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타오르는 구름(2)
그러다 구석에 놓인 담배 갑에 손을 뻗었다.
“빌어먹을!”
한 개비도 들어있지 않은 담배갑을 구기며 투덜거렸다.
“여깄습니다.”
피터가 문 앞으로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내밀었다.
사내는 피터를 보고서도 놀라지 않고 손을 뻗어 담배 한 개비를 스윽 뽑았다.
딸칵!
피터가 불까지 붙여준다.
사내는 리모컨을 눌러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축구경기가 중계 되고 있는데 갑자기 짜증을 냈다.
“병신 같은 자식, 거기서 그렇게 때리면 어떡해 인마.”
금방이라도 화면 속으로 달려들 기세였다.
“훗훗!”
그 모습을 바라보는 피터가 싱긋 웃었다.
필터만 남도록 담배를 바짝 태운 사내가 꽁초를 마당으로 던졌다.
“처음 보는 친구로군. 어디서 왔나?”
“전 피터라고 합니다. 킬로 알파 서비스 브라질 지사장입니다.”
킬로 알파 서비스라는 말에 사내의 눈이 커졌다.
“SAS똘만이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보안회사인가 뭔가 하는 거긴가?”
“맞습니다 선배님!”
“거기 두목이 누구라더라. 내가 아는 사람 같던데.”
“스톤스 회장님이십니다.”
“아아! 스톤스 소령.”
“대령으로 제대 했습니다.”
“내 상관이었을 때는 소령이었어. 나중 연대장까지 올랐다는 소식은 들었지. 그래 킬로 알파 서비스에서 무슨 일로 날 찾아왔나.”
“안 바쁘시면 잠깐 나가시죠. 식사도 할겸.”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군. 돈은 자네가 내는 건가?”
“물론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사내는 입고 있던 추레한 옷차림 그대로 따라 나왔다.
파르메지아나란 요리다.
자신이 가장 좋아한다는 말에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실컷 먹어도 좋다고 했다.
스테이크이며 소고기의 맛있는 부위만을 따로 떼어 여러 가지 조각으로 요리를 하여 나오는데 꽤 값이 비싸다.
소크라테스.
브라질 계 영국인이다.
SAS 제23연대 정찰 추적소대인 제12 소대장을 역임했다.
이라크전 초반 바그다드 외곽에 있는 스커드 미사일 기지를 폭파하여 미군의 공습을 순조롭게 이끈 건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군사재판에 넘겨져 1년 형을 선고 받고 강제 예편당했다.
작전 중 민간인 2명을 사살한 것이다.
미 제13해병 원정 여단의 바그다드 진출을 돕기 위해 공격로를 확보하는 작전중 민간인 2명을 만났다.
공격로 확보는 극비중의 극비 사안이다.
전투에 참여하는 13해병들도 당일 날이 되기 전까지는 모른다.
어떤 작전일지라도 민간인에 대한 총기 살해는 군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나 워낙 중요한 작전이다.
비밀이 새어나가거나 누설되었다가는 엄청난 인명손실은 물론 바그다드 함락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소대원들은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크라테스 눈치만 살폈다.
탕!
탕!
미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모든 책임을 각오한 행동이었고 이후 부하들이 군사법정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으나 소용없었다.
3년형에 강제예편이다.
식사를 끝낸 소크라테스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넨 식욕인가 성욕인가?”
피터에게 불쑥 물었다.
“성욕이죠.”
“맞아 남자라면 대부분이 성욕이 우선이라고 대답할 거야. 멋진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일이지. 그러나 난 반대야.”
“먹는 걸 더 중요시 여긴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먹는다는 건 내겐 아주 기쁜 일이거든, 꽃향기보다 더 황홀한 음식이 혀 끝에 살살 녹으며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그 기분, 그 느낌, 아마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를 거야.”
소크라테스는 식욕 예찬론을 한동안 설파했다.
“자넨 누군가? 보아하니 신입인가 보군?”
코카인을 흡인한지 세 시간, 집을 나온 지 두 시간이 지나 처음으로 권총수에게 말을 걸었다.
“맞습니다. 애송이죠.”
“연봉이 어찌되나?”
“일급 계약입니다.”
하루에 3,000 달러이므로 한 달이면 90,000달러이다.
그리고 1년이면 정확히 1,080,000만 달러가 된다.
연봉이 백팔만달러가 나오지만 내년 이맘때까지 살아 있는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으므로 얼마라고 찍어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안회사가 웬만해서는 일급 계약을 않는데 매우 우수한 친구인가 보군. 어디서 근무했나?”
“외인부대입니다.”
“호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대를 나왔군.”
아름답다는 표현에 권총수는 빙긋 웃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외인부대를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몰려드는 부대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같은데 레인보우 부대라고도 한다.
“할 말이 뭔가? 코카인에 취해 곤히 자는 날 깨울 정도면 평범한 일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스톤스 소령님께서 보냈나?”
피터가 손목시계를 흘긋 보더니 가방에서 테블릿 PC를 꺼내더니 화면을 켰다.
몇 번 터치를 거듭하더니 소크라테스에게 넘겨주었다.
“보시죠.”
소크라테스는 테블릿 PC를 잡았다.
화면이 꺼지더니 한 남자가 나타났다.
소크라테스가 움찔했는데 화면속 남자가 환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별일 없나? 듣자하니 코카인을 무척 가까이 한다던데 헛헛! 자네답지 않네. 코카인이라는 물질이 처음에는 아주 뛰어난 맛을 갖고 있지. 하지만 거기에 취하다 보면 결과가 아주 비극적이야.”
소크라테스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말이 많아졌군요. 날 지휘할 때는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하긴 사업을 하다 보니 말이 많아 질 수밖에 없겠지.”
“나와 일할 맘 없나? 자네가 아주 적격인 일이 하나 들어와서 말이야. 돈은 원하는 대로 주겠네.”
원하는 대로 준다는 말에 소크라테스의 눈이 커졌다.
이 세상에 어떤 장사꾼도 직원을 스카웃하는데 원하는 대로 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본심을 숨기며 밀고 당기기를 여러 차례, 심지어 몇 달까지 끌어가며 한 푼이라도 적게 주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런데 현역시절도 아니고, 코카인 중독자인 자신에게 얼마든지 투자하겠다는 건 무슨 뜻일까.
“어떤 일입니까?”
“거래가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내심을 털어 놓으란 말인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에는 말해주기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야릇한 표정을 했다.
“많이 바뀌셨군요?”
“물론이지.”
문득 소크라테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권총수를 살피듯 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오랜만에 소령님과 한 팀이 되어 보죠.”
“역시 자넨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핫핫!”
스톤스가 호탕하게 웃음을 지었다.
“며칠내로 보게 될 걸세. 그때 자네가 좋아하는 켄터키산 버번 위스키 한잔 하지.”
“좋습니다. 기다리죠.”
영상이 꺼졌고 피터가 테블릿 PC를 회수했다.
* * *
검정색 랭글러가 우거진 밀림 속을 달리고 있었다.
길은 울퉁불퉁 했다.
잡초가 수북하니 도로를 덮고 있어 사람이나 차량 통행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얼마를 더 가야 하는 거야.”
핸들을 잡고 있는 오민철이 투덜거렸다.
벌써 1시간째 달리고 있다.
차량에 설치된 GPS가 아니라면 어디가 어딘지 방향도 알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졌다.
“엇!”
오민철이 깜짝 놀라자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권총수가 고개를 들었다.
바리케이트 하나가 쳐져 있었는데 컨테이너로 된 초소가 있다.
“어라!”
사복차림의 두 남자가 M4를 들고 있었다.
“뭐하는 사람들이지?”
“회사 사람들 같은데.”
“우리 회사?”
누군가 장난하듯 켄테이너 박스에 KAS란 글씨를 써놓았다.
끼이익!
차가 멈추고 오민철이 유리를 내렸다.
낡은 군복 상의를 걸친 사내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오민철이 KAS에서 발행한 사원증을 내밀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십시오.”
바리케이트가 올라가고 랭글러가 들어갔다.
입구 검문소에서 1킬로 정도 더 들어왔다.
갑자기 탁 트인 광활한 대지가 나타났는데 곳곳에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뭐지?”
두 사람은 차를 입구에 세워 놓고 천천히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나중 알게 된 바에 의하면 이곳은 과거 사탕수수를 재배하던 농장으로 규모가 여의도 보다 조금 큰 3.1㎢였다.
두 사람은 이제 막 지어진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건물 규모와 위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저기 맨 뒤에 있는 건물 봐.”
2층으로 된 바로크 양식 형태의 건물인데 매우 오래 되어 보였다.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나머지 건물들은 저 이층 건물을 지키기 위한 경호 막사들로 보이는 것이 나만 그런가.”
오민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맨 뒤에 있는 2층 건물은 분명히 주위 다른 건물과 비교되긴 했으나 권총수의 말처럼 경호막사 차원으로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데 권총수의 말을 듣고 유심히 살펴보자 그렇게도 보이는 듯 했다.
“그럼 저 2층 건물이 뭐가되는 거지, 왕궁?”
“글쎄 나도 모르지. 다만 여러 가지 건물 위치와 지형을 볼 때 어딘가를 공격하기 위해 세운 것 같은데.”
그때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
회색의 혼다 SUV 한대가 멈추더니 세 명의 사내가 내렸다.
모두 서른 초반가까이 보였는데 사내들은 뭐라고 떠들었고 권총수가 말했다.
“영어잖아.”
그건 브라질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들도 권총수와 오민철 곁으로 다가왔다.
담배를 물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를 했다.
“뭐하는 건물입니까?”
“우리도 지금 처음 봅니다.”
“갑자기 무슨 일로 하던 일 멈추고 이곳으로 모이라는 거야..”
사내들은 투덜거리며 돌아다녔다
사내들은 연이어 나타났다.
모두가 처음 와본 듯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그들도 지어진 건물들을 살피며 뭐하는 곳인지 궁금해 했다.
분명한건 사내들 모두 KAS소속의 용병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붉은색 랜드로버 한 대가 나타나더니 소크라테스가 내렸다.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었고 위아래 SAS의 흑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계급장까지 있었다.
권총수는 중위 계급장은 의도적으로 붙였을 것이라고 보았다.
SAS는 전역을 해서도 계급 체계가 엄격하다.
그건 계급을 달아 SAS출신들을 정확하게 통제하려는 목적일 것이다.
삐이익!
소크라테스가 휘슬을 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 모여 있던 사내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집중해라. 오늘부터 너희들의 훈련을 관리감독 할 교장 소크라테스다. 내 말을 듣지 않거나 항명하는 자는 그 즉시 해고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흐트러졌던 사내들의 태도가 반듯해졌다.
오민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리나라 예비군을 떠올렸다.
자신도 예비군 훈련을 받아봤지만 군대와 달리 현역 조교들 말을 콧등으로 듣는다.
“똑바로 서, 아차 하면 모가지라잖아.”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완전 군기 들었어. 카스텔노다리 훈련소 같아.”
“당연하지.”
“뭐가 당연해?”
“수틀리면 해고라잖아.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엘리트일지 모르지만 사회인으로서는 거의가 낙제생들이야.”
그건 맞다.
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건 전쟁이다.
총을 쏘고 적을 죽이고, 몰래 침투하여 경비병의 목을 대검으로 잘라내는 일에 익숙했다.
취직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어느 직장 어떤 곳에서도 두 달 이상을 버티지 못했다.
사회와는 도무지 융합이 되지 않았고 철저한 이방인이 되어 세상을 겉돌았다.
그러는 가운데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군시절 동료들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도 그렇게 떠날까.
죽으면 이런 고통은 없겠지.
전쟁의 트라우마, 그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 줄 꿈에도 몰랐다.
출전 병사들의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치료하는 국가지정병원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모든 건 생색 내기였고 스스로 감내하고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다 찾아온 이곳은 그야말로 낙원이고 다녀볼 만한 직장이었다.
군대의 전쟁을 민간세상으로 가져온 것만이 차이가 있을 뿐 다른 것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어 저 인간, 에이잭 아냐?”
누군가 소크라테스를 보며 외쳤다.
“에이잭(Ajak)이 맞아.”
“IS에게 찢겨 죽었다던데 아니야?”
갑자기 좌중이 시끌러워 졌다.
소크라테스를 향해 에이잭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