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모래바람(1)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뿌옇다.
보이는 건 회색의 사막이며 이글거리는 열기뿐이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려앉고 권총수는 차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었다.
“크으으 냄새!”
오민철이 인상을 썼다.
열기에 덮인 사막 모래가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맡아진다는 의미였다.
브라질에서 사우디로 온 것이다.
두 사람은 여행 가방을 둘러메고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문을 나가자 집어 삼킬 것 같은 열기가 온 몸을 덮쳤고 권총수는 열기를 마시며 빙긋 웃음을 지었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느 시인은 고향은 가슴을 적시고 영혼을 들뜨게 한다고 했는데 지금 자신이 그러했다.
이라크에서 보낸 5년이란 시간은 26년 삶에 비추어 그저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강력히 각인될만한 시간 즉, 전장에서의 5년의 삶은 나머지 21년 보다 강했다.
지금도 꾸는 꿈의 대부분이 누군가를 저격했고, 길을 갈 때에도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미스터 총수.”
입국장을 들어서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권총수는 고개를 들어 소리 난 곳을 바라보았다.
흰색의 반팔 티셔츠와 탁한 녹갈색 반바지에 카키색 야구모자를 눌러쓴 백인사내가 웃고 있었다.
비록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지만 권총수는 화상통화를 했던 KAS 사우디 지사장이자 중동지역 책임자 에반임을 알아보았다.
브라질 지사장 피터와 SAS 동기이다.
특이하게도 17세까지는 전도양양한 축구선수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니어 팀에서 공격수로 활동했으며 성인 팀 합류는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EPL 성인 그라운드를 밟기 직전 등산을 갔다 낭떠러지를 구르며 무릎 골절상을 입고 말았다.
그것도 복합 골절로 무려 12시간에 이르는 수술을 받았다.
축구선수에게 무릎 골절은 사형선고이다.
의사는 분명하게 그에게 말했다.
‘축구에 대한 꿈은 빨리 접을수록 좋을 것이오’
4년의 방황, 그리고 SAS지원으로 그는 삶의 방향을 틀었다.
척!
권총수가 먼저 악수를 했고 오민철은 가볍게 손바닥을 쳤다.
“어떤가?”
에반이 싱긋 웃는다.
뭐가 어떠냐고 묻는지 권총수는 알아차린 듯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이라크는 아니지만 이 뜨거운 열사의 나라에 온 기분을 묻는 것이다.
“민철?”
권총수가 미소로 대답하자 에반이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습니다. 목구멍에 걸린 가시가 내려갔다고 하면 지금 내 심정이 어떤지 충분한 설명이 될지 모르겠는데.”
정말 그러했다.
브라질은 땅은 넓었지만 이유 없이 답답했다.
그러나 중동은 오민철에게 밀림이다.
자신은 밀림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맹수이다.
외인부대에서의 5년은 자기 인생에 있어 가장 화려했고 즐거운 날들이었다.
사막.
피비린내 풍기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 온 것이다.
“어서 타지!”
주차장에 흰색 랜드로버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는데 에반이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이건 흡연차일세.”
담배 피워도 괜찮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유리를 내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진심으로 환영하네.”
핸들을 잡은 에반은 흡족한 표정을 했다.
“며칠 전 랭글리(CIA) 중동 책임자인 맥보란을 만났지. 사업은 어떻게 잘 되느냐고 묻더군. 그러면서 갑자기 그의 입에서 총수 이름이 나왔네.”
CIA 중동 책임자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나왔다는 말에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사실 그에 앞서 영국인인 에반이 미국인인 CIA의 거물과 관계를 맺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2013년 맥보란은 아프카니스탄의 대통령 카르자이를 비밀리에 방문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었다.
대통령을 만나 백악관의 뜻을 충분히 설명한 뒤 수도 카불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작전중인 미 해병 제23 원정여단 산하 7중대를 찾았다.
7중대장 마이클은 자신과 미시간 주립대학 동창이면서 절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7중대가 주둔하고 있는 ‘칼마’계곡을 찾아가다 텔레반의 기습을 받았다.
일행이라고 해봤자 맥보란을 포함해 M4를 든 두 명의 부하직원이 전부였다.
러시아 기관총 RPK까지 동원된 기습에 속수무책이었다.
두 부하 중 한명이 즉사하고 다른 한명은 중상을 입었다.
맥보란은 권총을 버리고 M4를 들었지만 수적 열세와 화력에서 텔레반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바로그때 일단의 군인들이 나타났다.
계급장도 없고 전투복에 부니헷을 쓴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구경하듯 잠시 전투를 지켜보는 것 같더니 갑자기 텔레반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11명의 군인들은 영국 특수부대 SAS로 작전을 벌이기 위해 근처를 지나다 총소리를 듣고 다가왔다고 했다.
당시 SAS팀장이 바로 에반이었다.
둘은 그렇게 생사의 고비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자네가 언제 우리 팀으로 합류하느냐고 묻기에 조금 놀랐지.”
뛰어난 용병들은 CIA를 포함한 여러 국가 정보기관들이 주시를 한다.
그들은 언제든지 국제적인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위험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자식들 총수가 무척 신경쓰이나 보군.”
오민철이 히죽 웃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커피를 놓고 마주 앉았다.
중동정세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맥보란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미국은 사우디 정부를 적극 신뢰하고 지지하네.”
에반이 눈을 좁혔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관계가 좋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양국은 찰떡 호흡이다.
백악관이 기침만 해도 곧바로 사우디는 수백억달러 무기를 구매하는 것으로 응답한다.
미국 또한 아랍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사우디를 앉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사우디 정부를 적극 지지하고 신뢰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자넨 내 친구일세. 얻기는 어려워도 쉽게 잃을 수 있는 것이 친구라는데 난 그런 사람이 아닐세. 앞으로도 자네와 자주 통화도 하고 이렇게 만나 차도 마실 생각일세.”
“고맙네.”
그 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차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맥보란의 말속에 어떤 경고가 들어 있다.
오민철이 권총수를 돌아보았는데 맥보란의 말뜻이 정확히 뭐라고 생각 하느냐고 묻는다.
“미국이 사우디 정부를 신뢰한다는 건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뜻이겠지. 현 부총리자 왕위 계승 서열1위인 알 살만이 누구보다도 친미적인 성향의 인물이니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그를 적극 지원할 테고.”
파팟!
오민철이 눈을 빛냈다.
“미국은 알 살만의 이복 형인 파흐드 왕세자가 설치는 걸 원치 않는다. 계속 알살만 체제로 가고 싶다. 뭐 그런 의미라는 것 아냐?”
“제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미국의 정책을 가로막거나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거지. 파흐드 왕세자를 설득 시켜 난(亂)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던가 아니면 KAS가 적당한 선에서 멈춰주든가.”
룸미러를 통해 권총수를 보는 에반의 눈이 빛났다.
정확한 분석이다.
“확대 해석일지 모르지만 사우디 정정이 불안해진다고 여기면 랭글리가 직접 나설 수도 있다는 암시도 되겠고.”
“CIA에서 파흐드 왕세자를.”
“어쨌든 우린 알 살만으로 교통정리를 했으니 그렇게 알라는 얘기지.”
“파흐드 왕세자 편을 들면 미국에 대한 도전으로 보겠다는 거야 뭐야?”
오민철이 불쾌한 표정을 했다.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KAS에서는 파흐드 왕세자의 경호를 할 뿐인데 맥보란의 말은 경호의 수준을 넘어 KAS가 정치를 하려 든다고 보는 것 같은데.”
“맞아.”
에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욱이 자네가 온다고 하니까 그 말을 하기 위해 일부러 날 찾아 온 것 같네."
권총수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맥보란의 속마음이 어떤지 알 수 있다.
KAS는 베네수엘라 쿠데타를 일으켰고 성공 하여 정권을 교체 해버렸다.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이 눈엣가시였기에 겉으로는 어떤 이유로라도 총에 의한 정권교체는 올바르지 않다는 논평을 냈지만 속은 후련했다.
소수의 병력으로 권력을 찬탈할 수 있는 것이 쿠데타이다.
사우디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맥보란은 KAS에게도 경고지만 권총수 자신에게도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권총수는 어금니를 물었다.
맥보란은 베네수엘라에서처럼 한 번 더 엉뚱한 생각을 하거나 행동 한다면 결코 가만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훗!’
작은 바람이 잇새로 흘러나왔다.
그건 실소였다.
차는 리야드 시내로 들어섰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고층 빌딩과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은 확실히 바그다드와는 전혀 달랐다.
바그다드가 회색빛으로 침묵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살아 꿈틀대는 세상이었다.
“뭘 그렇게 바라보나?”
자신들이 겪고 보았던 중동은 AK소총과 천지를 진동하는 폭탄소리,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곳 리야드는 서구의 어느 대도시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차도르를 쓰고 가는 길가의 여인들 얼굴에는 웃음이 있었고, 캐비야 차림의 남자들은 여유가 흘렀다.
“이렇게 다릅니까?”
오민철이 놀라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적 자유는 없지. 그러나 그것 말고는 서구 어느 나라도 이들의 풍요로움을 당해 내지 못할 걸.”
차는 30여분을 달려 리야드 외곽에 있는 삼층짜리 건물 앞에 섰다.
‘빼로이 전기’
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권총수는 하필 전기회사 간판을 달았을까 하며 피식 웃었다.
빼로이는 영국의 유명한 전기회사이다.
1층과 2층은 일반 사무실처럼 그럴 듯하게 꾸며져 있었고 3층은 침대와 가구들이 갖춰진 가정집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사우디지사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KAS 중동역의 컨트롤 타워였다.
이라크, 시리아, 이란, 아프카니스탄을 포함해 중동에 진출하는 KAS 용병들은 무조건 이곳을 거쳐야 한다.
1차 발령은 런던에서 내리지만 현지 사정에 따라 이곳의 책임자인 에반에 의해 다시 조정될 수 있다.
“메이, 인사하지. 이번에 새로 온 총수와 민철이지.”
흑인 여자 메이는 놀랍게도 영국 육군 출신이었다.
KAS규정상 여자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메이는 일 년에 두 차례씩 모두 다섯 번을 지원했다.
네 번은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고 다섯 번째는 훈련만 받게 해달라고 하도 간청하여 허락했다.
그녀의 성적은 매우 뛰어났다.
체력적인 면에서 남자들에게 그다지 뒤지지 않았다.
특히 사격은 매우 뛰어나 남자들을 위협할 정도였다.
결국 스톤스의 허락 하에 특별 채용형식으로 입사 할 수 있었는데 행정업무와 더불어 필요할 때는 작전에 투입되기도 한다.
탁!
에반이 직접 커피를 끓여와 내 놓았다.
“외인부대에서의 기록은 보았고 브라질에서 대단했다더군. 특히 소크라테스 선배가 말하길 총수에게 이해가 안 되는 매우 이상한 능력이 있다고 했다던데 그게 뭔가?”
부운등공의 수법으로 공중에 엎드려 저격을 했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무공이라는 것입니다.”
“무공?”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 겁니다.”
궁금증에 대해 너무 조급하게 알려고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에반은 더 이상 묻지 않았으나 아쉬운 표정까지 숨기지는 못했다.
찌르릉!
사무실이 조용한 탓에 에반의 핸드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액정을 슬쩍 보던 에반이 핸드폰을 귓가에 댔다.
“뭔가?”
화악!
갑자기 에반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