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사망유희(2)
다음 날 아침 출근한 에반이 2층 사무실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1층은 사무실, 2층은 휴게소 및 KAS 비밀 무기창고이다.
무얼 찾는지 잘 정리된 무기창고를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선반에는 권총을 비롯해 자동소총, 미군의 대표적인 중기관총인 M240B, M249 경기관총도 보인다.
M4계열의 자동소총과, HK-416, 수류탄, 중동에서 가끔 게릴라식으로 일어나는 화학전을 대비한 방독면이 있었다.
군복과 사막 전투화도 있었는데 에반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파랑 색의 제법 큰 원판.
M19 대전차 지뢰다.
알 살만이 가끔 장갑차를 이용해 이동한다는 정보를 받고 비밀리에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멈칫!
모두 10발이다.
그런데 아홉 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주위를 살피고 혹시 다른 무기와 섞였나 싶어 훑어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재빨리 1층으로 내려간 에반은 메이를 향해 물었다.
“메이 지난 일주일 동안 무기고 출입한 적 있나?”
“아뇨?”
에반은 재빨리 컴퓨터를 켜고 무기창고의 재고 상황을 체크했다.
일주일 동안 들어오고 나간 병기는 총알 하나도 없었다.
“왜요?”
“M19 한발이 보이지 않아.”
“네? 뭐라구욧?”
무기창고 관리는 자신이 하고 있다.
“무슨 말씀이세요?”
메이 또한 자신의 컴퓨터 기록을 살폈다.
“반출된 병기는 없어요.”
일주일 동안 전투도 없었다.
지금 KAS의 모든 힘은 파흐드 왕세자 암살 기도 작전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카데미 짓이라는 걸 간파했으나 옴짝달싹 못하게 들이 밀 증거는 없었다.
분명한 물적 증거만 찾으면 언제든지 보복공격이 가능하다.
그쪽에서 동업자 정신 운운하며 항의를 할 경우 당신들이 먼저 건드렸다는 증거물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직접 살펴봐야겠다는 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10여분 정도 지나 다시 들어온 메이의 표정이 굳어있다.
실탄 한발이라도 출고가 되면 반드시 서류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
물론 메이의 허락은 당연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세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
모두가 정장 차림이었고 둘은 선글라스를 꼈으며 한 명은 대머리였는데 콧등에 커다란 사마귀가 있었다.
입국 검사를 통과한 세 사람을 누군가 불렀다.
“여깁니다. 파웰!”
세 사람이 고개를 돌렸는데 키 큰 사내 월리엄이 다가왔다.
가장 먼저 파웰이란 대머리 사내와 악수를 나눴고 선글라스의 두 사내와 차례대로 손을 잡는다.
“축하드립니다. 파웰, 이번에 서브 스리(마라톤에서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에 접어들었다고 들었습니다.”
파웰이란 대머리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뭐, 어쩌다 운좋게 된 거지.”
파웰은 마라톤 매니아다.
아마추어지만 평균 한 달에 300킬로 이상 연습거리를 뛰고 얼마 전 워싱턴 시장기 마라톤대회 아마추어 부분에서 2시간 59분 10초를 기록하여 생애 처음으로 2시간대에 접어드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이 풀코스 100회 완주기록까지 세워 텔레비전 출연까지 했었다.
사십대 중반이지만 아직도 20대의 체력을 갖고 있는 파웰은 씰 출신으로 폭파 주특기를 갖고 있다.
파웰을 포함 한 세 사람은 아카데미 폭발물 전문 분석요원들이다.
일행은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포드 익스플로러를 타고 공항을 떠났다
킹덤 타워는 임시 봉쇄조치 됐다.
사우디 군경은 모든 외부인과 차량 출입을 통제하며 대대적인 현장조사에 나섰다.
군에서 나온 폭발물 전문가들이 동원됐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한 현장조사가 오후 4시를 넘기고 있다.
이번 사건을 총괄 지휘하는 이브라힘 준장은 초조해졌다.
10여명의 전문가들이 투입됐지만 아직까지 차량 폭파에 사용된 폭발물의 종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아카데미에서 온 세 사람이 투입됐다.
사우디 군이 먼저 밝혀내지 못하고 아카데미쪽에서 앞서 폭탄의 종류를 밝혀내기라도 한다면 난감할 일이다.
사우디 군의 정예 폭발물 전문가들이 민간 보안기업 직원들만큼도 실력이 안 되느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브라힘 준장은 마음속으로 쉴사이 없이 기도문을 외웠다.
‘자비 하신 알라시여 사우디 군에게 능력을 주소서’
여기서 뭔가를 얻어 낸다면 자신의 남은 군 생활은 매우 기름지고 깔끔해 질 것이다.
자비하신 알라신에게 제발 사우디 군이 먼저 밝혀내도록 도와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다가왔다.
아카데미 중동지사장 벤저민이다.
그와 초면은 아니다.
딱 한 번 알 살만 왕세자가 주최하는 만찬회에 참석 했다가 만난 적이 있었지만 대화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장군님.”
벤저민은 민간인 복장이었지만 거수 경례를 했다.
그건 상대를 존중하려는 행동이었다.
“왜 그러시오. 벤저민.”
“저희 팀에서 뭔가를 발견한 듯 싶습니다.”
이브라힘 준장은 움찔했다.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지금?”
혹시나 잘못 들었길 빌었다.
세계제일이라는 미국의 군대, 거기서도 가장 정예로 불리는 네이비 씰 출신들이니 프로중의 프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침투하고 납치하고 제거하는 기술만 뛰어 날 뿐 이런 학문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연구 분석하는 전문분야는 문외한에 가깝다고 믿었다.
하지만 네이비 씰은 단순히 죽이고 납치하고 탈환하는 훈련만 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거의 각 분야의 전문가 수준들이다.
폭파 주특기를 갖고 있는 대원은 단순히 폭발물 설치와 파괴에 능숙한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폭탄의 성격과 장 단점, 목표물에 따라 어떤 종류의 폭탄을 설치할지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건 폭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쪽으로.”
지금 밖에는 내외신 기자 수백 명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이브라힘은 벤저민의 안내를 받아 주차장 구석에 있는 아카데미 소속의 밴으로 걸어갔다.
벤에는 세 명의 남자들이 있었는데 이브라힘이 나타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의를 갖춘다.
이브라힘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편히 쉬어라고 한 뒤 안으로 올라갔다.
차안은 에어컨이 켜져 있어 선선했다.
벽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바닥에 둥글게 깔린 원목이 위로 올라오면서 탁자가 되었다.
“커피 드시죠?”
대머리 파웰이 구석진 곳에 설치된 커피머신에서 커피 한잔을 따라 가져왔다.
“고맙소!”
“아닙니다. 장군님.”
이브라힘은 파웰을 흘긋 보며 생각했다.
거친 사내들.
자신의 눈에 이들은 사람을 죽여 배를 불리는 사어(沙魚)들이었다.
사어는 사막에서 산다는 전설속의 물고기이다.
이들은 사람을 잡아먹고 살며, 피를 마실수록 덩치가 커진다고 한다.
덩치가 크다는 건 자신들 세계에서는 힘을 뜻하고 왕이 되는 길이다.
왕이 되기 위해 사어는 끝없는 식인 욕을 보인다.
용병들 역시 사어처럼 적당이란 없었다.
돈이라면 닥치는 대로 죽이고 부순다.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 취급을 하고 있었는데 깍듯한 예의를 차리자 놀란 것이다.
“파웰 자네가 설명하게.”
그러자 파웰이 다가와 섰다.
“앉아요.”
이브라힘은 파웰에게 앉을 것을 권유했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파웰은 자리에 앉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승용차 폭발에 사용된 폭약은 콤포지션B 입니다.”
콤포지션 B는 흔히 C2로 불린다.
콤포지션은 지금까지 C1에서 C4까지 나와 있다.
“이걸 보시겠습니까?”
회색 조각 한 개를 탁자 위에 올렸다.
“이게 뭐요?”
“M19 장갑조각입니다.”
“M19라면 설마 대전차 지뢰?”
“맞습니다. 범인은 운전석 아래에 대전차 지뢰를 설치 한 것이죠.”
이브라힘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충격을 다스리려는 것이다.
파웰의 얘기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대전차 지뢰가 폭발하기 위해서는 100킬로가 훌쩍 넘는 압력이 전해져야 한다.
물론 성인 남자가 대전차 위해서 널 뛰기 하듯 점프를 하여 떨어지면 폭발은 한다.
그건 몸무게 뿐만 아니라 떨어지는 높이에서 오는 압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범인은 대전차지뢰의 상부의 철제 케이스를 뜯어내고 압력판의 무게를 낮췄습니다.”
“그게 가능한 얘기오?”
군 생활을 20년 넘게 했지만 대전차 지뢰를 분해 조립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저희들도 전문가라고 자처하지만 그 정도까지는 자신 없습니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
이브라힘 준장은 입을 벌리고 말았다.
도대체 어느 정도 전문가이면 대전차 지뢰를 운전석 밑에 설치 할 수 있단 말인가.
권총수는 공항에 있었다.
오민철과 같이 바그다드로 출장을 가는 길이다.
두 사람은 커피 잔을 놓고 앉아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6억에 샀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사이에 일억이 올랐다고? 아파트도 아닌 단독주택이?”
지금 권총수가 산 집 얘기를 하고 있다.
“그렇대”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틀림없이 왔어? 7억에 살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팔 생각 있냐고?”
권총수는 대답없이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팔 생각 없다고 했지?”
“무슨 개소리. 재빨리 팔아야지. 1년도 채 안 돼 일억을 챙기는 황홀한 일인데, 당장 팔겠다고 해.”
“아니.”
“안판다고?”
“내가 살려고 산 집이야. 근데 왜 팔아.”
“누군 살려고 집을 사지 재미로 사냐?”
“그런 사람들 있잖아. 투기 목적으로 샀다가 온갖 잡탕질해서 집 값 올린 뒤 재빨리 시세 차익 남기고 팔아 치우는 사람들, 난 그런 사람들과 달라.”
“정신 차려 임마. 보통 사람들이 무슨 수로 11개월 만에 일억을 버냐? 부동산 아니면 절대 못 번다고, 돈은 올 때 오는 거야. 지금 너에게는 돈이 오고 있어, 이 엉아 말 듣고 당장 전화해.”
“저기 지사장님 아냐.”
오민철이 고개를 돌렸다.
지사장 에반이 커피숍을 둘러보다 둘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웬일이지.”
에반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는데 표정이 굳어 있었다.
“조금 전 뉴스가 나왔네. 사우디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어제 일어난 폭발사고에 사용된 폭탄이 놀랍게도 대전차 지뢰라는 거야.”
“허걱!”
오민철이 소스라치며 놀랐다.
대전차 지뢰의 폭발력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말 그대로 5,60톤 나가는 탱크를 날려 버릴 만큼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
쭈욱!
권총수가 커피를 홀짝인다.
“왜 말을 하지 않나? 난 자네 상관이고 책임자일세. 자넨 끝까지 무기창고에서 분실된 대전차 지뢰에 대해 모른다고 했어.”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무슨 얘깁니까? 설마 총수가?”
“총수 솜씨일세.”
“너야?”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진짜로?”
오민철이 추궁하듯 물었다.
“기공식 마치고 돌아오는 파흐드 왕세자를 백주대로에 기습 했어. 우리 KAS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벌건 대낮에 치냐고.”
권총수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오민철은 믿어지지 않는 듯 입술 끝에 작은 거품까지 물었다.
격(格)이라는 것이 있다.
그건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대접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은퇴한 전직 강력계 팀장이 현직에 있을 때 겪은 사건 칼럼 형태로 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1995년 목포 중앙로파 칼잡이 윤동술이 경쟁 조직인 사거리파 두목 김퇴평을 살해 할 때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말했다.
‘형님 편히 가십시오’
당시 어느 신문에서는 비록 깡패지만 상대 우두머리라는 위치를 깍듯하게 존중한 태도였다고 했다가 독자들로부터 무자비한 비난을 받기도 했단다.
‘깡패들이 무슨 선비 집단이냐’
용병의 세계에도 그렇다.
최소한의 품위와 격조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표적이 일반인도 아닌 사우디 왕족이다.
국가적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을 꼭 노려야 했을까.
“그래서?”
“도저히 그냥 놔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도 마음먹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걸 경고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면 아카데미쪽에서 깜짝 놀랄까 고민하던중 당시 현장에서 주운 교검장이 떠오르더군요.”
“바큘라.”
알 살만 왕세자가 가장 신뢰하는 경호대장이다.
오죽 했으면 개인적으로 자신의 표식이랄 수 있는 교검장까지 만들어 주었을까.
“놈을 잡으면 알 살만도 더 이상 경거망동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대전차 지뢰를.”
오민철이 입을 벌리자 권총수가 냉정하게 말했다.
“단순히 죽이기만 해서는 효과가 없어. 파격적이고 독보적이며, 거친 수단이어야 신경을 곤두세우지.”
저격수 출신이지만, 폭발물 설치와 해체 훈련까지 받는다.
세계전사를 보면 저격수가 공작원으로 놀라운 임무를 완수한 기록이 수두룩하다.
“비행기 시간 되가는데.”
권총수가 가방을 메고 일어났다.
“다녀오겠습니다.”
권총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