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폭풍전야(2)
해가 지면서 야간조가 투입되고 주간조가 숙소로 돌아왔다.
주간 12명 야간 12명으로 움직이고 행정요원은 경비대장 하워드와 올해 33살인 이라크인 살리흐였다.
바그다드 대학을 졸업했고 미국과 이라크 전쟁에도 참여한 자칭 민족주의자이다.
그러나 경제활동과 전쟁은 별개여야 한다는 본인의 소신으로 KAS 취업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사실 런던 본사에서는 권총수에게 사우디에서 활동할 대원들을 선발할 권한을 주었다.
파흐드 왕자를 보호하는건 어쩌면 베네수엘라 쿠데타 보다 더 큰 돈뭉치가 걸려 있다고 봐야 했다.
만에 하나 알 살만을 밀어내고 파흐드 왕자가 국왕이 되면 베네수엘라에서 들어온 돈과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그런 계산으로 스톤스의 관심은 지금 온통 사우디에 집중되어 있고 권총수에게 사우디지사장 겸 중동 지역을 총괄하는 에반까지도 끼어들 수 없는 몇 가지 권한을 주었다.
민간 기업이지만 특수부대 출신들로 이뤄진 보안업체다 보니 군대의 체계가 어느 정도는 적용되고 있었다.
“에반 지사장에게 대충 설명을 들었네. 그런데?”
하워드는 이제 막 외인부대 옷을 벗고 나온 네 사람을 보았다.
SAS 대 테러팀처럼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조치가 가능한 신속대응반을 운영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고작 이들 네 명이냐고 묻는 시선이었다.
“이번 작전은 이대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중차대한 작전을 앞에 두고 신규 병력을 많이 투입하는 건 그다지 좋지 않죠.”
“그건 그렇지.”
“총기는 416으로 준비 했다고 들었습니다?”
HK416을 말한다.
성능이 좋다는 건 누구도 인정하지만 비싸다는 것이 전 직원에게 지급하기 곤란한 여건이 된다.
그런데 권총수의 보고를 들은 런던 본사에 서둘러 이곳 미츠이 건설 경비인력에게 HK416을 지급했다.
“가지!”
하워드가 사무실 구석으로 가더니 커다란 금고 번호를 눌렀다.
금고는 이중으로 되어 문이 열리자 한 번 더 잠금장치가 되어있다.
“와우!”
두 번째 문이 열리고 그 안에 HK416을 포함한 많은 중화기들이 들어 있었다.
네 사람의 눈이 반짝인다.
고장이 적고 총알 쏟아 붓기는 지구상에서 HK416만한 총도 드물다.
“아무리 전역 직후라도 바깥 공기 마셔 버리면 총알이 자유를 찾아간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고.”
긴장이 풀리기 때문에 군에서 보여준 사격실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욱이 자신이 사용하던 총기가 아니므로 손에 익히려면 당장 방아쇠를 당겨봐야 한다.
“밖에 버스 있네. 20여분 정도 가면 허허벌판에 괜찮은 사격장 하나 만들어 놨지.”
하워드가 건네준 옷은 정찰 침투 훈련 때 입는 흑복이었는데 이곳 경비현장에서 입는 근무복이기도 했다.
“출발!”
25인승 버스 한 대가 권총수 일행을 태우고 사무실을 떠났다.
런던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스톤스는 오랜만에 친구 캘러가 운영하고 있는 바(BAR)를 찾아 위스키 잔을 기울였다.
항상 혼자다.
군에서부터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고 담배도 혼자 피운다.
그 버릇은 사회에 나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어쨌든 그런 친구가 제 발로 찾아와 술을 마신다.
“자네에게 고민거리가 있을 리는 없을테고 말일세.”
주인이면서 친구인 캘러가 물었다.
쭈욱!
얼음에 든 위스키를 비우자 캘러가 병을 들었다.
또르르르!
얼음 위로 떨어지는 위스키가 천장의 불빛을 받아 붉게 넘실거린다.
“나도 사람일세.”
“걱정이 있단 말인가?”
“자네 아직도 경마 하나?”
“물론이지. 내 인생에 경마는 최고의 환희라네. 내가 선택한 말이 결승선을 향해 달려올 때면 그야말로 미치고 돌아버리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는 듯 단박에 웃음이 피어난다.
“승률이 몇 퍼센트 정도 되나?”
승률얘기에 멈칫 하더니 눈을 빛냈다.
“경마에서 승률은 큰 의미가 없네. 배당이 어느 정도 인지가 관심 사항이지. 별 볼일 없는 배당 경기는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이지만 몇 십 배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추월할 듯 위협해 오는 주위 말들을 보면 때려죽이고 싶다네.”
“경마로 돈 따는 사람 있나?”
“없지. 하지만 경마는 일반적인 계산법으로 손익을 따지면 안 된다네. 워낙 딸 수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100유로 잃고 70유로만 건져도 땄다고 하지.”
스톤스의 눈이 커졌다.
“무슨 계산법이?”
스톤스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경마를 상식으로 들여다보면 이해를 하지 못하네. 경마는 경마의 눈으로 봐야 하네.”
“경마의 승패는 어디에서 갈리는가?”
“그야 결승점이지. 아무리 출발이 좋고 중간 스피드가 좋다고 해도 결과는 결승선을 누가 먼저 들어 왔느냐 아니겠나. 초반에 아무리 잘 뛰고 선두를 압도 한다고 해도 늦게 들어오면 소용없지.”
“좋은 얘기로군. 진정한 챔피언은 마지막에 결정지어진다.”
스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의 마지막은 어디일까?”
“이 사람.”
캘러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 일 있나? 그러고 보니 평소 자네 답지 않아. 자네란 사람은 매우 차분하고 조용했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어.”
그런데 오늘은 조금 틀리다.
뭔가 쫓기고 불안한 얼굴이었다.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나? 신문에 보니까 아주 잘나가고 있는 것 같더군. 영국 보안 기업중에는 단연 선두 아니던가?”
“그러게 말일세.”
스톤스는 위스키를 비웠다.
“그만 마시게.”
한 병을 비웠다.
“한 병 더 마시면 안되나?”
“그건 아니지만, 알겠네.”
캘러는 뒤에 진열된 위스키 한 병을 꺼내 마개를 땄다.
“얼음도 있어야 겠군.”
아이스 바스켓을 들고 가더니 냉장고에서 얼음을 담아왔다.
언더락스 잔에 얼음을 담고 술을 채웠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 된다면 KAS는 보안업계 최고의 브랜드로 우뚝 설 것 같은데 말일세.”
“그러고 보니 매우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있나보군.”
“아직도 교회에 다니나?”
“물론이지. 늙어갈수록 교회에 다녀야 하는 법이라네.”
“기도 좀 해주게. 사우디 차기 국왕이 파흐드 왕세자가 되도록 말일세.”
흠칫!
캘러의 눈이 커졌다.
“베네수엘라 엎었으면 됐지 이제 사우디까지 바꿔 버릴 생각인가?”
“못할 것도 없지.”
스톤스는 빙긋 웃었다.
“내 꿈이 뭔지 아나? 자네 꿈이 일천 배 배당을 받는 경마 한번 찍어 보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경마 갤러리들의 꿈이지.”
“경마꾼이 아니라 갤러리라. 갑자기 자네가 멋있어 보이는군.”
“자네 꿈은 뭔가?”
“에릭 프린스를 내 발아래 두는 거지.”
“전쟁의 상인.”
캘러의 눈이 커졌다.
쭈욱!
스톤스가 잔을 비웠다.
‘긴장하고 있다’
뭔가 중대한 사건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두 대의 버스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창문은 바깥에서 안을 들려다 볼 수 없도록 까맣게 선팅이 되어 있었다.
버스는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바그다드를 출발한 버스는 세 시간을 달려 나시리아에서 60킬로 떨어진 아랄라야에 도착했다.
아랄라야는 상당히 큰 마을이다.
인구는 팔백 명이 조금 넘었고, 특히 유프라데스강이 흐르는 강변에 자리잡고 있어 땅은 비옥했다.
강물을 끌어 들여 목화와 담배를 생산하는데 이라크 국민 70프로가 하루 생계비 6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것에 비해 이 지역 사람들은 18달러이다.
무자비했던 내전과 미국과의 전쟁도 살짝 비켜가는 바람에 마른 담배잎을 실어나가는 차량과 목화 솜을 운반하는 트럭들이 끊이지 않는다.
버스 두 대는 유프라데스강이 내려다보이는 해발 200미터의 아랄라야의 라흘산 아래 멈췄다.
두 대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의 숫자는 80명이다.
그들의 손에는 AK-74 소총, 특히 무게가 8킬로에 가까운 기관총 PKP를 휴대한 사내들이 여럿 보였다.
사내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일제 혼다 SUV 2대가 들어왔다.
차량 지붕에 뭔가 실렸는데 사막색 포장으로 덮여 있었다.
차가 멈추고 조수석에서 내린 사내가 뒷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머리를 지붕 밖으로 내밀고 덮인 포장을 벗겼다.
총신이 2미터 가까운 육중한 기관총이 나타났다.
Kord-6P60 중기관총이다.
러시아 보병장비로 무게가 병사들이 휴대하고 이동하기에 곤란한 25킬로가 넘는 중화기이다.
그래서 차량에 설치되어 운용된다.
생김새는 앞선 모델 NSV 중기관총과 비슷하지만, 볼트의 잠금장치를 포함해 몇 가지 설계가 변경되면서 반동이 감소되었고 명중률이 높아졌으며 원거리 저격 능력까지 강화되었다.
사람 따위는 방탄복을 입든 엄폐물 뒤에 숨든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며 사실, 위력으로 보면 인간의 팔다리에 맞는게 아니면 웬만해서는 사망하므로 의료진을 부를 필요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기관총이다.
아카데미의 키 작은 사내 딕이 작전지도를 가리켰다.
“여기서 50킬로.”
다섯 명의 사내들이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붉은 글씨로 ‘나시리아 미츠이 건설’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강을 따라 이동하고, 이곳 라흘 지역에서 1박, 그리고 모레 아침 나시리아 외곽에 있는 K지점에 모두 집결한다. 이상.”
딕이 질문 있으면 하라는 듯 사내들을 보았다.
“그렇다면 환복부터 실시한다.”
다섯 명의 사내들이 돌아갔고 잠시 후 80명의 사내들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모두가 무슬림 복장이다.
미츠이 건설 측량기사 스가는 서둘렀다.
해가 지기 전에 측량을 맞춰야 내일 곧바로 설계에 들어가고 이어 현장 공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게으름을 피우면 모든 공사가 늦어진다는 건 굉장한 부담이었다.
광파거리측정기를 놓고 부지런히 거리와 지형의 각도를 살피고 있었다.
*광파거리측정기(光波距離測定器)측정하고자 하는 지점에 반사경을 설치하고 송신한 빔의 반사파를 이용하여 거리를 측정 하는 측지 장비.
떨어지는 해의 속도는 유난히 빠르다.
야간작업은 곤란하다.
적의 이동이나 수상한 움직임으로 관측되어 포격이나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끝났어도 이라크의 치안은 여전히 흐트러져 있었다.
“우라질!”
서두르다 보니 한 두 시간 전부터 배설의 충동을 느꼈지만 참고 있었다. 배설하는데 족히 5분에서 7분을 잡는다 쳐도 몇 백 미터는 더 측량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꼬르륵!
급기야 아랫배에서 소리가 들리면서 인내의 한계에 온 것을 느낀다.
부지런히 옆에 있는 노트북으로 측량기록을 타이핑하던 스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현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폭격으로 파괴된 도로 옆은 암석사막이었다.
오랜 세월 거친 바람에 할퀴고 쓸리면서 바위들은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2미터 정도 되는 남자의 성기를 닮은 바위 뒤로 돌아가 재빨리 바지를 내리고 쭈그려 앉았다.
뿌다다다!
예상대로 쭈그리고 앉자마자 쏟아진다.
이미 해는 떨어졌고 사막은 조금씩 어두워 오기 시작했다.
기숙사가 있는 현장 사무실까지는 대략 10킬로 가까이 떨어져 있다.
오후 7시가 넘으면 모든 인력은 무조건 현장에서 철수하게 되어 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은 40분 정도 남았다.
40분이면 측량기사에게는 세월이다.
배설의 시간을 단 일분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만큼 힘을 주었다.
푸다다다!
어느 정도 뱃속이 안정되자 휴지로 깔끔하게 처리 한 후 일어서던 스가는 멈칫 했다.
두 명의 무슬림이 지팡이를 짚고 사막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얼핏 봐도 순례자 행색이다.
자신을 낮추고 인간의 고통의 끝을 경험하여 알라의 위대함을 재발견하려는 사람들이다.
흔히 보듯 지팡이에 남루한 행색의 회색의 칸두라에 검정색 구트라를 머리에 덮어 썼다.
모래바람을 막으려는 듯 쓰고 있는 구트라로 얼굴 일부를 가려 용모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척!
두 순례자의 걸음이 멈췄다.
밤이 다가오자 오늘밤 쉴 곳을 찾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