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폭풍전야(1)
그렇다면 아카데미의 다음 행동은 무엇일까.
권총수는 본부가 사라졌으므로 반드시 지부를 노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마련된 회의인 것이다.
“총수!”
에반이 입을 열었다.
권총수눈 고개를 돌렸다.
에반이 무척 곤혹스런 얼굴로 바라본다.
피식! 그러다 본인도 우스꽝스럽다는 듯 가벼운 실소를 짓고 말았다.
“말씀하시죠.”
“아니야.”
에반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파흐드 왕세자 경호팀 일원으로 지난 번 폭발사고에서 가까스로 살아 난 사람 중 한 명인 노랑머리의 호건이 입을 열었다.
“각 지부에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경계령이 하달됐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우리가 알고 있는데 천하의 아카데미라도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해.”
잉글랜드 국가대표였던 웨인 루니를 닮아 조지 루니로 불리는 사내가 말했다.
“콜!”
“콜!”
여기저기서 두 사람의 생각을 지지하고 호응하는 반응들이 튀어 나왔다.
에반도 그들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 부릅뜨고 지키고 있으니 괜찮다.”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사담 후세인은 정신 차리고 지키지 않아서 미국에게 얻어 맞았을까요? 미국의 침공에 대비해 공화국수비대를 중심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여러분이 알다시피 어찌됐죠?”
“아카데미가 미국인가. 그럼 우린 이라크?”
에반이 물었다.
“상대를 높게 평가 할수록 싸움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강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준비를 하죠. 하지만 우습게 본다면 맞아 죽기 좋습니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을 우습게 보다 얼마나 고생 했습니까. 다행히 러시아가 개입하며 내전을 승리로 마무리 했지만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호건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봐, 총수 자네 실력은 분명 인정한다. 이 바닥도 어차피 실력 좋은 놈의 목소리 데시벨이 높다는 걸 알지. 하지만 KAS를 이라크와 견준다는 건 너무 한 것 아냐? 좋아, 그렇게 상황판단이 자신 있다면 아카데미가 어느 지부를 칠 것 같나? 내가 아는 작전참모들은 정확히 적의 공격 시점과 형태까지 예측하던데 말이야.”
권총수는 허리를 폈다.
“알면 이런 피곤한 회의는 하지 않죠.”
“피곤한 회의라고 했나?”
호건의 눈초리가 차가워졌다.
피곤한 회의라는 건 분명히 자신들을 무시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느 누구하나 그럴싸한 전략 전술 하나 내 놓지 못하는 당신들 데리고 벌써 한 시간을 넘겨 회의를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의미라고 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오해가 있습니다. 내 말뜻은 그게 아닙니다.”
“잘난 후배님께서 한 번 내놔 보시지? 아카데미가 언제 어느 지부를 칠 것 같나?”
“흐흐흐!”
“푸훗!”
여기저기서 비아냥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어디서 웃고 지랄들이야.”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지금 서로 잘해보자고 대갈통 쥐어짜는데 너흰 뭐하는 거야. 적이야 아군이야. 어떻게 동료를 면전에서 비웃을 수가 있어.”
스윽!
그 순간 조지 루니가 양쪽 눈꼬리를 찢듯 잡아 당겨 원숭이 시늉을 냈다.
그건 백인들이 즐겨 쓰는 동양계를 조롱할 때 보이는 인종차별적인 행동이다.
“개자식!”
오민철이 그대로 점프해 날아갔다.
꽈당!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몇 바퀴 구르더니 벌떡 일어났다.
“흐흐흐, 냄새 나는 놈.”
부웅!
조지 루니가 주먹을 휘둘렀다.
한방에 보내 버리겠다는 듯 각도가 큰 롱 훅이다.
오민철이 슬쩍 주먹을 피하여 돌려차기로 옆구리를 찍었다.
퍼억!
굉장히 빠른 발차기에 이어 몸이 풍차처럼 회전하며 왼발로 조지 루니의 턱을 후려 버렸다.
빠악!
육중한 덩치의 조지 루니가 비틀 거리자 휘익! 오민철은 한번 더 180도 돌아서며 재차 후렸다.
뻐어어!
이번 발길질에는 제대로 나가 떨어졌다.
슈욱!
그 순간 지켜보고 있던 호간이 탁자 위에 있는 재떨이를 거머쥐고 다가갔다.
쓰러진 조지 루니를 으르렁 거리며 내려다보고 있는 오민철의 뒤통수를 갈기려 했다.
뚝!
그런데 호간의 동작이 중간에 멈췄다.
권총수가 지풍으로 재떨이를 내려치려는 호간의 곡지혈을 눌러 팔을 마비시킨 것이다.
저벅저벅!
앉아 있던 권총수가 다가갔다.
호건은 그때까지도 그대로 재떨이를 들고 있었다.
권총수가 호간 앞에 서더니 아직도 들고 있는 재떨이를 빼앗아 머리를 후려쳤다.
뻐어억!
두꺼운 재털이가 박살이 났고 호간의 머리가 깨지며 피가 흘렀다.
“어이 루니.”
동료들에 의해 코피 치료를 받고 있는 조지 루니에게 다가갔다.
퍼어어!
강력한 오른 주먹이 복부에 틀어 박혔다.
푸우우!
강한 타격에 겨우 진정된 코피가 재차 터져나왔다.
“우린 생사를 같이 해야 할 전우다. 한 번 더 그따위 인종차별 적인 동작을 했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다”
매서운 눈으로 노려본 뒤 돌아서서 호간의 팔을 향해 지풍을 날렸다.
팟!
지풍이 곡지혈에 찍히며 호간은 팔을 내렸다.
“이런 건 아카데미 애들 뒤통수 갈길 때 쓰는 거야.”
호간은 손을 움직여 보았는데 이상이 없다.
그런데 조금전 왜 갑자기 마비가 됐을까.
오민철과 걸어가는 권총수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군악대의 외인부대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네 사람은 부대장과 악수를 했다.
6년 반의 군 생활을 마무리 했다.
동료들의 환송을 받으며 부대 정문을 막 나왔을 때 비렌드라가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총수!”
권총수 이름이 나오자 나머지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뭐라구, 나시리아로 출발하라구, 우리가 거길 왜 는데?”
비렌드라가 이마를 찡그렸다.
“할 수 없지, 알았어.”
비렌드라가 전화를 끊자 기다렸다는 듯 물어본다.
“나시리아는 또 뭐야?”
의무병 출신의 피아퐁이 눈을 빛낸다.
“나시리아에서 고속도로 복구 공사를 하고 있는 일본의 미츠이 건설현장으로 가라는데.”
“미츠이 건설.”
나카야마의 눈이 커졌다.
“미츠이 건설이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대형건설사인데 거긴 왜 가는거지?”
“좋은가 보군?”
브라질 출신의 오스카르가 물었다.
“당연히 좋지. 우리나라 건설 회사인데.”
비렌드라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솔직히 하루라도 빨리 이라크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전쟁은 끝났고 반군도 거의 토벌되었지만 크고 작은 테러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그로 인해 외인부대 뿐 만 아니라 미군들까지도 외출 외박이 금지 되었다.
더욱이 나시리아는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도시이다.
이름하여 미군의 무덤.
“할 수 있어. 총수가 가라면 가야지.”
일행은 아르빌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하여 나시리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금은 도박을 해야 할 때이다.
패를 잘못 잡으면 돈은 잃는 다는 걸 알면서도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매복은 100프로 확신하에 설치하지 않고 가능성에 승부수를 띄운다.
이번 일도 매복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
아카데미가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KAS 지부는 모두 다섯 곳이다.
다섯 곳의 길목중 하나를 선택 했는데 그곳이 바로 나시리아의 미츠이 건설인 것이다.
두 달 만에 다시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대낮이었고 고속도로이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택시는 버스나 다른 대형교통수단과 달리 매복이나 급조 폭발물에 걸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스피드라는 무기를 갖고 있었다.
아시리아까지 약 360킬로다.
“빨리 갈수록 좋소.”
그러면서 600달러를 건네자 기사의 눈이 커졌다.
왕복 300달러면 충분한데 600이라니.
어제 밤 꿈에 전쟁통에 죽은 아내를 봤는데 기어이 이런 횡재수가 생겼다.
“알라후 아크바르.”
신은 위대하다.
이런 사람은 당연히 알라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 했다.
택시는 예상보다 30분을 앞당겨 3시간 만에 도착했다.
미츠이 건설 현장 사무실은 나시리아 외곽에 있었다.
“저길 봐.”
택시에서 내린 권총수가 한쪽을 가리켰다.
커다란 바위 절벽에 이라크 국기가 조각되어 있었고 그 아래 미국 성조기를 상징하는 별 하나가 깨진 형태로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이렇게 쓰여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죽었다’
“그들이라면, 미국?”
오민철이 묻는다.
“빙고.”
권총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매복전이 어떤 것이라는 걸 여기서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보여 주었다고 배웠지”
스나이퍼 스쿨에서 나시리아 전투가 주는 교훈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나시리아는 수도 바그다드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이다.
더욱이 도로 사정이 좋고 빠른 공격, 신속한 종전이 목표인 미군 입장에서는 우회할 이유가 없는 도시였다.
이 도시에는 두 개의 다리가 있다.
남쪽 다리는 시내로 들어오는 진입형태의 다리이고, 북쪽 다리는 빠져 나가는 다리였다.
물론 군사작전의 시선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두 개의 다리 모두 그냥 유프라데스강을 건너는 다리일 뿐이다.
미군 제2해병원정여단 1대대 부라보 중대가 먼저 진입하여 교두보를 확보하고, 2중대는 시내 요소요소를 장악하면 본대가 들어온다는 전략이었다.
물론 미군도 시내에 이라크 군이 매복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군이 판단하고 예상한 것보다 이라크 매복 공격은 훨씬 강했고 결국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이라크 전쟁 개전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를 입게 된다.
매복이라는 전술이 바로 그렇다.
결코 밑질 장사가 없는 것이다.
안 걸리면 헛고생 하는 것이고 걸리면 대박인 것이다.
미군에게 가장 큰 피해를 줬다는 자부심에 누군가 새겨 놓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작전도 그렇다 이거야?”
오민철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사실 권총수는 지금 전혀 근거 없이 도박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나름대로는 치밀한 분석을 마쳤다.
미츠이 건설이 아카데미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일본 기업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한국은 쥐잡듯 하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한다.
세계에서 경제력이나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주요 7개국 모임(G7)만 보더라도 그렇다.
7개 나라 중 가장 존재감이 없는 나라가 일본이다.
오로지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정치 말고는 국제무대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없다.
아카데미는 전쟁회사이긴 해도 미국 기업이다.
미국에는 유난히 약해지는 일본을 볼 때 아카데미에게는 미츠이 건설이 가장 적절한 타겟이라는 것이 권총수가 내린 계산이다.
미츠이 건설 현장 사무실에서 20여미터 떨어져 2층짜리 조립식 건물이 있었다.
한쪽에 일본 국기가 걸려 있는 것이 미츠이 건설 사무소라는 것만 알 수 있었는데 1층 문을 열고 들어갔다.
KAS 미츠이 건설 이라크 현장 경비 사무실이다.
“총수!”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나카야마였다.
네 사람 모두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외인부대 면회실에서처럼 또 다시 시끌벅적한 해후가 이뤄졌다.
권총수는 미츠이 건설 현장을 지키는 경비대장 하워드에게 다가갔다.
올해 39세로 드물게 영국 코만도 출신이다.
권총수가 거수 경례를 하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흑새. 자네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지.”
하워드는 오민철과도 악수를 하며 웃었다.
“자네 두 사람이 외인부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스카웃 제의 안을 내놨던 사람이 나였네.”
에반을 통해 들은 얘기였다.
제대하고 찾아가면 늦다.
그러니 지금 당장 찾아가서 어떤 식으로든 데려와야 한다.
후발 주자인 KAS가 아카데미를 비롯한 보안업계 넘버 3를 이기기 위해서는 좋은 재목은 무조건 선수 치는 것 말고는 없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