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추격전(2)
권총수는 핸드폰을 윌리엄의 귀에 대주었다.
“주...소령님!”
“오 맙소사!”
목소리가 제대로 흘러나오지 못하자 이쪽 상황을 간파한 듯 했다.
“어딘가? 지금 누구와 있나?”
“모르겠습니다.”
권총수가 핸드폰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었다.
“안녕하십니까? 소령님 명성은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게 예의인데 이것 매우 송구하게 됐습니다?”
“포레스트?”
“언젠가 용병에게도 지켜야 할 룰이 있다는 소령님의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만."
뒷골목 싸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냐는 힐난이다.
벤저민은 당황한 듯 가만 있었다.
“씰 답지 않습니다.”
“자네 말이 틀리지는 않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 같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계속 이대로 가겠다는 말씀인지요.”
“어쩔 건가. 술 취해 멱살 잡고 네가 똑똑하니 내가 잘났니 하는 개 싸움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소령님!”
“못할 건 뭔가. 내 말이 틀리나?”
타아앙!
권총수는 들고 있던 권총으로 윌리엄을 쏘았다.
순간 벤저민은 침묵했다.
지금 들려오는 총소리가 뭘 의미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한번 할 테면 해보자는 의미다.
먼저 시비를 걸지는 않지만 걸어오는 시비를 피할 마음은 없다는 뜻이었다.
“조심하십시오. 제 총은 실수 하지 않습니다.”
휘익!
권총수는 한쪽으로 전화기를 던져 버렸다.
여섯 명 모두가 죽었다.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승부는 반반으로 봤다.
윌리엄은 충분히 신뢰할 만큼 품위와 격식을 갖춘 씰 출신의 용병이었다.
그런데 여섯 명은 죽음을 당했다.
후후!
벤저민은 한숨을 내 쉬듯 담배 연기를 뿜었다.
다시 한 번 살고 죽는 것이 너무 가볍다는 생각을 한다.
지이잉!
전화가 울렸다.
흠칫!
액정에 노스캐롤라이나라는 글씨가 떴다.
그다.
자신을 1년에 160만 달러를 주고 고용한 고용주인 것이다.
요즘 전화가 잦다.
웬만해서는 가볍게 행동하지 않는 성격이고 보면 이번 바큘라 죽음에 매우 불쾌한 기분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예 회장님!”
“결과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몹시 기다린 모양이다.
벤저민은 순간적으로 뭐라고 말을 해야할까 생각했지만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실패했습니다.”
벤저민은 말 돌리지 않기로 했다.
자꾸 이리저리 핑계를 대다보면 자신이 더욱 초라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해보게?”
“전원 사망했습니다. 다행히 사우디 왕실에서 사건을 덮어주어 언론보도는 없었습니다.”
“작전에서 문제가 있었나 보군.”
아무리 훈련이 잘된 군인도 지휘관의 작전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좋은 결과를 얻어 내지 못한다.
프린스 회장은 지금 아카데미 용병이 세계최강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벤저민은 슬그머니 프린스 회장의 말에 동조했다.
부하들의 역량은 최고지만 리더인 자신의 작전전개 미숙으로 실패를 몰아가야 프린스 회장의 자존심이 지켜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다면 얼마든지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어찌할 생각인가?”
“계속 달려야겠지요.”
선택의 여지는 없다.
뉴스에 보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비밀로 완전히 잠기지는 않는다.
말은 발이 없지만 세상 곳곳으로 잘 퍼져 나간다.
한껏 부정적인 내용이 부풀려져 고객의 귀에 들어간다.
시장에서 아카데미에 대한 평가는 떨어지고 반대로 KAS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다.
고용주들은 무조건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만 할 뿐 기존 거래처라고 해서 신뢰나 의리 따위는 보여주지 않는다.
가뜩이나 베네수엘라 쿠데타 성공으로 KAS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로메로 야당 대표가 아카데미와 계약을 했다면 결과가 어찌됐을까.
시장의 의견은 분분했다.
‘아카데미라면 아예 대통령궁을 부서 버렸을 것이다. 아카데미에게는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시장의 70프로는 그런 평가를 내렸지만 30프로는 쿠데타는 전쟁처럼 무조건 죽이는 작전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장담할 수 없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특히 몇몇 글로벌 기업 총수들은 SAS의 저력을 보여준 한판의 게임이었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건 언제든지 자신들과 계약이 끝나면 KAS와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프린스의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든 것이었다.
“좋은 얘길세. 끝까지 가야지.”
처음 보다는 목소리가 다소 가라 앉은 것이 어느 정도 분노를 다스린 듯 보였다.
“전쟁은 규칙이 있지만 이건 없거든.”
국가 간에 벌어지는 전쟁에서는 죽여야 할 대상, 죽여서는 안 되는 대상이 국제법으로 정해져 있으나 민간 시장의 싸움은 다르다는 의미였다.
이기는 회사가 강하고, 시장의 돈은 그들에게 몰려든다.
전장과 달리 민간시장은 무조건 이겨야 브랜드 가치가 상승한다.
그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걸 인색하게 만든다.
가끔 지나치게 저열한 방법과 잔인한 폭력으로 보안시장이 뉴스의 중심이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덮인다.
“칼을 뽑았으면 휘둘러야 한다네.”
프린스는 전화를 끊었다.
벤저민은 핸드폰을 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직까지 보안업체 간의 전쟁은 없었다.
가끔 크고 작은 충돌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회사 고위층끼리 만나 적절한 손해배상과 명예회복에 합의한다.
인터폰을 눌렀다.
“네 지사장님!”
엠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부장 회의를 소집해요.”
“알겠습니다.”
벤저민은 상체를 뒤로 눕혔다.
“으음!”
사건이 커질 듯 싶다.
빼로이 전기 회사가 사라졌다.
흰색의 3층 건물은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지만 입주해 있던 사무실이 감쪽같이 증발 한 것이다.
보고를 받은 벤저민은 이마를 찡그렸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평상시처럼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주차장에는 KAS지사장 에반의 랜드로버가 있었다.
이사를 갔다면 어제다.
하루 만에 가정집도 아닌 수많은 폭탄과 총기류까지 보유한 병참기지가 사라질 수 있을까.
근처 주민들을 상대로 빼로이 전기에 대해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흐흐! 야반도주로군”
월리엄의 친구이자 키 작은 사내 딕이 히죽 웃었다.
우리가 무서워서 도망친 것이라는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한 밤중에 튀냐고, 그런다고 우리가 찾지 못하진 않겠지만.”
전장에서 적이 도망쳤다는 건 굉장한 승리감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벤저민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도망이라기보다는 전술적인 후퇴에 가까운 행동이 분명했다.
전술적 후퇴는 이 싸움을 해야할지, 한다면 이길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을 때 주로 나타난다.
무모한 싸움이라는 걸 알고서 공격 앞으로를 외치는 지휘관은 없다.
그래서 전쟁은 지휘관들의 싸움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벤저민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대처는 어떤 것일까 오랜 전장의 경험을 꺼내 살펴보기 시작했다.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민간 기업이 국가 간의 전쟁처럼 광활한 땅을 놓고 포격하며 돌격 앞으로 할 수는 없다.
군부대의 야전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하면서 벌여야 하는 테러에 가까운 전쟁형태를 띌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중요하다.
적이 숨어 오랫동안 치밀한 작전계획을 세울 시간을 허락해서는 안된다.
촤라락!
리모컨을 누르자 맞은편 벽에 스크린 하나가 내려왔다.
“KAS가 활동지역을 띄워봐.”
엠마가 재빨리 화면을 켰다.
사우디를 포함하여 중동의 지도가 나타나고 빨강색, 주황색, 노랑색의 동그라미 20여개가 그려졌다.
많은 기업들이 민간보안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한 달 평균 십여 개의 기업이 시장에 진출하지만 자금사정과 사건 사고로 문을 닫는 보안업체 또한 적지 않았다.
아카데미는 시장에서 가장 위협적이거나 항상 긴장하며 경계해야 할 경쟁회사를 다섯 개 색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지도에 그려진 빨강색은 다인코프(DynCorp)다.
빨강색은 모든 스포츠에서 강력한 반칙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퇴장신호다.
즉 다인코프는 언제든지 자신들을 위협 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경쟁 기업이라는 뜻이다.
짐승들로 불릴 만큼 무자비하다.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색깔을 만들기 위해 거칠게 나간다는 말도 있다.
주황색은 잠재적 경쟁기업을 의미하는데 마르케스 반체 마르케스가 있다.
항상 지켜보고 살펴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다섯 개의 노랑색의 동그라미가 중동의 지도 여기저기 보인다.
엘로우 카드.
스포츠에서는 경고로 주어지며 한 번 더 반칙을 할 경우 퇴장시키겠다는 뜻이다.
KAS였다.
아카데미에게 KAS는 아직 경쟁기업이 아니지만 언제든지 치고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지역이 어디야?”
그러자 키 작은 사내 딕이 말했다.
“A는 파흐드 왕세자를 지키는 그룹이고, 동그라미 B는 시리아 동부‘파오랄’유전입니다”
“파오랄은 국영기업인가?”
“그렇죠.”
“동그라미 C는 이라크 고속도로 재건에 끼어든 일본의 건설사 미츠이입니다.”
“D는 사우디 남부 항구도시 지잔입니다. 영국 건설기업 마호트가 입찰을 따내 벌이고 있는 항만공사를 경비하고 있죠.”
벤저민의 시선이 KAS가 지키고 있는 기업과 개인들을 살피듯이 훑어본다.
중동에는 20여개의 보안 업체가 활동 중이다.
대부분 백명 이하의 작은 기업들이다.
대기업이랄 수 있는 천명 이상의 용병을 거느린 기업은 아카데미를 포함해 다인 코프, 마르케스, 그리고 얼마 전 막 일천 명을 넘어선 KAS 뿐이다.
뚝
지도를 살피던 벤저민의 시선이 한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이라크 고속도로 공사에 나선 미츠이 건설사가 있는 곳이었다.
“미츠이가 일본기업이지?”
“그렇죠. 아주 큰 건설사입니다.”
“KAS와 계약 조건은 알 수 없겠지?”
보안 업계에서 계약조건은 특급 비밀에 속한다.
* * *
같은 중동 지도지만 그려진 문양은 달랐다.
삼각형, 동그라미, 사각형, 별표등 여러 도형이 그려진 지도였다.
십여 명의 사내들 시선이 지도를 살피고 있었다.
흘긋!
사우디 지사장 에반이 고개를 돌려 좌측의 권총수를 살폈다.
중동 지도를 한번 보자고 제안한 것도 권총수이고, 오늘 회의를 소집하게 된 것도 권총수 의견 때문이다.
그런데 회의가 열린지 30분이 지났지만 정작 본인은 한마디 언급이 없다.
점차 사내들 시선도 하나 둘 권총수를 향해 돌아선다.
당장 사무실부터 옮겨야 합니다.
아카데미는 사우디에서 만큼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차기 국왕이 될 알 살만 왕세자가 뒤에 버티고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아마 KAS의 본부인 사무실을 정면으로 치고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설마 그러겠나.
지금 업계 시선은 아카데미에 쏠려 있습니다.
과연 KAS에 의해 구겨진 자존심과 명예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죠.
그들의 방법은 강력하고 매서울 것입니다.
당장 사무실부터 폐쇄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야반도주 하듯 은밀하게 사무실을 옮겼다.
권총수의 예측대로 아카데미 요원들이 빈 사무실을 확인하고 돌아간 것을 확인했다.
아직까지 그의 판단은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