서는 개입할 건더기가 되지 않는다란 뜻이었다.

“현장을 좀 볼 수 있겠습니까?”

맥보란은 최대한 부드럽게 웃었다.

“우린 현장을 지키는 사람이지 출입문제에 관해서는 미츠이 건설에 물어 봐야 할 것입니다.”

슬쩍 미츠이 건설로 떠민다.

조금 전 미츠이 건설은 KAS에게 떠밀었다.

핑퐁게임이다.

잘못하면 양쪽이 치고받는 탁구공으로 전락할 수 있었으나 맥보란은 전혀 불쾌한 얼굴을 하지 않았다.

화이트이든 블랙이든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받는 훈련이 심리전술이다.

이정도 일은 이른바 깜에도 들지 않는다.

하워드는 포커게임에 빠진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맥보란이 올 줄 알고 있었다.

아침 일찍 세이초 현장 소장과 자신을 찾아와 미국 대사관, 좀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CIA에서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아마 이런저런 질문을 할테니 어떻게 대답하면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대장님, 알자지라 방송과 인터뷰 한 직원과 얘기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하워드는 빙긋 웃었다.

“얼굴을 왜 가렸겠소?”

맥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맥보란은 미소를 잃지 않고 돌아섰는데 포커를 치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패를 엎으면서 고개를 쳐든 권총수와 눈이 마주쳤다.

권총수가 씨익 웃는다.

‘맞군’

맥보란은 재빨리 인터뷰 하던 사내를 떠올렸다.

눈 만 내놓고 모두 가렸지만 텔레비전을 통해 본 눈은 분명 권총수 것이었다.

“저어!”

맥보란이 입을 열었다.

“언제 차 한잔 했으면 합니다?”

“나요?”

권총수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제 연락처입니다.”

맥보란은 책상위에 있는 흰 종이에 볼펜으로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전화번호가 적인 종이를 받아든 권총수 표정이 살짝 굳어진다.

자신은 이미 맥보란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처음 들어오는 순간 온 몸이 곤두섰다.

그건 상대가 야수와 같은 내면을 갖고 있음을 금강대력심법이 알아차리고 방어에 들어간 것이다.

권총수의 검미가 찌푸려졌다.

정보원이 자신의 연락처를 건넨다는 건, 꺼려진다. 아무리 화이트 요원이라고 해도 처음 만난 사람이다.

위험하다면 위험한 행동인데 맥보란은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도발에 가까운 예상 못한 행동에 권총수는 당황했다.

만만치 않다.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CIA는 역시 다르다.

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답례를 해야 한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배짱 싸움이다.

내 패를 깠으니 네 패도 까라.

사사삭!

권총수 역시 종이에 전화번호를 적었지만 직접 가져다주지는 않고 종이를 날렸다.

스으으!

종이가 천천히 허공에 떠서 날아가자 맥보란은 말 할 것도 없고 실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딱딱한 트럼프 카드를 날리는 사람은 왕왕 볼 수 있었지만 힘이라고는 전혀 없는 종이였다.

그것도 제대로 격을 갖춘 A4 따위도 아닌 자신의 수첩 일부를 뜯은 매우 작은 쪽지다.

꾸우울꺽!

맥보란의 목젖이 심하게 상하로 요동을 쳤다.

엄청 당황하고 있는 것이었다.

슥!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다가온 종이를 잡은 맥보란은 한참동안 권총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또 다시 마른침을 삼키더니 손에 잡힌 쪽지를 보았다.

거기에는 권총수의 전화번호가 적혔다.

맥보란은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수첩에 끼워 넣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맥보란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잠시 몸을 세웠다.

태양이 선홍색으로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 시각이다.

“서기관님!”

맥보란의 공식 직함은 사우디 미대사관 2등 서기관이다.

부하이자 대사관 직원인 리베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오랫동안 곁에서 모셨던 상관이기에 숨소리만 들어도 감정상태를 알 수 있었다.

맥보란의 얼굴은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약간 창백해 있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리베라는 천천히 다가왔다.

“서기관님!”

“담배 있나?”

“예!”

리베라는 재빨리 자신의 담배를 꺼내 불까지 붙여 주었다.

담배를 몇 모금 빨던 맥보란은 지갑속에 넣어 놨던 쪽지를 꺼내 펼쳤다.

“누구 연락처입니까?”

접힌 종이를 양손바닥 사이에 넣고 힘껏 힘을 주어 편 뒤 힘껏 던졌다.

팔랑!

그러나 쪽지는 바로 앞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쪽지를 주워든 맥보란은 접힌 부분을 반대로 접어 최대한 반듯하게 폈다.

이어 심각한 얼굴로 재차 날린다.

피리링!

종이는 1미터도 날아가지 못하고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서기관님 지금 뭐하시는 것입니까?”

“리베라, 자네 종이를 던질 수 있겠나?”

리베라는 블랙요원이 되고 싶어 씰을 전역하고 자원했다.

블랙요원이 될 수 있는 18가지 과목테스트에서 17개는 통과했지만 마지막 1개의 과목에서 떨어졌다.

바로 심리전술응용학이란 과목이었다.

가슴은 뜨거워도 머리는 차가운 것이 블랙요원인데 그는 머리까지 뜨거웠다.

결정적일 때는 대를 위해 작은 것을 희생시킬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블랙요원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에서 반대로 약점을 드러내자 어쩔 수 없이 화이트로 돌아섰다.

“여기까지 던져 보게.”

쪽지를 건네주고 3미터 정도 뒤로 물러났다.

3미터 거리는 권총수가 자신에게 쪽지를 날렸던 거리였다.

여전히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던 리베라가 빙긋 웃으며 종이를 쥐었다.

쉭!

힘껏 종이를 던졌지만 그 역시 면전에서 고꾸라지듯 떨어지고 말았다.

당연히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맥보란이 워낙 진지하게 매달렸으므로 한 번 더 시도해 보았는데 역시 안 된다.

맥보란이 다가와 떨어진 쪽지를 줍더니 조수석에 올랐다.

포드 익스플로러가 사무실을 출발했다.

“현장으로 가지.”

현장 소장인 세이초에게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

결코 허락할 것 같지 않았으므로 충돌을 각오하고 직접 가보려는 것이다.

다행이 일본이라는 나라가 미국의 우방국이므로 외교적으로까지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다.

“궁금하지 않나?”

맥보란의 질문에 리베라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뭡니까?”

“그 종이를 3미터 밖에서 날려 보낸 사람이 있네. 그런데 더욱 웃기는 게 뭔지 아나?”

핸들을 잡은 리베라는 앞만 보고 있었다.

“종이가 허공을 날아왔는데 아주 천천히 왔지. 종이를 받는 사람에게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듯 말이야.”

리베라가 빙긋 웃었다.

자신이 정보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외계인이었다.

외계인이 정말 있을까.

지구에만 사람이 살고 있으란 법은 없다.

우리가 모르는 행성에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래서 성경적으로 보면 지구 말고는 어디에도 생명체는 없다.

그 모든 궁금증을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는 CIA에 들어가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직 해답은 얻지 못했다.

지금까지 선배들을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우주에는 인간 말고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외계인 문제는 모두가 품은 의문이지만 종이를 날리는 기술은 누구도 믿지 않을 일이다.

손바닥보다 작은 쪽지를 3미터까지 날린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믿으려 하지 말게. 직접 두 눈으로 본 나도 꿈이겠지 하는 마음이니까.”

“정말입니까?”

“기회가 닿으면 자네도 한 번 볼 날이 있을걸세.”

온갖 사람을 만나고 갖가지 현상을 겪었으나 가볍디 가벼운 종이쪽지를 3미터 멀리 날려 보낸다는 것, 그것도 받는 사람을 배려하듯 천천히 날린다는 건 이해가 안된다.

20분 후 포드익스플로러는 미츠이 건설의 고속도로 복구공사 현장에 있었다.

은밀하게 잠입했다.

CIA 요원에게 이정도 경비망을 뚫는 건 식은 죽 먹기다.

야간보다는 대낮에 살피는 것이 정확하다.

미군은 이라크 군의 보급선을 끊기 위해 전투기를 동원해 고속도로와 주요 기간 도로를 초토화 시켜 버렸다.

폭발의 흔적이다.

그런데 구덩이가 크지 않다는 건 뭘 의미할까.

수류탄이 터져도 구덩이가 크게 만들어지는데 나무 한 그루 심기위해 파 놓은 듯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맥보란은 파인 모래를 한줌 쥐어 냄새를 맡았다.

흙은 상당시간 동안 폭발물질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여기저기 몇 군데 구덩이 흙을 계속 맡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알 것 같군.”

리베라는 여전히 어떤 단서도 잡아 내지 못한 표정이다.

“화약 냄새 나지 않나?”

리베라가 재빨리 모래를 쥐고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뜨거운 태양아래 있는 모래에서는 묘하게 화약냄새와 거의 흡사한 비린내가 난다.

딱 꼬집어 화약 냄새라고는 말할 수 없다.

“호오, 여기 허락 없이 들어오면 총 맞는데.”

맥보란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권총수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는데 왼손에 글록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자신들을 보며 씨익 웃는다.

맥보란의 얼굴이 붉어졌다.

도둑질 하다 들킨 사람처럼 이런 민망한 일은 아직 겪어 보지 못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뭣 좀 얻었습니까?”

권총수가 어떻게 여길 왔을까.

미행한 건 아니다.

미행을 했다면 곧바로 나타났거나 경비초소를 피해 들어올 때 가로막았을 것이다.

CIA 요원에게 현장을 공개한다는 건 사건 전모를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어딘가에서 자신이 충분히 조사하고 어떤 결과를 얻어 낼 때까지 지켜보았음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내가 몰래 잠입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막지 않고 내버려뒀을까.

‘볼 테면 얼마든지 보라는 것인가’

적에게 자신의 일부, 또는 전부를 드러 내놓는다는 건 그만큼 싸워 이길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아카데미와 KAS는 여러 가지 감정이 얽혀 화해의 길은 멀어 보인다.

더욱이 자신은 CIA 인물이므로 당연히 아카데미쪽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나타났다는 건 자신이 몰래 숨어 들어오리란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므로 당연히 경비팀에게 방비를 철저히 하라고 해야 한다.

“음!”

혼란스럽다.

한 번도 이런 일은 겪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뭐 좀 알아냈습니까?”

맥보란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약간의 소득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다행입니다.”

“화약을 사용한 것 같군요. 공사 현장이니 필시 다이너마이트를 썼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건 또 뭔가.

상대가 순순히 인정을 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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