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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05화 (105/651)

제105화: 서로의 목을 겨냥 한 칼(3)

사무실 분위기는 무거웠다.

마르타의 아버지 라자로니는 브라질 정계를 뒤흔드는 거물 정치인이다.

차기 브라질 대통령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더욱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많은 의견들이 나왔지만 이번 사건의 성격을 정할 만큼의 결정적인 단서나 정보는 없었다.

피터는 고개를 돌렸다.

권총수는 회의가 시작된 이후 아직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총수.”

한마디 해보라는 뜻이다.

권총수는 피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잠시 고개를 갸웃 했다.

“아무래도.”

모든 직원들이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이건 순전히 저 개인적인 판단입니다만 매우 단순한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한 사건?”

흑인 용병 헤글러가 물었다.

“어제 납치범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죠?”

“마르타 몸값으로 천만 달러를 요구했다더군.”

피터가 대답했다.

“그게 전부입니까?”

“왜? 또 뭐가 있어야 하나? 천만달러를 요구했다는 것 말고는 다른 얘긴 듣지 못했네.”

“뭔가 빠진 것 같지 않습니까?”

피터가 멈칫 하며 다른 직원들 얼굴을 보았다.

무엇이 빠졌느냐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 생각났다. 시간제한에 대한 언급.”

해글러의 말에 권총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세상의 모든 유괴범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죠. 그건 바로 언제까지 돈을 마련해 보내지 않으면 아이를 죽이겠다는 위협입니다.”

“맞아.”

“듣고 보니?”

모두가 피터를 바라보았다.

그런 말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묻는 것이다.

“지금 물어볼까?”

“전화 하지 마십시오.”

권총수가 재빨리 전화를 하려는 피터를 저지했다.

권총수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건 어떤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을 때 보여주는 노회한 수사관의 표정이었다.

“왜 전화 하지 말라는 건가?”

피터가 물었다.

“모든 유괴사건은 반드시 두 가지가 병행됩니다. 아이 몸값과, 시간이죠. 그중 유괴범들은 시간에 아주 민감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대중의 눈을 피해 다닌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아이를 죽이고 태연하게 부모와 협상을 하기도 하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라자로니 회장쪽에서 언제까지 돈을 만들어 가져오지 않으면 마르타를 살해하겠다는 조건을 걸지 않았을까요?”

“깜빡 잊고 넘어 갈수도 있잖아요.”

실비가가 말했다.

“그들은 브라질 경찰보다 우리 KAS를 더 신뢰한다고 했어. 그럼 우리에게 전화 내용을 빠짐없이 말해야 정상인거야. 범인들이 돈만 요구하고 마르타의 목숨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실비아가 눈을 깜빡 거렸다.

“제일 중요한 포인트잖아.”

“그렇지. 제일 중요하지.”

“깜빡 잊고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제로죠.”

권총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KAS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었다.

라자로니 정도의 거물이라면 승소할 가능성이 높고, 더욱이 오민철이 경호를 했다.

KAS에 경호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방법이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돈도 잃고 브라질 시장을 빼앗길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스톤스 회장은 그 점을 가장 신경쓰고 있었다.

“그만 퇴근들 하지.”

피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이잉!

권총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냈다.

액정에 찍힌 이름을 확인하던 권총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를 시도했다.

“경감님.”

정신없이 먹는 병에 걸린 자르델 경감이다.

마치 식성을 자랑이라도 하듯 자르델 경감은 자신이 먹은 요리의 빈 접시를 수북이 쌓아 놓고 있었다.

“고작 7접시 밖에 비우지 못했습니까?”

권총수가 큰 소리로 웃으며 다가왔다.

“어서오게 나의 친구.”

단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친구라며 웃는다.

“많이 먹었다고 자네가 화를 내면 어쩌나 했는데 7접시 밖에 못 먹었냐고 오히려 화를 내다니 감사하고 기쁘군.”

“실컷 드십시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권총수라고 합니다.”

“주여 이 영혼을 축복하소서. 이봐 여기 스테이크 한 접시 더 주게. 아니 자꾸 왔다갔다하느라 피곤 할 테니 미리 다섯 접시 가져다 놓게.”

“예!”

1접시는 일인분이다.

상파울루에서 스테이크 일인분의 무게는 500g이므로 굉장한 양인 것이다.

그야말로 발로 밟으면서까지 빈 곳 없이 꽉꽉 채우듯 자르델 경감은 차분하게 씹어 삼켰다.

‘먹다 죽을 수도 있다’

의사는 원인 불명이라면서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끄아악!

비명에 가까운 트림을 하며 자르델 경감은 포크와 나이프를 놓았다.

“왜 웃는가?”

“음식을 너무 멋있게 드셔서 그렇습니다.”

“멋있게, 오오! 마이 갓, 내 생전 음식을 멋있게 먹는다는 말을 듣기는 처음일세.”

“진심입니다. 음식을 먹는다고 모두가 멋있지 않습니다. 걔중에는 게걸스럽고 추하게 먹는 사람도 있죠.”

“게걸스럽다는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긴데 내가 아는 사람 한 명이 그렇게 처먹는다네. 그 친구와 같이 음식을 먹다보면 나까지 개가 된 기분이거든.”

“그 기분 더럽죠.”

“맞아. 더러워.”

자르델은 이제 눈치도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커피를 주문했다.

“기분 나쁜가?”

“아닙니다. 전혀 괜찮습니다.”

“자네 혹시 하느님을 믿나?”

갑작스런 질문에 권총수는 움찔했다.

순간적으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광신도에게 붙잡혀 1시간동안 예수님에 대해 교육을 받고 난 이후 낯선 사람의 입에서 하느님이라는 말이 나오면 긴장하는 버릇이 생겼다.

“왜 물으십니까?”

“자넨 하느님 믿지 않아도 천국 갈 걸세. 내 장담하네.”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다.

커피가 나왔고 자르델은 끝없이 떠들었다.

도대체 날 부른 이유는 언제나 말을 하려나 하며 권총수는 끈기 있게 기다려 보기로 했다.

커피만 벌써 여섯 잔째였다.

끝없이 올려주는 매상에 기쁜 듯 종업원이 웃으며 돌아간다.

딱!

반쯤 마신 뒤 정색했다.

“오래전 자네와 같이 날 만나러왔던 친구 말일세. 그 친구는 어디 있나?”

권총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민철은 아직 의식불명이다.

권총수는 사건 내용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자르델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라자로니가 누군지 아는가?”

“정치인 아닙니까?”

“사실 현역 때 라자로니를 미친 듯 추적했지. 그 이유는 저번에 말했다 시피 레드 커맨더 두목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끝내 밝혀 내지 못했네. 은퇴했다고 라자로니에게서 시선을 거둔 건 아니었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계속 추적을 했네. 그리고 어제 밤 놀라운 사실을 얻었지.”

권총수는 숨을 멈췄다.

갑자기 가슴이 뛴다.

스윽!

자르델 경감은 주머니에서 낡은 핸드폰을 꺼내더니 사진을 찍어 모아 놓은 갤러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여깄군.”

권총수에게 보라는 듯 핸드폰을 내밀었다.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세 명의 남자가 술을 마시며 환하게 웃고 찍은 사진이다.

옆에는 가슴이 훤히 드러날 만큼 움푹 패인 원피스를 걸친 세 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권총수는 맨 오른쪽 남자를 보았다.

낯익은 얼굴로 바로 마르타의 아버지이자 상원의원인 라자로니였다.

“옆에 있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유명한 톱 모델들일세. 한 가운데 있는 비쩍 마른 늙은이 보이나. 아이크 바티스타고 브라질 석유재벌이지. 라자로니의 가장 큰 정치적 후견인이기도 하고, 그런데 멀리 화면 뒤로 보이는 것 없나.”

“보트에 타고 있는 사람 말하는 것입니까.”

멀리 한 사람이 찍혔는데 제대로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섬은 석유재벌 아이크 바티스타 소유의 개인 땅이라고 했다.

권총수는 사진을 수색하듯 살폈다.

해변에서 만찬을 즐기는 장면을 찍으면서 멀리 바다에 떠 있는 경호원들의 보트가 같이 찍힌 것이다.

그 보트에 AK자동소총을 들고 있는 키 큰 사내.

화면이 멀어 생김새를 정확히 구별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열쇠는 그 놈에게 있네.”

“그놈이라면 여기 보트에 AK를 들고 있는 놈 말입니까?”

“누군지 아나? 바로 스콜라리라는 녀석이지. 네가 저놈을 잡아넣기 위해 현역시절 꽤 공을 들였는데 결국 이렇게 나만 초라하게 늙고 말았어.”

잡아넣지 못했다는 뜻이다.

“레드 커맨드 청소부야.”

“킬러란 말입니까?”

“브라질 경찰에서 안 잡기도 하고 잡지 못하기도 하지.”

“안 잡는건?”

“레드 커맨드로부터 경찰 고위층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고 잡지 못하는 건 증거가 없기 때문이지.”

“그 정도로 완벽합니까?”

“영리한 녀석이야. 어쨌든 레드 커맨드 청소부가 할 일 없이 상원 국회의원 생일 파티를 경호하겠나.”

권총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 말이 이해되나?”

자르델 경감은 지금 라자로니가 레드 커맨드 우두머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권총수는 이마를 찡그렸다.

“경감님께서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어떻게 보긴, 뻔하지.”

“뻔하다면?”

“반란이 시작되었다고 봐야지. 라자로니가 그동안 너무 장기집권 한 거야. 그런데 그가 만약 차기 대통령에라도 올라가보게. 가장 먼저 껄끄러웠던 레드 커맨드의 언더보스들을 칠걸.”

“그래서 그 전에 선수를 친다?”

“그렇지.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들이 당할 게 뻔하니까.”

“그럼 한두 명이 아니겠군요. 언더보스들이 합심해서 작전을 벌였다고 봐야 됩니까?”

“자내 머리 회전이 빠르군. 일단 공동의 적이니 치고 본 뒤 나머지는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는 것 아니겠나. 우선 발등의 불부터 끄고 봐야 할 테니까.”

“그렇긴 하군요.”

“오케이?”

“결국 쿠데타 아닙니까?”

“백 프로일세.”

자르델 경감은 자신 있게 말했다.

마르타 납치가 레드 커맨드 조직내분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

“고맙습니다. 언제든지 전화 주십시오.”

“그 말은 실컷 먹을 걸 사주겠다는 말인가?”

“연금도 얼마 남지 않았더군요.”

“자네가 그걸 어찌 아나?”

“우연히 경감님 집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죠. 우편물을 발견했는데 연금공단에서 내년 6월부터 연금이 끊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병원비로 너무 많이 들어갔지.”

과식을 하는 원인을 찾고 치료하기 위해 연금을 일시불로 끌어당겼지만 돈은 돈대로 날리고 병은 치료하지 못했다.

“자주 불러 주십시오.”

그건 앞으로 브라질에서 활동하는데 자르델 경감을 정보상인으로 삼겠다는 뜻이고 그에 상응한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뜻이었다.

“고맙군. 역시 내가 사람은 제대로 보았어.”

알고 보면 자르델 경감은 지금 자신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가벼운 주머니를 채울 대상을 물색하다 권총수를 만났고 그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인생은 도박이라던가’

이번 패(牌)는 확실히 성공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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