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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07화 (107/651)

제107화: 차도살인(借刀殺人)(2)

손을 뗀 권총수는 침대를 내려왔는데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권총수를 바라보는 두 간호사의 눈은 커질 대로 커져 있었는데 지금 일어난 상황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권총수는 소모된 진기를 회복하기 위해 다시 바닥에 결가부좌하고 앉아 운기조식에 돌입했다.

“포르미가 지금 우리가 뭘 본거지?”

쁘리실라가 더듬거렸다.

“빨리 연락을 해야 하는데.”

포르미가는 움직이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았지만 땅속 깊이 박힌 말뚝처럼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오민철은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을 차렸고 이미 전음으로 상황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으나 당황한 기색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욱!”

기력은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움직이는데 통증이 밀려온다.

의식은 찾았지만 그렇다고 신체적 상태가 완전해 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

“아아!”

조심스럽게 침대를 내려온 오민철은 바닥에 앉아 운기조식 중인 권총수를 발견하고 신음을 흘렸다.

자신은 의식불명,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더 오래 놔두면 깨어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이 있다는 것을 안 권총수가 과감히 전이대법을 전개한 것이었다.

전이대법은 내공 손실을 가져온다.

권총수의 말을 빌리면 적전제자가 아니면 좀체 시전하지 않는 내상치료법이라고 들었다.

힘들게 삼화취정의 경지에 들어섰는데 자신으로 인해 내공의 수위가 뒤로 한걸음 물러섰을 것이 분명했다.

“총수야.”

권총수가 눈을 뜨자 오민철이 이름을 불렀다.

“형!”

권총수는 벌떡 일어났다.

“자식!”

오민철이 끌어안았다.

“왜 이래, 이래서는 안돼, 형 진정하라고, 저 여자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잖아.”

“허흑!”

오민철이 격한 바람소리를 냈다.

“뭐야. 이런 젠장.”

권총수가 오민철을 밀어 냈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맙다. 고맙다. 총수야.”

휘청!

오민철이 다시 끌어안으려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탁!

재빨리 오민철을 부축한 권총수는 재빨리 두 간호사의 마혈을 풀어주고 말했다.

“당분간은 휴식이 필요할 거야.”

오민철은 아무 소리 않고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부탁합니다.”

두 간호사는 손을 들어 보이고 걸어 나가는 권총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꿈을 꾸는 것 같은 조금 전 상황이 좀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 * *

잠복 보름째다.

잠영술을 펼치고 숨어있는 권총수를 경호원들이 발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라자로니 저택 맞은편 담벼락이 만든 그늘에 몸을 숨기고 내공을 끌어 올리면 완전한 어둠의 한 자락이 되어버린다.

부르릉!

그때 저택의 주차장 셔터가 올라가는 듯 하더니 강력한 라이트를 켠 승용차 한 대가 나타났다.

잠영술을 펼치고 숨어 있던 권총수는 재빨리 내공을 거두며 골목을 가로질러 숨겨 놓은 랭글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제는 10여미터씩 쑥쑥 나아갈 만큼 증진한 신법이었다.

부릉!

시동을 건 권총수는 100여미터 앞에 가는 승용차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동안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라자로니 집에서 나오는 것이 확인만 되면 사건은 쉽게 해결된다.

오늘 밤 또 헛걸음을 하게 될지 모른다.

번번이 허탕을 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입질이 올 확률은 높다.

지하 주차장을 나왔던 회색 벤츠가 멈춰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나타났는데 검정색 상하의에 넥타이를 맸다.

어둠이 사방에 깔린 밤인데도 짙은 선글라스를 낀 사내는 차 문을 잠그더니 ‘까밍뉴스’란 간판 불빛이 반짝 거리는 지하 클럽으로 들어갔다.

한편 맞은편에 차를 세운 권총수는 자신이 확보한 핸드폰 속 사진을 꺼내 보았다.

자르델 경감으로부터 받은 사진과 달리 핸드폰에 들어 있는 것은 선명하고 정확했다.

자르델 경감을 통해 경찰에서 보관하고 있던 사진을 다운 받은 것이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던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그건 거북이의 웃음이었다.

도저히 토끼를 이길 수 없으리라 생각 했던 거북이가 끈기와 인내로 끝내 승리를 거머쥘 때의 웃음이다.

기다리던 사내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

레드 커맨드의 청소부가 석유재벌 바티스타가 주최한 만찬에 경호원으로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바티스타 경호는 아카데미가 지원하고 있다.

즉 스콜라리가 경비정에 나타난 건 바티스타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자로니 쪽이라는게 권총수의 판단이다.

툭!

조수석 콘솔을 열고 권총을 꺼내더니 소음기를 돌려 끼웠다.

탄창을 뽑아 실탄을 확인한 뒤 다시 장전한다.

뒷주머니에 권총을 꽂은 권총수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탁!

권총수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말 그대로 24시간 해가지지 않는다는 상파울루 최대 유흥가 골목인 칸티나 거리다.

권총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가장 먼저 권총수를 환영하는 건 탱고였다.

스페인에서 시작되어 아르헨티나, 그리고 남미전역으로 퍼진 이 매력적인 음악 속에서 한 쌍의 남녀가 춤을 추고 있었다.

권총수가 들어서자 삼바복장을 한 여자가 미소를 물고 자리를 안내했다.

“땡큐!”

자리 안내를 받은 권총수는 10달러 짜리 지폐한 장을 꺼내 주었는데 여자의 눈이 커졌다.

10달러 팁은 좀체 구경하기 힘들다.

권총수는 맥주를 시켰고 주위를 살피다 깜짝 놀랐다.

조금 전 들어왔던 스콜라리가 무대에서 탱고를 추고 있었는데 움직임이 현란했다.

실내를 가득 매운 사람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스콜라리의 춤을 바라보고 있었다.

탱고의 특징은 남녀 댄서의 몸이 수시로 밀착한다는 것이었다.

음악은 강렬했고 두 댄서의 춤은 애절하기까지 하여 권총수는 커진 눈을 좀체 다스릴 줄 몰랐다.

암살자와 댄서.

도무지 매치가 되지 않는다.

탁!

그때 여자가 맥주를 놓고 맞은편에 앉았다.

아마 10달러 지폐의 위력일 것이다.

“차이니스?”

“코리안.”

여자는 눈을 깜빡 거렸는데 한국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어느 정치인이 무슨 토론회에 나와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이제는 세계 어딜 가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떠드는 걸 봤다.

하지만 외인부대를 거쳐 KAS를 거치며 느낀 건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눈앞의 여자 역시 한국을 전혀 모른다.

“이름이?”

“쥬아나.”

“쥬아나, 예쁜 이름입니다.”

쥬아나라는 여자는 싱긋 웃었다.

“저 남자 춤을 잘 추는군요?”

턱으로 스콜라리를 가리켰다.

쥬아나의 반응을 살피려는 것이다.

“사장님요? 대단한 분이죠. 탱고에 관한 아마 비교할 분이 없을 걸요. 작년부터는 대학 강의도 나가고 있죠.”

대학강의란 말에 권총수는 눈을 빛냈다.

자르델 경감이 말에 의하면 레드 커맨드 최고 칼잡이라고 했다.

무자비한 살인 청부업자가 대학 강의라니 아무리 브라질이라고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분입니까?”

권총수는 흥미를 갖고 물었다.

경찰과 갱 사회에서만 소름끼치는 인물일 뿐 일반인들은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브라질 탱고협회 사무총장님을 지내셨고 지금은 이 지역 칸티나 상인연합회 회장님이시기도 해요.”

“대단하시군요.”

“엄청난 분이죠. 그런데 저희 사장님과 잘 아시는 분 같지는 않은데?”

“존경하죠.”

“아, 네!”

“항상 이름만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뵈다니 영광이고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사람들이 브라보를 외쳤고 스콜라리와 파트너 여인은 나란히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둘 모두 얼굴에 땀이 흐를 만큼 춤은 격렬했다.

스콜라리는 손을 내미는 손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 여자와 안쪽으로 사라졌다.

무대에서는 흥에 겨운 두 쌍의 남녀가 춤을 추고, 피아노, 바이올린, 베이스, 클라넷 4명의 밴드가 들려주는 탱고의 정통 ‘프로 우나 카베사(Por una Cabeza)’를 열정적으로 연주했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친 탱고음악에 함몰된 사람들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걸어갔다.

아무도 권총수가 일반 손님들은 들어가서는 안 되는 안쪽 통로로 들어가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

못 볼 수밖에 없는 것이 걷는 듯 했지만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신법을 펼쳤기 때문이다.

10여미터 들어가던 권총수는 오른쪽으로 돌아섰는데 2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있었다.

권총수는 발소리를 죽이며 올라가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았다.

피식!

안쪽에서 들리는 야릇한 신음소리에 미소를 짓는다.

보지 않아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르르르!

잠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문은 쉽게 열렸다.

권총수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자줏빛 양탄자가 깔렸고 육중한 원목의 책상이 놓였다.

왼쪽으로 소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스콜라리와 조금 전 탱고를 췄던 여인이 알몸으로 뒤엉켜있었다.

권총수는 느긋하게 실내를 살폈다.

멈칫!

오른쪽 벽으로 고개를 돌린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경이적인 짐승이 있었다.

‘아프리카 물소’

라자로니 의원의 응접실에서 봤던 아프리카 물소의 두상이 여기도 박제되어 있었다.

‘우연은 아니겠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두 사람이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물소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권총수는 이것저것 구경하며 왼쪽 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많은 술병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간 권총수는 흠칫 놀랐다.

‘뭐야!’

놀랍게도 술병 속에 들어 있는 건 사람의 손이었다.

‘이런 미친놈’

건장한 사내의 발도 있고, 어떤 술병에는 사람의 귀가 들어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운 술병 속에 들어 있는 건 모두가 신체의 한 부위였다.

“으헉!”

끝으로 다가가던 권총수는 너무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사람 머리다.

곱슬의 백인이었는데 대략 서른 중반 정도 되어 보였다.

권총수의 놀라는 소리에 소파에서 뒤엉켜 있던 스콜라리가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를 발견한 스콜라리는 이마를 찌푸렸다.

“뭐야?”

스콜라리는 눈살만 찌푸렸는데 여자는 차갑게 소리친다.

스콜라리는 알몸 상태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당신 누구지?”

권총수는 알몸의 남녀를 감상 하듯 훑어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고상한 취미입니다?”

“어떻게 들어왔나?”

“그냥 들어왔소.”

휙!

갑자기 권총수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움직였고 섬뜩한 쇳소리가 들렸다.

푸슉!

“악!”

여자는 소스라쳤다.

핸드백 속에 숨겨 놓은 권총을 꺼내려다 권총수가 쏜 총에 튕겨 가버린 것이다.

“저기 술병에 들어 있는 사람들 숫자를 세어보니 30여명은 되는 것 같은데?”

권총수의 물음에 스콜라리는 빙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런 스콜라리를 향해 권총수가 덧붙였다.

“내 손에 죽은 사람들 신체로 술을 담그면 나도 수백 병은 될 것 같은데.”

순간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여자는 무슨 말인지 헤아리지 못한 듯 입술을 물었고 스콜라리는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넌 30명 정도밖에 죽이지 못했냐. 난 몇 백 명을 죽였다. 그러니 함부로 경거망동 하지마라’

권총수는 천천히 다가왔다.

털썩!

널따란 책상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러더니 스콜라리를 향해 담배를 내밀어 피우겠는지 묻는다.

“담배는 하지 않는다.”

“하긴 담배는 체력을 저하시키는 식품이지.”

스콜라리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왜 하고 많은 말 놔두고 체력을 저하시키는 식품이라고 표현을 했을까.

그건 자신이 킬러라는 걸 알고 있다는 해석 말고는 다른 의미는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는 상대보다 더 압도적인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스콜라리는 등줄기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침을 느꼈다.

칼을 잡은 지 20년 만에 처음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푸슉!

또다시 소음기가 속삭였다.

“악!”

여자는 오른손을 감싸 쥐었는데 이번에는 피가 흘렀다.

옷을 걸치려는 듯 옷걸이 쪽으로 걸어가더니 재빨리 진열장 서랍을 열어 권총을 꺼내려다 또 들킨 것이다.

여자가 피 묻은 손을 잡고 으르렁 거린다.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여자군. 할 수 없지. 죽을 사람은 빨리 죽는게 좋아.”

푸슉!

여인의 이마에 총알이 박혔고 꼿꼿하게 앞으로 쓰러졌다.

스콜라리 목젖이 움직인다.

긴장한다는 신체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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