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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97화 (97/651)

제97화: 타오르는 구름(3)

에이잭(Ajak)은 인도네시아 밀림의 승냥이를 가리킨다.

아프리카 사바나에 잔인한 사냥꾼 리카온이 있다면 동남아 정글에는 에이잭이 있는 것이다.

이들 역시 개과동물이며 리카온처럼 집단 사냥을 하는데 먹잇감을 죽여 놓고 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산채 뜯어 먹는다.

7마리에서 13마리 정도 무리를 지어 살며 장거리 사냥이 주특기로, 먹잇감이 스스로 지쳐 무너지는 것이다.

굶주리면 호랑이도 사냥할 만큼 무자비하다.

SAS 정규과목중 독도법과 전술행군은 인도네이사 보르네오 섬에서 주로 실시된다.

정글이야 말로 전술행군과 독도법 훈련의 최적지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 보르네오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냥꾼 에이잭의 이름을 별명으로 붙였다.

“잔인한 승냥이 새끼.”

결코 자비란 없었다.

훈련병들의 비명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자장가라며 괴롭히던 소크라테스다.

사내들의 투덜거림을 들었는지 아니면 알고 있을 것이라는 건지 이쪽을 보며 씨익 웃는다.

“한가락 했나본데.”

권총수가 싱긋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잔인하게 생겼네.”

오민철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총수, 민철.”

갑자기 소크라테스가 두 사람을 불렀다.

둘은 주춤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외인부대 출신들이다. 서로 도우며 잘 지내길 바란다.”

사내들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모아졌다.

사내들은 SAS를 나왔거나 또는 상륙기습에 뛰어난 특수부대 코만도, 신화처럼 내려오며 안개처럼 잘 잡히지 않는다는 구르카 부대 출신들이다.

예상대로 그들은 웃음을 지었는데 그건 숨길 수 없는 우월의식이었다.

훈련복과 전투화가 주어졌다.

그리고 M4가 개인 소총으로 지급 되었다.

사내들은 교관까지 포함해 모두 70명이었고 2개의 소대로 분류되었다.

첫날 밤 누구도 잠을 자는 사람이 없었다.

메트리스 위에 눕긴 했지만 거의가 뒤척이거나 아니면 눈을 멀뚱거린다.

뭐지.

사내들은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KAS에 입사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다.

브라질 부호들의 경호에서부터 건설현장 경비, 부잣집 아이들 납치를 막기 위한 보디가드,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정치인의 신변경호까지 다양했다.

대규모 전쟁은 벌어지지 않고 있지만 중동 다음으로 보안업계 가장 큰 시장이다.

미국의 마약 단속국이 멕시코와 콜롬비아에 관심을 쏟는 사이 브라질 마약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하여 민간 보안업체들은 주머니가 갈수룩 불러지고 있었다.

군인으로 전쟁, 그리고 용병으로 전쟁, 전쟁에 관한 이들보다 더 전문가들은 없다.

그런데 이번은 뭔지 몰라도 이상하게 신경이 곤두선다.

전쟁을 앞둔 병사는 동물보다 더 예민해진다.

“너도 그래?”

오민철이 벌렁 돌아누웠다.

“뭐야?”

권총수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드르렁!

35명의 1소대원 중 자는 사람은 권총수 한명이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시선이 코를 골며 자는 권총수에게 집중 되었다.

한두 번 지옥을 경험했을 만큼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전쟁터에서는 일당백으로 활약했던 자신들이다.

당연히 일반 군인들보다 감각적으로 발달될 수밖에 없고 작은 기척이나 공기 변화도 알아차린다.

이번 집단 훈련이 뭔지 모르지만 매우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면서 신체의 감각들이 곤두섰다.

잠이 달아나고 있는데 권총수만 시끄럽게 자고 있다.

“저 친구 만만찮은데.”

“외인부대를 나왔으니 긴장이라는 걸 알 리 없지.”

몇몇 사내들이 수군거렸다.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또 있었다.

오랜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탓일까 밤새 뒤척이다 컴컴한 새벽에 눈이 떠졌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아아!

하얀 번개가 작렬하며 소크라테스의 얼굴이 드러났는데 장대 같은 빗줄기를 쏘아보았다.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군대에 들어가면서 한 가지 징크스라는 걸 얻었다.

주위 친지들은 징크스는 비종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믿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과 의견을 달리했다.

징크스는 있다.

징크스는 곧 직감이고 어떤 전조를 알리는 징후라는 걸 확신한다.

‘빌어먹을 비라니’

비는 공격하는 병사들의 몸을 가장 무겁고 둔하게 만든다.

1소대 마지막 불침번을 서던 실턴의 두 눈이 커졌다.

기상을 30분쯤 남겨놓고 권총수가 일어나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가끔은 잠자리가 바뀌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전날 훈련이 아무리 고되었다고 해도 30분 정도 일찍 일어난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어제 일찍 골아 떨어졌으니 남들보다 몇 십분 앞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데 일어난 권총수가 결가부좌했다.

뭘 하는가 싶어 지켜보던 실턴의 눈이 커졌다.

10여분 정도 흘러 갑자기 권총수의 몸 주위로 희미한 안개가 뭉치기 시작했다.

안개는 시간이 흐를수록 짙어지더니 권총수의 몸을 덮어버렸다.

‘맙소사’

마술사가 감쪽같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건 봤지만 마술은 눈속임일 뿐이다.

권총수가 자다 말고 일어나 보는 사람도 없는 마술을 부릴 일은 없다.

쉬이익!

갑자기 안개가 소용돌이치더니 머리 위로 세 송이 꽃이 만들어졌다.

“오 마이 갓!”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머리 위 순백의 꽃을 알고 있다.

언젠가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고 거기서 본 연꽃이다.

풍요와 다산(多産)을 나타내지만 불가에서 말하는 자비와 포용에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꽃.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지만 그 어떤 꽃보다 고결하고, 아름답지만 가까이 할 수 없어 더욱 감탄을 자아내는 연꽃이 분명했다.

벌름!

콧구멍이 꿈틀 거린다.

‘설마 향기가’

연꽃의 향기는 모른다.

연못 속에 피어 있어 맡아 보지는 못했으나 지금 코 끝에 맑고 푸근한 냄새가 맡아졌다.

꽃 향기가 분명했다.

아직까지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우아하고 매혹적인 향기에 취해 있을 때 쉬이이! 하는 소리가 들리며 세 송이 연꽃이 기류가 되어 권총수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번쩍 눈을 떴는데 순간적으로 실내에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파아아!

실턴은 소스라치며 얼른 눈을 감아 버렸다.

소크라테스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보르네오 밀림 속에서 독도법 훈련을 받을 때였다.

아열대 기후다 보니 자주 스콜이 내리는데 그날 훈련은 당연히 강행되었고 동료 중 두 명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자신 또한 킹 코브라에 물려 사흘을 혼수상태에서 지내다 가까스로 깨어났다.

뿐만 아니라 전술행군 마지막 날 갑자기 안개가 끼었다.

영국도 안개가 많은 나라지만 열대우림의 안개는 무자비할 만큼 두꺼운 장막이다.

더욱이 밀림이다 보니 어떤 맹수가 공격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제일 두려운 공포였다.

30명의 소대원은 짙은 안개에서 이탈을 막기 위해 3미터 이내로 거리를 좁히며 이동했다.

그때 에이잭, 동남아 승냥이떼의 공격을 받았다.

총알이 장전된 총이기 때문에 물리치긴 했지만 숲속에 숨었다가 급습하는 그들에게 자신을 포함해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

“소대 사격장으로 이동.”

곧장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1소대와 2소대원들이 SAS대테러복인 흑복(黑服)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흑복은 방염 방열 및 특수약품 처리가 되고 일반 전투복 보다 가벼우며 질기다.

콰앙!

번개가 친다.

검은 복장의 70여명이 빗속을 걸어간다.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훗훗!”

침묵.

미치도록 좋다.

입을 닫는다는 건 오로지 목표에 충실하겠다는 뜻이다.

SAS훈련에서 심리전술이라는 과목이 있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훈련인데 적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할 때를 대비한 것이다.

표정 관리가 가장 중요한데, 표정은 자신의 마음 즉,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른바 포커페이스를 유지함으로 인해 최대한 가지고 있는 비밀을 지키자는 것이다.

1소대 실턴은 자꾸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 끝에서 권총수와 오민철이 걸어가고 있었다.

불침번 시간부터 아침을 먹고 지금까지 권총수와 몇 번 부딪혔다.

새벽의 상황을 묻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실턴 뭐가 그렇게 궁금한가?’

“끄억!”

느닷없이 실턴이 비명을 지르자 주위 사내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실턴의 안색은 창백하기까지 했는데 분명 귓속으로 권총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러는데?”

옆에서 걷던 고메즈가 돌아본다.

고메즈는 자신과 SAS 동기다.

자신의 뿌리는 엘살바도르이고 고메즈는 할아버지가 볼리비아 사람이었다.

모두가 영국으로 합법적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 태어난 이민 3세인 셈이다.

두 사람은 브라질 국영 전력회사 ‘엘레트로브라스’에서 짓고 있는 남부 아마소나스 댐 건설 경비로 일하고 있던 중 이곳으로 차출 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야.”

고메즈에게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세상에서는 미친놈이라는 소릴 듣고 살 만큼 엉망진창인 자신들이다.

정상인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이 세상의 평가들이고 스스로도 그럴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을 말하면 진짜 미쳤다는 소리가 돌아 올 건 뻔했다.

‘어떻게 내 귀에만 목소리가 들렸지’

좀체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모든 것이 서둘러 급조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격장에 들어섰는데 사격에 방해가 될 만한 높이의 풀과 나무를 대충 베어냈다.

깎은 수풀 사이로 이동 표적이 지나갈 두 가닥 레일이 보인다.

이동표적 거리는 50미터, 움직이는 표적과 표적의 거리는 5미터로 모두 열 개다.

사격은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었다.

보통 사람이 걷는 속도, 그리고 전장에서 이동할 때 달리는 약진이었다.

실탄은 30발들이 탄창 한 개가 주어졌다.

사격방법은 단단한 시멘트 기둥과 나무 뒤에 숨어 쏘는 엄호(掩壕)사격이다.

시멘트 기둥과 두꺼운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이동하는 표적을 맞추는 전형적인 시가전 형태의 사격인 것이다.

“사수 앞으로.”

좌우 끝으로 두 사내가 섰다.

표적은 양쪽에서 나와 레일을 타고 교차하며 지나간다.

“탄알 집 장전!”

탁탁!

두 사내는 30발들이 탄창을 끼웠다.

“사수 준비됐으면 사격 실시.”

말이 떨어지자마자 덜컹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185센티 80킬로의 무게를 가진 마네킹이 나타났다.

마킹은 어른들이 걷는 평균 걸음 속도로 이동했다.

드륵!

드르륵!

실탄을 얼마든지 쏴도 상관없다.

문제는 얼마만큼 분명하게 맞추냐는 것이었다.

“사격 끝, 다음은 약진표적!”

덜컹!

소리가 다시 들리고 표적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빠르다.

전투군장 차림으로 달리는 군인의 속도에 맞춘 것이었다.

드륵!

드륵!

두 사내는 진중한 표정으로 사격을 했는데 통제실의 소크라테스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표적을 보고 있었다.

표적을 관통한 총탄자국이 선명하게 보였지만 집탄이 형성 되지 않는다.

총알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건 총구가 흔들린다는 뜻이다.

즉 사수가 총을 완전하게 통제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탄착점들이다.

소크라테스의 이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찌푸려지고 있었다.

사격은 적을 맞추는 것이 아니다.

한 방에 적을 절명시키는 것이 사격이다.

특수부대 일수록 의지가 강하다.

치명상이 아니면 반격을 하기 때문에 한 방에 보내버려야 하는데 탄흔이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것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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