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15화 (115/651)

제115화: 아르빌의 사내들(1)

에반은 두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대로 먹여준 한방이다.

그렇다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답답한 이 마음은 뭘까.

석상이 된 듯 꼼짝 않고 있던 에반은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세 번 울리고 핸드폰 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 어떻게 됐나?”

“맞습니다. 총수였습니다.”

“분명한 사실인가?”

“본인 입으로 인정 했습니다.”

에반은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KAS 회장 스톤스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회의를 하고 있던 간부들이 일제히 바라보았는데 마른침을 삼키기도 하고 눈을 깜빡거리는 것이 몹시 긴장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손을 썼다는군.”

“그라면? 사막의 흑새?”

빙긋!

스톤스가 웃었다.

일년을 가도 웃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만큼 미소에 인색한 스톤스가 환한 표정을 지었다.

사막의 흑새는 한 남자를 지칭한다.

소문이라는 것이 처음보다 월등하게 부풀려지는 특성이 있다고 해도 그의 명성은 경이적이다.

최소한 사막의 전장에서는 그를 당할 자가 없다.

IS는 그에게 전설속의 새인 사막의 흑새라는 이름을 붙이며 목에 현상금까지 걸었다.

“훗훗”

스톤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지 뭐요. 이왕 일을 벌일 바에는 피라미를 노리느니 큰 고기를 잡아 KAS가 어떤 곳인지를 각인 시켜주고 싶었답니다.”

“오오!”

“이거야 원,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간부들은 모두가 서로를 보며 큰 소리로 웃었고 어떤 이는 박수까지 쳤다.

거의가 KAS 창업 멤버들이다.

지금은 고문이라는 평범한 직함을 갖고 한 걸음 물러나 있지만 한 때는 스톤스와 밤을 새워가며 회사를 살려보고자 발버둥 쳤다.

시작은 SAS 출신들이라는 것 때문인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위기가 찾아 들었다.

SAS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뿌리는 빨리 내렸으나 확실한 위력을 보여주지는 못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올린 매출액의 9할은 SAS라는 브랜드로 인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브랜드가 아닌 실력으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뭔가 획기적인 도전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베네수엘라 야당대표 로메로와 만났다.

실패하거나 잘못되면 폐업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KAS하면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최소한 시속 200킬로가 넘는 4등급 이상의 허리케인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할 만한 위험한 일이었다.

다시 누군가 의뢰해온다면 단호히 노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도박은 성공했다.

베네수엘라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면서 전 세계가 KAS를 주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카데미 매출의 30프로를 차지하는 사우디에서 판을 벌였다.

그것도 돈줄인 알 살만 왕세자의 경호대장을 대전차 지뢰로 날려 버린 것이다.

“핫핫핫핫핫!”

스톤스는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내장을 훑어낼 것 같은 커다란 웃음을 흘리며 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린다.

오래전 파리에서 열린 첨단 과학무기 전시장에서였다.

국가들은 국가대로, 보안업체는 그들대로 전시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세계 20여개국가에서 개발한 각종 첨단 무기를 살폈다.

스톤스는 관리이사 리네커와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마음에 드는 권총을 발견했다.

러시아에서 새로 개발한 SS-11이라는 권총인데 플라스틱 재질로 무척 가벼웠다.

25발들이 탄창을 사용하고 유효사거리가 40미터였다.

권총 치고는 상당한 거리인데다 주목할 만한 것은 소음기였다.

소음기 역시 플라스틱이었는데 놀라운 건 일반 소음기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소리를 잘 잡아주었다.

일반 권총의 소리가 120데시벨, 소음기를 장착하면 60데시벨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SS-11은 30데시벨이라고 관계자가 설명하고 있었다.

스톤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번 쏴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러시아 관계자가 전시장 구석에 있는 작은 부스를 가리켰다.

‘실험 사격장’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실제 권총을 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간이 실내 사격장이었다.

스톤스는 25발들이 탄창과 권총, 소음기를 챙겨 사격장으로 들어섰다.

이미 사격장에서는 앞서 들어온 한 사내가 다른 러시아 사람의 설명을 들으며 15미터 표적에 사격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소음기도 바깥도 아닌 실내에서 쏘면 귓구멍에서 우웅 소리가 날 정도로 울린다.

그런데 전혀 그런 현상 없이 장난감 총을 쏘는 듯 딱딱 하는 소리만 들렸다.

화악!

끌려온 15미터 표적을 흘깃 넘어 보던 스톤스가 놀랐다.

사내가 쏜 총알이 표적의 머리에 군집을 형성하고 있었다.

굉장한 사격술에 놀라며 좀 더 자세히 보기위해 고개를 내밀었는데 스톤스는 소스라쳤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젠가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사내였다.

그는 수많은 취재진과 상하원들이 보고 있는데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진실만을 말할 것은 선서했다.

에릭 프린스.

씰 출신으로 블랙워터란 전쟁기업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전 세계 민간 보안업 시장의 약 6할을 석권하고 있는 아카데미 대표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한 자루에 600달러라는데?”

프린스가 권총을 보며 말했는데 옆에 있는 총기 회사 직원에게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상당한 고가인데 말이야.”

두 번째 말에서 스톤스는 눈을 번쩍 떴다.

프린스는 탄창을 다시 끼우고 있었는데 분명 스톤스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스톤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한 자루에 600달러라는데’

‘상당한 고가인데 말이야’

KAS 자금력으로 이런 고가의 권총을 구매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프린스는 자동으로 놓고 25발을 쏟아 내더니 몸을 돌렸다.

“반갑소.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이런 곳에서 만나는군요.”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스톤스는 프린스의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뜨거운 모멸감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프린스는 히죽 웃으며 자신의 손을 거두어 들였다.

“어느 시장이든 룰이라는 것이 있소. 그건 법령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어떤 규칙 보다 더 지켜져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 경제라고 해서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거나 내릴 수는 없는 것이란 얘깁니다.”

후발주자로 뛰어든 KAS로서는 시장에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다른 민간 보안 업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지닌 능력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각종 입찰에서 KAS 수주 기록은 매우 높았다.

SAS 라는 이름은 이미 오랜 역사와 전통에서 가치가 증명이 되었다.

그런데다 헐값이라고 할 만큼 낮은 가격으로 각종 입찰을 싹쓰리 하다 보니 시장이 혼란스러워 졌다.

급기야 시장에서 KAS를 퇴출 시켜야 한다는 비난이 터져 나왔고 나머지 업체들이 담합하여 큰 건의 입찰 참여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톤스는 더욱 낮은 가격으로 맞섰다.

그러던 차에 만난 것이다.

“우린 주 방위군 출신에게도 일급 300달러를 지급하죠.”

주 방위군은 용병시장에서 거의 인기가 없다.

그런 방위군 출신도 하루에 300달러를 준다는 뜻이다.

당시 KAS는 일급 260에서 350달러가 최고였다.

한 마디로 세계제일이라는 SAS가 미국의 주 방위군 보다 못하다는 비아냥인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얼굴이 화끈 거렸다.

살기 위해 박리다매(薄利多賣)란 전술로 나가긴 했지만 면전에서 퍼붓는 모욕은 무척 견디기 어려웠다.

더욱이 상대는 네이비 씰 출신이고, 자신은 SAS를 제대했다.

한쪽은 과거였지만 대영제국이라는 말을 들었고, 다른 나라는 현대의 제국으로 불리는 미국을 대표하는 부대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 무려 두 달 동안 뜨거운 분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그날의 수모를 갚겠다고 맹세했지만 좀체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네이비 씰은 시장에서 대세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실전 경험이 많은 전역자들로 이뤄진 아카데미의 벽은 너무 높았다.

어느 회사나 국가와 보안 계약을 맺어도 아카데미가 1순위였고 KAS는 2,3위로 밀렸다. 사우디 왕가는 알 살만 왕세자 경호에 1년에 백억 달러 넘는 돈을 쓴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상에서 회사나 국가가 아닌 개인 경호에 백억달러는 알 살만 회장이 유일하다.

워낙 고가 매출을 올려주는 VIP이다 보니 아카데미에서도 최고들로만 팀을 꾸려 보냈고 그중 바큘라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다.

그런 바큘라가 소총에 의한 암살도 아닌 60톤 탱크를 부수는 대전차 지뢰로 날려 버렸으니 이 어찌 크게 웃지 않겠는가.

“우하하하핫!”

스톤스의 웃음은 좀체 멈출지를 몰랐다.

프린스에게 당한 오랜 수모가 그만큼 깊고 큰 상처가 되었다는 반증이었다.

바그다드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두 사람은 만약을 대비해 회사에서 급히 만들어준 가짜 이름으로 된 여권을 이용해 입국 수속을 밟았다.

비록 민간인이 되었지만 이라크 반군과 텔레반, IS들에게는 아직도 권총수는 제거대상 목록 1위에 올라 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한국으로 킬러를 보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다.

“앗쌀라 말라이 쿰(평화가 그대에게).”

두 사람은 곧장 고속버스 터미널로 이동해 아르빌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기사는 동양인 두 명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자 빙긋 웃었다.

버스는 제 시간에 출발했는데 차안의 승객은 두 사람을 포함해 18명이었다.

이라크인 보다는 거의가 일상복 차림을 한 백인들이 많았다.

한 눈에 이라크 재건을 위해 들어온 각국 기업의 직원들이었다.

아직은 활주로 보수 공사가 끝나지 않아 지방 출장은 버스를 이동해야 한다.

자가용이나 택시는 위험하다.

곳곳에서 테러를 빙자한 강도들이 날뛰고 있다.

두 사람은 과거를 추억하며 옛 이야기들을 끌어냈다.

부우웅!

버스는 석양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바그다드에서 아르빌까지의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12시다.

통행금지는 없지만 외국인에게는 대낮도 위험한 데 밤중 이동은 더욱 살얼음이다.

두 사람은 곧장 아르빌의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더욱 불안한 것은 총이 없다는 것이다.

언제 누가 총구를 들이대고 덮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권총수는 내공을 바짝 끌어 올린 상태로 손에는 항상 볼펜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볼펜은 총 대신 사용하게 될 유일한 무기다.

언제든지 위기가 닥치면 육십년 내공이 실린 적엽비화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일갑자의 내공이면 얇은 철판 정도는 뚫는다.

즉 사람이 맞으면 즉사 하는 것이다.

아침에 먼저 눈을 뜬 사람은 오민철이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오민철이 멈칫 했다.

권총수의 머리맡에 두 자루 볼펜이 있었다.

물론 어디에 사용하기 위해 머리맡에 놓았는지 알고 있다.

“흐흠”

가볍게 한숨을 내 쉬었다.

무공을 익혀 보통 사람과 잠귀가 다르다.

굉장히 밝은 것이다.

더욱 불가사의 한 것은 적인지 아닌지 잠결에도 간파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해치기 위한 움직임인지 적의가 없는 접근인지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내공이라는 것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몸이 스스로 반응해.”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권총수에게 강호무사라는 신묘한 능력이 없었다면 자신이야 말로 어제 밤 두 다리 뻗고 자지 못했을 것이었다.

자신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좀체 내공은 증진되지 않고 있었다.

권총수 말에 의하면 타고난 자질에 따라 성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결국 자신은 멍청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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