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13화 (113/651)

제113화: 사망유희(1)

밤에 보는 도시는 낮과는 전혀 달랐다.

낮에는 사막의 모래먼지에 덮여 뿌연 회색빛을 띠지만 리야드의 랜드 마크로 불리는 킹덤 타워에서 내려다보는 밤의 수도는 화려했고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저기가 어디죠?”

미국에서 온 여자친구 스튜어트가 킹덤 타워 통유리 너머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둥그렇게 불이 켜져 있는 곳?”

사내는 조금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압둘 라흐드 전 국왕이 살았던 궁전.”

스튜어트는 무뚝뚝한 사내가 무척 마음에 드는지 팔을 잡아끌며 사진을 찍고 행복한 표정을 했다.

명품 브랜드숍들이 가득 들어찬 킹덤 타워 7층 쇼핑몰에 두 남녀가 나타났다.

스튜어트는 눈물까지 찔끔 거렸다.

말로 만 듣던 유명 브랜드 핸드백을 선물 받고 감동한 것이다.

사내는 그런 스튜어트를 보며 짧게 웃었다.

“바큘라!”

쪽!

아무리 외국인이라고 해도 공개된 장소에서 볼에 키스를 한다는 건 사우디 국내법 위반이다.

하지만 매장 주인은 웃기만 할 뿐 신고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자주 보기도 했지만 고가의 물건을 팔아준 고객을 신고하는 멍청한 장사꾼은 아니었다.

둘은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양고기로 만든 튀김 요리를 시켰다.

빠에할른으로 불리는 사우디 5대 요리중 하나였다.

사우디 최고의 관광지 킹덤을 올랐고, 명품 핸드백을 선물 받았으며, 일인분에 600달러를 호가하는 빠에할른을 앞에 둔 스튜어트의 표정은 행복에 푹 빠져 있었다.

비록 사귄지는 1년이 조금 안됐지만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쉬움이라면 사내가 말수가 적다는 것이다.

말이 많아도 꼴불견이지만 적어도 답답할 수 있다.

그러면 좀 어떤가.

자신을 이렇게 기쁘게 만들 줄 아는 사내라면 언제든지 청혼을 받아 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때? 먹을 만한가?”

“바큘라 너무 맛있어요.”

스튜어트는 입 안 가득 양고기를 우물거리며 웃는다.

킹덤 타워 지하 4층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바큘라란 사내가 내렸는데 스튜어트는 바짝 붙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관광지에서 만큼은 외국인에 한에서는 남녀의 신체 접촉이 어느 정도 허용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바큘라는 전자식 키를 눌러 차의 시동을 걸었다.

불이 깜빡 하면서 신형 SL벤츠의 시동이 걸렸고 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

그런데 문이 닫히자마자 콰아앙! 하는 굉음이 울리며 벤츠 승용차가 솟구쳤다.

쿠와아앙!

튕겨 오른 벤츠는 천장에 부딪히고 바닥으로 떨어지며 다시 한 번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아앙!

마지막 폭발은 컸다.

바퀴 두 개가 날아갔고 창문을 포함한 차체가 파편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근처에 주차된 다른 차량들 역시 폭발에 휘말리며 부서지고 불이 붙었다.

수도 리야드의 상징 킹덤 타워가 생기고 지금까지 단 한건의 사건 사고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지하 4층 주차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권총수는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빼로이 전기 3층이다.

“맛 괜찮지?”

오민철이 끓인 라면이었다.

“굿!”

권총수는 오른손 엄지를 추켜세웠다.

“웬일이냐. 네가 이 형을 칭찬까지 하고.”

“왜 이래 또, 난 잘한 건 잘했다고 과감하게 칭찬을 하는 사람이야. 오늘 라면 맛 예술이야.”

“아 자식, 갑자기 가슴이 뜨겁네.”

후루룩!

후룩!

두 사람은 소리 내어 라면을 먹었는데 오민철이 텔레비전 리모컨을 눌렀다.

“어제 축구 어떻게 됐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월드컵 본선진출을 놓고 서울에서 경기를 벌였다.

“으잉! 저건 또 뭐야?”

오민철이 눈을 크게 떴다.

화면에는 불에 타고 그을린 승용차들이 시방에 널려 있고 일부 차량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으스러져 있었다.

기자는 마이크를 잡고 계속 떠들었다.

“테러!”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중동 하면 전쟁과 테러가 떠오른다는 어느 외신 기자의 말도 있었지만 사우디야 말로 가장 안전지대였다.

워낙 치안이 잘되어 있고 국민들의 불법 무기 소지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 총기사고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더욱이 회교율법을 바탕한 법률이 워낙 엄격하고, 자칫 하면 주위 가족들에게까지 유무형의 피해가 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만이 있어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중동의 여타 국가들이 종파 갈등으로 피바람이 끊이지 않지만 사우디는 항상 평온했다.

일부는 수니파가 인구의 90프로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10프로의 시아파로서는 별 도리가 없기 때문 아니냐고 말하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었다.

이라크는 시아파가 두 배는 많지만 수니파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

“맙소사!”

“왜 그러는데?”

권총수는 관심 없다는 듯 라면을 먹으며 물었다.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글쎄.”

“글쎄?”

“죽은 사람이 남자와 여잔데 남자 이름이 바큘라라는데, 알 살만 왕세자의 경호대장.”

뚝!

그제야 권총수도 놀란 표정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다행히 주차장에는 두 사람 말고는 사람이 없어 인명피해는 더 이상 없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폭발이 강력해 100여대의 승용차가 부서졌으며 사망자들의 시신도 찾기 힘들다고 했다.

폭발에 완전히 걸레조각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이거 실화냐? 바큘라 그 자식 한 달 전 우리 회사 직원들을 떼몰살 시킨 놈인데.”

오민철은 흥분했다.

복수를 해야 할 상대가 처참하게 시신도 발견되지 않을 만큼 찢겨 죽었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누가 죽였지? 우리 쪽은 아니고, 하긴 알 살만 왕세자를 죽이고 싶어 하는 왕가 인물들이 한 두 명이겠어.”

꺼억!

권총수는 젓가락을 놓으며 트림을 했다.

벌컥벌컥!

생수병을 들어 고개를 젖히며 마셨다.

“정말 잘 먹었다. 김치만 있었다면 완전 빅 히트인데.”

“조금만 기다려. 큰 누님에게 김치 좀 보내달라고 했으니 올거야.”

“여기까지 오면 쉴텐데.”

“쉬면 어때, 없는 것보다는 낫지.”

“그건 그렇지. 형 당구 한 게임 어때?”

2층에 당구대가 있었다.

“기다려.”

오민철은 남은 라면을 부지런히 먹기 시작했다.

승용차 한 대가 어둠속을 달렸다.

새벽의 거리는 한산했는데 차량은 5층 건물 앞에 멈추더니 운전석이 열리고 흰색의 칸두라에 머리에는 흰색의 쿠트라를 썼다.

검정색 이갈로 머리를 덮고 있는 쿠트라를 두 바퀴 돌렸는데 마치 사우디 왕족들과 같은 복장이다.

건물에 들어서자 자동소총을 든 두 명의 정장 사내가 허리를 숙였다.

이곳 ‘런너’빌딩은 사우디를 중심으로 중동에서 활동하는 아카데미 직원들을 관리 총괄하는 사우디 지사이다.

지금 들어선 칸두라 복장의 사내는 독실한 무슬림이자 아카데미 사우디 지사장 밴저민이었다.

곧장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5층으로 올라간 밴저민은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곳에선 두 명의 양복을 입은 사내가 앉아 있었는데 한쪽은 키가 190이 넘어 보일 듯 컸고, 다른 한쪽은 175가 채 안되어 보인다.

“일찍들 왔군. 뭘로 왔나?”

“헬기입니다.”

“밤에 헬기 잘못 띄웠다가 큰 일 날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나?”

두 사내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언제 봐도 따뜻한 리더다.

군 시절 자신들의 상관이었는데 그 때도 좀체 인상 찌푸리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알겠지만 바큘라가 죽었네.”

“노스캐롤라이나(그곳에 아카데미 본사가 있음)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내일 분석요원들이 도착한다니까 좀 더 기다려 봐야지. 하지만 테러임은 분명하네. 멀쩡한 차가 폭발할 일은 없으니까 말일세.”

“그들일까요?”

오른쪽 키 작은 사내 딕이 말했다.

군 시절 정찰 주특기를 가졌다.

“우린 증거 하나 남기지 않았네.”

“그렇지 않습니다. 바큘라가 말했는데 교검장을 잃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밴저민의 눈이 좁아졌다.

“교검장을 어디서 잃어 버렸단 말인가?”

“그날 작전도중 분실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카데미와 사우디 왕가는 상당히 밀접해 있다.

오래전부터 많은 용병들이 사우디 왕가를 정치적 위기에서 보호하고 살려냈다.

하지만 누구도 교검장을 받지는 못했다.

교검장은 곧 차기 국왕을 나타낸다.

어딜 가서든 교검장을 보이면 왕세자와 같은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사우디 국법으로 그렇게 규정 되어 있는 것이다.

아카데미 역사상 사우디 왕가로부터 교검장을 받은 이는 바큘라가 처음이었다.

바큘라는 알 살만 왕세자를 두 번의 위기에서 구출했고, 그의 정적들을 증거 하나 남기지 않고 제거하며 굳센 믿음을 주었다.

“분명한 장소는 알 수는 없지만 이번 ‘달빛사냥’ 중 분실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군요.”

달빛 사냥은 한 달 전 자신들이 계획하여 실행한 작전이다.

그러나 최종 표적인 파흐드를 제거하지 못하고 경호원들 10여명만 목숨을 빼앗는데 그쳤다.

표적을 제거하지 못했으므로 성공한 작전이라고 할 수 없었다.

작전을 입안하고 총괄한 이는 물론 어제 밤 폭발 사고로 죽은 바큘라였다.

벤저민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다.

“복수라고 보나?”

“저는 그렇다고 생각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딕은 물론 키 큰 사내 윌리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능한가?”

밴저민은 연기를 길게 내 뿜었다.

차량에 폭탄을 설치 할 경우 대부분 전기와 연결 짓는다.

그래서 시동을 걸면 폭발하도록 만드는데 조금 전 사우디 경찰간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전기장치에 의한 폭발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도 특수부대 출신이기 때문에 자동차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 쯤은 어렵지 않다.

폭탄에 전류를 흐르게 만드는 선과 자동차 밧데리 선을 연결지으면 끝나는 것이다.

시동이 걸리면서 밧데리가 작동하면 폭탄의 뇌관을 전기가 자극하여 터진다.

그런데 사우디 경찰은 그런 형태의 폭발이 아니라고 했다.

전기 장치가 아니라면 자동차 폭발은 어떻게 가능한가.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부비트랩을 설치하면 충분히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으나 뉴스에 나온 만큼의 강력한 폭발은 불가능하다.

그런 폭발의 위력을 보일 만큼 폭탄을 설치하자면 운전자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그들 같은데.”

그들이란 KAS를 의미한다.

영국의 SAS 출신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보안업체다.

급속히 성장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아카데미의 경쟁 상대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원 개개인의 실력들은 인정한다.

제아무리 씰이나 델타포스가 뛰어나다고 해도 노련한 경험과 전통에서는 SAS를 당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폭탄의 종류를 뭘로 보는가?”

2톤이 넘는 벤츠 승용차가 깃털처럼 날아올라 천장에 부딪혔다.

자신이 아는 폭탄 지식으로 볼 때 운전자의 눈에 띠지도 않으면서 벤츠를 3미터 이상 공중으로 날릴 만큼 강력한 폭탄은 없다.

“일단 내일 분석원들이 도착하면 드러나겠지.”

벤저민의 어금니를 물었다.

사우디 왕가에 먹구름이 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잘못하면 어느 때 보다 더 잔혹한 골육상쟁의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예측한다.

'누굴까'

벤저민의 눈이 깊게 잠긴다.

‘도대체 누구야? 맹수같은 자를 무자비한 폭탄 한 방으로 날려버린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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