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아르빌의 사내들(2)
택시가 외인부대 앞에 멈췄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정문 위병을 향해 다가갔다.
“면회 왔습니다.”
오민철이 말하며 여권을 내 밀었다.
“근무자는 외인 7중대 1소대 소속 비렌드라, 오스카르, 나카야마, 피아퐁이오.”
“네 사람?”
위병이 물었다.
“그렇소.”
“저쪽으로 들어가셔서 신청하시면 됩니다.”
여권을 건네주며 면회실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위병을 향해 씨익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1년이지?”
“그렇지.”
1년 만에 온 것이냐고 묻자 권총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두 사람은 면회실에 앉아 있는 행정병에게 면회자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병사는 잠시 기다리라면서 외인7중대에 전화를 걸었다.
면회실이 시끌벅적 했다.
외인부대 7중대1소대 대원들이 나타난 것이다.
가장 시끄러운 사람은 나카야마와 오민철이었다.
근무시절 나카야마는 오민철의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나카야마 역시 오민철을 자신의 심심풀이로 여기며 적당히 약을 올리면서 둘은 무척 가까웠다.
“야, 쪽바라 월급 얼마 받냐?”
“조센징 뭐라고? 안 들려 다시 말해봐?”
“뭐 조센징 이 쪽바리 새끼가.”
오민철이 눈을 부라리자 나카야마가 히죽 웃는다.
“이천오백 유로.”
“이천오백 유로면 우리 한화로 얼마야.”
오민철은 핸드폰을 꺼내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렸다.
“어랏, 360만원이 채 못 되잖아. 임마 이돈 받아서 생활은 되니?”
“되지.”
“한심한 쪽바리, 아예 안 먹는구나. 쯧쯧, 어쩐지 얼굴이 누렇게 떴다 했는데, 임마 당장 그만 둬.”
“뭘 그만 둬, 날 더러 제대하라고? 미쳤어.”
“이 형 믿고 제대해.”
“우헤헤! 내가 지나가는 개를 믿지 어떻게 조센징을 믿어.”
“야 총 없냐. 저 쪽발이새끼 죽여 버리겠어.”
오민철이 쫓아갔고 나카야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갑자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모두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는데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초...총수!”
히말라야 눈 사나이 비렌드라가 더듬거렸다.
“일급 오백달러?”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물론!”
“그럼 한 달에 만 오천달러?”
모두의 눈이 커졌다.
오민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껄껄 웃었다.
“개 촌놈 자식들, 믿겨지지 않을 거야. 이것 봐.”
오민철이 지갑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지난 1년여 내 통장에 찍힌 입금액이야. 잘 보라고.”
팔랑!
마치 꽃가루 뿌리듯 종이를 던졌고 소대원들이 벌떡 일어나 종이를 가로챘다.
탁!
팍!
종이를 여러 사람의 손끝을 스치며 비렌드라의 손에 들어갔다.
“어디 봐!”
비렌드라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자 오민철이 혀를 찼다.
“슬픈 어린양들.”
네 사람은 머리를 붙이며 비렌드라 손에 들린 종이의 내용을 보았는데 나카야마는 눈을 비볐다.
“에이 설마?”
“저 쪽바리 자식 못 믿겠다는 건데, 믿지 마 자식아. 넌 와도 안받아줘.”
오민철이 다리를 꼬고 앉았다.
지사장 에반은 30명까지 충원할 수 있다고 했으나 권총수는 고개를 저었다.
경호는 많은 인원을 동원한다고 해서 탄탄해지고 물샐 틈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시실 지금 파흐드 왕세자를 지키는 다인코프 용병들만으로도 전투기가 폭격을 하지 않는 이상 충분했다.
파악된 다인코프 용병은 25명이다.
반면 KAS는 15명이었는데 전번 폭탄테러로 현장에서 9명이 사망했고, 6명이 병원에 실려 갔다.
하지만 병원에서 추가로 두 명이 더 숨졌다.
현재 KAS가 파흐드 왕세자 경호에 동원할 수 있는 전체 인원은 5명밖에 되지 않는다.
에반의 말 속에는 얼핏 수적 우세를 이용해 다인코프를 눌러 보겠다는 계산이 읽힌다.
후발주자라는 정신은 이제 버려야 한다.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네 명을 바라보는 권총수는 반드시 데려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다음 달 초부터 3번째 연장 시기가 다가오는데 그때를 노리고 전역을 유도해 보려는 것이다.
자신이 판단하는 네 사람의 능력은 씰이나 델타포스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 역량을 지녔다.
“어떡할 거야?”
권총수 가까이 자리를 잡고 앉는 네 사람을 향해 다시 오민철이 물었다.
“저것 진짜야. 믿을 수 있어?”
“콰악!”
오민철이 손에 들고 있던 지포 라이터를 던질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자 나카야마가 얼른 팔을 들어 올렸다.
“총수야 쪽바리는 빼.”
“미안해 조센징.”
와당탕!
오민철이 책상을 넘어 날아가고 나카야마는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다.
권총수는 길리슈트 속에 자신을 감추고 총구를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거리 900.”
관측수 오민철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풍향 에스 이(SE:남동풍), 풍속1(ligh tair:초속 0.2미터 이상), 온도 41도.”
“오케이!”
잠시 숲속에 침묵이 감돌더니 격렬한 총소리가 들렸다.
타아앙!
파아아!
터번을 쓴 체 RPK를 쥐고 있는 남자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진다.
“팩트!”
오민철의 목소리에 희열이 배였다.
“10시 방향, 거리 870, 표적은 적 통신병, 바람과 온도 전과 같음.”
탕!
무전기를 매고 있는 구레나룻의 사내가 푹 고꾸라진다.
타아앙!
탕!
권총수의 총구가 연이어 불을 뿜어내고 IS대원들이 나동그라진다.
탁!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나동그라지는 마지막 IS대원에서 화면이 정지했다.
십여 명의 사내들이 앉아 있는데 모두가 전면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 벤저민이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드르륵!
숨이 턱 막힐 만큼 뜨거운 바람이 사무실로 밀려 들어왔고 벤저민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딸칵!
말보로 레드다.
고교시절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자신과 희로애락을 같이한 유일한 벗이다.
죽어가는 동료를 보며 아픈 마음을 달래지 못할 때도, 살기 위해 4킬로가 넘는 비좁은 하수구를 포복으로 기어 갈 때도 그를 항상 위로하고 격려했다.
벤저민은 중천을 지나가는 불덩이를 흘긋 보며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부담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위험한 작전인데도 서로가 앞장서겠다고 다투었다.
텔레반의 저격수가 버티고 있는데도 은폐, 엄폐물 하나 없는 개활지의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과감하게 뛰어나간 사나이들이다.
심해침투와 수중 장애물을 제거하고 해안 정찰로 아군의 상륙함을 인도했으며, 교량과 철도 터널을 파괴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그리고 오래전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하는 작전의 주인공들이다.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는 전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프로는 프로를 알아본다더니 상대가 만만치 않다고 여기는 모양이군.’
“중령님!”
195로 가장 키가 큰 윌리엄이 눈을 빛냈는데 지사장이지만 군에서 상관이기도 했다.
“사막의 흑새라는 자의 짓인 분명할까요?”
“분명하다고는 말할 수 없네. 다만 우리 상식에 비춰 볼 때 대전차 같은 무서운 지뢰를 승용차 의자 밑에 설치 할 만큼 폭파에 뛰어난 전문가는 저격수 말고는 없지.”
네이비 씰에도 저격수가 있으며 그들은 모든 것을 배운다.
자신이 만났던 씰10팀(3팀과 함께 주로 중동지역에서 작전을 펼친다)저격수 레그옹도 필요에 의해 몇 번 적의 미사일 기지 폭파 작전에 동원되었고 성공리에 마치고 돌아왔다.
“제가 하죠.”
윌리엄의 눈이 빛났다.
“자네가? 어떻게?”
윌리엄은 빙긋 웃었다.
“사생활은 지켜 주시죠.”
씰 대원들은 작전을 사생활이라고 한다.
아무리 직속상관이지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 사생활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권총수에 대한 모든 정보가 도착했다.
유일하게 남은 건 아직 그를 직접 대면해 보지 않았다는 것 일뿐 제거 작전을 펼치는데 필요한 만큼 정보는 넘쳤다.
그러나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린다.
바닥의 룰이라는 것이 있었다.
즉 같은 용병끼리는 절대 싸우지 않는 다는 것이다.
상대 회사가 우리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다면 당연히 막아야 하지만 그때는 분명한 증거를 바탕하여 움직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의심은 가지만 증거가 없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이 그토록 오밀조밀하게 설치된 CCTV를 어떻게 피했느냐는 것이다.
킹덤 타워는 첨단 건물이다.
더욱이 수도 리야드의 랜드마크이기 때문에 첫째 보안에 중점을 두었다.
설치된 CCTV는 최첨단으로 사람의 피부 주름까지 정확하게 찍어 버린다.
주차장 4층까지 가기 위해서는 10여개의 CCTV를 거쳐야 하는데 단 한 곳에서도 촬영되지 않았다.
대신 지하 4층에 있는 차를 가지러 간 바큘라는 열군데 카메라 모두에 분명하게 찍혀 있다.
의심스러운 차도 없었다.
툭!
물고 있던 담뱃재가 떨어졌다.
벤저민은 필터만 남은 담배를 부벼끄고 다시 새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딩동!
사무실 벨이 울렸다.
해병대 여군출신 엠마가 고개를 들고 문을 보았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우체부가 들어섰는데 조그마한 소포 한 개를 책상위에 놔두고 돌아갔다.
“무슨 소포지.”
자리에서 일어난 엠마는 소포를 들고 보낸 이를 살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포레스트(Forrest)’라고 쓰여 있고 주소도 분명하다.
포레스트란 이름을 몇 번 중얼거린 엠마는 소포를 들고 벤저민 방을 노크했다.
받는 사람 이름이 벤저민 소령이었기 때문이다.
벤저민은 씰 소령으로 제대했고 아직도 상당수가 그를 소령님이라고 부른다.
그것까지 알고 있을 정도면 과거 동료였거나 아니면 고향 친구라고 생각했다.
똑똑!
문을 열고 들어간 엠마는 소포를 내밀었다.
“뭔가?”
“친구분에게서 온 것 같아요.”
엠마는 소포를 책상 위에 놓고 나갔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벤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의자에 앉아 소포를 살피던 벤저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포레스트.’
중얼거리며 아무리 떠올려 보려고 해도 기억에 없는 이름이었다.
“엇!”
그러다 뭔가를 깨달은 듯 놀란 표정을 했다.
‘포레스트, 숲속의 남자’
사람 이름으로 쓰기도 하지만 창작 오페라 ‘유령의 성’에서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다.
서랍을 열어 커터 칼을 꺼낸 벤저민은 소포를 싸고 있는 투명테이프를 자르고 포장지를 벗겼다.
작은 종이상자가 나왔는데 바라보는 벤저민의 눈이 잠깐 흔들린다.
소포 테러라는 것이 있다.
소포 테러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무거운 폭탄을 이용하기 보다는 거의 생화학무기를 집어넣는다.
탄저균이나 보롤리늄독소 따위를 넣어 뚜껑을 열면 자동적으로 흡입하거나 피부가 노출되면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벤저민은 상자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 순간 이미 은퇴한 퇴역 군인을 누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생화학탄으로 죽이겠는가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스윽!
과감하게 뚜껑을 열었다.
화악!
상자 안을 들여다보던 벤저민의 눈이 커졌다.
소포를 받고 30여분 정도 지났다.
실내를 서성거리며 고민하던 벤저민이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1번이다.
핸드폰 저장 번호중 1번은 한 사람의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다는 사내, 사람들은 그를 죽음의 상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진짜로 피도 눈물도 없었다.
“어떻게 됐나?”
이 세상에서 벤저민이 가장 불편해 하는 사내였다.
군 선배인데다 대학도 11년 앞선 동문이다.
하버드는 선후배의 관계가 어떤 명문대보다 분명하고 질서가 엄정하여 졸업 후에도 선배는 철저한 윗사람인 것이다.
“재고하시죠.”
힘들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