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안 보인다(2)
권총수는 액정을 보았는데 제임스(James)라는 이름이 떴다.
“예 이사님! 알겠습니다. 곧 가죠.”
전화를 끊은 권총수가 오민철을 향해 물었다.
“회사로 좀 들어오라는데요. 가보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드로 밥값을 계산하고 전주식당을 빠져나갔다.
킬로 알파 서비스 사무실을 들어선 권총수는 멈칫했다.
사무실 공기가 냉랭했다.
스톤스 회장과 제임스, 그리고 못 보던 마흔 중반가량의 한 사내가 있었다.
“어서들 오게!”
제임스가 자리를 가리켰다.
“총수 인사하게. 우리회사 브라질 지점장인 피터일세.”
“외인부대의 사막의 흑새가 우리 회사에 오실 줄은 몰랐소. 환영합니다.”
“울새작전을 아나?”
제임스의 물음에 권총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인부대 시절 다리다 소대장으로부터 울새작전에 대한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우리의 국조가 까치이듯 울새는 딱새과 소형조류이다.
영국의 국조이기도 한데 2014년 영국군 SAS 옐로우팀이 이라크 북쪽산악지역에서 IS소탕 작전을 전개했다.
사실 영국군이 중동전에 개입한 건 미국과의 오랜 맹방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자국 특수부대의 실전경험을 얻게 하려는 목적이 더 컸다.
이름하여 ‘울새작전’
위성을 이용해 미리 IS의 무전을 감청한 뒤 불라두티 계곡에 있는 그들을 급습했다.
그 결과 100여명의 IS를 제거하는 전과를 올렸는데 놀라운 건 그중 50여명이 중간 간부급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그 작전을 지휘했다네.”
그러나 피터는 웃지 않았다.
권총수는 사무실 분위기의 냉랭함이 어쩌면 피터의 굳은 표정과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 했다.
“브라질 가봤나?”
제임스의 갑작스런 질문에 권총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지금 남미야 말로 중동에 비해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보안업계 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네.”
제임스는 브라질을 중심으로 하는 남미의 실정을 설명했다.
브라질 공항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Welcome to hell)’는 현수막이다.
재정 악화로 브라질 정부는 자주 경찰관과 소방관의 월급을 제때에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월급을 받지 못한 경찰들은 쓰레기처럼 지천에 널린 갱단과 결탁할 수밖에 없었다.
부호들은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사설 경호원을 둔다.
경찰력이 형편없다 보니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엘살바도르는 교도소가 미어 터져 죄수들을 세워 재우고, 멕시코와 콜롬비아는 국가가 완전히 마약조직으로 넘어갔다고 할 만큼 부패가 만연해 있다.
갱단두목은 그들 나름대로 이중 삼중 벽을 치고, 부호들 역시 그들대로 뛰어난 용병을 경호원으로 고용하는 것이다.
경찰은 시민안전 보다는 제 입 풀칠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다보니 치안은 엉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틀 전 그 동안 우리가 경호했던 오데브레시의 회장 마르셀로가 실종됐네. 물론 우리 회사직원은 시신으로 발견됐고.”
권총수는 깜짝 놀랐다.
“몇 명이기에?”
“수행 경호원 넷 모두가 아마존 줄기중 하나인 러브롱강 갈대숲에서 발견됐네.”
권총수는 피터를 바라보았다.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없네. 다만 분명한건 브라질에는 레드 커맨드라는 굉장한 갱단이 있지. 물론 경쟁 조직들도 적지 않고, 작년 브라질 경찰이 밝힌 갱단은 모두 4200여개였네. 숫자로 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갱단이 난립하고 있는 셈이지.”
제임스가 흘긋 스톤스 회장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했다.
“우린 그들 소행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지. 이번 사건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으면 남미에서 우리 회사의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하네. 우리 회사 일년 매출의 30프로가 남미에서 나오지.”
“원래대로 돌려놓는다는 건?”
오민철이 묻자 스톤스 회장이 대답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지. 마르셀로 회장의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살려오면 된다는 것이군요.”
“두번째는 만약 마르셀로 회장이 죽었을 경우 그를 공격한 자들을 모조리 공개처형하는 걸세. 그렇지 않으면 남미에서 우리 회사는 철수해야 하네.”
정확하지는 않지만 킬로 알파 서비스 일년 매출액이 20억 달러라고 들은 기억이 났다.
그중 30퍼센트라면 6억 달러였다.
회사를 떠받치고 있는 주 수입원의 한축이 무너지는 꼴이다.
드르륵!
스톤스 회장이 소파 서랍을 열더니 봉투 두 개를 꺼냈다.
“브라질 항공권이네.”
당장 브라질로 출발하라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세 사람은 대서양을 날아 상파울루를 향해 가는 영국항공기에 있었다.
권총수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피터를 흘긋 바라보았다.
피터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것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SAS 지휘관이자 폭파 주특기로 폭약 다루는데 최고의 전문가였다고 했다.
전역후 킬로 알파 서비스에 스카웃되어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여 주었다.
알라를 모욕한 혐의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이 시달리던 영국의 재벌‘짐 락클리프’를 완벽하게 경호해 냄으로써 그의 가치는 더욱 빛났다.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해시도, 전용 요리사를 매수해 음식에 독극물을 넣어 죽이려다 실패, 타고가던 마이바흐 방탄차량을 대전차 지뢰로 날려 버리려다 이 역시 실패.
이 모든 테러 실패의 배후에는 피터가 있었다.
남 보다 한 발 앞선 판단과 감각으로 락클리프 회장을 이슬람테러 단체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했던 그가 깊은 시름에 잠겼다.
‘옷을 벗는 건 아무것도 아냐. 내 명예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울 뿐이지’
회장실을 나온 세 사람은 잠깐의 티 타임을 가졌다.
피터는 음울한 시선으로 말을 이어갔다.
“나 혼자 무너지고 모욕당하는 건 상관없어. 나로인해 SAS의 영광이 추락할까 두려운 거야.”
전역을 했음에도 나 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거나 해석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피터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톤스 회장은 면전에서는 웃고 돌아서서 모가지를 쳐버리는 냉혹한 경영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아마 이번 일이 좋게 마무리 되지 않으면 피터의 연봉은 대폭 삭감될 것이다.
용병들의 계약서는 상당히 일방적이다.
2년 전 미국의 다인코프소속 용병이 계약서가 매우 불공정하여 미국 노동자들의 보편적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소송을 걸었지만 패했다.
법원은 전쟁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군인도 아니었다.
군인은 오로지 국가의 법 테두리 안에서 국방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용병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할 뿐 아니라 포로로 잡혀도 제너바 협정에 의한 포로로서의 대우를 받지도 못한다.
“하늘이 도와 마르셀로 회장을 구해 낸다면 미련 없이 옷을 벗을 셈이지.”
자존심과 명예가 삶의 좌우명인 그 다운 말이었다.
상파울루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했다.
“형 저기봐.”
권총수가 한쪽을 가리켰다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Welcome to hell)’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진짜잖아.”
경찰공무원 노조 측에서 달아 놓은 것이다.
물론 임금 지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자신들만의 항의방식이었다.
그것 말고도 여기저기 사회적 약자들이 낙서하듯 걸어 놓은 정부에 대한 욕설이 빼곡했다.
킬로 알파 서비스 브라질 지사 직원 둘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흑인들이었는데 피터가 소개를 했다.
“총수, 이쪽은 해글러, 여긴 세자르라네.”
권총수는 두 사내와 악수를 나눴다.
“영광입니다.”
“당신은 내 마음속에 우상입니다. 기다렸습니다.”
머리를 빡빡 깎은 흑인 헤글러가 미소를 지었다.
권총수도 마주 웃어 주었는데 외인부대 경험에 의하면 의외로 생긴 것과 달리 흑인들이 수줍음도 많고 부드럽다는 것이었다.
일행은 헤글러가 핸들을 잡은 랭글러에 올랐다.
남미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했다.
브라질 하면 마약과 대낮에도 총성이 어렵지 않게 울리는 무법천지를 생각 했는데 초고층건물과 사통팔달의 도로, 바쁜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얼굴에는 생기가 넘쳤다.
어디에서 축구 경기가 열리는 듯 야외 전광판에 골 장면이 계속 반복 중계되고 있었다.
차는 상파울루 중앙시장이 마주 보이는 건너편 17층짜리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로비에 들어서자 제복 차림의 경비들이 피터를 향해 아는 체를 했다.
피터 역시 그들에게 손을 들어 미소를 지으며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일단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서 쏟아져 내렸고 다섯 사람은 모두가 내린 뒤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일부에서 이번일이 잘못되면 브라질 지사를 폐쇄한다는 소문까지 떠돌고 있어 공항에서 잠깐 웃은 것 말고는 헤글러와 세자르 모두 굳어 있었다.
쨍!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10층에는 세 곳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데 킬로 알파 서비스는 ‘블루 마운틴’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여느 사무실과 다르지 않는 책상 배치와 컴퓨터, 벽에 걸린 누가 그린지도 모를 액자 그림,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듯 소파까지 모든 것이 제대로 사무실 흉내는 내고 있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비상사태인데 사무실 자리 지킬 여력이 있겠나?”
피터가 씁쓸한 표정을 했다.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킬로 알파 서비스 직원은 모두 80명이었다.
그중 50명이 갱단의 표적이 된 대부호들의 신병경호를 맡았고 나머지 30명은 아마존 건설공사 현장 경비원이다.
잉여인력 다섯 명이 상주하는데 지금 이번 사건으로 그들 모두 현장에 출동했다고 했다.
“브라질 경찰에는 신고 했습니까?”
오민철이 물었다.
피터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브라질 경찰은 제복만 입고 다니지.”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경찰인지 갱단인지 낮에는 경찰로 활동하고 밤이면 갱단의 일원이 된다는 말에 권총수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경찰보다 갱단이 많다는 말이 헛소문이 아니었다.
“따라오게!”
피터는 두 사람을 데리고 뒤쪽 벽으로 갔다.
쓰으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 손잡이를 돌리자 벽이 한쪽으로 밀려나며 공간이 생겼다.
대여섯 평 되는 공간에는 많은 총기류가 진열되어 있었다.
러시아 AK 소총 모델을 시작으로, MP버전의 권총, 기관총과 RPG도 보였다.
M4 계열의 서방진영 소총과 자동권총, GAU-19중기관총도 보였고 낯익은 소총이 있다.
HK416이다.
팟!
권총수가 한쪽으로 걸어갔다.
늘씬한 소총 한 자루가 벽에 진열되듯 걸려 있었는데 권총수의 눈이 빛났다.
M107A1.
유효사거리가 약 2킬로에 육박하고 그동안 M107의 최대 약점인 무게를 2킬로 정도 줄여 10킬로대로 맞췄다.
대인보다는 대물저격총에 가까운데 그렇다고 탱크나 장갑차를 뚫거나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웬만한 방탄유리, 어중간한 엄폐물 뒤에 있는 적 정도는 쉽게 잡는다.
“으음!”
확실히 107모델 보다 가벼워졌다.
“총수야 이것.”
오민철이 권총 한 자루를 내밀었다.
“자식 바로 웃음꽃 피는구나.”
슥!
권총수가 권총을 받아 들고 살핀다.
글록-17이다.
생산이 시작된 시기가 80년대 초반이므로 30년 가까이 흘렀고 그 사이 개량 발전된 수많은 파생형들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권총수는 글록 17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었다.
그것도 생사의 사연이다.