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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코리아 스나이퍼-93화 (93/651)

제93화: 죽음의 신사(2)

아랫배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육십 가량의 노인이 스테이크를 4인분 째 먹어치우고 있었다.

노인은 은퇴한 전직 경찰관이다.

“내가 돼지로 보이나?”

노인이 앞에 앉아 있는 권총수와 오민철을 향해 불쑥 물었다.

“아닙니다.”

두 사람은 합창 하듯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기쁜 일이 뭔지 아나. 바로 먹는 것이라네. 무식한 놈들은 인간의 욕구중 첫 번째가 성욕이라고 하지. 하지만 그건 뭘 모르는 놈들이 내 뱉는 개소리야. 먹는 것이야 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이야. 자네들 먹지 않고 살 수 있나?”

“없죠.”

“그렇지만 계집 없으면 죽나?”

“아니죠.”

“봐, 벌써 게임은 끝난 거야. 까불고들 있어.”

노인은 마지막 한 조각을 집어넣더니 트림을 했다.

“이제 좀 살 것 같군. 꺼으윽!”

트림을 크게 한 뒤 디저트로 나온 마라쿠자를 순식간에 싹쓸이 했다.

“역시 디저트로는 마라쿠자만한 과일이 없다니까?”

스윽!

냅킨으로 입을 닦더니 넌지시 물었다.

“커피 한잔 시켜도 되겠나?”

“얼마든지 시키십시오.”

“젊은 사람이 착하다는 건 굉장한 강점이지. 천국 가는데 말이야.”

권총수를 향해 히죽 웃더니 종업원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어디까지 말을 했었던가?”

“레드 커맨드입니다.”

“아 맞아, 나이가 들다보니 자꾸 깜빡깜빡 한다네.”

“괜찮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정말 자네란 사람 마음에 들어. 올해 나이가 몇이라고 했지?”

“스물다섯 입니다.”

“내가 그 나이 땐 이 나라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범죄자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지.”

노인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자르델 경감.

5년전 현역에서 은퇴했다.

브라질 경찰 역사상 가장 많은 국가 훈장을 받은 경관일 만큼 그의 활약은 눈부셨다.

자신의 딸이 납치 되었어도 결코 범인과 협상하지 않고 끝까지 추적하여 체포할 만큼 범죄와는 절대 타협이 없다.

20여회에 걸친 갱단의 공격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운 좋게 목숨을 건졌는데 불행은 은퇴 후에 찾아왔다.

그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갱들이 한밤중에 쳐들어 온 것이다.

아내와 딸이 죽고 자르델 자신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으며 병원에서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깨어난 이후 그는 미친 듯 먹기 시작했다.

병원에서조차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고, 81킬로이던 몸이 불과 3년 만에 120킬로에 이르렀다.

나중 병원은 충격에 의한 폭식 현상이라고 발표했다.

“레드 커맨드는 교도소에서 결성된 범죄조직이지. 죄수들끼리 힘을 합쳐 교도관들의 폭력과 비리에 맞서 뭉친 것이 오늘날 브라질 최고의 갱단이 되었지.”

“커맨드란 이름을 지닌 범죄조직이 많던데?”

권총수가 물었다.

“많지. 명품을 모방하는 걸 뭐라고 하나. 짝퉁이라고 하지.”

“레드 커맨드를 제외한 다른 조직은 모두 짝퉁이란 말입니까?”

“커맨드의 명성을 빌려보자는 심보지. 진짜 레드 커맨드는 규율도 엄격하고 단순한 갱단이라기보다는 매우 체계적이고 질서가 분명하게 잡혔지. 이미 정치권에도 그들의 자금이 들어와 있고.”

“레드 커맨드의 우두머리는 누구죠?”

“그게 말이야. 매우 애매하다네. 페드리뉴란 말이 있고, 라자로니라는 설도 끊이지 않네.”

“페드리뉴라면 혹시 코린치안스 축구팀 구단주?”

“아는군. 라자로니는 상원 국회의원이지.”

권총수와 오민철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브라질 최고의 악명 높은 범죄집단의 두목이 프로축구팀 구단주 아니면 정치인이라니 다소 뜻 밖이었다.

“브라질 코카인의 60프로가 레드 커맨드의 선에서 움직이지. 경찰에서 추정하기를 레드 커맨드 우두머리의 재산이 약 1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하네.”

권총수의 표정이 우그러졌다.

100억 달러를 가진 사람이 5천만 달러 벌자고 굴지의 재벌 총수를 납치 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스테이크 네 접시면 삼백달러가 조금 넘는다.

거기에 브라질 범죄조식에 대한 얘기를 해주는 조건으로 봉투에 천 달러를 담았다.

그런데 얘기가 이렇게 결말지어지면 모든 것이 헛수고인 셈이다.

100억 달러 가진 사내가 오천만 달러 뺏고자 그 위험한 짓을 할리 절대 없기 때문이다.

“에이, 저 늙은이 잔꾀에 우리가 당했어.”

권총수가 한국말로 투덜거렸다.

“맞아 이 영감 실컷 처먹고 마시고, 뭐 레드 커맨드 보스 재산이 한화 50조라고, 완전 우릴 갖고 논거야.”

오민철은 금방이라도 주먹으로 한 대 갈길 표정을 했다.

“그런데 말이야.”

자르델이 커피 잔을 내렸다.

“자네들과 만나기전에 내가 오랜만에 정보망을 가동해봤지. 비록 현역 때만큼은 정확하지는 못해도 아직은 그럭저럭 쓸만해. 혹시 ‘매가톤’이라고 들어봤나? 이 역시 갱조직인데 그렇게 크지는 않아. 그곳 두목이 피멘타란 녀석인데 도박 중독자인가봐.”

권총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본능적으로 느낌이 온다.

“상파울루 외곽에 있는 조직의 커피 농장과 살고 있던 9번가의 주택은 물론 개인 요트까지 넘어 갔다지.”

“시가로 따지면 얼마입니까?”

“휴지조각인 브라질 리알로 두들겨 나온 액수는 의미가 없고 달러로 3,000만 달러 정도 된다네.”

오민철도 확신하는 눈치다.

“그놈 요즘 똥줄이 타고 있다고 들었지. 도박판에서 날린 걸 되찾으려면 적지 않은 돈이 필요 할거야. 자칫 하다간 쿠데타를 당할 수도 있고, 도박중독에 조직재산인 커피 농장까지 날린 두목을 누가 받들겠나.”

권총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강 하십시오.”

빠르게 레스토랑을 나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자르델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내가 더러운 늙은이로 보이나?”

속을 들여다 본 듯 말하자 오민철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무슨 말씀을.”

“자주 찾아오게. 난 아는 게 많다네.”

그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석양을 받으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모두가 피멘타 추적에 나섰다.

하지만 그의 행방은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가 종적을 감췄다는 건 자르델의 귀띔이 사실일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매가톤은 상파울루 3번가 일대에서 매춘과 도박으로 살아가는 조직이야.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역사는 깊지. 특히 피멘타의 아버지가 20년전 브라질 갱단 넘버1인 레드 커맨드 우두머리가 타고 가던 승용차를 공격해 모두 다섯 명을 죽인 사건이 있었네. 브라질 갱단이 발칵 뒤집어졌는데 그 사건으로 메가톤의 이름을 확실히 이 바닥에 심었고.”

피터는 권총수를 빤히 보았다.

“아버지와 달리 아들 피멘타는 잔인해. 민간 기업이든 뒷골목 조직이든 우두머리가 잔인하다는 건 좋은 품성이 아니지. 그래서 피멘타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으로 엇갈려.”

그때 문이 열리고 건장한 체구의 흑인 한 명이 들어왔다.

미 제 75레인저연대 출신 게세이라였다.

입사한지 6개월이 조금 넘었는데 아직 현장 근무는 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를테면 아직은 인턴 직원인 셈이다.

“피멘타가 레드 커맨드 소속의 우두머리급 인물과 도박을 벌였고 털린 건 사실이었습니다.”

게세이라는 자신의 정보원을 통해 들은 얘기라면서 사실일 확률이 80퍼센트 이상이라고 했다.

지이잉!

그때 탁자 위에 올려진 피터의 핸드폰이 울렸다.

피터는 액정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고 통화버튼을 터치했다.

피터는 잠시 듣고만 있었다.

모든 시선이 피터의 얼굴에 집중되었고 알았다는 얘기를 하며 전화를 끊었다.

“피멘타의 노름판 상대가 마세두였다는군.”

“미친 돼지.”

게세이라가 깜짝 놀랐다.

레드 커맨드는 최고 우두머리 밑에 다섯 명의 언더 보스가 있다.

마세두는 다섯 명의 언더보스 중 한 명으로 아침 식사 중에 칼로 배신한 부하의 피부를 벗겨 죽이는 잔인함으로 미친 돼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돼지는 120킬로의 거구인 그의 몸을 빗댄 말이다.

레드 커맨더의 언더보스들은 조직 편제상 분명 보스의 아래인 넘버 2이지만 각자 독자적인 세력과 관할 사업을 갖고 있다,

“속았어, 피멘타는 사기도박에 걸린 거야.”

피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피식 웃었다.

“마세두 과거를 살펴보면 십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약 5년의 세월이 비지. 그 5년 동안 리우 데 자리우 카지노 타워에서 사기도박꾼으로 악명을 떨쳤어. 당시 그의 나이 16살, 소문에 의하면 거기서 레드 커맨드 보스를 만나 상파울루에 입성했다고 하더군.”

“피멘타가 마세두의 사기도박에 걸려 모든 걸 잃었단 말이군요.”

“도박광인 피멘타가 당한거야. 더욱이 그의 사업 구역이 마세두 관할과 일부 겹친다는 말이 있던데 겸사겸사 정리하기 위해 마세두가 던진 미끼를 피멘타가 덥석 물었을 거야.”

돈 없이 갱단을 운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조직 소유의 커피농장까지 날아간 마당에 피멘타가 설 자리는 없다.

누군가 그에게 총을 겨눌 수도 있다.

서둘러 자금을 마련해 재기를 꿈꾸려 했을 것이다.

5,000만 달러 납치 사건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내로라하는 탐정들과 사람 사냥에 노련한 살인청부업자들까지 고용하여 피멘타를 쫓았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확실히 브라질은 넓었고 우거진 열대우림은 피멘타를 완전하게 숨겨 버렸다.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추적자들에게 현상금을 더 올리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현재 내건 상금은 피멘타가 있는 곳을 제보한 사람에게 5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백만 달러로 올려 보자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지이잉!

전화가 걸려왔고 피터는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를 받던 피터의 눈이 빛났다.

“피멘타가 걸린 듯 하네. 조금 전 그의 핸드폰 통화 발신지가 잡혔다는군.”

권총수는 피터를 돌아보았다.

통화 발신지를 알아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찰의 협조다.

또 한 가지는 GPS를 통한 경우다.

킬로 알파 서비스 자체에서 운영하는 GPS위성은 없다.

더욱이 최소한 네 개 GPS 위성이 모여야 발신지 추적이 가능하다고 볼 때 후자는 어렵다.

‘결국 경찰이군’

발신지를 가르쳐 줄 정도면 말단이 아닌 경찰 고위층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음!’

권총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찰에서 피멘타의 핸드폰 발신지를 알아 낼 정도면 일찍 체포가 가능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잡지 않는 것일까.

씨익!

권총수는 웃었다.

답이 나온 것이다.

‘경찰 고위층 누군가가 킬로 알파 서비스가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킬로 알파 서비스가 달러뭉치를 들고 찾아오길 기다린 거야’

사건 종료 후 알게 됐지만 자체적으로 해결을 해보려 했으나 더 이상 진전이 없자 결국 런던 본사에서 경찰 고위층에게 돈을 보냈다는 걸 확인했다.

왜 브라질이 부패지수가 1,2위를 다투는 나라인지 알만 했다.

* * *

넓은 창고 하나가 열대우림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때는 이 지역에서 생산된 커피 건조 창고로 사용되었으나 뿌리를 갉아먹어 말라 죽이는‘팔라티스’병이 휩쓸고 가는 바람에 지금은 버려진 곳이다.

드넓은 커피 농장은 잡목과 잡초로 뒤덮여 있었는데 한 사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검정색 선글라스를 낀 사내는 남색 싱글에 넥타이가 없는 와이셔츠 차림이었는데 가끔씩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때?”

왼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를 통해 물었다.

“아직 차량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쏘아 붙이듯 한마디 하며 돌아서서 창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50대 후반 가량의 사내가 의자 뒤로 손이 묶여 있었다.

“담배 하나주게.”

히죽!

선글라스 사내는 가볍게 웃더니 담배 한 개비를 물려주고 불을 붙여 주었다.

“좋군.”

오데브레시 건설사 회장 마르셀로는 빙긋 웃었다.

“담배가 이토록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건지 미처 몰랐군.”

“절박할 때는 뭐든지 새롭고 신기롭죠. 그렇지 않습니까?”

피멘타는 담배를 길게 빨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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