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06화 (106/651)

제106화: 차도살인(借刀殺人)(1)

마세두.

에르난데스.

페헤이라.

데쿠.

제이사.

권총수는 다섯 장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동료 헤글러가 구해 온 레드 커맨드 언더보스 다섯 명이었다.

그중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는데 맨 끝에 ‘제이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었다.

마흔에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탄탄한 몸매로 의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상파울루대학 경영학과 출신이라네.”

헤글러가 싱긋 웃었다.

“매혹적인 향기 속에 수많은 남자들이 걸려들었지.”

여자지만 경쟁자나 반대자는 결코 살려두지 않았다는 말이다.

“언더보스 중 넘버 2로 봐도 무리가 없을 거야.”

“첫째는?”

“당연히 마세두이고.”

마세두라는 인물은 메가톤 갱단의 우두머리인 피멘타를 사기도박으로 궤멸시킨 인물이다.

툭!

사진을 탁자 위에 놓은 권총수는 양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힘 있게 한 번 쓰다듬었다.

‘제이사’

혼자 중얼거리며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공공선사가 말하길 천리심불(千里心佛)이라는 상승의 내가무공이 있다고 했다.

‘힘(力)이 자라서 기(氣)가 되고 기가 성장하여 마음(心)을 이루느니라’

태어 날 때 갖고 있던 힘(본신의 기운)이 운기조식을 하면서 내공의 시작이 되는 기로 변환한다.

힘은 먹어서 생기지만 기는 수련하며 만든다.

계속 수련하여 닦으면 심법이 되는데 심(心)의 시작은 생사현관이다.

그런 면에서 삼회취정의 경지에 올라 있는 권총수는 소림의 절기 천리심불이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었다.

권총수는 제이사라는 여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뭔가를 꿰뚫어 보려는 집중이었다.

‘매우 좋다’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좋아, 이 여자가 내 칼이다.’

권총수는 빙긋 웃으며 심법을 풀었다.

딸칵!

그때 안쪽 사무실에서 런던의 스톤스 회장과 화상통화를 하던 피터가 급히 나왔다.

“총수 나와 라자로니를 만나러 가지. 런던으로 직접 전화를 했나보네.”

라자로니가 런던의 스톤스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건 한가지이다.

이번 사건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KAS를 브라질에서 퇴출시킬 수도 있다는 내용일 것이 분명했다.

랭글러에 두 사람이 앉았다.

핸들은 권총수가 잡았다.

피터는 조수석에 앉았는데 긴장되어 보인다.

스톤스 회장으로부터 어떤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 지시라는 건 라자로니 의원을 다독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KAS가 브라질에서 퇴출되는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뭡니까?”

권총수가 불쑥 물었다.

“생각해 보셨습니까?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피터는 인상을 찌푸렸다.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듯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범인을 잡고 마르타를 부모의 품으로 데려다 주는 것보다 더 분명한 해결책은 없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다는 건가?”

권총수 입 꼬리가 약간 말려 올라갔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입니다.”

“무슨 소린가?”

“너무 복잡해 아직은 설명 할 수 없는 단계죠.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부우웅!

권총수는 가속폐달을 밟으며 랭글러의 속도를 높였다.

저택 앞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대문 옆 경비실로 향했다.

“KAS에서 왔다고 전해 주시오.”

경비실에 있던 사내가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통화를 시도했고 잠시 후 딸칵! 소리가 나며 대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들어서자 경호원이 몸을 수색했다.

가지고 있던 권총을 압수당했고 핸드폰과 지갑은 돌려주었다.

두 사람은 경호원을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 앞에 서 있던 다른 경호원이 또 다시 몸수색을 한 뒤 벨을 누르자 안으로부터 문이 열린다.

씨익!

권총수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자 벨을 눌렀던 사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안에는 비서로 보이는 사내가 서 있었다.

“앉으시죠. 의원님께서는 내려오실 겁니다.”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처음 들어와 보는 라자로니 의원의 저택이다.

반짝!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이층 계단을 오르는 측면 벽 쪽으로 1미터 50정도 높이의 스피커 두 개가 있었다.

‘골드문트(GokldMund)’

틀어보거나 소리를 들어 본적은 없다.

다만 외인부대시절 작전을 나갔다가 이라크의 한 정치인 가족을 경호할 일이 있어 갔는데 그곳에서 보았었다.

정치인의 아내는 스웨덴 여자였는데 스피커 한 개에 십만달러가 훌쩍 넘는다고 자랑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엇!’

하마터면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올 뻔했다.

왼쪽으로 현 브라질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이 걸려있고 그 아래 거대한 아프리카 물소 머리가 박제되어 있었다.

미국과 중동의 부호들이 자신의 용맹함이나 권위를 과시 하기 위해 수사자를 밀렵해 거실에 진열해 놓은 건 본적이 있지만 아프리카 물소는 처음 본다.

사자들까지도 집단 공격이 아니면 함부로 쓰러뜨릴 수 없는 아프리카 사바나의 진정한 챔피언인 물소 머리를 어떻게 확보했을까.

물소는 밀렵이 금지된 동물이다.

그때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두 사람이 나타났는데 뚱뚱한 체격의 라자로니와 아내 아드리아나였다.

부부는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랭했다.

“당신들 믿고 맡겼는데, 대책이 뭐요?”

자리에 앉자마자 라자로니가 차갑게 말했다.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

“됐구요. 어떡할거에요. 당장 우리 아이 데려와요. 만약 우리 마르타를 데려오지 못하면 가만 안둘거에요."

아드리아나의 눈에 시퍼런 독기가 일렁거렸다.

“반드시 마르타를 사모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 믿어도 되나요?”

“지금은 믿어 주셔야 합니다. 우리 KAS의 능력을 믿으셔야 합니다.”

“뭘 믿으란 말인가. 근무 첫날부터 이런 사고를 치다니 에이, 빌어먹을.”

라자로니는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보시오.”

“예, 의원님!”

라자로니는 다리를 꼬고 등을 소파에 비스듬하게 붙였다.

“KAS 매출의 30퍼센트를 우리 브라질에서 얻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건 이번일의 결과에 따라 브라질땅에서 KAS를 추방 시킬 수도 있다는 위협이었다.

“중요한 건 뭔지 아시오. 베네수엘라 쿠데타 세력이 우리 우리브라질 국토에서 훈련을 했다는 것이오. 이건 브라질법상 침략행위라는 걸 알고 있소.”

전쟁을 위한 목적이나 의도를 갖고 2인 이상이 모여 집단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브라질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위반 할 경우 사형 또는 무기형에 처한다.

만약 국회에서 이 문제가 정식 의제로 다뤄진다면 KAS 브라질 지사장인 자신은 물론 런던의 스톤스 회장까지 전범으로 체포된다.

“난 그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는 걸 바라지 않소.”

라자로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거운 표정으로 실내를 서성거리더니 천천히 박제 되어 있는 물소 머리로 다가가 앞으로 뻗어 나온 뿔을 만졌다.

“우리 아이만 데려오시오. 그럼 우리의 불편했던 오늘 대화는 전혀 없었던 일이 될 것이오.”

피터와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거운 시선으로 고개를 숙였다.

“KAS 명예를 걸고 마르타를 데려오겠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당신들 모두 절대 가만 안 두겠어요.”

아드리아나는 돌아서는 두 사람을 향해 증오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피터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뒤 현관을 나섰다.

대문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랭글러 앞에서 몸을 돌렸다.

잠시 높은 담장에 쌓인 저택을 바라보더니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담배를 물었다.

권총수는 말보로 레드에 불을 붙이며 길게 연기를 뿜었다.

“이상하죠?”

피터가 고개를 돌렸다.

“아드리아나가 무척 힘들어 합니다. 뱉어낸 말속에는 납치당한 자식을 둔 엄마의 불안함이 극도로 들어 차 있습니다. 그런데 라자로니는 조금 다릅니다.”

피터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이마까지 찡그렸다.

피식!

권총수는 슬쩍 미소를 담았다.

“감정이 묻어 있지 않습니다. KAS를 브라질 땅에서 사업을 못하도록 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인상만 험악했고 눈빛은 평소와 전혀 다름이 없었습니다.”

“총수!”

“가시죠.”

한마디 하려는데 권총수는 담배를 길바닥에 버려 끄고 운전석에 올라앉았다.

피터가 조수석에 올라오자 랭글러는 골목을 떠났다.

랭글러는 상파울루 대학 병원에 주차되어 있었다.

오민철은 여전히 산소 호흡기를 쓴 채 누워 있었고 담당 의사는 결과에 대한 질문에 낯빛이 어두워 졌다.

“사실 오민철 환자는 의학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이미 벗어났습니다.”

지켜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는 뜻이다.

권총수는 걸어가는 의사를 보며 투덜거렸다.

“빈말이라도 깨어 날 것입니다 하고 한마디 해주면 좀 좋아, 의사 아니랄까봐 사무적이긴.”

권총수는 창문을 통해 오민철을 바라보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민철을 바라보던 권총수는 한숨을 쉬었다.

‘어이가 없군, 그 따위 갱단 따위에.’

전쟁터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난 오민철이 한낱 갱단에게 쓰러졌다는 사실에 착잡할 뿐이다.

파팟!

갑자기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골격근에 문제가 아닌 체력 저하와 기(氣)의 상실로 거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전이대법(轉移大法))으로 회생을 돕는 강호의 치료술을 떠올린 것이다.

한 번도 시전 해본 적은 없으나 공공선사가 남긴 설명만으로도 어떻게 하는 건지 충분히 이해는 하고 있었다.

운기조식 때처럼 신변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므로 누군가 악의를 품고 공격을 해 온다면 위험해 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중환자실에는 지금 두 명의 간호사가 있다.

일단 두 간호사들로부터 이해를 구하는 것인데 과연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현대 의학으로는 결코 분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을 행동에 적극 호응해줄리 만무했다.

방법은 두 간호사를 제압하는 것 뿐이었다.

권총수는 지그시 이를 물었다.

오민철에게 전이대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오늘 또 한가지 처음 사용하는 기예가 있었다.

탄지신통.

소림이 자랑하는 지공이다.

그동안 꾸준히 수련을 했고 나무와 바위를 상대로 펼쳐본 적은 있으나 사람은 처음이다.

‘과연 사람에게 통할까’

공공선사의 말에 의하면 탄지신통이 극성에 오르면 살인도 가능하고 무쇠도 뚫는다고 했다.

‘마혈’

그곳을 제압하면 사람이 꼼짝 하지 못한다.

물론 말은 할 수 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다.

‘형이기 이전에 내 제자’

권총수는 과감하게 문을 노크했다.

딸칵!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팟!

잔뜩 내공을 끌어 올리고 있다가 재빨리 오른손 검지를 뻗었다.

찌릿!

간호사가 움찔 하는 것 같더니 꼼짝하지 못했다.

“내...내 몸이.”

“왜 그래 포르미가.”

안쪽에서 동료 간호사가 걸어왔고 문을 밀고 들어선 권총수의 오른손 검지가 다시 뻗어나갔다.

팟!

한 가닥 지풍이 날아갔고 다가오던 간호사의 몸이 굳어 버렸다.

“어어! 몸이 움직이지 않아.”

“미안합니다. 위해 따위는 가할 생각이 없으니 그대로 있어 주시오.”

권총수는 오민철에게 다가갔다.

“뭐 하려는 거죠?”

오민철에게 다가가자 나중에 제압되었던 쁘리실라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헤치려는 것이 아니니 그렇게 소리칠 것 까지는 없소.”

두 여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외부에 알려야 한다고 마음먹었으나 몸이 묶인 사람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스윽!

권총수는 산소호흡기를 씌운 채 오민철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곧장 오른손을 오민철의 등 뒤 명문혈에 대고 대력금강심법으로 만들어진 삼화취정의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움찔!

오민철의 몸이 짧게 떨림을 보였다.

‘형 내 말 들리면 빨리 운기 조식해. 대력금강심법을 운용해 내가 주입한 내기를 받아들여.’

가벼운 진동이 느껴진다.

오민철이 자신의 전음을 들었다는 신체적 반응이었다.

‘그렇지, 그렇게 끌어당기는 거야. 흡(吸)자 결을 이용해 형의 것으로 만들어’

오민철이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권총수는 더욱 내공을 끌어 올렸다.

뜨거운 내가진기가 들어가면서 오민철의 창백하던 안색에 생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형의 벽에 막힌 듯 진기가 주춤 거렸는데 오민철이 상황을 알아차리고 운기를 시작하자 모든 것이 순조롭다.

내공이 빠르게 들어가면서 오민철은 확실히 안색이 평온해졌다.

“일주천 가지고는 안돼. 2-3회 더 돌려야 해.”

임맥과 독맥까지 한 번 흐르는 운기를 일주천이라고 하는데 오민철은 그것으로 끝내려 했다.

그러자 권총수가 두세 번 더 운기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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