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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03화 (103/651)

제103화: 서로의 목을 겨냥한 칼(1)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권총수는 오민철이 마르타를 데리고 나오자 미소를 지었다.

“형 저녁에 봐.”

오민철은 차안에 있는 권총수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이윽고 검정색 벤츠 문을 열어 마르타를 태운 뒤 오민철은 운전석에 앉았다.

부우웅!

벤츠가 지나치면서 오민철은 다시 한 번 손을 들고 미소를 지었다.

한참 고개를 돌려 사라지는 벤츠를 보던 권총수는 시동을 걸고 저택 앞을 출발했다.

“수고들 하쇼.”

권총수는 경호원들을 향해 히죽 웃었다.

부우웅!

랭글러가 완전히 사라지고 5분 정도 지난 뒤 마르타의 아버지 라자로니가 나타났다.

순간 경호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라자로니는 검정색 마이바흐 안으로 사라졌다.

마이바흐가 출발하자 그 뒤를 경호원들이 탄 벤츠가 따라갔다.

KAS 여직원 폰타나는 사무실을 들어선 권총수에게 커피 한 잔을 가져왔다.

“고마워요.”

폰타나는 빙긋 웃었다.

“조금 전 지사장님께서 공항이라면서 전화 왔어요.”

나흘 전 런던 본사에서 해외지사장 회의가 열렸다.

항상 화상회의로 열렸는데 지사장들을 런던으로 불러들이는 바람에 급히 출국한 것이다.

후룩!

폰타나가 가져다 준 커피를 마시며 권총수는 뉴스위크지를 펼쳤다.

뉴스위크지는 순전히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서 본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느 잡지보다 굵직한 정치적 사건 사고를 잘 싣기 때문이다.

용병에게 정치적 사건은 곧장 돈줄로 연결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권총수는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달러를 찾는 것이다.

멈칫!

잡지를 넘기던 권총수가 이마를 찡그렸다.

‘전쟁기업, 그들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라는 타이틀 기사와 함께 한 달전 있었던 베네수엘라 쿠데타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영국제일의 전쟁기업 KAS가 베네수엘라 쿠데타의 주역이라면서 야당 지도자 로메로가 현 대통령을 축출하는 대가로 국영석유회사의 지분 5프로를 약속했다고 썼다.

5프로를 현재 달러로 환산하면 오십억달러에 이른다는 기사에 권총수의 눈이 커졌다.

‘오십억달러’

위에서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행동하는 직원들 위치에서는 거래액의 규모를 알 수는 없다.

권총수는 핸드폰을 꺼내 재빨리 계산에 돌입했다.

‘한화 6조 정도.’

입에서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한 나라의 권력을 강탈해 주었으니 대가가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예상을 훨씬 웃도는 돈이다.

그러다 문득 권총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6조를 챙기고 고작 성공 보너스로 10만 달러를 줬단 말인가’

물론 받는 사람 입장에서 오케이 했으므로 거래는 분명하게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70명에게 10만 달러라면 700만 달러였다

대략 한화 84억이었다.

50억 달러와 700만 달러.

불현 듯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카데미에서 왔던 사내였는데 그는 분명하게 말했다.

‘저희 회사는 수임 사건의 30프로는 무조건 참여한 직원들에게 지급되죠’

아카데미식 계산이면 최소 1조 8천억이 70명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회사마다 규정이 있고 정해진 룰이 다르다.

마음에 들면 가고 싫으면 안 가는 것이 직장인 것이다.

하지만 6조를 벌고 84억을 지불했다는 건 이른바 독식이나 다름없었다.

동원된 총기와 선박 임대료를 포함한 장비 값을 넉넉하게 계산한다 해도 결코 천만 달러는 넘지 않을 것이다.

‘1년 계약하길 잘했군’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원으로서는 충분히 이직할 수 있다.

언제 어떤 사건과 사태가 파고들지 알 수 없고, 용병들의 생존율(은퇴할 때까지 평균 7년 근무)은 70퍼센트가 채 안 된다.

회사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따위의 마음을 갖고 일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바닥이다.

피식!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지만 경험부족을 확실히 드러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런던을 방문했던 피터가 들어섰는데 표정이 밝은 것을 보아 흔들렸던 자신의 지위가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

“지사장님 무슨 회의였기에 불러들인 거죠?”

폰타나가 커피 한잔을 가져다주며 물었다.

“별 것 아니야. 이번 ‘햇빛 사냥’ 작전에 관해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자리였지.”

“회장님께서는 뭐라고 하세요?”

“그분이 좋다고 웃고, 화난다고 인상 쓰는 분이던가.”

스톤스는 항상 포커페이스다.

“50억 달러 설, 100억 달러 설이 끊이지 않는데 직원들 보너스 한번 푸시지 너무 하셔.”

폰타나가 입을 삐죽 내밀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민철은 열심히 근무 하고 있더군. 총수.”

“통화 해보셨습니까?”

“그럼, 여유가 넘치더라고.”

피터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총수, 아람코(ARAMCO)라고 들어봤나?”

금시초문이라는 듯 권총수는 눈을 깜빡 거렸다.

피터가 자신의 책상위에 걸터앉아 폰타나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셨다.

“시가 총액으로 따진다면 전 세계 기업중 1위일 거야. 애플의 1조2000억 달러를 훌쩍 넘어선 1조 7000억 달러로 추정하지. 사우디 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야.”

권총수가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한 번 들어본 듯 했다.

팟!

떠올랐다.

‘비렌드라’

히말라야 눈 사나이, 쿠그리라는 휘어진 칼로 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영국 군대를 무찌른 쿠르카족 출신인 비렌드라였다.

‘총수 아람코라고 알아?’

그늘 아래 두 다리를 뻗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비렌드라가 다가와 앉더니 물었다.

‘몰라’

‘사우디 석유회사야. 그곳에 들어가면 연봉이 아주 세다고 들었어. 특히 보너스 제도가 발달해 있다더라고. 어떤 개인이나 팀이 뛰어난 성과를 내면 소속 보안 기업과는 별개로 수당을 준다는 거야.’

비렌드라는 아람코에 입사하고 싶어 했다.

자체적인 경비 인력도 두지만 약 80퍼센트는 아카데미나 다인코프, 마르케스, 그리고 그린베레 출신으로 플로리다에서 가장 큰 보안업체 ‘실버 코프 USA’정도에는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그들 업체는 거의가 미군 위주였다.

외인부대 명함은 약하다면서 아쉬워했다.

피터는 아람코란 기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기업공개를 했고 고작 1.5퍼센트 지분만을 공모하여 미화 256억달러(한화 약 30조원)를 현금화 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아람코를 둘러싼 사우디 왕가의 암투야.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인가봐. 자네 살만이란 사람은 아나?”

“조금 알죠. 현재 부총리이자 국방장관 아닙니까?”

“그럼 자말 카슈끄지도 알겠군?”

권총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피터는 담배를 피워 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터키 수도 앙카라 에센보아 국제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내렸다.

미국 워싱턴에서 날아온 델타 항공이었다.

비행기가 게이트로 들어서고 타고 온 여행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자주 빛이 도는 자켓에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받쳐 입은 60가량의 노신사의 손에는 서류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미소를 지었다.

“알겠네. 그럼 저녁8시에 거기서 보지.”

노인은 핸드폰을 끊고 입국수속을 밟기 시작했다.

노신사 차례가 되었고 갖고 있던 여권을 공항직원에게 내밀었다.

여권을 보던 직원이 흘긋 미소를 띄고 내려다보는 노신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슬그머니 노신사 모르게 의자 아래 오른쪽 발이 벽에 붙은 붉은 버튼 한 개를 눌렀다.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직원은 미소를 띄며 여권을 돌려주었다.

“수고하시오.”

노신사는 손을 들어 보이며 지나갔다.

청사를 나온 노신사는 줄지어 서 있는 택시를 향해 걸어갔다.

맨 앞에 있는 택시에 오른 노신사가 말했다.

“사우디 대사관 갑시다.”

“그러지요.”

택시기사는 빙긋 웃으며 미터기를 꺾었다.

부우웅!

택시가 승차장을 떠나자 누군가가 무전을 보냈다.

“출발했습니다.”

택시는 이내 사람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택시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노신사는 걸려온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오오 아다르.”

약혼녀였다.

오늘 터키에 온 것도 약혼녀 때문이다.

약혼녀는 터키에서 발행되는 여성지 모델로 활동하는데 2년 전에 만났다.

30년이라는 나이차이가 있긴 하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그녀와 결혼을 위해서는 사우디 정부에 혼인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

“대사관에 들렸다가 저녁 8시에 워커와 식사를 하기로 했어요.”

워커는 터키에서 활동하는 워싱턴포스트 기자였다.

둘은 오랜 친구 사이였고 대사관에서 혼신 신고서를 제출한 뒤 저녁을 먹을 것이다.

“사랑해요 아다르. 그럼 내일 봅시다.”

그녀는 지금 이스탄불에서 화장품 광고를 찍고 있는 중이다.

전화를 끊은 노신사의 얼굴은 빛났다.

그건 늦게 만난 사랑을 주체 못하는 뜨거운 열기였다.

“곧 결혼하시나보죠?”

기사가 물었다.

“그렇다오.”

노신사는 빙긋 웃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 꼼꼼하기로 소문난 카슈끄지 답지 않았다.

약혼녀의 전화에 약간 흥분이 되기 했지만 택시 기사의 질문에서 어떤 이상한 점도 찾아내지 못했다.

자신은 결혼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기사는 결혼하느냐고 물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자말 카슈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저명한 언론인이다.

그가 유명하게 된 건 미국이 눈에 불을 켜고 잡으려는 알카에다 우두머리 오사마 빈라덴과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가 근무했던 곳은 일간지 ‘알와탄’으로 이슬람권 언론치고는 상당히 진보적인 매체였다.

그러면서 중동의 왕가, 특히 사우디 왕가의 부패와 비리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카슈끄지는 워싱턴으로 잠시 거처를 옮긴다.

미국에서 사우디 왕가에 대한 비판은 더욱 강도를 높여갔다.

그런 와중에 혼인 신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터키에 나타난 것이다.

택시는 퇴근시간이 다가오는 앙카라 거리를 관통하여 40분 만에 사우디 대사관 앞에 멈췄다.

카슈끄지는 십 달러짜리 지폐 석장을 주면서 잔돈을 거슬러 주려는 기사에게 팁이라고 하면서 내렸다.

팁을 받은 택시기사는 무전기를 꺼냈다.

“들어갑니다.”

무전기를 내리며 택시기사는 대사관 입구 샛문으로 근무자와 얘기를 주고받는 카슈끄지를 보며 중얼 거렸다.

“오늘따라 석양이 너무 붉습니다. 카슈끄지 .”

택시기사는 중얼거리며 차를 몰아 사라졌다.

탕!

대사관 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퍽! 하며 눈앞이 번쩍였다.

카슈끄지는 아무소리 못하고 땅바닥으로 엎어졌다.

피터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카슈끄지는 열 개의 손가락이 모두 절단되었고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었다네. 성역중에 성역인 사우디 왕가를 비판한 댓가를 혹독하게 받은 거지. 그런데 말이야. 그날 작전에 투입된 요원들이 누군지 아나. 아카데미였다네.”

“뉴스에는 사우디 경찰이라던데요?”

폰타나가 눈을 빛냈다.

“뉴스는 원래 그렇게 보도하는 거야.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살해 암매장 된 카슈끄지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거야. 사우디 왕가의 부패와 독재를 비판했던 그의 기사 뒤에 말이야 ”

“누구?”

“파흐드.”

권총수가 그가 누구냐는 시선으로 보았다.

“차기 국왕후보자 1순위인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 형이라네. 사우디 왕가에 어떤 소문이 흘러 다니는 줄 아는가. 알 살만 현 부총리가 국왕에 오르면 파흐드를 절대 가만 안둘 것이라는 거야.”

피터는 영국에서 올 때부터 들고 있었던 가방을 열고 묵직한 서류 한 뭉치를 꺼내 권총수에게 던졌다.

탁!

서류뭉치를 받았는데 상당한 양이었다.

대충 보아도 20여장은 될 듯 싶다.

권총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고 피터로부터 받은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팔랑!

마지막 장을 넘겼다.

피터가 권총수의 눈치를 살피더니 묻는다.

“어떤가?”

권총수는 다시 서류를 들어 대충 살핀다.

팔랑!

팔랑!

종이를 빠르게 넘긴다는 건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일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몇 명입니까?”

“회장님께서 자네가 리더가 되어 줄 것을 원하고 있네. 또한 자네가 요구하는 건 뭐든 아끼지 말고 지원하라는 말씀이계셨네.”

권총수는 눈썹을 찌푸렸다.

자신은 외인부대에서 전설이었지 KAS에서 만큼은 아직 신입에 가깝다.

그런 자신에게 우두머리 자리를 맡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요구하는 건 뭐든지 지원해준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히죽!

권총수는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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