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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02화 (102/651)

제102화: 완전정복(2)

모던은 브라질을 중심으로 남아메리카를 총괄하는 정보 지휘 팀장이다.

올해로 CIA 20년 경력의 베테랑인데 정보요원이면서 외교관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했다.

항공권 예약을 마치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랭글리였다.

“예 팀장님.”

남미의 정보를 지휘하는 제7팀장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즉시 현장으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모던의 표정이 굳어졌다.

“빌어먹을.”

진급 막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아메리카지역 정보 책임자가 쿠데타가 일어났는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건 옷 벗기 좋은 일이었다.

“뻐억!”

모던은 거칠게 책상을 발로 걷어찼다.

* * *

권총수와 오민철은 일반인 복장을 하고 카라카스 공항에 나타났다.

돌아갈 때는 각자 귀환이다.

70명의 대원 중 21명이 사망했다.

생각보다 사망자수가 늘어났던 건 사전에 알지 못한 비밀 경호시설이 많았던 까닭이다.

그들의 시신은 이미 카라카스의 유명 장의회사가 모두 수거해갔다.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조금 잠잠해지면 각자 고향으로 보내 질 것이다.

각자가 지닌 병기 또한 이미 회사가 임대한 화물선에 실려 떠났다.

쿠데타 성공 보너스 10만 달러는 이미 통장에 들어왔고 사망자들은 유족에게 보내진다.

“이왕 왔으니 시내 관광 좀 하고 갈까? 베네수엘라 여자들이 죽인다던데.”

권총수가 눈을 흘겼다.

“왜? 어때서?”

“가급적 최대한 빨리 베네수엘라를 떠나라는 소크라테스의 말 못 들었어. 당분간 베네수엘라 입출국이 꽤 까다로워 질것이라고 했잖아.”

쿠데타가 일어나면 내부 안정을 목적으로 강력한 통제가 시작된다.

그 첫 표적이 공항인 것이다.

공항이 폐쇄되면 그땐 위험해진다.

배를 이용한 탈출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검문검색이 엄격해지고 그러다 보면 불법밀항선을 이용해야 하는데 10만 달러를 모두 쏟아 넣어도 모자랄 수 있다.

“담배나 피우고 오자고.”

오민철은 못마땅한 얼굴로 권총수를 따라 청사 입구에 있는 흡연실로 들어갔다.

흡연실에는 한 명의 백인남자가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옆으로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백인 사내가 핸드폰을 꺼내 통화를 했다.

“전 지금 서기관님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와 있습니다.”

백인 사내는 두 사람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듯 통화에 거침이 없었다.

“용병들 같다고?”

순간 담배를 피우던 권총수와 오민철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글쎄 이쪽 분위기는 아직 그런 기미를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지금 팀장님께 처음 듣는 얘깁니다.”

사내는 잠시 듣기만 하는 것 같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사내는 전화를 끊더니 담뱃불을 끄고 밖으로 나갔다.

권총수가 따라 나가려 하자 오민철이 물었다.

“어디 가는데?”

“쉿!”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밖으로 나간 권총수는 자연스럽게 지금 나간 사내를 따라 붙었다.

사내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랭글리 팀장님께서 그러는데 용병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베네수엘라 군대는 어제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것이 최종 확인됐다는데.”

아마 동료와 통화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당장 아카데미부터 알아보라는군. 자네가 그쪽을 맡게, 난 유럽쪽 보안업체들을 훑어보겠네.”

사내는 전화를 끊더니 다시 번호를 눌렀다.

“날세. 런던은 어떤가? 용병이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야. 그쪽을 좀 알아봐주게. 오케이. 고맙네.”

사내는 전화를 끊고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오민철이 다가왔다.

“정보부 관계자 같던데?”

“맞아. 랭글리 쪽인가 봐. 금방 드러날 것 같은데.”

“소크라테스가 그랬잖아. 늦어도 열흘 안에 KAS 작품이라는게 알려질 것이라고, 하지만 성공한 쿠데타이기 때문에 잠깐의 비난은 있을지 모르지만 곧 조용해질 거라고.”

씨익!

웃으며 두 사람은 공항청사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오랜만에 리우에서 실컷 서핑이나 즐기자고.”

두 사람이 탄 비행기가 이륙하며 하늘 멀리 사라졌다.

* * *

북한산을 끼고 있는 변두리다.

승용차 한 대가 멈추더니 문이 열리고 채명천이 내렸다.

채명천은 허름한 골목을 따라 올라가며 대문 앞에 걸리거나 쓰여 있는 주소를 살폈다.

척!

조그만 삼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자하슈퍼라고 쓰인 작은 가게가 나타난 것이다.

70이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 둘이 평상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채명천은 입구 벽에 쓰인 번지수를 확인하고 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리가 희끗한 아주머니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뭘 드릴까요?”

채명천은 가게 안을 슬쩍 둘러보더니 두루마리 휴지 세 묶음을 주문했다.

낯선 사내가 두루마리 휴지 세 묶음을 구입하자 주인 아주머니의 눈이 커졌다.

“얼마죠?”

“6만원입니다.”

채명천은 지갑에서 오만원권과 만원권 한 장을 꺼내 주었다.

“비타민 음료 하나 주시죠.”

“천원입니다.”

천원짜리를 건네주고 마개를 열어 반쯤 마셨다.

“아주머니 뭣 좀 물어봐도 될까요?”

불쑥 나타나 61,000원 어치 물건을 팔아준 손님이다.

“그러세요.”

“이 동네 오래 사셨습니까?”

“네, 토박이는 아니지만 30년 가까이 살았죠.”

“오래 사셨군요. 혹시 정지숙씨라고 아십니까?”

여자가 화들짝 놀란다.

자신의 이름이 정지숙이다.

채명천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가 펴졌는데 사실을 알고서 묻는 질문이다.

여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정색했다.

“왜 그러는데요?”

조금 전 친밀한 시선은 사라지고 금세 경계의 표정이다.

“그분을 좀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찾기가 쉽지 않군요.”

강력계 형사 경험에 의하면 이럴 때 바로 밀고 들어 갈 경우 본심을 털어 놓지 않는다.

조금씩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씩 파고들어야 하는 법이다.

서두르면 안 된다.

“뭘 물어 보려고 하는데요?”

“아시는 분입니까?”

“아뇨. 그냥 궁금해서.”

“제가 아는 형님이 계시는데 돌아가셨다고 얘길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25년 정도 됐군요. 그동안 먹고 살기 바빠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는데.”

아주머니의 눈이 빛난다.

“정지숙씨는 돌아가신 형님 부인 되거든요. 형님 대신 형수님이라도 한번 찾아뵈려고 그럽니다.”

그제서야 아주머니 눈이 세 뭉치 두루마리 휴지를 본다.

이제야 이해가 간 것이다.

이사한 집이나 오랜만에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살림살이를 준비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요즘은 모든 것이 현금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휴지나 비누등 집안에서 살림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강세다.

“얼마만큼 친했는데요?”

“트럭할 때 같이 전국 공사장 많이 누볐죠. 우리 집 큰놈 전교 일등했다는 말에 성큼 10만원을 주면서 용돈 주라고 한 것이 눈 앞에 선합니다.”

그런 일은 없었다.

남편의 인간성을 살려주기 위한 계산이다.

여자가 남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까지 소상하게 알리는 없다.

“좀 앉으세요.”

여자가 빈 의자 한 개를 끌어 당겨 놓았다.

“우리 아이 아빠와 잘 아는 모양이죠?”

“설마 형수님?”

채명천은 형수님이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정지숙은 고개를 끄덕였다.

채명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수님.”

“이러지 마요.”

정지숙은 손을 잡아 앉힌다.

“아이들은요?”

“아들 둘 직장생활 하죠. 한 놈은 부산, 둘째는 목포에 있어요. 원양어선타요.”

이미 그 사실도 알고 있다.

“교통사고라니 어찌된 겁니까?”

“아닙니다.”

정지숙은 차갑게 끊어 말했다.

“눈감고도 고속도로 100키로 밟는다고 자랑하던 사람이에요. 운전실수라니.”

“형수님?”

“사고순간 나한테 전화가 걸려왔어요. 갑자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전화가 왔단 말입니까?”

“알지 모르지만 애들 아빠는 항상 전날 차량을 정비 해 놓죠. 더욱이 당시 현장은 고갯길이 많아 브레이크 관리에 굉장히 신경 썼어요. 그런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죠.”

딱!

정지숙은 목이 마르는 듯 생수 하나를 꺼내더니 마개를 땄다.

그녀는 벌컥 벌컥 몇 모금 마신 뒤 트림을 했다.

후우!

정지숙은 길게 한숨을 내쉰다.

“사건이 있기 몇 개월 전 전세를 살다 연립을 샀어요.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묻자 사장님에게 선금을 당겼다더군요.”

“얼마였습니까?”

“8천 만원이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없는 사람에게 8천만 원은 큰돈이다.

“그 날 전화로 말했어요. 죽어가는 마당에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냐면서 누군가의 차를 들이 받고 받아낸 수고비라고 했어요.”

채명천의 눈이 커졌다.

“누구 찹니까?”

“그 말은 듣지 못했죠. 바로 그 순간 차가 절벽으로 추락했으니까요.”

채명천은 남은 비타민 음료를 비웠다.

채명천은 차로 돌아왔다.

8천만 원을 줬다는 것과 죽어가면서 그 돈의 출처가 은행이나 회사 사장이 아니라는 걸 알아낸 건 예상을 벗어난 큰 수확이었다.

“좋아!”

부우웅!

채명천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오민철은 거울 앞에 섰다.

오랜만에 걸친 정장이다.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앞으로는 자주 정장차림을 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거울을 보며 차림새를 다듬은 뒤 문을 열고 나갔다.

“와아!”

마당에 있던 권총수가 눈을 크게 떴다.

“옷이 날개라더니”

“괜찮냐?”

“좋다. 형 뽀대 난다.”

“가자!”

오민철이 앞장서고 권총수가 뒤를 따랐다.

대문 앞에는 흰색의 랭글러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부르릉!

권총수가 운전석으로 올라 시동을 걸었고 오민철은 조수석으로 올랐다.

차는 골목을 내려가 사라졌다.

정확히 집을 떠난지 20분 만에 도착했다.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높은 담장의 저택 앞에는 정장차림의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오민철이 다가서자 두 명의 사내가 막아서듯 다가왔다.

“마르타 경호원이오.”

양손을 들라는 듯 손을 벌린다.

오민철이 순순히 팔을 들어 올렸고 사내는 능숙하게 몸을 훑더니 핸드폰을 꺼냈다.

이어 다른 물건이 나오지 않자 핸드폰을 건네주며 들어가라는 신호를 했다.

작은 대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따라 오시죠.”

몸 수색을 했던 경호원이 오민철을 데리고 돌계단을 올랐다.

푸른 잔디와 사람의 손길을 엄격하게 받고 자란 듯 기기묘묘한 모양의 나무들이 마당 한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현관 앞에 자동소총을 들고 있던 두 명의 사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오민철은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보스, 마르타 경호원입니다.”

미색 상하의 싱글에 파랑색 물결무늬 넥타이를 멘 60중반 가량의 뚱뚱한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수북한 콧수염에 금테안경을 쓴 노인이 일어났다.

“오호! 피터씨가 보내신 분이군요?”

“오민철입니다.”

오민철은 동양식으로 허리를 구부렸다.

노인은 오민철의 손을 쥐고 호탕하게 웃었다.

“핫핫! 환영하오. 마르타 내려와보거라. 마르타.”

노인은 2층을 향해 소리쳤다.

“네 아빠!”

대답과 함께 12,3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려왔다.

피터가 건네준 자료에 의하면 마르타란 여자아이는 올해 13살로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마르타 뭘 그렇고 바라보고 있는 거니 인사를 해야지.”

“안녕, 난 마르타라고 해.”

마르타가 손을 내밀었다.

“으응, 그래 반갑다. 난 오민철이야.”

오민철은 마르타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마르타 여기 가방있구나.”

훤칠한 키에 삼십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백인여자가 내려왔는데 빨간 원피스가 휘감은 육감적인 몸매는 보는 사람을 민망케 할 정도였다.

마르타는 엄마 아드리아나가 건네주는 가방을 등에 멨다.

“아드리아나라고 합니다. 우리 마르타 잘 부탁합니다.”

여인은 미소를 지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빠.”

마르타는 다가가 노인의 볼에 입을 맞췄다.

“다녀오겠습니다.”

양손을 앞으로 모은 체 다시 한 번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한 마르타가 오민철의 손을 잡았다.

“아저씨 가요.”

오민철은 마르타와 같이 현관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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