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24화 (124/651)

제124화: 킬로 알파 서비스(Kilo Alpha Services)와 아카데미(academy)3

딕은 움찔했다.

“넌 누구냐?”

“딕?”

딕의 눈이 커진다.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안다.

“조금 전 날 호출하지 않았나.”

순간 자신과 교신중 숨진 B팀 팀장 헤수스를 떠올렸다.

사내는 B팀장을 죽인 KAS용병이 분명했다.

“헤수스는 죽었소?”

“죽은 것 같소.”

죽으면 죽은 것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죽은 것 같다는 또 무슨 뜻일까.

어둡다고 하여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름이?”

“내 이름 말이오?”

저벅저벅!

갑자기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딕은 고개를 돌렸다.

쌍안식 야시경중 한쪽이 파괴되어 왼쪽 밖에 보이지 않는다.

머리가 깨지고 강력한 폭풍에 휘말려 날아간 터라 시선까지 안정이 안 되고 자꾸 흔들린다.

눈에 힘을 주고 뚫어져라 전방을 주시하던 딕은 멈칫 했다.

야시경 속으로 한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사내는 육중해 보이는 총 한 자루를 어깨에 메고 자신을 발견 한 듯 히죽 웃는다.

처음 보는 사내다.

확!

딕은 답답한 야시경을 벗어 버렸다.

야시경이 사라지면서 주위는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고 발자국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나면서 다가오는 한 사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둘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는 규칙적인 걸음걸이는 전장의 인간으로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차분하다.

척!

사내는 10여미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지만 10미터 밖에 있는 사내의 얼굴을 분명하게 본다는 건 어려웠다.

단지 특수부대 출신답게 사내의 어깨에 올려진 총이 핀란드에서 개발된 저격총 TRG-M10이라는 걸은 알아 볼 수 있었다.

흠칫!

눈싸움 하듯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갑자기 딕스의 몸이 흔들렸다.

‘그놈이다’

왜 이제야 떠오른 것일까.

진즉 알아 봤어야 했다.

‘사막의 흑새’

아직 본명까지는 모르고 외인부대 시절 IS와 이라크 반군들에게 사막을 지배하는 독수리 흑새로 불렸다는 건 알고 있다.

유목민과 사막을 횡단하는 거상들에게 신비와 희망, 그리고 섬김의 대상이던 사막의 흑새가 분명했다.

휘익!

탕!

차고 있던 권총을 번개처럼 뽑아 들었지만 오른 손목이 따끔했다.

믿을 수 없게도 조금 전까지 어깨에 올려 져 있던 M10이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무게 6킬로 가까운 저격총을 권총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으으으!”

조금 전까지 멀쩡하던 손목이 덜렁거리는 걸 내려다보며 딕은 기어이 비명같은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씰은 절대 적 앞에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면 안 된다는 규정 아닌 규정이 있다. 하지만 어기고 말았다.

너무 아픈데 어떡할 건가.

딕은 눈을 감았다.

오른손은 금방이라도 땅바닥으로 떨어질 듯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만 아직까지 단 한방의 총알도 맞지 않았다.

아프카니스탄에서 텔레반이 쏜 박격포 파편에 허벅지를 다친 것이 씰 10년 동안 입은 유일한 부상이었다.

신이 강림한다고 해도 손목을 예전처럼 회복시킬 수는 없다.

오른손잡이에게 오른손이 없다는 건 그건 이 바닥을 떠나야 한다는 사형선고다.

더욱이 총으로 먹고 사는 용병으로서의 가치는 완전하게 상실되었다.

“으으!”

이번에는 고통이 아닌 괴로움의 신음이다.

이 바닥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고액의 연봉을 받았으나 도박과 여자로 모두 날렸다.

부모님들도 죽었고 한 분 있는 형님조차도 작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자신까지 죽으면 한 집안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다.

피식!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어둠속에 딕의 하얀 이가 드러났다.

“부탁이 있소.”

권총수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항상 사선을 넘나들면서 꿈꿔 왔던 것이 있죠. 내 것 만큼은 내 맘대로.”

권총수가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이마를 살짝 찌푸리자 딕은 말을 이었다.

“전장의 들개가 남의 손에 인생을 끝내서야 되겠소.”

자살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자기 목숨은 자신의 손으로 거두겠다는 의지였다.

권총수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말보로 레드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후우!

길게 연기를 한번 내뿜더니 담배를 던졌다.

휘익!

오른손을 앞으로 뻗자 딕은 본능적으로 움찔했다가 눈이 커졌다.

“오 마이갓!”

딕은 입을 쩌억 벌렸다

담배가 공중에 뜬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오른 손목이 덜렁거리는 아픔도 순간적으로 잊어버릴 만큼 너무 기괴한 장면이었다.

언뜻 마술일까 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이 상황에서 마술 따위를 보여줄 가벼운 사내는 아니었다.

적엽비화.

내공 수위가 높아지면서 느리게 띄워 보내는 경지도 이제 가능했다.

빠름 보다 느림이 어렵다.

담배가 눈 앞에서 파란 연기를 피워낸다.

딕은 왼손으로 담배를 잡아 입에 물었다.

그렇잖아도 담배 한 개비 피웠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담배가 온다.

그것도 자신이 즐겨 피우는 말보로 레드다.

“신인(神人)이군요.”

신인, 그건 미국 개신교에서 기적을 일으키는 목사나 또는 거대한 성회만을 진행하고 이끄는 부흥집사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가끔은 믿을 수 없게도 아픈 환자를 낫게 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50가까운 부부가 기도를 받고 임신했다는 뉴스를 본다.

그래서 인간이지만 신의 능력을 보여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쓰으윽!

길게 빨아 들였고 붉은 불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좋다.

낮에는 죽일 듯 덥고, 밤에는 또 죽일 듯 추운 이 사막이 아름답다.

툭!

딕은 담배를 뱉었다.

왼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주워들었다.

권총수는 M10을 지면을 향해 늘어뜨리고 있었다.

조금 전 놀랍게 빠른 동작을 겪긴 했지만 갑자기 가슴이 뛴다.

바로 쏘면 된다.

0.5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부르르!

권총을 쥔 왼손이 긴장으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쏠까 말까.

“으음!”

딕은 길게 숨을 내 쉬며 가슴을 진정했다.

불가능하다.

6킬로짜리 무거운 총을 자신보다 더 빨리 움직였고 담배를 허공에 띄우듯 보낸 사내다.

“서로가 총구를 겨눠야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당신과 난 무척 코드가 맞는 친구가 됐을 것 같소.”

탕!

총성이 어둠을 갈랐다.

쿵!

딕은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잠시 죽은 딕을 내려다보던 권총수는 몸을 돌리려했다.

그때 귓가에 지이잉 하는 소리가 들려 틀었던 상체를 다시 돌렸다.

딕의 왼쪽 바지주머니가 떨리고 있었다.

핸드폰이다.

다가가 허리를 숙여 핸드폰을 꺼낸 권총수는 액정을 바라보았다.

‘지사장님’

이란 글씨가 찍혔다.

지이잉!

핸드폰은 계속 울었다.

“총수야. 어떻게 됐어?”

그때 다른 동료들을 지원하기 위해 HK-416을 들고 떠났던 오민철이 달려왔다.

“어, 잡았냐. 얘가 딕이란 놈이야?”

이곳에 오기전 죽어가는 아카데미 용병을 위협하여 대장이 누구냐고 물었다.

그의 입을 통해 딕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이다.

“상황은 어때?”

권총수가 물었다.

“몰리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몇 놈 튀긴 했는데 거의 쓸어버린 것 같은데.”

발자국소리가 들리며 KAS용병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다.

비렌드라, 오스카르, 피아퐁, 나카야마가 씨익 웃는다.

그 뒤로 이십여명의 용병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지이잉!

잠시 끊어졌던 전화가 다시 울렸다.

모든 시선이 권총수 손에 들린 딕의 핸드폰에 멎었다.

“받아 보지 그래.”

경비대장 하워드가 말했다.

스윽!

통화버튼을 눌렀다.

“딕,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나?”

“안녕하십니까? 벤저민.”

“엇!”

너무 놀란 듯 다급성이 흘러나왔다.

“딕은?”

마른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모든 상황을 간파한 듯 한 톤 낮은 소리로 물어온다.

“자넨 혹시?”

“씰이 만든 놀라운 신화중 한 페이지를 작성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찾아뵙고 인사 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전화로 목소리를 듣게 되어 유감입니다.”

“경기가 일방적으로 끝난 모양이군?”

“경기, 그렇군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전쟁은 단순한 스포츠 경기일 뿐이죠. 맞습니다. 아카데미가 압승을 거둘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뒤엎고 KAS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듯 합니다.”

“뉴욕 양키스와 누구의 경기 같았나?”

뉴욕 양키스는 월드시리즈 27번을 거머쥐었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이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경기 정도였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크음!”

전화기 속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2004년 뉴욕 양키스는 홈구장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0-22로 구단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양키스의 이전 팀 참패 기록은 1925년과 1928년에 당했던 18점차이며 완봉패 최고기록은 1950년의 0-15였다.

누군가는 그날의 경기를 보며 미국이 무너졌다고 했고, 어느 80대 노인 팬은 콜롬버스가 발을 딛은 이래 처음으로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침략자들이 두들겨 맞았다고도 했다.

아카데미는 뉴욕 양키스이고 KAS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인 셈이다.

“그 정도로 원 사이드 한 경기였나?”

“곧 시간을 내어 한번 찾아가죠. 건강하십시오.”

권총수는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벤저민은 끊어진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벤저민은 가만 핸드폰을 내려놓고 사무실 창문을 열어 젖혔다.

퇴근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프린스 회장의 강한 지시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그럴싸한 작전 계획도 세웠다.

실패보다 성공 할 확률이 높다고 자신했다.

“선배님!”

같이 작전 결과를 기다리던 씰의 후배이자 알 살만 왕세자를 경호하는 3팀장 잭슨이다.

“불편한 결과인가 보군요?”

“이슬람은 다 좋은데 술이 없어. 그게 문제야.”

잭슨의 눈이 커졌다.

밴저민은 현역시절 때도 독실한 이슬람신자였다.

일부 과격한 동료들의 의심스런 눈빛(씰에 들어온 것이 나중 테러범이 되기 위한 것)에도 전혀 화를 낸다거나 섭섭해 하지 않았다.

이슬람의 실체가 어떤건지를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항상 앞장서 위험을 자처했고 동료의 아픔을 내것인 듯 위로하고 감쌌다.

그런 독실한 신자가 술을 찾는걸 보면 지금 그의 마음이 얼마나 새카맣게 타고 있는지는 짐작 할 수 있었다.

“이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잭슨은 처음으로 아랫사람 역할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힘내십시오.

오늘 당한 치욕의 두 배로 갚아주면 되죠.

시간 많습니다.

나름대로 위로의 말을 떠올렸지만 만족스러운 것이 없었다.

“회장님이 이대로 넘어갈 분도 아니고.”

밴저민이 피식 웃었다.

그 말은 맞다.

에릭 프린스라는 사람이 수모를 당하고 넘길 리 없다.

아카데미는 민간 기업이고 이 바닥은 철저한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 돌아간다.

내 상품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최고가 되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라도 이번에 깎인 아카데미라는 브랜드를 다시 빛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보복을 하려 들것이다.

벤저민은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눈이 빠져라 자신의 전화를 기다릴 것이다.

“으흠!”

벤저민은 길게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