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22화 (122/651)

제122화: 킬로 알파 서비스(Kilo Alpha Services)와 아카데미(academy)1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다.

적이 공격해 온다는 걸 알게 된 건 천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남겼던 LA의 전설적인 투수 허샤이저는 투수 실력의 절반은 운이라고 했다.

그날 운이 좋아 애매하게 들어간 코스의 공을 구심이 스트라이크 선언을 해준다면 무척 즐겁고 편한 경기가 된다.

그러나 스트라이크 같은데 구심 입에서 볼이 선언되면 아무리 잘 던지는 투수도 흔들리고 난타 당한다.

운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일에 대한 운은 KAS쪽에 있었다.

“무장 상태까지 알면 완전 대박인데.”

전쟁은 복싱과 달리 체급별 경기가 없다.

화력 좋은 쪽이 이길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것이다.

“일단 교대시간이 거의 됐으니 주간 근무자는 평소대로 준비들 해.”

낮 근무자들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때 밖에서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는데 근무자들을 태우고 갈 버스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둠은 순식간에 밀려나가고 있었다.

12명의 주간근무자들이 버스를 타고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하워드를 바라보았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에 피곤 할 법도 한데 모두의 눈빛은 형형했다.

“푸스락으로 가보지.”

하워드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가야죠.”

그러면서 남은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숲이 없는 사막에서의 정찰은 인원이 적을수록 좋다.

“저와 민철이 형만 다녀오겠습니다. 대장님께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모아 주십시오.”

“오케이!”

“오야붕 나도 데려가.”

나카야마가 소리쳤다.

“나도!”

“중요한 경기에 내가 빠지면 안 되지.”

브라질 특수부대 출신 오스카르까지 나섰다.

권총수는 씨익 웃었다.

모두가 내 일처럼 앞장선다는 건 결코 아카데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안된다고 말하려다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는 같이 가야한다.

푸스락은 유프라데스 강가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담배와 밀 재배가 성행하고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푸스락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아침 10시가 되지 않은 이른 오전에 일단의 사내들이 푸스락에 나타났다.

마을사람들은 그들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는데 미국의 유명한 건설회사 터너(Turner)직원들이었다.

이라크 정부에서 유프라데스강 일부를 막아 댐 건설을 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그 지역이 푸스락이란 소문이 끝없이 돌고 있었다.

당연히 댐건설을 반대했다.

수백년 동안 조상들 때부터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터너사 관계자들과도 몇 번 만났었고, 이라크 관료들을 만나 항의를 해 봤지만 아직 백프로 결정된 사실은 아니라는 식으로 피해나가고 있었다.

터너사 작업복을 걸친 사내들이 마을 인근의 강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아카시아나무 숲속에 적지 않은 무슬림 복장의 사내들이 숨어 있었다.

우두머리 딕은 쌍안경을 통해 지형과 강변 지질을 검사 하고 있는 터너사 직원들을 살폈다.

“동양계도 보이는데?”

“미국이 단일 민족국가였나?”

딕의 핀잔에 옆에서 같이 쌍안경을 들고 살피던 커리가 히죽 웃었다.

미츠이 건설 현장을 정탐했던 둘 중 한명이다.

“이상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간이 지질분석기까지 가져와 토양을 살피는 걸 보면 건설사 관계자들이 분명해 보입니다.”

여기저기 같이 살피던 대원들이 입을 모았다.

딕은 눈에서 쌍안경을 뗐다.

딸칵!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그건 곧 더 이상 경계하지 않는다는 행동이었다.

사람들이 강변의 흙을 체취하고 물줄기를 살피는 사이 두 사람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터너건설사 작업복을 입은 권총수와 오민철은 아카시아나무 언덕 뒤로 돌아 야트막한 산을 올라갔다.

두 사람이 엎드렸다.

60여미터 아래 아카시아 숲에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일부는 잠을 자는 것으로 보였고 일부는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소총은 74인데?”

오민철이 AK-74라고 말한다.

“PKP도 보이고.”

기존의 PKM을 개량한 모델로 PKM의 단점인 총열이 쉽게 달아오른다는 약점을 상당부분 커버했다.

“저건 뭐야?”

숲속에 혼다 SUV가 보였다.

혼다 SUV는 소말리아를 비롯해 텔레반과 IS 모두에게 가장 인기있는 전투차량이다.

차 값이 저렴한데다 특히 중고제품이 중동과 아프리카에 많이 굴러다닌다.

특히 힘이 좋아 장비가 열악한 비정규군들이 많이 사용한다.

혼다 SUV 위로는 공중 관측이 어렵게 위장그물을 쳐 놓았고 지붕위에 있는 뭉텅한 물건은 포장으로 덮어놓았다.

“기관총 같은데.”

외형적으로 드러난 생김새를 보며 오민철이 중얼 거렸다.

기관총도 여러 가지이다.

특히 차량에 설치된 것이라면 간단히 보아 넘길 것이 아니었다.

권총수는 포장 속에 덮인 총구 길이와 덩치를 살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기관총을 대비해 보았다.

아카데미에서는 거의 미군무기를 사용한다.

“총열이 유난히 길어 보이지?”

아카데미에서 사용하는 미군 무기의 60프로가 머릿속에 저장되었지만 지금 보이는 것처럼 총열이 긴 기관총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팟!

그러다 한순간 권총수의 눈이 빛난다.

아카데미 용병들인데도 미군 제식소총 M4가 아닌 AK74를 쥐고 있다.

“가만!”

뭔가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오민철이 고개를 돌렸는데 궁금한 얼굴이다.

“러시아 제식소총과 무슬림 복장, 그리고 일본 자동차인 혼다 SUV, 생각나는 것 없어?”

오민철은 인상을 찌푸렸다.

“공식 하나가 떠오르지 않아? AK, 무슬림복장, 혼다, 잘 생각해봐.”

권총수는 이미 해답을 찾은 듯 오민철을 돌아보며 밝게 웃었다.

파팟!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이라크 반군?”

“딩동댕! 정답입니다.”

“이라크 반군으로 위장하려는 거잖아.”

“용병 회사들끼리 살육전을 전개했다고 하면 볼썽 사납잖아. KAS와 아카데미의 자존심 싸움인데 만약 패하기라도 하면 슬쩍 흔적 지우기도 좋고.”

“양수겸장(兩手兼將)?”

권총수는 핸드폰을 이용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몇 커트 찍은 권총수가 입을 열었다.

“세르게이 전화번호가 몇 번이지?”

“왜?”

“확실히 해야지.”

카메라로 찍은 혼다SUV 사진을 세르게이에게 보내려는 것이다.

오민철로부터 세르게이 전화번호를 받은 권총수는 사진을 보냈다.

두 사람은 잠시 기다렸다.

5분정도 흘러 세르게이로부터 문자가 왔다.

‘글쎄 정확하지는 않는데 내 눈에는 Kord-6P60로 보여’

세르게이의 답장을 본 권총수와 오민철 모두 당황한 표정을 했다.

“6P60이면?”

굉장한 중 기관총이다.

유효사거리만 2킬로를 넘는다.

실탄은 12.7X108밀리이고 기계식 조준이다.

웬만한 엄폐물은 그냥 박살 내버린다.

장갑차 정도는 전혀 겁을 내지 않고, 러시아군 중대 핵심화기로 운용되고 있을 만큼 파괴력이 좋다.

권총수는 한 번 더 문자를 보내 확실하냐고 물었다.

세르게이는 80프로 이상이라고 했다.

피식!

권총수는 웃고 말았다.

Kord-6P60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널길 무기가 아니다.

그것도 두 자루라는 것과 차량에 설치되었다는 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차량에 설치된 기관총이 무서운 건 기동력 때문이다.

빠르게 움직이며 갈겨버리면 대책 없다.

물론 이쪽에서 저격총으로 사수를 날릴 수도 있다.

그러나 차로 빠르게 움직이는 기관총을 상대하는 저격, 더욱이 저격수 위치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야간 저격은 무척 위험하다.

한방에 놓치는 순간 저격수 주위는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피곤해 지는군.”

오민철이 이마를 짚었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카데미에서 어떤 형태로 공격해 올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과 의견 교환이 있었다.

예상대로 의견은 분분했다.

특수부대 출신들이다 보니 서로 자신의 의견이 높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우기기까지 했다.

테러 형태의 공격이 벌어질 것이라는 사람, 그냥 밀고 들어 올수도 있다는 사람, 아카데미인 만큼 아파치 한 대 정도는 어디 숨겨 놓았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회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빙빙 돌았다.

권총수는 슬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 앞에 대추야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그늘로 들어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무슬림 복장에 AK-74소총과 PKP등은 전형적인 이라크 반군 모습이다.

Kord-6P60는 이라크 반군도 확보하지 못한 장비이다.

그런데도 Kord-6P60까지 투입했다는 건 기어이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그렇게 이라크 반군이 되어 미츠이 건설의 공사장을 습격한건 이교도들은 물러가라는 반군 구호에 적합하다.

노동자는 뒤탈이 생길 수 있다.

KAS 용병들만을 집중 살해할 것이다.

전체적인 장비로 보면 KAS 용병들을 싹쓰리 할 계획이 분명했다.

오민철이 나오더니 다가온다.

그 역시 담배를 한 개피 피워 물더니 투덜거리듯 말했다.

“잘났어 정말.”

아직도 논쟁중이라는 뜻이다.

“우위에 있는 적을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도 화력을 더 높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잖아?”

“그렇긴 한데.”

KAS지사가 있는 사우디라면 모를까 이라크에서 러시아제 Kord-6P60에 대적할 만한 화력을 준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적은 당장 오늘 밤 쳐들어온다.

“거의 잡아 놓은 고긴데.”

오민철이 무슨 뾰쪽한 수 없냐는 듯 눈을 찌푸렸다.

고민에 빠진 사람은 또 있었다.

하워드 경비대장 역시 인명손실을 최소화 하며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애꿎은 커피만 마셔대고 있었다.

실내를 왔다갔다 서성이며 현역시절 자신이 펼쳤던 수많은 작전을 끄집어 내며 살폈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권총수와 오민철이 들어섰다.

“무슨 일 있나?”

“이것 어떨까요?”

“말해보게.”

“화력에서는 우리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인원까지 열세죠. IED를 이용하는 것이 어떨지?”

“급조폭발물을? 어떤 형태로 말인가?”

하워드 눈이 빛난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이다.

“정면 대결은 어렵고, 그 방법 뿐입니다.”

“놈들의 작전시간이 밤11시로 본다면 IED를 설치할 시간이 그다지 넉넉하지 않군.”

“세이초 현장소장을 만나서 부탁 하나 해보시죠?”

“말해보게.”

“도로공사이기 때문에 발파용 다이너마이트 많을 겁니다?”

화악!

하워드 눈이 커졌다.

전혀 예상못한 얘기였다.

현장소장 세이초의 표정이 굳었다.

그건 권총수의 제안이 자칫 큰 문제를 야기 할 수도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이너마이트는 이 지역 이라크 지방정부에서 관리합니다. 발파 작업이 필요할 때 자료를 제출하고 사용할 양만큼 받아 오죠.”

“모든 공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입니까? 건설회사가 그 나라 지방 정부에 다이너마이트를 맡기느냐는 겁니다?”

권총수가 이해 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지 않죠. 이곳만 특별합니다. 이라크는 지금 B등급의 나라입니다.”

“B등급은 또 뭡니까?”

“A등급은 전쟁지역이고 한 단계 아래인 B등급은 종전은 되었지만 치안이 무척 불안한 나라를 의미하죠.”

세이초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언제든지 어떤 이슈 없이 곧바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을 말하죠. 사실 다이너마이트는 건설회사가 소유하고 관리합니다. 다만 이라크라는 위험성을 감안하여 번거롭긴 해도 필요할 때마다 가져오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럼 경비 병력은 뭐요?”

“다이너마이트를 보관하고 있게 되면 지금부터 훨씬 많은 외부 공격이 있겠죠.”

다이너마이트를 지방정부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정도의 무난한 공사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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