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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100화 (100/651)

제100화: 햇빛사냥(3)

촤악!

빛 한 방울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창문을 가리고 있던 선실 천막이 벗겨졌고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선실로 들어오면서 이틀 동안 갇힌 듯 꼼짝 못하고 있던 사내들이 파랑색 천막 틈으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웬 천막이냐?”

오민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단하군.”

오민철과 달리 권총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방법이 있었군.”

“뭔데 그래?”

오민철이 물었다.

“대서양 바닷물도 파랑색, 닻을 내리고 고정된 배가 파랑색 천막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군사 위성이나 무인정찰기에 어떻게 잡힐까.”

사내들 눈이 커졌다.

“이,삼백 미터 공중에서 찍는다면 몰라도 몇 킬로 상공에서는 바다의 한 부분일 뿐이지 배가 파랑색 천막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걸 무슨 수로 알겠어?”

별것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생각 할수록 간단하면서도 경이적인 수비 전술이다.

미국과 남미 국가들이 대체적으로 관계가 썩 좋지는 않다.

그중 베네수엘라, 멕시코,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등은 거의 적대적관계이다.

당연히 이들 국가에 대한 미국의 감시는 강화될 수밖에 없고 조업을 하는 줄 알았던 어선이 꼼짝도 않고 바다에 떠 있다면 수상하게 생각 할 것이다.

하지만 파랑색 천막이 배를 덮어버리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아무리 정찰위성의 성능이 좋다고 해도, 고고도 무인정찰기의 카메라가 눈을 부릅뜬다고 해도 잡지 못한다.

사진을 찍으면 바다로 보일 것이다.

“굉장히 오랫동안 연구 한 모양인데.”

사내들 표정이 조금씩 훤해진다.

오는 내내 여러 상황을 떠올려 봤지만 쿠데타의 성공률은 낮다고 봤다.

그런데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름한 듯 보여도 의외로 차근차근 내실 있는 준비를 한 것이다.

한 낮의 대서양 태양은 배안에 있는 사람들을 구워삶기 시작했다.

갑판이 아닌 선실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은 피하지만 천막이 만들어낸 습한 열기가 사내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신음을 낸다거나 견디지 못하고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특수부대 출신들답게 담담한 표정으로 눕거나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모두가 땀은 흘린다는 것인데 한 사람만이 예외였다.

권총수는 전혀 더위를 못 느끼는 듯 깔끔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어떻게 구했는지 아침 점심으로 냉동 어창에 보관된 미군 전투식량이 지급되었다.

배는 파도에 꿈틀거리며 흔들거렸고 사내들은 40도를 오르내리는 선실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해가 지며 덮고 있던 천막이 벗겨졌다.

그리고 뱃전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일곱 척의 보트에 여덟 명씩, 나머지 두 척은 일곱 명씩 태워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척에는 권총수와 오민철 단 둘만 승선했는데 용이로운 저격을 위해 저격수와 관측수 말고는 아무도 태우지 않은 것이다.

“무전기 개방!”

“개방했어.”

권총수는 삼각대를 펴지 않고 보트 앞머리에 총열을 올렸다.

10발들이 사각 탄창을 끼우고 야간조준경까지 끼워 넣었다.

배는 빠른 속도로 어둠속으로 달렸고 3시간 정도 지났을 때 무전이 들어왔다.

“현재 위치를 말하라.”

오민철은 재빨리 차고 있던 손목의 시계를 눌러 경위도 좌표를 보며 현재 위치를 말해 주었다.

“북위 13, 서경 66.”

“동남쪽으로 3킬로 항해한 뒤 대기할 것.”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시키는 대로 방향을 틀어가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트는 잔잔한 밤바다에 떠 있었다.

권총수는 적외선 조준경을 통해 전방을 살폈다.

1킬로 밖에 해안 절벽이 있고 두 명의 보초병이 중기관총을 거치해 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민철은 엎드려 있는 권총수를 바라보았다.

과연 움직이는 보트 위에서 어떻게 저격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대한 화물선이나 큰 배라면 물결의 영향을 덜 받아 가능할 수도 있지만 파도가 잔잔한 데도 흔들리는 보트이고, 더욱이 야간이다.

“적 진지 파괴 1분전!”

소크라테스의 무전이 날아왔다.

철컥!

노리쇠를 당겨 실탄 한 발을 약실에 밀어 넣은 권총수는 조준경에 눈을 뗐다.

화악!

엎드려 지켜보고 있던 오민철의 눈이 커졌다.

권총수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몸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무거운 M82 까지 함께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내공으로 몸을 띄우는 걸 부운등공이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12킬로그램짜리 무거운 저격소총과 같이 떠오르는 건 또 다른 충격이었다.

“사격 10초전!”

소크라테스 목소리가 은근히 떨린다.

권총수는 두 사내 중 왼쪽을 먼저 겨눴다.

“5초전!”

후우우!

가볍게 숨을 내쉰 권총수는 다시 한 번 대력금강심법속에 자신을 묻었다 .

“3,2,1,사격!”

퉁!

투퉁!

연이어 두 번의 불빛이 피었다.

속사!

조준경 속으로 머리가 날아가 버린 두 명의 보초가 들어왔다.

소음기가 설치된 관계로 생각보다 소리는 작았고 보트에서 1미터 떠오른 상태의 저격이었기 때문에 반동으로 보트가 기우뚱 거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야간 적외선 망원경을 통해 살피고 있던 소크라테스는 떨리는 음성을 토해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듯 했다.

출발전 가장 염려 되는 것이 해안을 지키는 경비병이었다.

네이비 씰의 침투가 있은 뒤로 베네수엘라 국방부는 과이라 동쪽 해안에 십여개의 동굴을 파고 병력을 진주 시켰다.

바로 그 경비병들이 문제였다.

경비병을 피해 상륙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육지에서 지원이 힘들어진다.

카라카스로 가는 이동수단인 버스가 접근을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쏘면 되겠습니까?”

권총수가 엎드린 상태에서 떠올랐다.

“으헉!”

너무 놀라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부끄럽게도 배 아래쪽에 통나무 따위를 받치고 있는 줄 알고 허리를 구부려 확인까지 했었다.

일단의 보트들이 과이라항 동쪽 해안가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솟구쳐 나온 암초들 사이로 파고든 보트에서 사내들이 내렸는데 그들 손에는 M4가 들려 있었다.

“빨리 빨리!”

사내들은 신속하게 해안가를 벗어나 주차되어 있는 불 꺼진 버스에 올랐다.

보스 측면에 ‘아이마 관광’이라는 스페인어가 쓰여 있었다.

버스는 두 대였고 바다에서는 끊임없이 사내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내들이 모두 오르자 버스는 서서히 해안가를 따라 뻗어있는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달렸다.

새벽2시의 도로는 한산했고 가끔씩 짐을 실은 트럭들이 지나다닐 뿐이었다.

버스 안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RPG-7을 조립하는 사내, 휴대용 대전차 로켓 AT-4의 방아틀뭉치를 닦는 사내, M249 미군 경기관총을 휴대한 채 굳게 어금니를 문 사내도 보인다.

권총수는 지도 한 개를 살피고 있었다.

대통령궁에서 직선거리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추루흐 박물관 옥상이다.

당연히 지금 시간이면 문은 잠겼을 것이다.

수도 카라카스 시립 박물관이기 때문에 고가의 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건 첨단 도난방지 시스템이 설치됐을 것을 암시했다.

추루흐 박물관에 고정되어 있던 눈이 오른쪽으로 살짝 이동했다.

그곳에는 카라카스 시에서 운영하는 특수차량 차고지가 있는데 30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고층사다리차가 있었다.

“마지막 장비점검!”

소크라테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각자 역할을 떠올리고 지닌 장비를 살피기 시작했다.

달리던 버스가 잠깐 멈췄다 출발하고 권총수와 오민철이 내렸다.

부우웅!

두 사람은 버스가 떠나자 뛰기 시작했다.

약도대로라면 카라카스 시 소유의 특수차량 차고지는 500미터 앞에 있다.

거기서 고층 사다리차를 끌고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사다리를 타고 5층 건물 옥상에까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20분 주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저긴가 본데.”

방범등이 켜져 있고 노랑색의 차량 이십여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된 차량들은 도로를 씻는 물 청소차와, 무단 폐기물을 수집하는 트럭, 가로수 정비를 하는 작은 사다리차, 육중한 고가사다리차가 눈에 들어왔다.

오민철은 미리 만들어 놓은 키를 이용해 쉽게 문을 열었고 둘은 올라탔다.

구우웅!

차고지 입구를 막고 있는 쇠사슬을 끊어 버리며 추루흐 박물관을 향해 차를 몰아갔다.

“몇 분 지났어?”

핸들을 잡고 있는 오민철이 물었다.

“13분!”

“젠장 왜 이렇게 시간이 잘가.”

덜컹!

도로를 따라 갔다간 시간이 너무 늦을 듯 싶자 가로수를 들이 받고 길가 보도를 통과했다.

뻥!

꽈직!

간판이 차 지붕에 걸리고, 길가에 세워진 승용차를 밀어 버리고 지나갔다.

와그탕탕!

퍼퍼퍼!

작은 골목을 무자비하게 통과하자 박물관이 나타났다.

“빠르긴 빠르군.”

재빨리 박물관 뒤에 차를 세우고 오른쪽에 있는 여러 개의 손잡이 중 한 개를 잡아당기자 뒤에 있던 사다리가 앞으로 바짝 숙여졌다.

“타!”

권총수가 저격장비를 싣고 바구니에 올랐다.

툭!

오민철은 ON이라는 쪽에 사다리 작동 기어를 놓았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작동 리모컨을 찾아 쥐고 재빨리 바구니에 올라탔다.

리모컨을 누르자 투툭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사다리가 공중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다리가 올라가는 사이 권총수는 총을 꺼내 장비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오민철도 관측 장비를 꺼내 조립했다.

그 사이 바구니는 5층 옥상과 수평이 될 만큼 올라왔고 리모컨을 이용해 건물에 바짝 붙도록 이동시켰다.

탁!

바구니가 건물에 닿고 두 사람은 재빨리 내렸다.

그리고 맞은편 옥상 끝으로 달려가 저격총을 설치했다.

“장난 아닌데.”

야간 관측경을 통해 대통령궁 근처를 바라보던 오민철이 무거운 신음을 토했다.

대통령궁으로 들어가는 왕복 2차선 도로는 여러 겹의 바리케이트가 세워져 있었다.

첫 번째 바리케이트는 가벼웠다.

철침판과 오뚜기 침 바리케이트, A형 바리케이트가 촘촘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렇게 다시 쭈욱 이어지다 30미터 정도 뒤로 2번째 검문소가 나타났다.

벽돌 건물로 초소가 세워졌는데 옥상에 중기기관총인 M2가 설치되었다.

연이어 검문소와 경호 시설물들이 있는데 훈련장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대통령 궁 정문에 훈련소에서 보았던 APC 장갑차 두 대가 지키고 있었다.

핵심은 12.7밀리 M2HB 중기관총이다.

장갑차 처리 대원이 따로 정해져 있지만 돌발 상황을 대비해 훈련을 한 것이다.

“옥상 조.”

저격수인 권총수를 부르는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다.

“준비 완료.”

“우리는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으나 떨리는 목소리까지는 숨기지 못했다.

“모든 대원에게 알린다. 30초 후 각 분대별 위치에서 공격을 개시한다.”

마침내 지구상에서 딱 두 번 있었다는 용병들에 의한 권력 찬탈 작전의 막이 올랐다.

두 번의 성공 모두 현대가 아닌 오래전 역사 속 일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61년 미국의 CIA가 주도한 쿠바 혁명정부 전복 시도가 있었다.

이름하여 피그스만 사건.

미국으로 망명해온 쿠바의 젊은이들을 사주해 카스트로 정권 전복을 시도했지만 많은 사망자만 배출하고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 카스트로 정부의 조롱과 야유를 들어야 했다.

‘미련한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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