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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08화 (108/651)

제108화: 차도살인(借刀殺人)(3)

권총수는 피식 웃었다

“일단 옷부터 입으시겠소?”

스콜라리는 옷걸이를 향해 걸어갔다.

바지를 입고, 이어 흰색의 셔츠를 걸치더니 넥타이도 단정하게 멨다.

스콜라리는 소파에 느긋하게 앉았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권총수는 담담하게 웃었다.

“아래층에 부하들이 많더군요.”

“그들은 아마추어가 아닐세.”

“그럴테지요”

권총수는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호랑이 굴속에 들어온 사람이라는 걸 표정에서 만큼은 절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당신의 듬직한 용사들이 오는 모양이오?”

스콜라리는 이마를 찡그렸다.

계단은 겉으로는 평범한 계단인 듯 하지만 모든 건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자신을 쫓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나름 안배를 한 것이다.

어린 아이가 올라와도 울리게 되어 있다.

방에 있으면 울림의 정도로 침입자의 체격을 가늠할 수가 있는데 권총수가 올라올 때 분명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무리 여자와 뜨거운 시간이었다고 해도 자신의 본능은 항상 주위를 살핀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부하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둑 아닙니까?”

한쪽에 놓인 바둑판과 통속에 든 바둑알을 보며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때로는 은자의 벗이고 곤궁할 때는 활력을 주기도 하며 가끔은 삶의 길을 인도한다.”

무슨 말이냐는 듯 스콜라리가 바라보자 권총수는 섭위평이란 중국의 바둑기사가 어느 기자의 바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했다.

싸락!

흰색의 바둑알 한 주먹을 쥐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언뜻 브라질의 포르마(식빵)를 만들기 위해 반죽해 놓은 덩어리 같았다.

권총수는 바둑알을 뭉친 회색 덩어리 안에 넣었다.

이윽고 윗도리에서 볼펜을 꺼내더니 아랫부분을 돌려 분리하자 검은 가루가 쏟아졌다.

지켜보던 스콜라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보는 가루다.

권총수는 값비싼 도자기를 어루만지듯 조심스럽게 볼펜에서 나온 검은 가루를 덩어리로 감쌌다.

‘뭐하는 거지’

권총수는 바둑알과 검은 가루가 든 회색 덩어리를 출입문에 붙여 놓았다.

스윽!

조심스럽게 문틈에 바르더니 천천히 물러나왔다.

다다닥!

이제야 계단이 울린다.

스콜라리는 눈이 커졌다.

조금 전 자신의 귀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권총수는 부하들이 달려오고 있다고 했다.

짐작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콜라리는 권총수를 보았는데 손에 든 것이라고는 권총 한 자루 뿐이다.

자신의 가게는 화약고다.

수많은 총기들이 가득했다.

권총 한 자루 가지고 여기서 살아 나간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음!’

게임이 끝났다 생각 하면서도 너무 자연스러운 권총수의 태도에 일말의 불안감이 남는다.

하다못해 자신의 목에 총구를 대고 인질극이라도 벌여야 정상인 것이다.

“죽기 싫으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시오.”

권총수는 농담 같은 말 한마디를 던지며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스콜라리는 무슨 말이냐는 듯 뒤로 물러난 권총수를 봤다가 회색덩어리가 붙은 문을 바라보았다.

쾅!

부하들은 혹시 자신에게 무슨 변고가 있나 싶었는지 다짜고짜 문을 걷어차며 들어섰다.

콰아앙!

건물이 흔들릴 만큼 폭발은 거셌고 윽! 하는 소리를 지르며 소파에 앉아 있던 스콜라리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쿠쿵!

와르르르!

실내 장식물이 깨지고 넘어지며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입구를 들어서던 부하들은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콤포지션 폭약이다.

조금전 볼펜 아랫부분을 열고 쏟아 붓었던 검정색 가루는 RDX( research department explosive)다.

폭약은 크게 TNT와 RDX로 나눈다.

둘 모두 강력한 폭발력을 보여주지만 TNT 보다는 RDX계열이 훨씬 예민하다.

왁스와 끈적한 윤활유를 넣고 그 안에 바둑알과 RDX를 넣었다.

바둑은 파편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쯧쯧!”

벽 뒤에 숨어 있던 권총수가 걸어 나왔는데 패대기 쳐져 있는 스콜라리를 내려다보았다.

“뭐랬소. 몸을 숨기라니까.”

스콜라리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권총수는 산산조각이 나버린 문 앞으로 걸어갔다.

두 명은 계단에 나뒹굴고 있고 두 명은 보이지 않았다.

히죽!

실내를 살피던 권총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스콜라리는 권총수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는데 낯익은 부하 두 명이 머리가 반쯤 날아간 채 쳐 박혀 있었다.

‘음!’

스콜라리는 처음으로 신음을 흘렸다.

자신도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러나 한 번에 네 명은 죽여 본 경험이 없다.

갱 조직의 칼잡이는 절대 두 명을 상대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를 상대 하다보면 증거를 남길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적을 상대한다는 건 무조건 실패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상대는 웃고 있다.

그것도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는 듯 억지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조금은 짓궂기까지 한 웃음에 스콜라리는 가슴이 차가워짐을 느꼈다.

‘미친놈’

사람을 죽여 놓고, 그것도 폭탄으로 만신창이를 만들어놓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몇이나 될까.

“갑시다!”

권총수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스콜라리는 우두커니 서서 걸어 나가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뭐지’

거역할 수가 없다.

저 따위가.

저 놈이 뭔데.

감히 누구에게?!

그러나 마음과 달리 몸은 권총수를 따라 문을 나서고 있었다.

안돼 당장 죽여야 해.

죽은 부하들이 가지고 있던 AK가 사방에 널려 있다.

30발들이 탄창이 끼어져 있어 주워 들고 방아쇠만 당겨 버리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아아아!

미치고 환장 할 노릇이다.

3미터 정도 떨어진 방바닥에 AK-74M, 러시아 군 신형제식 총이다.

기존의 KA-47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폭발력이 좋고 무기시장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총이다.

그러나 도무지 몸이 가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열 번은 갔을 듯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몸이 두려워하고 있다.

‘몸이 겁을 먹어 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파울레타’가 남긴 유언이다.

레드 커맨드 사상 최고의 총잡이로 자리매김한 파울레타는 몸이 겁을 먹어 버리면 그땐 대책이 없다고 했다.

안된다고 속에서는 소리치지만 몸은 이미 권총수의 랭글러에 올라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리아스 호텔에서 조찬 겸 최고위원들과 회의가 있다.

라자로니는 가정부가 가져다 준 흰색 셔츠를 입었다.

파랑색에 옅은 회색 체크 무늬가 있는 넥타이를 목에 두르고 잡아당길 때 뚝!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넥타이 재봉선 부분이 떨어졌다.

“다른 것으로 가져오겠습니다.”

가정부가 놀라며 재빨리 안쪽으로 뛰어갔다.

거울 앞에 선 라자로니의 표정이 굳었다.

멀쩡한 넥타이가 끊어진 것이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내가 들어섰다.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라자로니는 눈을 치켜떴다.

“연락이 안 된다는게 무슨 소리야?”

“그게!”

“어딜 간 거야? 스콜라리 가게는 가봤나?”

“글쎄 그것이, 밤사이 원인 모를 폭발사고로 지금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며 조사 중입니다.”

“폭발이라니? 전화!”

경호원이 재빨리 탁자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가져다주었다.

라자로니는 어디론가 전화를 눌렀고 입을 열어 말했다.

“칸티나 거리에서 사고가 낫다고 들었소?”

상대는 브라질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청장이었다.

“별것 아닙니다. 밤사이 탱고 바(BAR)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난 듯한데 지금 조사 중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알겠소.”

라자로니는 일방적으로 핸드폰을 끊었다.

지난 10년간 자신을 충실하게 보좌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7년 전 마련해준 술집이다.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않은 매출을 올릴 만큼 명소로 알려졌고 특히 그곳을 중심으로 벌이는 마약사업은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다.

자신이 눈감아주고 덮어준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사건 사고도 없었다.

근처 마약단 우두머리가 스콜라리를 몰라보고 마약에서 손을 떼라고 협박했다.

그리고 나서 사흘 만에 그는 러브롱강에서 시체로 떠올랐다.

이후 평범한 사내가 아니라는 걸 간파하고 근처 여러 조직들이 한 발 물러나며 그를 인정하고 사업을 묵인했다.

그렇게 무탈하게 지금까지 잘 살고 지내오던 스콜라리 가게에 폭발사고라니 흔히 상파울루에서 자주 일어나는 낡은 가스관에 의한 폭발일까?

“의원님 여기.”

가정부가 새 넥타이를 내밀었다.

이번엔 붉은 색이다.

멈칫!

넥타이를 받아 든 라자로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붉은 색 넥타이는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목덜미가 서늘해진다.

넥타이가 핏물에 담갔다 꺼낸 것처럼 보인다.

바로 그때였다. 바깥으로부터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경호원이 재빨리 달려 나갔고 라자로니 또한 현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두두두!

퍼펑!

자동소총 소리에 이어 들리는 굉음은 분명 수류탄 터지는 소리였다.

쾅!

하는 폭음이 들리더니 저택의 현관이 날아가 버렸다.

라자로니는 본능적으로 엎드렸다.

“의원님!”

그때 한명의 사내가 AK를 들고 뛰어들어 왔는데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피하십시오.”

“무슨 일인가?”

“적들입니다.”

“적?”

와장창!

퍼퍼퍽!

창문이 박살나면서 안으로 날아 들어온 총알이 거실 벽에 박혔다.

퍼억!

하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제된 아프리카 물소 머리가 산산조각이 되어 거실 바닥을 나뒹굴었다.

꿈틀!

자신이 직접 잡은 물소였다.

물소 떼 우두머리였다.

두목답게 총을 들었는데도 전속력으로 달려왔고 위험하다는 가이드의 외침에도 피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물소나 사자 코끼리를 사냥총이 아니 M4나 AK로 갈기고 피를 질질 흘리고 가는 맹수 뒤를 느긋하게 따라가다 숨이 끊어지면 차에 싣는 것이 요즘 사파리 사냥의 추세이다.

그러나 자신은 375 H&H 매그넘으로 정확히 물소의 앞다리를 쏴 꺼꾸러뜨린 뒤 목에 두발을 박아 넣어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위험을 각오하여 만들어낸 물소 머리 박제가 부서지자 라자로니의 눈이 벌겋게 변했다.

휙!

들고 있던 넥타이를 집어 던지고 벽장문을 열었다.

안에서 꺼낸 건 HK416이었다.

타탁!

30발들이 탄창을 끼고 방탄조끼를 꺼내 입었다.

여분의 탄창 두 개를 좌우 주머니에 한 개씩 집어넣고 밖으로 나갔다.

“여보!”

시끄러운 총소리에 자고 있던 아내 아드리아나가 내려왔는데 그녀는 PP-91 케드르 기관단총이 쥐어져 있었다.

“당신은 어서 피하시오.”

“나도 싸우겠어요.”

아드리아나는 라자로니가 말릴 틈도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가더니 총을 난사했다.

“톰! 자네는 아드리아나를 데리고 뒷문으로 나가게.”

“예!”

파파팟!

현관을 나설 때 바닥으로 총알이 박혔고 라자로니는 오른쪽 정원수 뒤에 몸을 숨기고 밀고 들어오는 사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르!

두 명의 사내가 급작스럽게 날아오는 총탄에 나뒹굴었다.

"이놈들은?"

라자로니 눈이 커졌는데 죽은 두 사내 얼굴 낯이 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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