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94화 (94/651)

제94화: 죽음의 신사(3)

마르셀로는 빙긋 웃었다.

“그런 것 같네.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이렇게 얼굴을 알고 지낸지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 이름을 모르는군. 알겠지만 난 마르셀로라고 하네.”

선글라스 사내는 길게 연기를 뿜었다.

“피멘타라고 합니다. 회장님.”

“아마존의 지배자”

아마존 사람들은 한 마리 새가 나타나길 학수고대 하며 산다.

피멘타(pimenta)로 불리는 전설속의 새다.

하늘을 날기 위해 양쪽 날개를 펴면 아마존이 덮이고, 한번 날개짓에 천리를 날아간다는 영험한 새.

피멘타가 나타나면 ‘나오링’이란 열매가 열린다고 했다.

나오링은 아마존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 오는 불로장생의 과일이다.

피멘타는 오직 나오링만 먹고 사는데 원주민들은 착한 일을 하면 자신의 영혼이 피멘타의 등에 실려 천국으로 간다고 믿는다.

“왜 웃는 것이오?”

선글라스 사내 피멘타가 물었다.

“자네 아버지가 어떤 마음을 갖고 그런 멋진 이름을 만들어 주셨을까 생각해봤네.”

피멘타는 빙긋 웃었다.

“아버지가 훌륭한 사람, 세상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라는 뜻으로 지어 줬을텐데 사람을 납치하는 납치범이 되어 쓰겠냐고 말하고 싶은가 보군요?”

“지금이라도 날 돌려 보내주면 없었던 일로 하겠네. 자네에 대한 모든 걸 가슴에 담고 무덤까지 가져가겠다는 거지.”

“나 같이 나쁜 놈을 보호해주겠다니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회장님.”

치이익!

그때 무전기가 울리자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뭐야?”

“차가옵니다.”

“잘 살펴.”

슥!

피멘타는 권총을 뽑아 들었다.

들어오는 입구에 밴 한 대가 멈췄다.

네 명의 사내가 APC300기관단총을 들고 가로막았다.

밴의 좌우앞문이 열리고 두 명의 사내가 내렸다.

“돌아서 차에 엎드려!”

두 사내는 돌아서서 앞면 유리창을 보며 엎드렸고 타타탁! APC300을 든 한 명의 사내가 몸수색을 했다.

밴을 운전해 온 두 사내의 몸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열어!”

총구를 들이대자 엎드려 있던 사내들이 뒤로 돌아가 차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캐리어 다섯 개가 실려 있었다.

“확인해!”

우두머리로 보이는 야구 모자를 쓴 사내가 명령했다.

그러자 조수석에서 내린 사내가 캐리어를 일일이 열었는데 백달러 지폐가 가득했다.

야구모자 사내가 백 달러 한 묶음을 받아 꼼꼼하게 진위를 살폈다.

“오케이!”

열린 캐리어가 닫히고 차문까지 닫혔다.

“통과!”

사내의 명령에 밴은 다시 출발했고 네 명의 사내는 근처로 숨었다.

“이상 없습니다.”

사내는 무전기를 이용해 피멘타에게 연락했다.

피멘타는 권총을 든 채 다가오는 밴을 바라보고 있었다.

밴은 천천히 다가와 멈췄다.

문이 열리고 앞서 내렸던 두 사내가 다시 나타났다.

탕!

탕!

연거푸 총소리가 울리고 차에서 내린 두 사내가 엎어졌다.

피멘타는 총구를 흘긋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부우웅!

그때 풀숲에서 푸른색 다른 밴이 한 대 나왔다.

이어 세 명의 사내가 내리더니 회색 밴에 있는 캐리어를 옮겨 싣기 시작했다.

세 사내가 캐리어를 모두 싣자 피멘타는 권총을 들고 창고를 향해 걸어갔다.

마르셀로 회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피멘타의 얼굴에서 살인자의 광기를 발견 한 것이다.

그러나 굳은 것도 잠시 뿐 미소를 지었다.

“인간 사이에는 신의라는 것이 있다고 아는데.”

약속이 다르지 않느냐는 조용한 항변이었다.

“내 이름을 묻지 말았어야 합니다.”

“난 자네이름이 피멘타라고 믿지 않네.”

자신을 납치해 죽이려고 했던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뜻이었다.

피멘타는 환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거짓말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죠.”

자신은 진짜 이름을 가르쳐 줬다는 뜻이었다.

마르셀로 회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했다.

살인을 밥 먹듯 하는 갱 두목이 거짓말을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돈이 너무 많아도 장수하는데 장애가 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스윽!

피멘타가 권총을 들어 올릴 때 엄청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타아앙!

마르셀로 회장을 쏘려던 피멘타가 그대로 날아가 창고 안쪽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졌다.

퍼어억!

총소리에 놀란 세 사나이가 고개를 들었다.

“보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듯 APC300을 들고 창고로 달려갔다.

탕!

타아앙!

퍽!

파아아!

두 사내의 머리가 통째 날아가 버렸다.

혼자 남은 사내는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부지런히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간파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슥!

스으으!

하지만 도저히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조금 잠잠해 지는 것 같자 사내는 슬며시 일어났다.

타아앙!

퍼어어!

사내의 머리통이 사라졌다.

숲속은 고요했다.

일대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사는 검은 고함 원숭이까지 조용해졌다.

다다닥!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입구를 지키고 있던 세 명의 사내가 달려왔다.

“엠병할!”

죽은 동료들을 발견한 사내들은 당황하며 재빨리 주위를 경계했다.

타...타아아앙!

또다시 총성이 울리고 셋 중 두 사내가 나뒹굴었는데 가슴이 터져 나갔고 또 한명은 머리가 반쪽만 남았다.

이곳 창고에서 교전이 일어난 줄 알고 쫓아왔는데 그제서야 저격이라는 걸 간파한 야구모자의 사내는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사사삭!

서툰 포복으로 재빨리 밴을 향해 다가갔다.

탕!

“으억!”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는데 오른쪽 발이 사라졌다.

“내 발!”

퍼어억!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사내의 머리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의자에 앉아 모든 상황을 지켜본 마르셀로의 얼굴이 굳어졌다.

피멘타의 총에 죽은 회사 직원 둘은 그렇다고 치자.

피멘타와 부하들 모두가 방아쇠 한번 당겨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대포에라도 맞은 듯 머리가 통째 날아가 버리고, 종잇장처럼 찢겨진 시체들은 처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의자 뒤로 묶인 손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피멘타와 부하들을 몰살시킨 걸 보면 자신에게 우호적인 상대일 가능성은 높지만 브라질이란 나라는 누구도 앞일을 예측할 수가 없다.

오늘 돈과 자신이 교환된다는 사실이 비밀로 지켜졌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회사 누군가가 다른 갱단에 귀띔을 했을 수도 있다.

물론 수입의 몇 프로를 받는 조건으로 말이다.

일단 숨기라도 해야 했지만 발목까지 묶여 쉽지 않다.

유일한 방법은 토끼처럼 껑충 뛰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숲속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희망은 있었다.

폴짝!

마르셀로는 힘껏 뛰며 창고 문을 나섰다.

폴짝!

데구르르!

이번에는 착지가 좋지 않아 의자와 같이 구르고 말았다.

일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쉽지 않았다.

“끄으으!”

얼굴과 온 몸에 흙이 범벅이 되어 가까스로 일어나는데 성공했다.

다시 점프를 하려는데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란도란 들리는 목소리 톤을 보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팟!

마르셀로 회장의 눈이 빛났다.

대화가 브라질 언어(포르투갈어)가 아닌 영어다.

브라질 갱단이라고 영어를 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매우 유창하고 특히 목소리 톤이 조금 낮은 남자는 영어권에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세 사람이었다.

한 명은 백인이고 둘은 얼핏 동양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가장 키가 작은 동양인 어깨에 커다란 총 한 자루가 보였다.

한 눈에 영화 속에서 보는 저격 총이라는 걸 간파했으나 총기 모델은 알 수 없었다.

“역시 대물은 대물이구나. 900인데도 정확히 날아가는데.”

오민철이 주위에 나동그라진 시체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엇!”

마르셀로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백인, 그는 자신이 너무도 잘 아는 인물이다.

“피터!”

“화장님, 무사 하셨군요.”

피터가 재빨리 다가와 나이프를 꺼내 손과 발을 묶고 있는 줄을 잘랐다.

투툭!

“괜찮으십니까.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저의 불찰입니다.”

“아니오. 살아났으니 지나간 얘기는 하지 맙시다. 그런데 저분들은?”

“총수, 민철 인사하게. 브라질 최대 건설사인 오데브레시 마르셀로 회장님이라네.”

권총수가 빙긋 웃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제가 모조리 죽여 놨습니다.”

밝게 웃는 권총수를 보는 마르셀로 회장의 눈이 빛났다.

맑고 밝다.

이른바 티 없이 밝은 웃음이라는 건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어떤 근심도, 고통도, 불편함도 전혀 느낄 수 없고 차라리 온화하기까지 한 웃음에 지난 한 달 여의 악몽이 눈 녹듯 사라진다.

관음소(觀音笑)다.

또는 광음소(光音笑)라고도 한다. 대력금강심법이 삼화취정(三花聚精)의 경지에 올라서면 그때부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굴에 나타난다.

삼화취정은 정확히 내공이 일갑 자에 진입했을 때 나타나는데 특징으로는 운기조식을 할 때 둥근 세 송이 연꽃이 백회혈 위에 나타난다.

“무슨 총인가?”

마르셀로가 피터를 향해 권총수 어깨에 올려진 총을 물었다.

“바렛 최신형 모델입니다. 파괴력은 구형들 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가볍고 명중률이 높아졌습니다.”

마르셀로는 다시 한 번 권총수를 돌아보았다.

자신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나 젊어 한 때 무기밀매에 손을 댄 적이 있었다.

무기 장사를 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과학적 성능도 중요하지만 그 총을 쥔 사수의 실력이 먼저였다.

멍청한 사수에게는 아무리 좋은 총을 줘도 위력을 드러내지 못했다.

‘900’

조금 전 900미터 밖에서 저격 한 것이라고 했다.

브라질에 들어와 있는 킬로 알파 서비스 용병들은 거의 알고 있다.

그런데 권총수는 처음 본다.

더욱이 동양계다.

브라질의 모든 방송은 살아 돌아온 마르셀로 회장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건 마르셀로 회장이 자신을 구출한 사람이 킬로 알파 엑스라고 밝힌 대목이었다.

“그들은 날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자신들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난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범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건 모릅니다. 전 다만 묶여 있었고 밖에서 총소리가 들렸으며 잠시 후 킬로 알파 서비스 직원들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데려온 의사에게 내 건강을 체크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의사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약간의 대인기피증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했죠.”

“킬로 알파 직원의 이름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마르셀로 회장은 웃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을 통해 빈 라덴을 공격하는 미군 실6팀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 복면을 했더군요.”

그건 용병들의 안전을 위해서, 또한 자칫 정체가 드러날 경우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므로 곤란하다는 뜻이었다.

마르셀로 회장의 입에서는 킬로 알파 서비스에 대한 극찬이 끊이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기자 회견을 보고 있던 피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 일로 자신의 위치가 흔들렸다.

비록 마르셀로 회장을 극적으로 구출하긴 했지만 자신의 실수가 완전히 회장 스톤스 머리에서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아는 스톤스 회장은 성공보다 실패에 인색한 사람이다.

물론 킬로 알파 서비스 말고도 민간 보안회사는 많고 얼마든지 이직은 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의 스펙에 오점이 생기고 그로 인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몸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건 악몽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