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12화 (112/651)

제112화: 모래바람(3)

얼굴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는 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민정수석은 공직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고 여론과 민심을 살펴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일을 한다.

윤태섭의 시작은 대통령 권철태와 함께였다.

그의 보좌관으로 처음 정치에 입문했고 점차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권철태의 사조직이자 정책연구기관인 태평양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계, 사법부까지 발을 넓힌다.

그리고 권철태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있다가 1년전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척!

갑자기 소변이 마렵다.

손목시계는 10시가 넘었지만 대로변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았다.

채명천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주유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는데 영업이 끝난 듯 문이 닫혔다.

혹시나 하는 맘으로 화장실 문을 잡아 당겼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다.

채명천은 주유소 건물 뒤로 돌아가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볼일을 보면서도 머릿속에는 윤태섭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민정수석.

모든 권력자는 자신의 분신을 그 자리에 앉힌다.

8천만원은 윤태섭이 입금했다.

물론 오설지라는 최고의 여배우를 교통사고를 위장해 살해한 댓가일 것이다.

볼일을 마치고 허리띠를 채우던 채명천이 멈칫 했다.

소주 반병에 몸 상태가 흐트러질 정도로 알콜에 약하지 않다.

천천히 돌아섰는데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두 명의 사내가 앞을 막고 있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자신의 주위에서 상당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관할 파출소에서 두 번이나 자신의 집을 방문 순찰을 했고, 아내가 운영하는 초등학교 앞 분식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내들 출입이 잦았다.

김밥과 떡볶이 따위를 먹으면서 아내에게 장사가 잘되느냐 가게 세는 한 달에 얼마냐는 따위의 말을 걸어왔다.

아내는 형사 출신의 남편을 둔 여자답게 회사에 무슨 일 있냐고 물어왔다.

그뿐 아니라 아들 회사로도 이상한 전화들이 걸려왔다.

불쑥 전화를 걸어 채동신이라는 사람이 근무하느냐고 묻고 이쪽에서 누구냐고 물으면 끊어버리는 전화가 한 두통이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분명한 입장을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경고.

너의 가족을 우리가 훤히 알고 있으니 이쯤에서 멈춰라.

그렇다고 멈출 채명천이 아니었다.

위험한 만큼 성공했을 경우 주머니가 빵빵해진다는 건 세상의 상식이었다.

처음에는 차량을 이용해 위협을 한번 했고, 그래도 먹히지 않자 두 번째는 가족들 주위를 맴돌았다.

그런데도 효과가 미미하자 오늘은 직접 나타난 모양이다.

프로다.

길가 도로에서 오는 빛을 등진 것은 자신들의 얼굴을 숨기기 위한 행동이다.

매우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계산적인 동작인 것이다.

슉!

좌측 사내가 복서가 잽을 먹이듯 왼 주먹을 뻗어왔다.

스으!

채명천이 상체를 오른쪽으로 틀며 피하자 슈우우! 기다렸다는 듯 오른쪽 사내가 벼락처럼 왼발로 돌려찼다.

그쪽으로 몸을 피한 상태이기 때문에 사내의 발길질을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합격(合擊)에 능숙한 고수들이다.

빠악!

사내의 왼발이 오른쪽 어깨에 찍혔는데 쇠몽둥이다.

꽈당!

채명천은 조금 전 자신이 흥건하게 싸놓은 오줌위로 벌렁 나동그라졌다.

재빨리 일어났지만 빠르게 다가선 왼쪽 사내가 턱을 걷어차는 동작이 더 빨랐다.

뻑!

“크후!”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다시 뒤로 넘어진다.

채명천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강력계에 몸담으면서 많은 위험을 경험했으나 당시는 최악의 경우 총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기분부터가 다르다.

또한 웬만한 범죄자들도 경찰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눈 앞의 두 사내에 공격에는 자신을 죽이겠다는 살의가 넘치도록 담겼다.

빠악!

턱에 맞은 일격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옆구리가 뜨겁다.

“헉!”

급소다,

눈앞이 하얗고 온 몸이 통나무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순간적으로 한 번 더 공격을 당하면 의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온다.

오른쪽 사내가 조금 전 가격했던 오른쪽 옆구리에 한 번 더 구둣발을 박아 자신의 삶을 끊어놓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슈우욱!

급소를 타격 당하면 온 몸이 굳는다.

호흡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채명천은 본능적으로 오른쪽 상의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취이익!

어둠을 가르는 한줄기 섬광이 피어났다.

“으악!”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어어어억!”

사내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칼(刀).

채명천의 손에 날이 시퍼렇게 선 40센티 가량의 회칼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일주일 전 만약을 대비해 을지로에서 일본산 고가의 회칼 한 자루를 구입했고 곧장 가죽 공방을 찾아가 칼집과 숄더 홀스터(어깨에 걸어 차는 권총 띠)까지 만들어 차고 있었다.

채명천은 필사의 각오를 다졌다.

척!

기어이 일어난 채명천은 건물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만신창이가 된 몸이지만 칼을 세우고 두 눈을 불태웠는데 그건 결코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각오였다.

“이 새끼가.”

남은 사내가 으르렁 거리며 기회를 엿본다.

손에 쥐어진 회칼은 사내를 함부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어흐! 내발, 내발!”

쓰러진 사내의 비명에 남은 사내의 고개가 돌아갔다.

비명에서 단순이 찔리거나 베인 정도의 상처가 아니라는 걸 느낀 것이다.

화악!

쓰러진 동료에게 다가간 남은 사내가 소스라쳤다.

삼각인대로 이어지는 동료의 앞쪽 발목이 크게 잘려나가 곧 떨어질 듯 너덜 거렸다.

흘러내리는 핏물 사이로 허연 발목관절이 드러난 것에 흥분하여 외쳤다.

“우라질!”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119를 눌렀다.

“환자요. 발목 부상이 심각합니다. 아이 씨발 부르면 올 일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여기 태평주유소 입니다.”

그 사이 채명천은 절뚝 거리며 차도를 향해 걸어갔다.

“저 개자식!”

사내는 으르렁 거릴 뿐 쫓아오지는 못했는데 그만큼 동료의 부상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칼집에 칼을 꽂아 넣은 채명천은 달려오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었다.

끼이익!

택시가 멈추고 재빨리 뒷좌석에 오른 채명천이 말했다.

“성수동 갑시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보며 기사의 눈이 커졌다.

“병원으로 먼저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냥가세요.”

채명천이 거칠게 뱉자 기사는 아무소리 없이 차를 몰아갔다.

부우웅!

택시가 사라지고 잠시 후 119구조차량이 나타났다.

* * *

처참했다.

제대로 모습을 갖춘 시신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을 만큼 폭발의 위력은 컸다.

“파발탄 계곡이 따로 없군.”

현장에 도착한 권총수가 중얼 거렸다.

외인부대 시절 이라크 신자르 산맥에서 IS 대원 9명이 외인 7중대 1소대가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에 걸린 적이 있었다.

굶주림에 시달린 9명의 IS 대원이 야생보리를 체취하다 걸려 든 것이다.

부비트랩에 이용된 폭발물은 수류탄과 발목지뢰를 포함한 여러 가지 종류를 동원했다.

당시 IS의 주검은 제대로 바라 볼 수 없을 만큼 참혹했는데 지금도 그러했다.

“부상자는 몇 명인가?”

경호책임자였던 모리스가 말했다.

“6명입니다. 모두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이곳에서 12킬로 떨어진 해안가 얀부에서 원자력발전소 기공식이 있었고 왕실을 대표하여 파흐드 왕세자가 참석했다.

1시간여에 걸친 기공식은 성대하게 진행되었고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파흐드는 퇴장했다.

파흐트 왕자 경호원은 모두 15명.

오늘은 다인코프쪽이 아닌 KAS쪽이 경호를 맡았다.

선두 경호 차량에 네 명이 탔고 뒤를 따르는 밴에 11명이 탔다.

파흐드 왕자가 타고 있는 승용차는 밴틀리로 특별히 주문 생산된 방탄 차량이었다.

“IED였나?

에반이 물었다.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 폭발물이다.

부비트랩과 유사한 공격방법으로, 표적이 지나가는 길에 여러 가지 폭발물을 설치하여 원격으로 터뜨린다.

정확하게 지켜보고 있다가 스위치를 작동시키기 때문에 거의 실수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급조폭발물은 현대전의 새로운 공격전술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테러와 내전이 끊이지 않는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다.

모리스는 무거운 얼굴로 대답했다.

“예!”

그도 적지 않은 부상을 입고 있었지만 책임자답게 자리를 뜨지 않고 현장을 지휘하고 있었다.

“파흐드 왕세자님이 안전하다니 그나마 다행이군.”

에반의 얼굴이 무겁다.

15명에서 9명이 사망했다.

전번 베네수엘라 쿠데타 같은 경우는 전쟁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 할 수밖에 없지만 경호작전에서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건 충격적인 사태였다.

멈칫!

지원 나온 직원들이 사방으로 널려진 시신들을 수거하고 있었는데 에반의 눈이 빛났다.

권총수가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던 에반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멀리 모래 언덕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권총수가 뭔가를 찾는 듯 살피고 있었다.

잠시 바라보던 에반은 천천히 모래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언덕까지는 도로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졌다.

“뭐하나?”

미끄러지는 모래언덕을 엎드리듯 하면서 기어 올랐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세요.”

권총수는 에반을 서 있도록 한 뒤 계속 주위를 살폈다.

“허거걱!”

에반은 소스라쳤다.

권총수의 발이 모래바닥에서 30센티 정도 떠 있었다.

“초...총수.”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한 번에 부르지 못했다.

상상할 수 없는 괴기스런 현상에 에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혹시라도 하늘에서 내려온 밧줄 따위를 잡고 매달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하늘은 작렬하는 햇빛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시죠.”

권총수가 언덕 위를 가리켰다.

많은 발자국이 찍혔는데 에반의 눈이 커졌다.

“이곳에 숨어 있다 차량이 폭발물을 묻어 놓은 곳을 지날 때 스위치를 누른 듯 합니다. 발자국 크기로 보아 최소한 세 명 이상으로 보입니다.”

파팟!

한참 현장을 조사하던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모래 위에서 뭔가 반짝이는 물건을 발견한 것이다.

스윽!

천천히 모래를 밟고 내려서더니 허리를 구부려 손을 뻗었다.

모래에 반쯤 묻힌 황금색 배지였다.

권총수는 배지가 순금으로 제작 되었다는 걸 간파했는데 눈썹을 찌푸렸다.

배지에는 한 개의 칼이 힘차게 뭔가를 내려치듯 떨어지고 있었다.

“뭐지?”

권총수는 휘두르는 사람은 없지만 떨어지는 칼 날에 어마어마한 힘이 실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교검(敎劍)일세.”

권총수는 그게 뭐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슬람의 신성을 모독하는 이교도(기독교, 유대교를 포함하여 이슬람의 적대세력)를 징벌하는 칼이지. 차기 국왕 후계자에게 내려지는 교검장(敎劍章)이라네.”

권총수는 눈을 치켜떴다.

“이 문장이 왜 여기서 발견되죠?”

“우리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알 살만 왕세자는 자신의 경호대장에게 교검장을 선물했다더군. 교검장은 곧 자신의 현신과 다를 바 없지.”

“경호대장이 교검장을 보이면 자신을 대하듯 존중하라 뭐 그런 의미인가 보군요?”

“그렇지.”

“경호대장은 누굽니까?”

“바큘라란 인물이네. 씰 출신이지.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마흔이 넘지는 않았을 걸세.”

“아카데미군요?”

“알 살만 왕세자 쪽은 다른 민간 보안회사 직원들도 있지만 씰이 대다수라네.”

권총수는 모래 속에서 찾아낸 교검장을 한동안 뚫어져라 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