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햇빛사냥(2)
브랜들리 호는 산토스항에 선적을 둔 연근해 고기잡이 어선이다.
그런데 기관이 고장났다면서 일주일 째 출항을 하지 않고 있었다.
“고쳤나 보지?”
산토스 해안경비대소속 빌헤름 경사와 골디 경위는 해안가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 멀리 있는 브랜들리 호를 바라보았다.
“드시죠?”
빌헤름 경사가 커피 한잔을 내밀었다.
“고맙네.”
골디 경위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다시 브랜들리호 쪽을 주시했다.
“요즘 고등어 철이지?”
“오랜만에 풍어라면서 어민들 입가에 웃음이 그치지 않습니다.”
삐이걱!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구레나룻가 가득한 뚱뚱한 사내가 들어섰는데 머리에 사냥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골디 경위님, 빌헤름 경사님.”
뚱뚱한 사내는 두 사람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핫핫! 어서오게. 미카엘.”
골디 경위가 미소를 지었다.
“수리가 끝났나 보지?”
“예 그렇습니다. 오늘 저녁에 출항하려구요.”
“왜 밤인가? 고등어 잡이 배는 낮에 나가지 않나?”
“근해는 너무 배들이 몰려 있어서 조금 멀리 나가 볼까 합니다.”
“하긴 멀리 나가려면 밤에 나가는 것이 낫지.”
그러면서 미카엘이란 사내는 빌헤름 경사가 내미는 종이에 브래들리호의 출항 신고서를 작성했다.
사사삭!
사인을 끝내자 벨헤름경사가 손을 내밀었다.
“만선을 기대하네.”
“고맙습니다.”
미카엘은 악수를 하고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저 친구가 마트마 조직원이었다던데 사실인가?”
골디 경위는 이곳으로 전입해온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지역 사정에 아직은 밝지 못했다.
“맞습니다.”
마트마는 산토스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토착 갱단이었다.
부둣가를 중심으로 하역과 화물운송의 이권을 지배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바다를 떠돌다 들어온 사내들을 유혹하는 매춘, 마약시장까지 독점하고 있었다.
“조직에서 위치는 어느 정도였나?”
“행동 대원이었나 보더군요. 조직을 떠나는 조건으로 왼손 손가락 두 개를 내놨다더군요.”
“그래서 손가락이 없는 거군.”
골디 경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선으로 돌아온 미카엘 선장은 전화를 받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한참 동안 듣기만 하더니 짧게 한마디 했다.
“너무 염려 마시오. 난 구멍이 숭숭 뚫린 사람이 아니니까.”
씨익 웃으며 핸드폰을 끊었다.
파도가 잔잔하다.
아버지의 유언은 딱 하나였다.
자신의 뒤를 이어 하나뿐인 아들 미카엘이 고기잡이 어부로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병마와 싸우다 떠난 아버지의 유언을 거절 할 수 없어 손가락 두 개를 내 놓고 조직을 벗어났다.
그러나 남을 때리고 협박하며 살아온 자신에게 바다는 너무 힘든 직장이었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 절대 어떤 댓가도 주지 앉았다.
다시 조직으로 돌아갈까 몇 번을 갈등하던 차에 한 가지 제의가 들어왔다.
그건 돈이었다.
자신들을 목적지까지 태워다 준다면 미화 50만 달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돈을 벌 뿐이지 그들이 뭘 하는 사람들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필요도 없었다.
일주일 동안 출항을 하지 않은 건 고장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해안경비대에는 고장을 핑계로 계류 신고를 했다.
일주일 동안 1,000킬로 이상을 항해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기계를 손보고 낡은 부품을 갈아 끼운 것이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들이 온다.
지금 전화도 그들에게서 온 것이다.
해질 무렵 하나 둘 조업을 나갔던 어선들이 들어왔고 수만 톤급의 무역선들도 바쁘게 입출항을 반복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으스름한 부둣가로 버스 두 대가 다가왔다.
버스는 번호판만 달고 있었을 뿐 어디 소속인지 무엇하는 버스인지를 알 수 있는 어떤 글씨나 숫자도 없었다.
버스가 멈추고 앞문이 열리더니 사내들이 내렸다.
그들은 부둣가에 바짝 붙어 정박해 있는 브랜들리호로 곧장 들어갔는데 모두가 가방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어서오시오.”
미카엘은 낯선 사내들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자신의 웃음을 받아준 사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뭐 하는 인간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
맨 마지막으로 작달막한 체구의 두 사내가 골프채를 담은 것 같은 녹색의 긴 가방을 메고 올라왔다.
“어서 오시오.”
“안녕하시오.”
지금까지 올라온 70명의 사내 중 유일하게 자신의 인사를 받아준다.
오민철이 히죽 웃는다.
“환영합니다.”
“땡큐!”
오민철이 생글거리며 선실로 들어갔다.
배가 부두를 떠나기 시작했다.
산토스 항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숱하게 고기를 잡으러 다녔던 만큼 눈을 감고도 암초를 피해 갈수 있다.
부두와 멀어지면서 가물거리는 부둣가 불빛도 시야에서 사라졌고 배는 본격적으로 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스르륵!
불빛이 새어 나갈 만한 틈이란 틈은 모조리 천막을 이용해 막았다.
순간 그다지 좁지 않은 선실인데도 갑자기 긴장이 흘렀다.
꿀꺽!
꾸울꺽!
여기저기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촤라라라!
사내들 시선이 전면으로 향했다.
벽으로 스크린 한 개가 내려왔다.
파팟!
화면이 한번 좌우로 출렁거리더니 스크린에 낯익은 건물들이 나타났다.
“어!”
“지난 한 달 동안 죽어라 조졌던 농장 아냐.”
사내들이 아는 체를 했다.
환등기 앞에 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화면 속 건물들이 무척 낯이 익을 것이다. 또한 지난 한 달 동안 고된 훈련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했겠지.”
권총수는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여기 아는 사람 있나. 화면 속 건물 말이다?”
아무도 대답한 사람이 없었다.
사내들 눈이 예리하게 곤두섰다.
도대체 어딘가?
“아는 사람이 없는가? 좋다. 저긴 베네수엘라 대통령 궁이다.”
대통령 궁이라는 말에 화면을 보던 사내들 모두가 움찔했다.
평범한 작전은 아닐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대통령 궁이라는 말은 상당한 충격으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모레 새벽 우린 저곳을 공격한다. 반드시 탈환해야 한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다.”
권총수는 눈을 좁혔다.
왜 이제 그토록 혹독한 훈련을 시키면서도 침묵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며 훈련의 최종목적지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소크라테스는 단 한 번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외부와 통신할 수 있는 핸드폰도 모두 수거했다.
그건 누구도 바깥으로 훈련장 상황을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대통령궁을 공격 하는 것입니까?”
한 사내가 물었다.
“그렇다.”
“왜 공격 하는 것입니까?”
“우린 의뢰인의 뜻을 존중할 뿐 왜? 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결국 정치적인 작전이군요.”
“난 정치에 대해 모른다.”
그 이상의 정치적 질문은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쿠데타군요?”
권총수가 물었다.
“알지 못한다.”
“현직 대통령을 무력으로 몰아내는 건 쿠데타입니다.”
“다시 말한다. 우리는 의뢰인의 뜻을 존중하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신경 쓰지 마라.”
많은 사내들이 궁금한 질문을 쏟아냈다.
권총수는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용병은 어떤 일도 거래만 맞으면 동원된다.
KAS는 물론 아카데미와 다른 모든 민간 전쟁기업들 수입의 70프로 정도가 정치적 일이다.
자신은 참여 하지 않았지만 KAS가 걸어온 옛날 길을 슬쩍 돌아보면 남아공 야당지도자 암살을 시작으로 아일랜드공화국의 독립을 주창하며 영국과 대립하는 IRA의 지도자 낼슨을 교통사고로 위장해 제거한 사건, 소말리아 반군 소탕작전, 이란 특수부대 쿼드(QUDS)를 훈련시켰고, 2018년도에는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여 반군 1개 대대를 몰살 시켰다.
당시 영국은 반군을 지원했기 때문에 그 일로 영국 정가가 한동안 시끄러웠고 스톤스 회장의 지위가 요동쳤다.
다행히 평소 영국 의회에 많은 돈을 뿌린 덕에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알고 보면 정치적인 일이다.
‘정치적 사업일수록 달러 뭉치가 크다’
아카데미를 창건한 전 블랙워터 사장 프린스의 말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철저히 정치적인 일에 개입을 했고 회사 창건 3년 만에 매출 10억달러를 올리는 기염을 토한다.
모든 전쟁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그들 역시 판돈이 큰 정치적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쿠데타!’
권총수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싶었지만 갑판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미군 조기경보기와 군사 위성을 의식해 일체 바깥출입이 금지됐기 때문이었다.
“그냥 여기서 빨까?”
오민철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90퍼센트 이상이 골초들이다.
두 사람이 피우면 기다렸다는 듯 따라 피울 것이다.
70여명이 피운 담배가 천막까지 쳐진 창문 틈으로 빠져나간다는 건 쉽지 않다.
“질식해 죽어. 그냥 참자고.”
권총수는 벌렁 바닥에 누웠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20킬로 떨어진 과이라 해안가에 중화기를 거치한 군 진지가 있었다.
두 명의 군인은 야시경을 통해 조용한 밤바다를 살피고 있었다.
“파도가 이렇게 높은데 무슨 일 생기겠어.”
두 명의 군인이 나직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거 참!”
야시경을 벗고 적외선 망원경을 이용해 바다를 살피던 동료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파도가 꼭 사람 같단 말이야.”
“나도 가끔 파도를 사람으로 혼동해 방아쇠를 당기곤 하지.”
파도가 크지 않는 바다인데 오늘따라 약간 거칠었고 바람도 매섭다.
“하긴 이런 날 누가 오겠어.”
오래전 미군 특수부대 1개팀 120명이 야음을 노려 들어온 적이 있었다.
우연히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던 여자에게 이상한 사람들이 수영으로 접근해 온다는 신고를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먀약 단속을 위한 작전이라고 말했지만 누구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우고 차베스는 우리는 미국과 마약단속에 대한 어떤 약속이나 결의를 맺은 적이 없다면서 저들은 필시 날 죽이기 위해 왔을 것이라고 했다.
우고 차베스는 사사건건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며 이란과 북한편을 들어 백악관의 심기를 건드렸다.
다행이 씰팀에서는 대통령 궁을 공격 할만한 중화기나 파괴력 높은 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6개월의 시간을 끌다 불법 입국자라는 기상천외한 혐의를 받고 추방되었다.
이후 해안 경계가 강화 되었다.
해양전문가들 말에 의하면 만약 어느 나라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한다면 육로보다는 바다를 선택할 것이고 그중 이곳 과이라 동쪽 해안가가 될 것이라고 할 만큼 웬만해서는 파도가 크지 않고 조류도 약했다.
두 사람은 잠시 눈에서 감시 장비를 떼고 휴식을 취했다.
조금씩 날이 밝아오면서 바다는 다시 잔잔해졌다.
키를 잡고 있는 미카엘의 눈이 빛난다.
밤새 한숨도 자지 않고 키를 잡았다.
슥!
감시하듯 곁에 서 있던 소크라테스가 손목 시계를 보았다.
아침 5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척!
들고 있단 쌍안경을 눈에 붙였다.
아침이 밝아오는 수평선 끝에 작은 파도 같은 물체들이 꿈틀 거린다.
몇 번에 걸쳐 보고 또 보기를 반복하더니 중얼거렸다.
‘있다’
좀체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만날 것 같은 거리였지만 한참을 항해해야 했다.
소크라테스의 손에 들린 쌍안경은 20킬로 밖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특수 안경이다.
20여 분 정도 더 항해를 하고 나서야 키를 잡은 미카엘의 눈이 커졌다.
검정색 보트 십여 척이 바다위에 떠 있었다.
10척 모두가 서로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파도에 뿔뿔이 흩어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묶어 놓은 것이다.
팔뚝만한 밧줄이 바다 속으로 잠겼는데 필시 보트를 조류에 흘려가지 않도록 붙잡아 놓는 닻일 것이다.
브랜들리호가 멈췄다.
바다는 조용했고 바람 한 점 없었다.
동쪽 멀리 조금씩 붉은 기운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기기긱!
쇠가 서로 부딪히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선미에서 파랑색의 돛이 솟구쳐 올랐다.
알파벳 티(T)자 모양의 쇠로 된 기둥은 파랑색 천막을 풀며 수직으로 20미터 가량 솟았다.
그으으!
이어 천막을 수직으로 펼치고 있던 T자 모양의 쇠기둥이 선수(船首)를 향해 천천히 기울어졌다.
한순간 브래들리 호는 파랑색 천막으로 완전히 덮여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