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23화 (123/651)

제123화: 킬로 알파 서비스(Kilo Alpha Services)와 아카데미(academy)2

나무로 된 상자 20개가 도착했다.

뚜껑을 떼어내자 안에 20센티 정도의 길이에 직경 3센티가 조금 넘어 보이는 길쭉한 막대기들이 가득했다.

발파용 다이너마이트이다.

공사장 인력과 KAS용병들이 작업에 나섰다.

지면에 구멍을 뚫는 드리프터를 사용했다.

60여킬로짜리 소형으로 현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10개와, 예비용 5개까지 동원되었다.

현장 기술자들이 구멍을 뚫었고 다이너마이트를 넣기 시작했다.

이라크 노동자들은 모두 현장 기숙사에 대기시켜 놓고 일본에서 온 기술자들만 움직였는데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한 조처였다.

“위력이 있을까?

다이너마이트와 군에서 사용하는 폭탄은 위력에서 큰 차이가 있다.

KAS 용병들을 도륙할 목적이니 초소를 중심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초소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다이너마이트를 깔았다.

오후 5시에서 3분 모자란 4시 57분에 모든 작업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현장 전문가들이 발파선을 깔아 발파기에 연결했다.

이제 발파기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혹시라도 눈에 띌 것을 대비해 구멍은 물론 발파선까지 모래로 깨끗하게 덮었다.

HK416으로 무장했고 쌍안식 야시경이 지급되었다.

그런데도 경비대장 하워드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카데미의 화력에 비추면 현저히 밀린다.

다이너마이트가 공사현장에서는 두려운 존재일 뿐 전쟁터에서는 위협적인 물건은 아니다.

그 보다 수십 수백배 강한 폭탄이 난무하는 곳이 전장이다.

피식!

하워드는 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서부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영화 속 다이너마이트는 전지전능한 무기였으나 지금은 그보다 훨씬 잔인하고 가공할 무기가 지천이다.

“이동!”

오늘밤 작전에 동원되는 인원은 자신을 포함해 모두 32명이다.

여섯명씩 1팀을 이뤄 각 초소 근처에 매복할 것이다.

하워드는 힐끗 해가 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멀리 서쪽 하늘에 조그만 달이 떠 있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쯤 권총수와 오민철은 낮에 봐두었던 저격지점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사막이다 보니 저격 장소가 높지는 않았다.

붉은 색을 띤 자잘한 기반암들이 울퉁불퉁 솟아 있고 왼쪽 20여미터 떨어진 곳에 첨성대를 닮은 바위가 버티고 있었다.

두 사람은 회사에서 제공한 길리슈트를 걸치고 저격 준비에 들어갔다.

야간 조준경 PVC14를 부착했다.

야간에도 대략 300여미터까지는 충분히 볼 수 있다.

더욱이 자신의 내공까지 더해지면 400미터까지는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는 계산이 이미 내려졌다.

“자리 잡았나?”

하워드의 무전 음성이다.

“예!”

“행운을 빌자구.”

“샛별이 떴습니다.”

정말로 샛별이 떴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동쪽 사막 하늘에 별 한 개가 반짝인다.

샛별이다.

흔히 금성으로 부르는 별이다.

“거 참!”

“왜 그래?”

오민철의 작은 기침에 권총수가 조준경을 조절하며 물었다.

“샛별이라, 정말 오랜만에 들어 본다.”

오민철이 반짝 거리는 별을 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지금처럼 해질녘에 보이는 금성은 개밥바라기라고도 한다.

샛별이라고 부르는 건 새벽 하늘에 유난히 밝게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 것이다.

‘새벽 별’ 또는 ‘새로 난 별’이라는 의미인데 묘하게도 이 별은 인간의 삶과 깊은 인연을 형성하고 있다.

일을 끝내고 고단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아버지의 눈에도, 새벽 일찍 시장으로 나가는 어머니의 눈에도 망설이지 않고 반짝거린다.

샛별은 희망이고 또한 살아야 한다는 용기다.

그리고 삶의 이정표이기도 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예수에게 동방박사들을 안내한 것도 샛별이다.

“읍내 장날이면 길바닥인지 안방인지 구분 못하고 아무데서나 자리깔고 눕는 아버지를 찾으러 갈 때마다 지겹게도 보았던 별인데.”

오민철의 입가에 유년의 향수기 맺힌다.

별빛 말고는 어떤 빛도 찾아 볼 수 없다.

어둠이 움직인다.

사람들이었다.

길게 늘어진 잿빛 칸두라를 걸치고 머리에 검정색 구트라를 뒤집어썼다.

사막의 찬공기와 간간히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구트라로 얼굴을 가렸는데 매우 자연스럽다.

AK를 거머쥐고 다가오는 사내들은 아카데미 용병들이었다.

오늘 밤 목표는 딱 한가지이다.

KAS용병들을 몰살 시키는 것인데 물론 미츠이 건설 관계자 두 명을 인질로 데리고 갈 것이다.

용병들만 죽이고 떠나면 보나마나 전쟁에 미친 들개들이 서로의 목을 물어뜯는 살육전을 벌였다는 흥미 가득한 오락성 기사가 나갈 것이다.

이라크 반군 짓이라는 걸 대내외에 알리기 위해서 인질은 필수적이다.

인질범을 데리고 며칠 침묵한다.

그 사이 아카데미 고위층에서 미국 정부 관료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백악관은 납치범에 대해 차갑고 비장한 경고를 한다.

‘미국은 절대 테러범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결정적인건 다가오는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는 백악관 주인에게는 이보다 더 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없다.

그는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을 모아 놓고 백악관 앞 뜰에서 납치범들에게 인질을 풀어주면 모든건 평화롭고 아름답게 마무리 된다는 화전 양면의 멘트를 쏟아낸다.

그러면 며칠 더 버티다 못이긴 채 인질을 풀어준다.

얼마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에서 계속 뒤지고 있는 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 작전이 신의 한수로 작용한다.

‘대단한 사람이야’

에릭 프린스라는 사람은 사업가이면서도 어떤 정치가 보다 권모술수에 능하다.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냥 쓸어 버리시오’

오늘 새벽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딕은 휴대용무전기를 꺼냈다.

“보고!”

“B팀 도착, C팀 도착, D팀 도착”

모두 다섯 개 팀인데 빠짐없이 공격개시선(line of departure)에 도착했음을 보고했다.

흘긋!

손목시계를 보았다.

11시 49분이다.

정확히 자정에 KAS가 지키고 있는 초소를 동시 다발로 칠 것이다.

자신들의 표적은 제1초소였다.

딕은 다시 시계를 보았고, 누군가 마른침을 삼켰는데 긴장 되는 모양이다.

5년 근무기준으로 용병의 생존율은 70프로가 조금 넘었다.

10명이 뛰어들면 5년 후 세 명은 죽고 없다는 뜻이다.

간부들이 아닌 한 5년 이상은 꺼린다.

오래 근무할수록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진실 때문이다.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고 초침이 정확히 12에 멈췄다.

“공격 개시, 각 팀 모두 공격하라. 또한 인질 팀은 두 명을 포대에 씌워 차로 운반한다. 이상.”

두두두두!

무전교신이 끝나자마자 어둠을 울리는 묵직한 총소리가 들렸다.

혼다 SUV에 설치된 Kord-6P50 소리다.

그런데 차량이 움직이면 라이트가 있어야 하는데 캄캄했다.

그건 야시경을 끼었기 때문이다.

커브길이 많은 도로나, 아니면 빨리 달려야 하는 곳에서는 라이트를 켜지만 지금처럼 특정 공간만 돌아다니며 사격할 때는 그럴 필요는 없다.

라이트를 켜봤자 표적만 될 뿐이다.

야시경으로도 충분히 전방관찰이 가능하다.

어둠속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다려!”

발파기를 잡고 있는 프랭크로부터 적이 사정권 안에 들어온 것 같은데 어떡하느냐는 무전이 온 것이다.

비록 발파선을 모래로 자연스럽게 덮긴 해 놓았지만 자칫 혼다 SUV가 갈고 돌아다니다 보면 발파선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그걸 염려해 서둘러 질문을 한 것이다.

권총수는 조준경을 통해 아카데미 용병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초소를 공격하고 있었다.

탕!

타타타!

KAS용병들도 응사에 들어갔다.

“너무 끌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챌텐데?”

오민철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권총수 역시 눈빛이 흔들린다.

지금 KAS용병들은 초소가 아닌 근처 바위나 언덕 뒤에 숨어 대응 사격을 하고 있다.

치열한 교전 중에 밖으로 뛰어 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처음부터 초소 밖에 숨어서 응사를 한다는 건 적이 공격해올 것을 알고 미리 초소를 비웠다는 뜻이다.

판넬로 된 초소는 바람과 새벽이면 영하로까지 떨어지는 사막 특유의 차가운 날씨에서 근무자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미 초소는 벌집이 되어 있었다.

“가만!”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오민철은 듣지 못하지만 내공이 높은 권총수의 귀에는 급하게 터져 나오는 무전기 소리가 들렸다.

“이상합니다.”

어둠을 뚫고 무전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놈도 초소에 없습니다. 모두 밖에서 갈기고 있습니다.”

“어, 우리 B팀도 그런데. 전부 밖에 있다고.”

“C팀도 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무전에 딕은 눈을 빛냈다.

사실 자신도 그 점이 수상했다.

자신들은 초소를 노리고 갈겼는데 상대 총알은 근처 바위 뒤에서 날아왔다.

불편한 마음은 들었지만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는데 무전 내용을 보면 우연같아 보이지 않는다.

좋지 않다.

딕은 후퇴지시를 내리기 위해 무전기에 입을 가져다 댔다.

쾅!

콰콰콰!

바로 그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정확히 다섯 군데, 각 초소마다 40도 각도의 부채꼴 모양으로 엄청난 흙먼지가 솟아오른 것이다.

“억!”

딕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버렸다.

혼다 SUV 가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깊게 패인 구덩이에 앞 바퀴가 빠졌다.

4륜 구동이지만 쉽게 빠져 나오지 못했다.

앞 뒤로 덜컹 거리면서 차고 나가보려 했지만 바퀴는 모래만 쳐 낼 뿐이었다.

“뭐하는 거야. 빨리 차 빼.”

지붕 위 기관총을 잡고 있던 사내가 외쳤다.

퍽!

바로 그 순간 기관총을 잡고 있던 사내의 고개가 푹 꺾였다.

“빌어먹을!”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내렸다.

퍼억!

구덩이를 살피려는데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권총수가 씨익 웃었다.

탕!

타타탕!

TRG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그 충격으로 아카데미 용병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일부는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고,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사내들도 보이는 것이 사망자도 꽤 되어 보였다.

두두르르!

KAS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거대한 폭발로 아카데미 용병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두두두두!

순식간에 십여 명의 사내들이 나뒹굴었다.

딕은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폭발소리가 들리고 뭔가 온 몸을 후려치는 것 같으면서 의식을 잃었다.

주르륵!

깨진 머리에서는 쉴사이 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딕은 뭔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저 만치 떨어진 무전기를 발견하고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무전기를 주운 딕은 본능적으로 교신을 시도했다.

“응답하라. A팀, B, C, D...E”

“B입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왜 말이 없는가? 보고하라.”

“B팀 보고, 딕...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다리가 골절됐다. 타탕!”

무전기 속으로 총소리가 들린 것이 추격이 시작된 KAS용병에게 당한 것이 분명했다.

“C팀 지원 요청합니다. 네 명의 적이 접근하고 있다. HK416이다.”

“으악!”

“컥!”

무전기 속으로 비명이 들렸다.

“칼, 스탁턴.”

C팀 조장이 외쳤다.

두 명의 동료가 죽은 모양이었다.

“컥!”

짧은 비명소리에 딕은 소스라쳤다.

“헤수스, 헤수스.”

C팀 조장이며 씰 시절 바로 아래 후임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특히 노래를 잘 불러 선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보세요?”

돌연 무전기 속으로부터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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